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3.14. 한국 도착, 고(故) 박상은 님 장례식 조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리랑카 구호 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어제 저녁 8시 20분에 비행기를 타고 콜롬보 반다라나이케 공항을 출발하여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밤하늘 위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비행기는 6시간 45분을 이동하여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 35분에 중간 경유지인 상하이 푸둥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공항에서 8시간 50분을 대기했습니다. 공항 내 식당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한 후 이번에 스리랑카 구호 활동을 함께 다녀온 JTS 활동가들과 평가회의와 더불어 이후 JTS 사업 방향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스님은 이번 방문에서 달라진 현장 상황을 먼저 짚었습니다. 대규모 식량 배분 방식에는 혼란이 따르고, 질서를 잡으려다 보면 오히려 주민들을 다그치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정리했습니다.

"스리랑카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된 만큼 이제 대량 지원 방식은 줄여나가야 합니다. 지원하더라도 정말 어려운 사람을 선별해 소규모로, 학교 행사와 연결하지 말고, 마을 단위로 조용히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부탄에서 시도한 주택 개량, 관개수로, 식수, 도로 등 지속 가능한 개발 모델을 바탕으로 하되, 정말 필요한 사업인지, 주민들이 스스로 할 의지가 있는지, 자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인지를 먼저 살피고 지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했다는 실적보다, 그들이 서로 협동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스님은 장기 구상도 펼쳐 보였습니다. 스리랑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JTS 모임을 만들고, 한국 불교문화센터를 세워 한국어·태권도·명상 등을 함께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당장 하자는 게 아닙니다. 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어쩌다 인연이 닿으면 실행할 수 있습니다. 남이 보면 즉흥적으로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10년, 20년을 내다보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회의를 마친 뒤 대기 시간 동안 원고 교정과 밀린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긴 대기 시간이 지나가고 출발할 시간이 되어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 25분에 상하이 푸둥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을 이동하여 한국 시각으로 오후 5시 25분에 인천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이로써 지난 5박 6일 간의 스리랑카 구호 활동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입국 수속을 밟고 공항을 나와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정토회 초창기 시절부터 공동체 대중들의 주치의를 맡아 몸이 아픈 사람들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돌보아 주셨던 박상은 선생님이 80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하셨다고 연락받았습니다. 마침, 한국에 귀국하는 날이라 곧바로 조문을 하였습니다.

저녁 7시 30분, 장례식장에 도착한 스님은 가장 먼저 박상은 선생님의 영정 사진 앞에 삼배하고 선생님의 뜻을 기렸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편안하게 돌아가셨어요?”

“네, 편안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이 간병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곧이어 정토회 대중들과 함께 영가 천도 기도를 했습니다.

박 선생님은 20년 7개월 동안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 생활을 하였습니다. 긴 수감 생활 동안 박 선생님은 감옥에서 의술을 익혔습니다. 세상에 나온 뒤에는 그 배움을 고스란히 나눔으로 되돌려, 많은 정토회 대중들을 직접 치료해 주는 봉사를 이어갔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채로도 원망보다는 베풂을 택한 삶이었습니다.

스님은 박 선생님의 넋을 위로하며 천도 의식을 한 후 영가를 위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박상은 영가시여! 지난 팔십 평생을 돌아보면, 청운의 뜻을 품은 20대에 어느 날 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듯 억울하고 분한 일이 생겨, 살아온 세월만큼 20여 년을 원망과 분노와 시름 속에 보내셨습니다. 이 법사를 처음 만나셨을 때 영가께서는 나이 사십이 넘었다고 조급해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 기도하고 자신이 가진 재주를, 중생을 위해 베풀어, 그 인연으로 좋은 배필을 만나 오늘 이렇게 좋은 자녀들을 두셨으니, 지금 돌아보면 그 나쁜 인연이 오히려 좋은 인연이 되어 주변의 그 누구 못지않게 한평생을 잘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길게 돌아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따로 없습니다

