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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도성지순례 열세 번째 날입니다. 오늘은 쉬라바스티를 떠나 상카시아로 가서 상카시아탑을 참배하고, 순례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진행했습니다.

새벽 1시 20분부터 버스 운전기사님들이 하나둘 버스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일찍 일어나 이동할 채비를 하고 숙소를 나왔습니다. 천축선원 주지이신 대인 스님과 적조행 보살님, 그리고 절에 머무는 상주 대중들이 배웅나와 있었습니다.

"스님, 남은 일정도 잘 다녀오십시오.“
"예, 스님. 매해 감사합니다. 적조행 보살님도 절 운영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한국에 오시면 연락주십시오.“

새벽 2시 30분, 상카시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불이 꺼지자 순례단은 곤하게 잠들었습니다. 스님은 지도를 보며 이동 경로를 확인했습니다.

약 7시간 30분을 이동하여 오전 10시, 상카시아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담마빨 스님의 절을 찾았습니다. 원래 담마센터에서 아침 도시락을 먹을 계획이었으나, 담마센터에서는 환영식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방해되지 않도록 스님은 담마빨 스님 절에서 도시락을 먹자고 제안했습니다. 담마빨 스님은 석가족으로, 수자타아카데미 초창기에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준 분입니다. 이후 상카시아로 건너와 이 절을 불사하며 머물고 있었습니다.
절 입구에는 스님의 사진이 담긴 커다란 포스터가 걸려 있었습니다. 스님은 법당을 참배한 후 담마빨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볕이 드는 마당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은 뒤, 오전 10시 40분에 상카시아 탑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순례단에게 탑 앞에서 가사를 수하도록 안내하고 탑돌이를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한 수행자가 다가와 스님에게 꽃을 올렸습니다. 스님은 말없이 꽃을 받아들고 천천히 걸음을 이어갔습니다.


버스가 차례로 도착하고, 어느덧 오백 명의 순례단이 탑을 에워싸고 돌았습니다. 순례단이 모두 함께 탑을 돌 수 있도록 스님은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탑돌이를 마치고, 순례단은 탑 앞의 넓은 터에 탑을 바라보고 섰습니다. 예참을 올리고,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스님은 다른 성지에 비해 이야기가 많지 않은 상카시아가 어떻게 8대 성지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에 얽힌 설화와 그 의미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곳 상카시아는 부처님의 일생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이야기가 많지는 않습니다. 역사적인 사실만 놓고 보면, 상카시아보다는 코삼비가 오히려 8대 성지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라즈기르나 쉬라바스티, 바이샬리처럼 부처님의 이야기가 풍성한 곳들과 비교해 보아도, 스토리의 양으로만 보면 코삼비가 더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8대 성지에는 코삼비가 들어가 있지 않고, 이곳 상카시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대 성지는 부처님께서 태어나시고, 도를 이루시고, 설법하시고, 열반하신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곳 가운데 3곳은 부처님께서 교화 활동을 많이 하신 지역이라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반면 이곳 상카시아는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다만 기록을 보면, 부처님께서 이 상카시아보다 더 서쪽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델리까지는 아니고, 여기보다 조금 더 서북쪽까지 가셨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카시아는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올라가 어머니에게 설법을 해 드리고 다시 내려오셨다는 설화 말고는 다른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나머지 4대 성지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준으로 선정되었다기보다는, 다소 신화적이고 신비적인 현상을 중심으로 선정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라즈기르는 성난 코끼리가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이야기로, 쉬라바스티는 천불화현으로, 바이샬리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 올린 이야기로, 그리고 상카시아는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올라가셨다가 이곳으로 내려오신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네 곳 모두 어떤 신비한 현상을 중심으로 선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왜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에 올라가셨다가 이곳으로 내려오셨을까요? 이에 대한 분명한 역사적 근거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천불화현이 어떤 근거에서 비롯된 이야기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처럼, 이곳 상카시아의 설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짐작은 해볼 수 있습니다. 인도든 한국이든 부모를 존중하고 조상을 섬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수행자가 집을 떠나 출가한다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효한 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부모를 가슴 아프게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조상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권에서는 출가는 완전히 불효막심한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에 비해 인도는 조상을 섬기는 문화는 있었지만, 출가를 불효로 취급하는 문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한 수행자의 입장에서 부모에 대한 죄책감은 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상카시아 설화는, 세속에서 부모를 편안하게 모시는 것보다, 부모를 깨닫게 해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효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생겨난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는, 살아 계실 때 부모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가 이미 돌아가셨다면, 영가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천도해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하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것입니다.

