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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오전에는 대중이 참석하는 봉축법요식이 열렸고, 오후에는 사회 인사들이 참석하는 봉축법요식이 열렸습니다. 저녁에는 청년들이 참석하는 ‘청춘톡톡’이 열렸습니다.


식의 시작을 알리는 타종을 시작으로 오전 9시부터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봉축법요식 1부인 천도재가 있었습니다. 헌공예불을 드리고 유수 스님이 법주로, 향자재 법사님이 목탁 집전으로 천도재를 봉행했습니다.


1,200여 명의 정토회 회원들이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과 지하 강당, 1층 로비에 자리했습니다. 국내외 으뜸절에서도 3,2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생중계를 함께 시청하며 봉축법요식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연등 모연에 참여한 모든 분이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생중계를 시청했습니다.

스님은 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며 향을 올렸습니다.

미래 세대를 대표하는 어린이 이세은, 이승준 님이 부처님 전에 연등을 올렸습니다.

청년활동가들을 대표하여 이현승, 한선아 님이 부처님 전에 꽃을 올렸습니다.

전 세계 도반들이 보낸 부처님 오신 날 축하 메시지를 영상으로 만났습니다. 종교인 모임 대한성공회 박경조 주교님, 천도교 박남수 전 교령님, 길벗 배우 조인성 님, 한지민 님, 이상희 님이 영상 메시지로 부처님 오신 날 축하 인사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어서 국내외 각 지부 활동가들의 희망 메시지가 이어졌습니다.

대중은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께 법을 청했습니다.
“정토행자 여러분, 불자 여러분,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오늘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입니다. 올해는 불기 2570년입니다. 불기(佛紀)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지금까지의 햇수를 나타내는 불멸기(佛滅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날은 지금으로부터 약 2650년 전, 음력으로 4월 8일의 이런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태어나게 된 배경, 부처님이 태어나서 일곱 발자국을 걷고 사자후를 하며 외쳤던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의 의미, 부처님 오신 날에 아기 부처님상을 모시는 이유, 욕불의식을 하는 이유, 연등을 켜는 이유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4월 초파일에 행하는 문화 행사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등불을 밝혀 그 공덕으로 부처를 이루리라는 연등 공양입니다. 둘째는 아기 부처님 몸을 씻기는 욕불의식(浴佛儀式)입니다. 욕불의식을 통해 ‘나도 미래세에 부처를 이루리라’라는 수기를 받는 것을 관정수기(灌頂授記)라고 합니다. 관정이란 물 먹인 붓으로 양 눈썹 사이 미간을 찍어주는 의식입니다. 그 자리에는 육안이 아닌 천안(天眼), 즉 지혜의 눈이 있다고 하여 그 눈을 열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초파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괴로운 일을 겪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슬픔에 빠지기도 하지요. 왜 이런 괴로움이 생길까요? 살펴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반대로 잃고 싶지 않은데 잃게 되어도 괴롭습니다. 함께 있고 싶은데 떨어지면 괴롭고, 멀리하고 싶은데 가까이 있어도 괴롭습니다. 결국 가깝고 멀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지요.

