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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영하 8도로 매운 추운 날이지만 따사롭게 내리비치는 햇살 좋은 날,
정토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69세 봄경전 학생인 이차상 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어휴, 하는 것도 없는데 나 말고 다른 봉사자도 많은데.....
어떻게 이야기도 두서없이 하고, 알아서 써 줘요.” 하시면서 밝은 얼굴로 맞아 주셨습니다.
마음을 깨달은 후 ‘늦은 나이에도 변할 수 있구나!’를 깨달은 이차상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살다 보니 ‘마음’이라는 걸 알고 싶어서 마음공부 하러 명상센터에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불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어요. 인연 따라 유튜브로 스님 법문도 듣고, 강연도 찾아다니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질문하면 문경 <깨달음의장>을 갔다 왔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그곳이 뭐 하는 곳일까? 궁금해졌어요.
처음부터 정토회 다닐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깨달음의 장>을 가려면 불교에 대해 좀 알아야 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됐어요. 그런데 <깨달음의 장>에 나이 제한이 있더라구요. 원래 나잇대로 하면 갈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도 주민등록이 잘못되어서 <깨달음의 장>을 갈 수 있었어요. 잘못된 게 좋은 일도 있더라구요.(웃음)
인생을 살면서 온갖 일을 겪었지요. 우리 남편이 아는 사람한테 속아서 집 두 채 있는 것을 다 날려버린 거죠. 그때는 은행이라도 털고 싶더라구요. 그 이후,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안 해 본 게 뭐냐?”라고 물을 정도로 온갖 일들을 했어요. 제가 원래 하나를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에요. 완벽주의죠. 그래서인지 내가 항상 옳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내가 100% 옳을 수는 없다.’, ‘내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다,’라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바라지는... 솔직히 처음에는 색다른 요리를 배우고 싶었어요. 친정이 가난해서 손님을 대접한다든가 하는 이런 게 별로 없어서. 바라지는 전문가들이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다 해야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요리는 못 배웠어요.(웃음)
바라지를 해보니 나물 다듬는 거, 밥하는 거, 국 끓이는 거, 써는 거 하나하나가 정성과 수행으로 한다는 거에 감동했어요. 나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보람도 느꼈구요.
작년 11월, 농수로에 빠져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는 바라지 갈 때와 특강 갈 때 빼고는 거의 <JTS 거리모금>을 한 거 같아요. 나가서 조금이라도 모금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지금은 다리가 안 좋아 못하는 게 많이 아쉬워요.
정토회에서 하는 봉사는 조금씩이라도 다 하고 싶어요. 스님도 저렇게 애쓰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요즘은 그나마 경전반 사회자 소임, 불전함 소임을 하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가니 앞으로도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체력이 닿는 한 조그마한 거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자선사업 하는 거, 봉사하는 거, 기부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어요. 나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집안 생활도 좋지 못하고, 못 배워서 자녀들은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돈, 돈!’ 하고 살았어요. 당연히 보시하는 마음마저 하지 않았지요. 법문 들으며 가난한 마음, 베푸는 마음, 나누는 마음, 구함이 없는 마음 등 보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요즘 감사한 건 조금씩 바뀌는 나를 봐요. 가난하게 사는 유방암 걸린 제 동생에게 천만 원이라는 돈도 주게 되었어요. 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또, 시집와서 나에게 온갖 시련을 준 시동생에게도 아들에게 대주려고 했던 전세자금 천만 원도 주게 되었어요.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는 나에게 "잘했다. 고맙다."라고 칭찬했습니다. ‘나도 변할 수 있구나!’
69세가 되어서야 보시를 알게 되었어요.
정토회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절대 없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글_김영신 희망리포터(남양주정토회 남양주법당)
편집_전은정(강원경기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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