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나를 내려놓으면 행복할 수 있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는 청년의 수행 이야기는 아마 처음 소개해 드리는 것 같습니다.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 결혼과 육아를 맞닥뜨리며 겪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져서인지 글을 읽는 내내 먹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노예 짓'을 그만두게 되었고, 주어진 소임을 해내면서 스스로에게 다양한 가능성과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부분에서 참 다행스럽고 대견하다는 마음이 들었네요.

빨래와 설거지를 하면서 들었던 즉문즉설

6년 전 정토회를 알게 된 그때 저는 ‘자기 계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에 관련된 책과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다가 ‘마음공부’에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어느 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보았는데, 스님 말씀이 무척이나 쉽고도 재미있었습니다. 더욱이 저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다가오는 법문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면서, 아이들을 재우면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주야장천 들었습니다. 어느새 저의 하루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해졌습니다. 즉문즉설 중 특히 마음에 와닿은 것은 ‘가족’을 주제로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겪는 남편과의 관계,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또한 아이들과의 갈등에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등에 관련된 대화였습니다.

2023년 역사 기행 사회자 소임 중
▲ 2023년 역사 기행 사회자 소임 중

당시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감이 조금씩 쌓여갔고, 설상가상으로 군인인 남편이 전라도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무 연고가 없던 곳으로 이사했으며, 시골 생활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받은 육아 스트레스가 더해져 괴로움이 겹겹이 쌓여갔습니다. 마음 살피는 방법을 몰랐던 저는 가족을 낯선 곳으로 데려온 남편을 탓하고 말 안 듣는 어린아이들에게 짜증과 화를 자주 쏟아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괴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공부를 해야겠다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사람들과 같이 괴롭고 우울한 마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2022년 3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법문은 쉽고 재미있게 마음 살피는 법을 알려주어 너무 좋았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경계해야 할지 깊이 있게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행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로 실천 활동 시작

정토불교대학을 다닐 때 처음부터 너무 좋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마음 나누기할 때 다른 도반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고, 말을 잘하는 다른 도반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마음공부 자체가 좋았고 나아가 수행자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미라클 모닝’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정토불교대학 때부터 천일결사 입재식에 참여했습니다. 기도 시간에 매일 참석은 못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한다는 것이 실천력을 키우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연이어 정토경전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반야심경의 양자역학은 좀 어려웠지만, 금강경의 내용은 깊고 풍부하여 좋았습니다.

정토회는 ‘자원봉사자로만 운영이 된다’는 이야기에 많이 놀랐고,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불교대학 실천 활동으로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도 현대적인 외관에 또 한 번 놀랐던 기억이 정토회에 대한 깊은 인상입니다.

전법회원 교육과 군 전법

예전에는 ‘혹시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건가?’라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2024년 2월 깨달음의 장 수련 이후 법륜 스님이 말씀하시는 ‘노예 짓’을 하고 살았다는 자각을 하면서 남 눈치 보는 것이 많이 줄었습니다. 수행의 깊이를 더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일었습니다.

그즈음 소속 지부장님에게 전법회원 교육 권유를 받았습니다. 경전대학 졸업 이전에도 제안을 받았지만 ‘전법’이라는 단어 자체에 부담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선택한 전법회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교육 관련 법문을 바탕으로 선배 도반들의 전법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저 ‘부처님의 법을 세상에 널리 알린다’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교육에 임하고 있습니다.

2024년 군전법 서행(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정슬기 님)
▲ 2024년 군전법 서행(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정슬기 님)

‘돕는이’ 소임을 세 번째 맡으면서 스스로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두려움이 앞서 조금만 실수해도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전법 활동을 하면서 ‘그 실수가 없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이런 일이 또 생길 수가 있구나’ 하고 돌아보는 배움의 자세가 되었습니다. 진행자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체크하며 좀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되는 등 맡은 소임 안에서 주인이라는 적극적인 마음을 가지고 임하다 보니 진행자 소임도 하고 싶어졌습니다.