그렇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됩니다. ‘있어라’ 하면 곁에 있고, ‘가라’ 하면 사라지는 것처럼 무엇이든 내 뜻대로 된다면 괴로울 일이 없겠지요. 이것이 바로 천상의 세계입니다. 그중에서도 원하는 것이 백 퍼센트 이루어지는 세계를 불교에서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고 하는데, 욕계 육천 가운데 가장 높은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그런 세상을 동경하며 천당, 천상, 하늘나라, 용궁 같은 이름으로 묘사해 왔습니다. 물론 그런 곳은 죽어서 갈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도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게 되려면 내가 믿는 신이 전지전능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이 없고 못 하는 것이 없어야, 내가 물으면 답하고 원하면 이루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간절히 기도하라, 그러면 응답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죠. 불교에도 이와 비슷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자재보살입니다. 눈이 천 개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이고, 손이 천 개라는 것은 무엇이든 다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기독교의 전지전능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종교라고 합니다. 종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떤 절대적 존재가 도와줌으로써 어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관점에서 성립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믿음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 그런 존재가 실재한다는 믿음입니다. 둘째, 내가 원하면 그 존재가 나를 도와준다는 믿음입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이 이를 믿고 의지합니다. 그런데 정토회에 나오는 분들은 대부분 이것을 쉽게 믿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누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겠는가? 그냥 빌기만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갈수록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이라는 것은 관점이 조금 달라요. 내가 지금 괴로운 것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괴롭다는 것인데, 이것은 단견이고 편견입니다. 너무 일면만 본 것이에요. 애초에 인간 세상에서는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일까요? 나만 생각하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룬다고 생각해 보세요. 오히려 세상은 더 뒤죽박죽으로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전체를 보면,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 안 되기 때문에 그나마 세상이 이 정도라도 유지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세상에서 온갖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일까요, 없는 사람일까요? 힘이 있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힘 있는 사람이 ‘내 말 안 들으면 힘으로 눌러버리겠다’ 하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이 은근히 그렇게 되고 싶어 해요. 모순이지요.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수 없는데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될 때는 즐겁지만 안 될 때는 괴롭습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고(苦)와 락(樂)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절이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번에는 효험이 있네’, ‘요번에는 효험이 없네’ 하고, 점이나 사주를 봐도 ‘딱 맞았다’ 했다가 또 어떤 때는 ‘안 맞는다’라고 합니다. 애초에 될 수 없는 일을 반드시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이것이 어리석음이고, 불교에서는 무지(無知)라고 합니다. 세상 전체를 놓고 보면 어떤 일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전부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전부 다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다시 해보면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고, 끝내 안 되면 그만둘 수도 있어요. 문제는 ‘반드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집착이에요. 그 집착이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이런 원리를 모르는 무지가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이 무지를 깨우치고 집착을 내려놓으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조건 그대로 살아가면서도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다고 현실을 그대로 두라는 뜻은 아닙니다. 필요하면 변화시켜도 돼요. 안 되면 연구해서 다시 해보고, 또 해봐도 안 되면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하고 안 하고는 자기 선택입니다. 다만 그 일을 하든 하지 않든, 거기에 매여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인간이 안 괴롭게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토끼나 다람쥐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토끼나 다람쥐가 인간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될까요?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괴로움 없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또 필요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어요. 앞에서 말했듯이 수행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고 세상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그 길을 부처님께서 처음 발견하셨고, 많은 사람에게 그 길을 안내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괴로움에서 벗어났고, 또 그런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더 평화롭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마치 한 번도 눈을 떠본 적 없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니 늘 더듬거리며 길을 찾아헤매게 되지요. 눈을 딱 한 번만 제대로 뜨면 더 이상 넘어질 일이 없는데도, 평생 눈을 감고 살아온 습관 때문에 잠시만 방심하면 자신도 모르게 다시 눈을 감아버립니다. 이것은 우리가 악몽을 꿀 때와 똑같습니다. 꿈속에서 아무리 도망쳐도 피할 길이 없는데, 어느 순간 ‘이거 혹시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 도망가려 하나요, 눈을 뜨려고 하나요? 당연히 눈을 뜨려고 하겠지요. 처음에는 눈이 잘 떠지지 않아 애를 먹더라도, 어떻게든 눈을 번쩍 뜨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 됩니다. 이와 같이 괴로움을 해결하려고 애를 쓰다가 문득 ‘이건 나의 무지일 수도 있다’, ‘내가 고집이 센가?’, ‘내가 욕심이 큰가?’ 하고 자각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꿈인 줄 아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수행에서는 첫 번째로 자각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상태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어야 해요. 백일 정도 집중적으로 자신을 살펴보면,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곧바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늘 습관대로 되돌아가기 때문이에요. 꾸준히 연습해서 천일 정도 수행하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납니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너 요새 고집이 덜하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거나 ‘엄마가 좀 변했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물론 단박에 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나 적어도 천일 정도는 꾸준히 수행 정진해야 합니다.
오늘은 그런 길을 처음 열어주신 분, 즉 고타마 싯다르타가 수행자가 되어 깨달음을 얻고 '고타마 붓다'가 되신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원래 붓다는 깨달은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붓다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분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그 길을 열었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이라고 부를 때는 사실상 이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오늘이 그날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기념일이라는 것은 실제 날짜가 정확히 언제였느냐보다, 우리가 어느 날을 정해 함께 기억하고 뜻을 새기느냐가 더 중요해요. 현충일도 우리가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날이지요. 그래서 남방불교에서는 우리보다 일주일쯤 뒤인 보름날을 부처님 오신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 오신 날은 여러분이 무지를 깨우쳐서 괴로움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발원하는 날입니다. 옛날에는 힘이 있어도 스스로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미덕은 사라지고, 힘 있는 사람이 제멋대로 힘을 과시하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 속에서 서로 눈치 보며 속으로 불만이 있어도 한 대 맞을까 무서워서 말 한마디 못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처한 현실이 이렇다 보니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혐오와 극단적 주장들이 거리낌 없이 쏟아지고, 극단의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자기 마음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 소중합니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이 그 가르침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탄생을 찬탄하는 의식이자 문화 행사인 ‘강생찬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하는 글을 스님과 나눠서 읽었습니다. 이어서 ‘초파일의 노래’를 다 같이 불렀습니다.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인 ‘욕불의식’을 마야부인 2명이 대표로 하고, 마정수기(摩頂授記)를 했습니다. 스님은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온라인 시청자들을 위해서 ‘온라인 마정수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향물을 묻힌 붓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참가하시는 분은 제가 온라인으로 마정수기를 해드리겠습니다. 현장에 계시는 분은 봉축법요식 마치고 마정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으로 보시는 분은 화면을 켜서 스님 얼굴을 똑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와 같이 욕불의식에 참여한 인연공덕으로 당신은 미래세에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대중들의 박수로 온라인 마정수기가 끝났습니다.

