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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주 1회는 법당에 나오겠다는 각오에서 젊은 열정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청년.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는 이흥선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종교가 있으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깜냥에 이 종교 저 종교를 살폈죠. 그중에서 불교가 가장 괜찮아 보였습니다. 깨달은 스님들은 뭔가 좀 달라 보이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었거든요. 고등학생 때 막연하게 불교가 어떨지 궁금해하다가, 대학 진학 후 불교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모순되게도 그때 술과 고기를 제일 많이 먹었습니다. 법회도 하고 대불련(대학생 불교 연합회) 활동도 하고 재미는 있었지만, 불교 공부라 할 만한 것을 전혀 안 했기 때문에 뭔가 만족스럽지 못했었죠.
나이가 차서 군대에 갔는데, 교회와 성당, 법당 중에서 법당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절밥이 정말 맛있었고, 매주 듣는 스님의 법문도 재밌었죠. 그러다 법당에서 <월간정토>가 꽂혀 있는 걸 봤습니다. 그게 정토회를 알게 된 계기입니다.
군대를 제대한 후 안성법당의 수행법회에 나갔는데 그 다음 주에 천일결사 입재식이 있다고 같이 가자고 했었습니다. 뭣도 모르고 8-4차 입재식에 갔었죠. 많은 사람이 느꼈을 것 같은데 저는 정토회가 처음엔 좀 사이비 같았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을 다녀온 뒤 108배는 3일만 했었죠.
그러다 개학할 때가 되어서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갔고, 근처 서대문법당에 갔습니다. 저녁 불교 대학을 신청했는데, 한 도반께서 청년반이 있다고 청년반으로 옮겨주셨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저는 인복이 있어요. 어딜 가나 좋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청년반으로 넣어주신 덕분에 1년간 즐겁게 불교 대학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법문 듣는 것도 좋았고 마음나누기하는 것도 좋았죠. 수행맛보기 때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도반들에게 일어나라고 연락하는 게 정말 설레고 재밌었습니다. 함께한 도반들 덕택에 2년간 꾸준히 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모둠장부터 시작해서 자활팀장까지 해볼 수 있었죠. 죽기 전까지 정토회를 다녀야겠다는 생각도 이때 했습니다.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냄새가 납니다. 저는 ‘향을 싼 종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활동하면서 참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다니면서 인턴처럼 일하는 도중에 자활팀장과 불교 대학 담당을 맡게 되었죠. 불교 대학 1학기가 지나고 기존 담당이 청년팀장으로 올라가서 중간에 맡게 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일주일간 엄청난 화가 났습니다. “그냥 합니다.” 해서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하기 싫은데, 왜 자꾸 해야 하는 거야?’ 하는 마음이 났었거든요. 하기 싫은 걸 하는 게 수행이라는 데도 그랬었지요. 그렇게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옆에서 본 건지 다른 도반이 불교 대학 담당을 맡아줬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넓지 않다는 걸 깨닫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내가 못 채운 부분을 다른 사람이 채워준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내가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한 꺼풀 내려놓을 수 있었죠. 한 꺼풀 내려놓으니 자유로웠습니다. 정말 자유로웠어요. 부처님과 스님이 말씀하시는 “겸손하되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되 자만하지 말라”는 말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었죠. 그걸 경험하고 나니 정토회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을 왜 수련에 보내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죠.
그리고 좋았던 건, 진지한 이야기도 가벼운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도반들의 존재였습니다. '마음나누기는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침밥 먹으며 가족이랑 마음 나누고, 점심을 먹으며 동료들과 마음 나누고,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마음 나누는 세상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현실의 저는 가족과도 친구와도 쉽게 못 나누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어서 좋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때 꿈이었던 사서가 되기 위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죠. 우리나라에서 사서가 되려면 공무원 사서직이 자리도 많고 빠른 길이기 때문에 6개월을 미친 듯이 공부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정진도 하지 않았는데, 운과 노력이 있어서 한 번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난 뒤에는 머릿속의 주름이 다리미로 싹싹 다린 것처럼 옛날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가 수행하며 느꼈던 감각들은 어땠는지... 정신이 많이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발령을 좀 늦게 받을 거로 생각했는데, 인력이 없었는지 발령을 바로 받았어요. 어디에 새로 적응한다는 게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직장에 나가서 도서관 이용자들과 동료들을 만난다는 게 극심한 스트레스였었죠. 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영화를 어쩌다 본 이후로는 내 머리에 총을 쏘는 상상을 날마다 수십 번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무렵 경전반 담당을 맡아달라는 걸 거절했습니다. 처음에 맡겠다고 했지만,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지요. 죄송하다고 말하려고 수행법회에 갔다가 <깨달음의장> 때 인연이 된 이연옥 님(현재 향형 법사님)을 만나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때 설득당한 덕분에 정회원도 되고, 경전반 담당으로 시작했다가 불교 대학 팀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부총무님이 불교 대학 팀장은 “공지”만 전달하는 거라고 해서 정말 공지만 전달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취합하거나 교육에 참석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주례회의에 가는 것도 생각 못 했습니다. 경전반 담당일 때는 소임이 낮은 위치란 핑계로 안 갔었는데, 팀장이 되니까 그럴 수가 없다는 걸 깨닫고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활동가 교육에 ‘불교 대학 팀장 반드시 참석’이라고 적힌 걸 보고 ‘아~ 불교 대학 팀장이 공지만 하면 되는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소임 맡을 때 부담을 덜어주려고 공지만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낙장불입이라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도 그냥 하다 보니까 처음보단 익숙해졌습니다. 별로 많이 한다고 생각 안 하지만, 도반들이 도움이 된다고 하니 좋은 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천일 기도도 안 해요. 법륜스님 즉문즉설도 잘 안 듣고요. 만 배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여태까지 자리를 맡아서 해달라는 것만 했지 제가 뭐 나서서 한 적 없습니다. 업식도 많죠. 그래도 하나는 압니다. 좋은 사람들과 있으면 저도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정토회는 붙어만 있어도 끌고 가주는 게 참 좋은 점입니다.^^
정회원 되고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 건지 말해보라고 해서 ‘죽을 때까지 주 1회는 법당에 나오겠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비장한 각오를 했다고 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그냥 조금 더 물들고 싶을 뿐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붙어있어야겠습니다.
글_이흥선(수원정토회 안성법당)
정리_장미애 희망리포터(수원정토회 안성법당)
편집_양지원(광주전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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