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분별이 걷히자 드러난 귀한 인연

오늘 소개해드릴 글은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지금까지 소개한 수많은 바라지장 소감문과는 다르게 공양간에서 음식을 다루는 에피소드가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지를 하러 문경에 꼭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짧고 간결하지만, 전해지는 감동은 아주 깊고 진합니다.

진짜 문제가 공양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수민 님
▲ 이수민 님

문경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법우로부터 ‘바라지장’에 참여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백일출가 38기로 입재해서 회향했다가, 3년 뒤 재입재하여 1년여의 상근생활을 마쳤습니다. 바라지 봉사자가 부족하다는 연락이 왔었는데, 때마침 이직 준비로 쉬고 있던 터라 바라지장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가볍게 지원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문경수련원에서의 생활은, 가볍게 시작한 마음과 사뭇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새벽 4시에 기상해서 대웅전으로 올라가 예불을 드리고, 예불이 끝나면 쉴 틈 없이 곧바로 소임으로 이어져서 정신 차려보면 점심 공양 시간이 지나곤 했습니다. 몸이 고되니 ‘괜히 왔나?’ 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몸이 힘든 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적응될 터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공양간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공양간이 아니라 내 안에 튼 똬리

한 도반의 행동 하나하나에 제 모든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거슬리기 시작하니 도반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와서 피해 다니기에 급급했습니다. 몰래 공양간을 나가서 혼자 쉬고 오는 모습이나, 음식 앞에서 과하게 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얄미운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왕 바라지하겠다고 마음을 내고 왔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없을까?’ 하는 분별심에 이리저리 마음이 요동쳤습니다.

공양 바라지 일정이 끝나고 마무리 나누기 시간에 제 분별심은 폭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반이 말하길, 공양간에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서 잠시 땡땡이를 치려는데, 바라지 팀장님이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하는 말에 마음이 불편했다는 겁니다. 일을 함께하기로 정해진 시간에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정작 규칙을 알려준 팀장에게 왜 분별심을 내나 싶어 화가 났습니다. 팀장님도 내심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며, 도반의 잘못을 짚어주거나 화를 내주길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제 기대와 다르게 팀장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도반을 대하고, 하던 대로 일을 진행시킬 뿐이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수민 님)
▲ 문경수련원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수민 님)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었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팀장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져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모두 자신에게 할당된 몫의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아, 내가 분별하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의 속마음까지 알 순 없어도 겉보기에 다들 여여히 흘려보내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나는 여기에 수행하러 왔고, 다른 분들 역시 그렇구나, 우리는 수행자구나!’ 하는 생각에 별안간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서 그저 도반을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5일 동안 같이 일하다 헤어질 사람이 아니라, 소중한 수행 도반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비로소 도반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8년째 바라지를 해오고 있는 사람, 몸은 아파도 그동안 받은 것을 나누고 싶어 온 사람, 깨달음의 장에 있는 여자친구를 위해 바라지하러 온 사람, 일과 집안일 양쪽으로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 온 사람 등 분별에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반들로부터 얻은 큰 울림

정토회 활동한 지 5년 동안, 공동체에 있던 시간을 제외하면 스스로 수행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서 문경까지 바라지하러 온 도반들로부터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수행은 상황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해야 하는 동반자와 같은 것임을 느꼈습니다. 일체 모든 게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이 다시금 새롭게 와닿은 순간이었습니다.

문경에서 돌아온 후, 매일 아침 정진하는 신기록을 달성하는 중입니다. 그냥 한다는 생각으로 하니 기도가 더 이상 의무감으로 다가오지 않아 가볍습니다. 안정적인 직장과 삶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이 있어서 자다가도 깨서 걱정하곤 했는데,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자’ 하고 되뇌다 보니 어느새 불안감이 가라앉은 것을 느낍니다. 수행으로 삶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수행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바라지를 권해준 법우님과 5일 동안 함께 바라지하며 수행한 도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문경수련원 백화암 앞에서(오른쪽 첫 번째가 이수민 님)
▲ 문경수련원 백화암 앞에서(오른쪽 첫 번째가 이수민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6월호에 수록된 바라지장 소감문입니다.

글_이수민(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4

0/200

다람쥐

지옥은 내 스스로 만들어낸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수행담 감사합니다

2025-01-03 09:51:34

박미영

솔직한 수행담을 보니 법우님의 마음이 맑음을 알겠습니다. 수행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함을 곧잘 놓치는구나,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수행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12-23 09:06:41

선주행

저도 요즘 갈등하는 현실인데
읽어내려가면서..아차 싶었습니다.
참회합니다 모든 문제는 제 문제 입니다()()()

2024-12-17 16:25:24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