스님과 대중들은 ‘탄생선언’을 했습니다. 앞서 읽었던 방식으로 스님과 대중들은 부분을 나눠서 부처님 탄생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후 발원문 낭독이 있었습니다.
정토회 대표 양윤덕 님의 감사와 축하의 인사말, 그리고 사홍서원과 산회가로 봉축법요식은 마쳤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방문한 참여자들은 마정수기를 받기 위해 줄을 섰고, 스님은 1시간가량 마정수기를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2시경,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둘러보며 봉사자들을 격려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회관 5층부터 아래로 한 층씩 내려가서 회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진행되고 있는 상황들을 보고 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1층 로비에는 사회 인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고, 외부 마당에는 부스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지하 1층 공양간에도 손님들 저녁 식사 준비와 식당 홀 세팅으로 봉사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는 사회인사법회 시간보다 일찍 회관을 방문한 손님 몇 분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습니다. SBS 예능 프로그램 ‘법륜로드-스님과 손님’ 작가님 두 분이 오셔서 스님과 인사를 했습니다. 지난 19일 첫 방송에 대한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계속해서 손님들이 차담 장소로 왔습니다.

스님은 손님들을 맞이하며 인사하고 테이블로 안내를 했습니다. 사회인사법회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많은 손님이 스님을 찾아와 인사했습니다. 무대 위 차담 장소가 꽉 차자 식당 홀 테이블로 차담 장소를 안내했습니다. 오랜만에 본 내빈들도 있었고, 스님이 출연한 방송을 봤다는 내빈들도 있었습니다. 근황을 나누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 사회인사법회 시작 5분 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앞장서서 사회인사법회가 열리는 지하 3층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3개 층만 내려가면 대강당입니다. 계단으로 내려가기를 제안해서, 손님들이 계단을 이용해서 대강당으로 자리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자 사회인사법회를 시작하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스님은 모든 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며 부처님전에 초를 밝히고 향을 올렸습니다.

사회인사법회는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열리는데, 행사 사회는 정토회 길벗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병조 님이 해주었습니다. 사회인사법회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해마다 이웃 종교인들, 사회인사와 함께 부처님 탄생의 참뜻을 새기는 법회입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한 후, 강생찬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무대로 올라와서 부처님의 탄생을 묘사한 ‘강생찬탄’ 부분을 사회인사분들과 나눠서 읽었습니다.

이웃 종교를 대표해서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님과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님이 도량을 밝히는 의미에서 연등을 부처님 전에 올렸습니다.