지부 사업을 소개하는 활동에서 ‘군 전법’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군인을 남편으로 둔 가족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끌렸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소임이 하나둘 늘고 활동에 재미를 느끼면서 살림에 소홀해졌습니다. 새로운 수행 과제가 생기면서 살림도 일이 아닌 놀이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관점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연탄 봉사와 역사 기행

연탄 봉사를 한 곳은 강남이었습니다.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솟아 있고 도로에는 비싼 차들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도심 한가운데에 제대로 만들어진 화장실도 없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저의 봉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경주 역사 기행은 지난해 세 번째로 다녀왔는데, 그중 2023년 두 번째 역사 기행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프로그램팀에서 ‘사회자 전령’ 소임을 맡았는데, 처음으로 큰 행사에서 맡아본 소임이었고 저로서는 업식을 훌쩍 뛰어넘을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2023년 11월 연탄 봉사
▲ 2023년 11월 연탄 봉사

첫날 저녁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회자 소임을 맡았던 도반님의 부상으로 소임을 할 수 없게 되자 제가 사회자 대행을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사회자 전령’이라는 소임을 겨우 해내고 있었는데, 3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봐야 한다니,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행여나 실수할까 두려웠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많은 생각으로 갈등이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누군가의 뒤에 숨어 묻어가는 것이 편안하고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이 결정을 바로 내려야 했습니다.

순간 ‘나’라고 고집할 것이 없다는 ‘무아’ 사상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일은 못 하겠다’를 ‘나를 내려놓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라는 관점으로 바꿔보니 할 만한 일로 보였습니다. 아픈 도반을 대신하여 그 일을 하면 될 뿐, 함께 준비하고 도와주는 도반들이 있기에 걱정할 일도 크게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행히 이런 마음가짐이 소임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고,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업식의 껍데기 하나를 벗겨내고 수행적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도움 받은 것은 당연한 게 아니고, 누군가의 헌신적인 마음과 태도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날의 감사한 마음이 아직도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선적인 성격과 인정욕구가 상당히 줄었습니다. 도반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함께 프로그램을 완성해가면서, 잘 쓰이고자 나를 잠시 내려놓았던 일련의 과정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난하고 깎아내리기 바빴던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격려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큰 수확입니다. ‘소임이 복’이라는 말은 진리였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통해 나에게 다양한 가능성과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저를 이끌어준 도반들이 있었고 분에 넘치게 복 받았다는 생각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특히 청년특별지부는 취업, 연애, 결혼 등 여러 고민과 불안 속에서 많은 청년이 자기 시간을 쪼개어 지부 활동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지만 자기 수행을 통해 알아차리고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을 존경합니다. 도반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봉사하고 수행할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합니다.

2024년 10월 경주역사기행(왼쪽에서 두 번째가 정슬기 님)
▲ 2024년 10월 경주역사기행(왼쪽에서 두 번째가 정슬기 님)

11년 세월을 넘어 더욱 돈독해진 남편

여전히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상적인 아빠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은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남편은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며 추억을 쌓는, 영화 속에서 보았던 자상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 당연히 결혼 전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남편은 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을 하대하듯 무시하며 얘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너하고 얘기하면 내가 어쩐지 너무나 못난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져”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 사람으로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바뀌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라고 한 생각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라며 되돌아보았습니다.

제가 꿈꾸었던 그런 사람은 영화에나 존재하는 것인데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상을 지었구나, 그냥 아무 문제 없는 남편에게 욕심으로 못된 말과 행동을 했구나’ 하며 많이 반성하고 사과했습니다. 이렇게 한마음 돌이키니 남편과의 유대감은 더욱 깊어지고, 군인들의 전우애처럼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 가족은 행복합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5년 1월호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_정슬기(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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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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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이

열정에 감사합니다~

2025-07-01 14:09:52

늘빛

고맙습니다 ~

2025-06-30 20:37:24

평화

중년인 제가 슬기님 글을 읽고 남편에게 참회합니다.
투박하게 잘난 척 하고 살았던, 아직도 다 고치지 못한 습관을 인정하고 그런 나를 받아준 남편에게 깊이 숙입니다.
청년 슬기 님 고맙습니다.

2025-06-30 13: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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