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법당
아홉 번 바라보고 열 번째도 바라만 보는 돌부처
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 (첫째 이진영 님 수행담)

눈이 부시게 푸른 가을날 아침 이 글을 쓰려니 지난 2년의 시간이 보입니다.

설렘 속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문경의 가을과 깨달음의장에서 마주한 지리산 천왕봉의 눈바람, 봄 빗속의 남산 순례에서 본 연달래…. 참 많은 인연과의 만남이 먼저 떠오릅니다. 즐거웠습니다.

주위에 바쁘고 힘들게 사는 분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밝고 웃는 사람으로 비추어 지면서도 나는 왜 만족할 수 없었는지. ‘이정도면 편한 것 아닌가?' 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공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진주로 이사 와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농촌을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부족한 도시 며느리가 5형제의 맏며느리가 되어 순박하고 지혜로운 어머님과 함께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딸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진주법당 삼영 시스터즈 (이은영 님, 이진영 님, 이순영 님)
▲ 진주법당 삼영 시스터즈 (이은영 님, 이진영 님, 이순영 님)

둘째 아이 세 살쯤 남편 다리가 아파 경상대 병원에서 고칠 수 없다는 말에 부산, 서울로 2년을 쫓아 다녔지만 포기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올바른 병명도 연구도 없던 때라서 서울대 병원에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기다리다 진료했던 의사를 찾아다니며 당신 가족이면 어쩌겠냐고 절실하게 물었더니 실험단계니까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술 취소하고 남편은 지금도 무거운 다리로 선천적 부지런함으로 바쁘게 다니고 있답니다. 지금은 ‘림프 부종’이라는 병명도 있고 수술도 가능하지만 수술 예후가 너무 힘들어 본인이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기에 그냥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리하면 피곤이 빨리 와서 다리에 열이 나고 심하면 몸살을 합니다. 그래서 항상 제 마음은 불안하고 그 사람의 몸 상태에 본인보다 제가 더 예민한데, 본인은 일이 취미고 생활인 사람이라서 먹는 것도 쉬는 것도 뒷전일 때는 몇 번 참다가 고함이 나옵니다. 그러면 남편은 웃고만 있습니다.

어디 가면 간다, 언제 간다는 말 없이 사라지고 없는 남편은 정말 독불장군처럼 소통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순간 순간 화를 참기가 힘들어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다 스스로 먹고 살 거라고 불편한 다리 끌고 일하고 온 사람한테 조금 더 참지 못하고 고함친 내가 너무 한심하고 어리석어 돌아서 후회하는 내 자신도 정말 싫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인연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면서도 나 혼자 편하자고 내팽개치고 뛰쳐 나가고, 벗어날 수도 없는 현실에서 내 마음을 달래고 채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많이 헤맸습니다.

힘들었던 애들 사춘기 때 가게 보면서 사경을 시작했고, 일요일이면 혼자 지리산을 다녔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말없이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는 남편은 아이들도 아내도 그냥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애들보다 내가 먼저였고, 내가 힘들어하는 줄은 아는데 표현하고 도와줄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 미워할 수만 없는 사람이 우리 집 가장입니다. 돌아보니 남편의 자리, 아버지 자리를 지켰기에 이제 우리 가족에게 일 순위는 남편입니다. 같이 가야 할 동반자이고 가장 편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애들도 제 갈길 가는 것 같습니다.

나부터 행복해야 됨을 알게 되었을 때, ‘깨달음의 장’을 알았고, 그곳을 가기 위해 불교대학을 입학하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용기와 경험이 필요한 나에게 마음 나누기부터 전단지 배포, 거리모금, 크고 작은 행사의 퍼포먼스를 함께 하면서 작은 자신감도 생겼고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지금 물러서고 포기하면 정말 슬프고 불행한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한 달, 두 달을 버티고, 깨달음의장을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돌부처처럼 소통이 없어 답답했던 내가 그런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홉 번 바라보고 열 번째도 바라만 보아도 화를 내기보다는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후회하는 시간이 없어 너무 편안해졌습니다.

지리산 수련원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늘의 별빛도 아닌 저기 먼 곳에서 등불을 비추고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찾는 여행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가벼웠습니다. 깨달음의장에서 나의 고민은 다른 도반들의 고민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벼울 수 있었는데, 법사님께서 그렇게 제일 먼저 지적하시며 깨우쳐 주지 않았으면 지금도 내려놓지 못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법사님께서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인정하라고 하실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떠오릅니다.

법문 듣는다고 모두 다 습득이 되지도, 행하지도 못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욕심과 욕망은 가득하면서도 약간의 노력으로 큰 결과를 바라고 있는 나를 알았습니다. 내 어깨의 무게들이 무거운 생각들이 큰 것인 줄 알았는데, 누구나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내 어리석음의 결과임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크다고 생각한 괴로움이 작고 가볍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릅니다.

내가 공허했던 것은 ‘이 정도 했으면 되겠지’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지내면서 부딪히기보다는 힘듦이 싫고 그 과보를 받기 싫어서 회피하고 미리 방어하고 선 긋고 살았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냥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게 지혜롭지 못하고 인생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임도 알았습니다. 그 공허는 내가 만들어서 지니고 버릴 줄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나 혼자 어찌할 수가 없어서 방황했는데 이제는 그 길이 보여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내 삶에 갇혀 있기 싫어서 듣고 배우기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환경을 아쉬워하며 벗어나지 못하고 내 탓만 했습니다. 부처님 깨달음의 법에 필요한 것을 챙겨 일깨워 주시는 스님의 탁월한 가르침으로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광범위한 것을 더불어 배우며 닫혔던 인식의 문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목적을 갖고 책 읽기도 하면서 목말라 했던 배움도 조금씩 해결해 가고 있습니다. 삶을 ‘왜?’ 가 아닌 ‘어떻게?’에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함을 이제는 정확하게 정리가 되어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중간중간 특강(환경, 구호활동, 역사)을 들으며 알찬 내용을 접할 수 있어 주어진 여건에서 멀리 움직이지 않고 듣고 배우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저는 행복했습니다. 정토회의 하나하나 작은 메아리들이 큰 메아리로 다가와 나를 깨웁니다.

저는 열정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행동가는 못됩니다. 천천히 시행착오도 해가며 생각하고, 이런저런 경험을 쌓아서 내 것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코드가 맞다 싶으면 나이 불문하고 내 마음을 전하기 바쁩니다. 정토회 다녀보라고~ㅎ 내가 행복하니 옆 사람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계획도 생각도 못했던 집전을 하면서 나의 부족함도 나의 용기도 봅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알았습니다. 상황을 알면서도 자꾸 놓치는 현실이 있지만 참회를 하면서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일어나 경험 속에서 배워갑니다. 진주에 법당이 없어 멀리 마산까지 가서 배우셔서 이끌어 주시는 선배 도반 덕분에 편하게 공부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마운 분들과 공부하는 동기 도반과 두 손 잡고 함께 성불하고 싶습니다. 감사하며 사랑합니다.

글_이진영 (진주정토회 진주법당)
편집_목인숙 (경남지부)

진주법당 세 자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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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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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한숙

행복한 가정이네요
아자

2016-10-21 22:55:43

주선자

보살님~
잘 읽었습니다. 가슴 뭉클하며 보살님 뵈며 배웁니다^♡^

2016-10-11 15:52:55

정홍자

세자매의 두번째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자매들 넘 보기좋아요

2016-10-11 13: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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