이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봉사자가 나와서 욕불의식을 도왔습니다. 스님이 먼저 욕불의식을 했습니다. 김병조 님은 오늘 참여하신 분들의 명단을 보며 호명해 주었습니다. 여러 사회인사 분이 순서대로 나와서 욕불의식에 참여했습니다.
스님이 무대 위로 나와서 사회인사분들과 함께 ‘발원문 낭독’을 했습니다. 이후 스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사회인사법회에 참석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프로그램이 어떤 순서로 진행이 되는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법문을 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왜 괴로울 수밖에 없는지 깊이 탐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런 후에는 부처님 자신도 그 길을 몸소 살아가셨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에게 어리석음을 깨우쳐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길을 안내 하셨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든 안 되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사람을 우리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대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지 못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금세 휘둘려 화를 내고, 돈이라는 낚싯밥에 걸려들기도 하고, 칭찬 한마디에 우쭐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상에 조종당하면서 끌려다닙니다. 보는것과 듣는 것 냄새와 맛, 감촉과 생각에 끌려다니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이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비로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지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면 더 이상 도움을 구걸할 일이 없어집니다. 스스로 자립할 뿐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세상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를 한자로 세주(世主), 곧 세상의 주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구할 구(救) 자를 붙이면 구세주(救世主)가 됩니다. 결국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목표는 ‘내 인생의 주인’, 더 나아가 ‘세상의 주인’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 길을 실제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삶을 이상으로 삼아, 비록 그분만큼은 못 되더라도 ‘나도 한번 그렇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운 사람을 수행자라고 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인도 말로는 보디사트바(Bodhisattva), 우리말로는 보살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역사 속에서 종교로 발전하기도 하고 철학으로 가기도 했지만, 역사적 인물인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기 인격을 완성해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어떤 믿음이나 사상을 가졌든 누구나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고, 괴로움 없는 삶을 살아 자기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씀드립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이렇게 축하 마당을 펼쳤습니다. 다시 한번 참여해 주신 사회 원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후 이웃 종교인을 대표하여 박남수 교령님이 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천도교를 신앙하는 사람이라 불교의 진리와 법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조형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두 분의 보살상과 함께, 서산이라 불리는 묘향산의 오래된 사찰인 보현사의 13층 석탑이 조형물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개인적으로는 묘향산 보현사에 머물며 평생 절 마당을 쓸었던 청운 스님이 떠오릅니다. 저는 보현사에서 열린 대장경 판각 기념 법회에 이웃 종교인 자격으로 참석하여 청운 스님과 도담을 나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떠올려도 새롭습니다. 아무쪼록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묘향산 석탑을 광화문에 세운 그 깊은 뜻이 온 국민 마음속에 널리 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한번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드리며 이것으로 인사와 축하 말씀을 갈음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어서 이해학 목사님이 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지금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깊은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저 또한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우리 역시 편의주의와 안일함에 빠져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폭력적인 세상을 보며 ‘이건 아니다’ 하고, 때로는 ‘이것은 반대다’ 하며 싸우기도 하고, 설명하기도 하고, 거리로 나가 시위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폭력에 물들고, 길들고, 익숙해집니다. 문득 돌아보면 카프카의 『변신』 속 인물처럼 권위주의와 폭력에 굳어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스로 반성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닌가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절망하기도 합니다. (중략)
오늘 저는 다시 반성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잘되고 멋지고 화려한 것에만 박수 쳐 주지 말고, 부족하고 소외된 것에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잘되는 이면에는 반드시 피해가 있고 화려함 뒤에는 반드시 비참한 어둠이 있음을 알고,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존재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삶,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소꿉장난하듯 행복할 수 있는 삶을 회복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오늘 부처님 오신 날, 법륜 스님 앞에서 드리는 저의 고백입니다.”