영가시여, 순간순간을 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고, 사람 사람을 보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고, 원수진 이와 친한 이가 있지만, 이렇게 길게 팔십 평생을 돌아보면 좋은 일 가운데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 가운데 좋은 일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인 ‘본래 좋은 일이니 나쁜 일이니 하는 것이 없다.’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많은 노력으로 한 맺힌 억울함이 어느 정도 풀어져 마음 편히 지내실 만하게 되셨는데, 또 육신의 병이 들어, 이렇게 저희들과 조금 일찍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이 법사의 법문을 잘 들으시고 인생이 본래 공한 줄을 알게 되면 삶과 죽음이 없는 저 열반의 세계에 바로 이르실 것입니다. 아직도 원망과 원한과 애정과 애착을 갖고 계신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처럼 고락의 윤회 속에서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영가시여, 이 법사의 말에 집중해서 들으시고 단박에 깨쳐 해탈 열반을 증득하시기 바랍니다.

영가시여! 살아생전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 것이다’, ‘내가 옳다’ 하고 주장하셨는데, 이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맛볼 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고, 만져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지금에 이르러, 어떤 것이 영가의 본래 면목입니까? 지금 무엇을 두고 ‘나’라 할 것이며, 무엇을 두고 ‘내 것’이라 할 것이며, 어떤 것을 두고 ‘옳다’, ‘그르다’ 할 것입니까?

만약 이 법사의 질문에 쾌활하게 대답하셨다면 장례식이니 49재니 하는 것이 다 부질없는 일이라, 영가께서는 이미 생사를 넘어 해탈 열반에 이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법사의 질문에 머뭇거림이 있고 망설임이 있고 답답함이 있다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영가와 인연 있는 대중들의 지극정성 염불 공덕으로,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시어 부처님을 친견하시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으시고, 마침내 해탈 열반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영가를 위해 해탈주를 간절한 마음으로 염송한 후 천도 의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가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건넨 후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차로 한 시간을 이동하여 밤 9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2-2차 천일결사 입재식을 하고, 오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특별지부 회원의 날 행사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SBS 방송국 관계자들과 미팅을 한 후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9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2년 전 아버지께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선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병원 치료와 상담 치료를 병행했고, 상담심리학과에 편입해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앞으로 괜찮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저 눈을 뜨면 하루를 살고, 눈을 감으면 하루가 지나가는 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미 지난 일이지만, 제 삶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요?”

“사는 것은 사실 쉬운 일입니다. 벌레도 살고,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살아갑니다.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하는 생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본래 살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꼭 답이 있어야 할까요? 풀이 왜 자라고, 나무가 왜 자라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주 만물은 생겨나고 자라고 사라지며, 다시 이어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이 과정을 따로 떼어 보기 때문에 ‘살았다’, ‘죽었다’ 하고 구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씨앗 하나를 심으면 싹이 트고 자라 꽃을 피웁니다. 꽃은 시들어 땅에 떨어지고, 다시 씨앗이 되어, 또 다른 꽃을 피웁니다. 이전 과정을 비디오로 찍어 천 배 속도로 돌려 본다면, 나고 죽는 것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물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반복처럼 보일 것입니다.

바다의 파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생겼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바닷물 전체를 보면 그저 출렁일 뿐입니다. 삶과 죽음도 이와 같습니다. 출렁이는 파도처럼 오르고 내릴 뿐입니다. 그런데 올라갈 때 ‘어차피 내려올 건데 왜 올라가나’ 하고, 내려갈 때 ‘곧 다시 올라올 건데 왜 내려가나’ 하고 걱정하는 것은 병적인 생각입니다. 올라갈 때는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내려가면 됩니다.

