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달서지회
괴물을 사람 만들다

용성 조사님이 아도모례원에 오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 인사하니 달서지회 김영웅 님입니다. 138회 용성 조사 오도 기념 법회 축하 공연에서 용성 조사 역할로 검정 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불교대학부터 경전대학 세 번, 현재 대구경북지부 달서지회 용산 모둠장까지 하는지, 김영웅 님의 ‘일상의 행복’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용성 조사 오도일 기념 법회 후 용성 조사의 뜻을 이어
▲ 용성 조사 오도일 기념 법회 후 용성 조사의 뜻을 이어

돈이 최고야

어린 시절 저는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잘 웃고, 다른 사람을 곧잘 웃겼습니다. 아버지는 불같은 성격이라 저와 동생은 아버지가 일찍 집에 오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돈이 최고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인자하고 자상하며 자식밖에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중소기업에 30년 넘게 근무했고, 어머니도 평생 식당에서 일했지만,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돈 벌 궁리만 했습니다. 열세 살 때부터 신문 배달, 포장마차, 호프집 아르바이트, 막노동 등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낮에 친구와 학교 앞에서 수레에다 아이스크림과 쥐포를 팔았습니다. 아이스크림 스쿱 살 돈이 없어서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떴고, 프라이팬에 쥐포를 구웠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했습니다. 30분 정도 팔았는데 도매시장에서 떼 온 물건값을 벌었습니다. 이때 장사의 재미와 매력을 느껴 직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자영업을 할 때 거래처 사장님이 저를 잘 보았는지, 막내딸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성공에 대한 압박으로 결혼은 엄두도 못 냈는데, 아내가 마음에 쏙 들어 3개월 만에 결혼하고 딸도 낳았습니다.

가족사진
▲ 가족사진

당시 제가 하던 사업은 시절 인연이 맞지 않았습니다.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그곳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세 살 난 딸과 아내는 처가에 있고, 저는 식품 가공 사업에 매진했습니다. 1년이면 성공할 줄 알았던 일이 3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하는 건 뭐든 다 잘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절망했습니다.

가족과 헤어진 지 3년 만에 납품하던 체인점이 대박 나면서 돈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제일 먼저 가족을 데려왔습니다. 아내에게는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물건들로 만족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업 시작할 때 팔았던 아버지 차를 새로 샀습니다. 저 또한 성공에 취해서 과시하고 즐겼습니다. 해마다 해외 원정 골프를 다니고 카지노에서 도박하며 돈을 펑펑 썼습니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지만 저는 불행했습니다. 이 성공이 유지되지 않을까 봐 늘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도서관에 가서 불교 관련 책을 읽거나 혼자 등산을 했습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지금 여기 깨어 있기’란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특별한 사람들이 깨닫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법륜스님은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 있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충격받았습니다.

49일 문경살이
▲ 49일 문경살이

행복을 향한 첫걸음

책을 통해 법륜스님은 알았지만, 정토회와 인연이 바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2017년 어느 날, 늘 그랬듯이 그날도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담배를 사서 나오는 길에 정토불교대학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괴로웠던 저는 다음 날 바로 집 근처 중리법당에 가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렇게 행복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불교대학 입학하고 한 달여 만에 <깨달음의 장>에 갔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친 후에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마음이 편했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매우 행복했습니다. 불교대학 프로그램 중 문경수련원에서 1박 2일 수련할 때였습니다. 300배를 마치고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영웅아’라고 쓰자 감정이 북받쳐 더는 쓸 수가 없었습니다.

돈이 최고라는 아버지 말처럼 부자가 되기 위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앞만 보고 살았습니다. ‘나는 이래야 한다’라는 상을 지어놓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괴롭혔습니다. 불법을 공부하니 저는 이대로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저를 인정하니, 마음이 한없이 편했습니다.

그러나 이 편안함과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편하니 예전 습관으로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경전대학은 세 번이나 입학했지만, 졸업을 못 했습니다. 불교대학과 <깨달음의 장>을 통해 머리로는 불법을 알았지만, 생활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늦게까지 술 마시고 불안해하고 자책했습니다. 수행 정진을 하지 않으니 실천이 안 되어 예전보다 더 괴로웠습니다.

49일 문경살이 중 공양간에서
▲ 49일 문경살이 중 공양간에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다

저는 이런 생활 습관을 바꾸고 싶어 49일 문경살이를 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는 대중과 함께 새벽예불과 발우공양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일상은 바라지하며, 잘 쓰이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예불, 공양 준비, 공양, 해우소 청소, 농사짓는 일이 다였습니다. 일하며 자기 마음에 깨어 있는 연습을 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몸은 힘든데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그날 할 일은 미리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미리 주어졌다면 아마 걱정했을 것입니다. 매일 주어진 일을 하면서 오롯이 자기에게 깨어 있는 연습만 했습니다. 이렇게 생활하니 그동안 얼마나 욕심부리며 살았는지 깨달았습니다. 금강경 1장 법회 유인분에서 옷 입고 자리 펴고 앉는 모습을 왜 세세하게 묘사했는지도 알았습니다. 일상이 바로 도였습니다.

49일 문경살이 후 경전대학을 세 번째 도전해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인도 성지순례를 두 번 갔습니다. 처음 인도에 갔을 때 불가촉천민들이 소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3년간 학교를 운영하지 못해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삐쩍 말랐습니다. 학교가 다시 열렸을 때 교사들은 아이들을 못 알아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매일 계란 2개씩 한 달을 먹이니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이 세상에 아이들이 굶거나 배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정성을 다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이 말이 가슴 깊이 와 박혔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괴로운 이유는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여 고마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바로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사람이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인도성지순례 중(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괴물이 사람 되다

저는 현재 모둠장입니다. 저는 살면서 한 번도 회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습관처럼 늘 혼자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모둠장 소임에서 가장 힘든 일은 회의에서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민주적인 방식에 익숙해져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하니 뿌듯합니다.

불법 만나 화도 덜 내고, 좋고 싫은 분별심도 줄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내는 저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아내는 정토회를 무척 사랑합니다. 정토회가 괴물 같은 저를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돈 더 벌어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내 덕분에 사업 규모를 줄여서 봉사할 시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제가 수행, 보시, 봉사하도록 지지하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입니다. 아내는 스님의 즉문즉설은 다 챙겨서 듣고 <깨달음의 장>도 다녀왔지만, 불교대학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남편 덕분에 이미 부처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로 역행보살입니다.

저는 남은 삶을 스님이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부탄이나 민다나오에 갈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잘 쓰여 이 세상에서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저는 그 일을 정토회를 통해서 하기를 발원하며, 새벽 정진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가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길이며, 저를 더 성장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아도모례원 평화 발원 만 배 정진(세 번째 줄 가운데)
▲ 아도모례원 평화 발원 만 배 정진(세 번째 줄 가운데)


‘인생은 덧없다. 꾸준히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좋아한다는 김영웅 님,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물었습니다. ‘저렇게 많은 경험을 언제 다 했을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김영웅 님이 남은 인생을 잘 쓰이며 살도록 저도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글_신정순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전체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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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학

영웅님 너무 감동적이고 훌륭하십니다

2024-11-30 10:07:19

보람

감동적입니다. 거듭남 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수행담입니다. 깨달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11-18 20:21:54

문미숙

김영웅님 수행담에 반갑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문경 도량에서 스치듯 만날 때 어떤 분인가 궁금도 했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이런 삶을 사신 정토인이셨군요. 자랑스럽습니다^^

2024-11-18 19: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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