이후 문화 공연이 있었습니다. 경동교회 장로이신 김홍태 교수님이 올해도 어김없이 정토회를 찾아 주시어 축하 공연을 해 주었습니다. ‘보리밭’을 열정적으로 불러주시고 다음과 같이 인사말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올해 횟수로 부처님 오신 날 20년째 옵니다. (청중 박수) 제가 들어오면서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스님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이 좋은 무대에 피아노 좀 놓으세요. (청중 웃음) 제가 대강당에 들어오는데, 피아노가 있는 것을 보고 ‘어! 부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 (청중 웃음) 내년에 또 저를 불러주시면, 버라이어티한 문화 행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중 박수) 기쁜 날이니까 즐거운 노래 한 곡 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이어서 김홍태 교수님은 신나는 ‘희망의 나라로’를 열정적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다음 축사자는 사회원로분을 대표하여 ‘광복 100년 국민동행 준비위원회’ 이부영 위원장님을 모셨습니다.
“그동안 법륜 스님이 한반도 평화 또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 누비신 그 거리를 따져보면 비행기를 너무 많이 타서 아마 거리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그 족적이 너무너무 험난하고 길었을 겁니다. 그렇게 정토회와 평화재단은 우리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동아시아에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쓰셨습니다.
올해가 광복 81주년이죠. 그리고 20년 있으면 광복 100년이 됩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광복 80년, 광복 100년이 우리가 그렇게 바란 것만큼 되어 가고 있는가 조금 뒤로 생각해 보면요. (중략)
궁극적으로는 오늘 사는 우리만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광복 100년쯤에는 서로 평화 공존하면서 북과도 교류하고 그런 정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번 살아보자. 통일이 안 돼도 좋다. 통일은 광복 100년 이후에 되더라도 우리 안에서 그러한 절제, 포용, 공존의 마음을 세울 수 있으면 결국 그게 통일로 가는 큰 길이 아니겠느냐 이런 얘기들을 했어요. (중략)
2045년에 그때 이제 태어나서 성년이 될 그런 청년들이 나라가 살만하구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참 잘해주셨구나 이런 소리 정도는 들을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길벗 대표 노희경 작가님의 축사를 들었습니다.
“앞에서 좋은 말씀 많이 하셨으니까 정토회에 왜 길벗이 있는가, 어떻게 해서 길벗이 여기 있게 됐는가를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나섰습니다. 제가 이제 깨달음의 장이라는 곳에 다녀오고 나서 한 가지 명심하게 된 게 있습니다. ‘나는 진짜 모르는 게 많다. 이걸 잊으면 큰일 나겠다. 내 삶이 여전히 괴로웠던 건 잘난 척을 했고, 내가 무엇이 괴로운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였어요. 그래서 그날부터 바로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다 보니까 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 주변의 사람들 같이, 동료들과 같이 마음 공부하고 좋은 일도 하고 그렇게 안내하는 게 어떠냐 하고 저한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안내를 조금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제가 너무나 많은 욕을 먹은 거예요. 가장 큰 욕은 노희경이 자기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연기자를 이용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략)
내가 좋은 일을 하자고, 아픈 사람, 배고픈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같이 일하자고 법륜 스님이 하시는 한국 JTS에서 하는 일을 같이 하자고 하는데, 왜 내가 나의 동료들을 부르지 못하는가, 무엇이 두려워서 부르지 못하는가 고민을 하다가 그다음부터는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연기자를 이용한다는 얘기할 때 저는 ‘네, 잘 사용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으고 또 자기 삶이 행복해진 사람들이 알아서 스님 하시는 구호 활동에 같이 참여하게 된 게 벌써 횟수로 24년 정도 돼 가고 있습니다. 이제 많은 분이 제가 자식이 없는 것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반이 넘쳐납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지만, 법륜 스님과 또 저희 법사님들, 스승이 넘쳐나십니다. 일 그만둘 때가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정토회는 일이 넘쳐납니다. 또 많은 분이 걱정하십니다. 부처님 돌아가시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지? 누가 우리를 인도하지? 또 정토회도 그런 걱정을 하십니다. 법륜 스님 돌아가시면 정토회를 누가 이끌지? 이런 걱정들 되게 많이 하시고 저도 이제 그중의 한 사람인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이 지금 이천 년 넘게 이 세상에 유구하게 오시듯이 정토회도 또 우리 제자들도 그 뜻 받들어 또 유구하게 이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노희경 작가님의 경험담이 담긴 축사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이후 의미 있는 문화 공연이 있었습니다. 서울대 사회학 박사인 김윤희 님이 ‘쟁강춤’을 선보였습니다. 쟁강춤은 북한의 세계 최고 무용수인 최승희 선생의 무당춤을 그의 제자인 김백봉이 개작한 무용입니다. 무용 전공자는 아니지만 분단의 아픔을 온 열정을 다해 춤으로 표현한 공연이었습니다.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공연이 남았습니다. 국민가수인 박창근 님이 무대로 올라와서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2곡 부르고, 앙코르곡으로 1곡 더 불렀습니다. 대강당이 금세 콘서트장이 될 만큼 참가자들이 노래를 듣고 큰 박수와 호응을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의 닫는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간단히 인사말을 전하고, 오늘 오신 국회의원님들을 무대로 모시고 청중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윤건영, 김병기, 이재정, 염태영 국회의원님이 무대 앞으로 나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축사자의 축사가 길어지면서 일정상 일찍 일어나야 하는 사회인사분들이 몇 분 있었고, 중간에 나가셔야 해서 청중들에게 인사할 시간을 드리지 못한 상황에 대해 스님은 잘 설명했습니다.