자연계에서는 태어나면 자라고, 죽을 때가 되면 죽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정신질환이 생기면 ‘어차피 죽을 건데 살면 뭐 하나, 차라리 미리 죽어버리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사람이 저에게 ‘왜 살아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은 곧 자살하겠네요’ 하고 답했습니다. 삶에는 본래 정해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꾸 그 의미를 찾으면 의미가 없으니 허무하다고 느끼고, 그 허무감에 사로잡히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미는 스스로 부여할 수 있습니다. 저라면 불법을 널리 전하는 삶에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애초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정하는 것입니다. 천당이나 지옥 같은 개념도 인간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설령 죽고 싶다면 죽어도 됩니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인정해 안락사를 허용합니다. 다만 맑은 정신에서 본인이 분명하게 결정할 때만 허용합니다.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거나, 할 일을 다 마친 노인이 인간답게 죽겠다고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살은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거나 ‘나는 쓸모없는 존재다’라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히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이럴 때 약물 치료가 큰 역할을 합니다. 항우울제 같은 약을 복용하면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집니다. 약을 먹는다고 우울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결단의 순간을 막아주는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치료가 필요합니다. 동양의학에서는 정신질환을 기가 위로 치밀어 머리가 과열된 상태, 곧 상기될 때 일어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하체 운동을 많이 해야 합니다. 많이 걷거나 절을 해서 머리는 식히고 손발은 따뜻하게 해야 정신질환이 덜 생깁니다.

요즘 정신질환이 늘어나는 이유는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머리만 계속 쓰기 때문입니다. 기운이 머리로만 몰리고 아래는 약해지니 상기가 심해지고, 그만큼 정신질환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첫째, 의사의 진료를 받고 치료를 합니다. 둘째, 상담을 통해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합니다. 셋째, 하체 운동과 충분한 수면이 필요합니다. 절을 하거나 하루 만 보 이상 걷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직업도 가능하면 머리 쓰는 일보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낫고, 잠을 충분히 자야 합니다. 정신질환은 불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노력하면서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살면, 대개 명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누구나 죽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사는 것이 가장 쉽고, 죽을 때는 죽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자살은 살아 있는 존재를 억지로 죽이려는 것이니 준비할 것도 많고 일손이 많이 갑니다. 얼마나 번거롭습니까. 저는 게을러서라도 못 하겠습니다. 반대로 이미 죽을 때가 된 사람을 억지로 살리려 해도 역시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살이나 살인뿐 아니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도 반생명적입니다. 자연의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삶을 편안하게 사는 길은, 죽을 때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일부러 죽음을 결정하려 드는 것은 질병입니다. 사실 죽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라면, 도리어 살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죽는 일은 언제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그것은 다 살아서 겪는 것 아닙니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살아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일어나야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직 누워 있다는 뜻이고, ‘가야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직 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애쓰고 노력한다는 것은 아직 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벌떡 일어나버리면 일어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은 이렇게 벌떡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일어나려고 애쓰는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종교적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어야지’ 하고 마음먹는다는 것은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됩니다. 왜 안 믿어지는 것을 억지로 믿으려고 합니까. 이치를 알면 저절로 믿어집니다.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하면 자연히 믿어지기 때문에 결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스스로 생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연세가 들어 병으로 돌아가셨든, 스스로 삶을 마감하셨든, 그 사실에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가고 싶어서 가셨다고 쾌활하게 보내드리면 됩니다. 자살은 엄밀히 말하면 질병의 범주에 속합니다. 경쟁이 치열하거나 관계가 틀어지는 등의 계기가 있을 때 발병하기도 합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어려움이 닥쳐도 죽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연애에 실패하거나, 경쟁이 치열해도 며칠 괴로워할 뿐입니다. 그러나 정신질환이 발병하면 작은 요인에도 쉽게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사회적 개선입니다. 내적인 취약성이 있는 사람에게 병이 덜 발현되도록 환경을 바꾸어 주는 것입니다. 반면 수행은 환경과 상관없이 자신을 지켜내는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면역력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결핵균이 있어도 면역력이 있으면 병에 걸리지 않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그러나 면역력이 약하면 무균실 같은 보호가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은 일정한 울타리 안에 머무는 삶입니다. 수행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낼 수 있게 하여 자유롭게 살아가게 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마음껏 살고, 죽을 때가 되면 연명 치료에 매달리지 않고 죽는 것이 오히려 쉽습니다. 교통사고로 다쳐 일시적으로 산소호흡기나 심장박동기를 붙이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것은 치료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었거나 뇌사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을 때는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기 암 환자든,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든, 결국은 사는 데까지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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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영

고맙습니다

2026-03-17 07:24:29

양파

천도법문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늦었지만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도합니다.

2026-03-17 07:22:24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3-17 06: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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