스님은 사회인사법회에 참석해 주신 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법회가 끝나면 저녁 식사를 하고 가시고, 직접 쑥을 채취해서 만든 쑥떡을 꼭 챙겨가시라고 간소한 기념품까지 설명해주었습니다.

이후 기념 촬영을 하고 사회인사법회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녁 5시 30분, 손님들은 지하 1층으로 가서 비빔밥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손님들이 저녁 식사를 편안하게 하실 수 있도록 두루두루 살폈습니다. 스님도 테이블에 앉아서 비빔밥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테이블을 돌며 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식당 출입문 쪽에 서서 스님은 오늘 와주신 사회인사분들께 한 명 한 명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지막에는 무대에서 식사를 했던 길벗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공양을 준비한 공양팀들과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느 정도 손님들이 가시자 스님은 다음 저녁 법회 준비를 위해 사무실로 왔습니다.

저녁 7시, 설법전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청춘톡톡’이 열렸습니다. 오늘 청춘톡톡에는 총 450명의 청년이 참여했습니다.

오늘 참석한 청년들 절반이 정토회 회원이 아닌 일반 청년들이었습니다. 3층 설법전에 들어오지 못한 청년들은 5층에서 스크린으로 현장을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생방송으로 봤습니다.
법회가 시작되고, 삼귀의와 수행문 의식 이후에 청년 활동가 오예주 님의 여는 노래 공연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스님께 청법가와 청법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청년들을 위해서 기조 법문을 하고, 청년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총 4명의 청년이 아래의 질문으로 스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화내고 내 잣대를 들이대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냅니다.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닮기 싫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분에 못 이겨 화내고 사과하고의 반복인데, '내가 수행, 운동, 공부 등 좋고 올바른 걸 하는데 넌 왜 안 하냐!'는 고집과 나 잘났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현재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인해 청년 세대의 부양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년 연장 논의가 기성세대의 고용 유지에 집중되면서, 청년층은 일자리 부족과 부양 부담 가중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대 간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으로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우선되어야 하며, 청년 개인이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눈에 차는 남자가 없어요. 그런데 결혼은 하고 싶어요.
저는 성실히 일해서 성공하기보다 앱 하나 대박 터져서 회사를 빨리 탈출하고 싶습니다. 요즘 AI로 앱을 만들 수 있다길래 퇴근하고 주말마다 AI랑 같이 앱을 만들어 출시했는데, 지금까지 60개 팔아서 번 돈이 15만 원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게 언젠가 터질 거라는 생각을 못 버리고 회사에서도 매일 판매 현황만 들여다봅니다. 한 방을 노리는 이 마음이 잘못된 건 아는데, 버리고 평범하게 살라고 하시면 그건 또 못 할 것 같습니다. 스님, 이 한탕 심리를 끌어안고 가도 될까요? 아니면 내려놔야 될까요?
‘청춘톡톡’이 끝나자 9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대구에 있는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기 위해서 법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하루 종일 행사와 법회, 손님 맞이 일정이 있어서 낮에는 조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화재단의 감사로 활동했던 여영학 변호사님의 모친상이 있어 모든 일정을 마치고 늦은 시간이지만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니 새벽 12시 30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공동체 법사님들도 장례식장에 오는 길이라고 하여 스님은 기다렸다가 함께 영가 천도 기도를 했습니다. 스님은 밤늦게 조문을 와서 상주와 유가족들이 쉬지 못하게 한 것 같다며 미안한 마음을 거듭 전했습니다. 공동체 법사님들이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천도 기도를 한 후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대구에서 1시간가량 차량으로 이동해서야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2시 30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짐을 풀고 긴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법사님들과 수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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