경전에 따르면, 어느 해 부처님께서 어머니를 깨우치기 위해 도리천에 올라가 3개월 동안 설법을 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매년 우기 동안 3개월간 대중과 함께 안거를 하셨는데, 그해에는 누구도 부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디선가 홀로 정진하고 계신 것인지 아무리 수소문해도 부처님이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통 제일인 목련존자에게 가서 여쭈었습니다. 살펴보니 인간 세상에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늘 세계를 보니,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어머니인 마야 부인에게 설법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대중은 부처님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목련존자에게 부처님이 언제 돌아오시는지 여쭤보라고 부탁했습니다. 목련존자는 신통력으로 도리천에 올라가 부처님께서 언제, 어느 곳으로 내려오실지 알아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무 날 아무 시에 상카시아 성 밖으로 내려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이 되자 수천의 대중이 부처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신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신인 인드라천이 다른 신들에게 명하여, 하늘에서 지상까지 사다리를 내려오게 했습니다. 사다리의 가운데로는 부처님께서 내려오시고, 오른쪽에는 대범천이 불자를 들고 시립했으며, 왼쪽에는 인드라천이 햇빛을 가리는 일산을 들고 받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각상에서 계단 모양의 그림이 있으면, 그것은 상카시아를 상징하는 조각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형상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단에는 사람의 모습이 없고 발자국만 그려졌습니다. 이후에는 부처님께서 계단을 내려오시고, 양쪽에 대범천과 인드라천이 시립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다음 이야기는 경전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집니다. 어떤 경전에는 한 비구니 스님이 가장 먼저 마중을 나갔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그 비구니 스님이 ‘부처님, 제가 가장 먼저 마중했습니다.’라고 말하자, 부처님께서는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자, ‘그럼 누구입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보리 존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 존자는 그때 영축산에서 선정을 닦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그 순간 제법이 공하다는 이치를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수보리 존자는 법이 공하다는 도리를 가장 먼저 깨달았기 때문에, 여래를 가장 먼저 본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을 본 자가 여래를 본다’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지만, 니까야 경전에서는 사리푸트라가 대중을 이끌고 와서 부처님을 영접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셔도 이 탑은 상당히 큽니다. 그러다 보니 불교가 쇠퇴한 이후, 근방에 있던 브라만이 탑 꼭대기에 힌두교 사원을 하나 세웠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은 힌두교 소유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석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근대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그동안 자기들의 조상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가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석가족 젊은이들 가운데 불교로 개종하는 움직임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을 했지만, 불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들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정토회에서는 이곳에 담마센터를 짓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을 위한 절을 짓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도 사람들이 불교 교육을 받고 명상을 할 수 있는 담마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땅을 마련해 두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공식을 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아직 건물은 올라가지 않고 있습니다. (웃음)
제가 30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 이 탑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날이 음력으로 9월 15일인데, 그날 석가족 수만 명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행진을 하면서 이 탑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석가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평화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우리가 탑을 가지고 싸우면 되겠습니까? 탑이 꼭 필요하다면, 제가 똑같은 탑을 하나 세워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싸우지 말고, 이곳은 유적지로 그대로 두도록 합시다.’
이렇게 약속을 해서 분쟁을 무마할 수 있었습니다. 제 계획은 한쪽에는 명상을 할 수 있는 센터를 짓고, 다른 한쪽에는 탑을 세워 석가족들에게 신앙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지 설명을 마친 후 순례단은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이어서 '어머니의 마음'과 '스승의 은혜'를 합창했습니다. 순례단의 목소리가 낮게 울리며 성지를 가득 채웠습니다. 몇몇 참가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발원문을 낭독한 뒤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상카시아 설화에 담긴 불교의 세계관과 출가의 의미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곳 상카시아에 전해지는 설화에는 두 가지 의도가 담겨 있다고 여겨집니다. 첫째는 출가가 부모에 대한 불효가 아니라는 점을 대중에게 설득하려는 의도입니다. 둘째는 부처님이 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서, 신들조차 공경하며 받들어 모시는 분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천상천하 무여불(天上天下 無如佛)’,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천인사(天人師)’와 같은 부처님의 명호에도 잘 내포되어 있습니다. 당시 수행자들은 바로 이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신들이 시립하여 받들어 모셨다’라는 이야기는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특히 화엄경에는 많은 신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불교가 어떤 절대 신을 숭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법을 옹호하고 수호하는 존재로서의 개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수행자가 신에게 의지해 비는 것이 아니라, 신이 수행자와 불법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점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신은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 존재로서의 신과는 성격이 크게 다릅니다. 일반 종교에서는 신이 절대적인 의지처라면, 불교에서의 신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위병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카시아는 바로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을 잘 보여 주는 의미 깊은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전통적인 세계관 역시 모든 존재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믿습니다. 나무에도 신이 있다고 여겨서 나뭇가지 하나가 흔들려도 신성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손에도 성스러움과 부정함의 구분이 있어서 오른손은 성스럽고 왼손은 부정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이의 머리를 만질 때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하고, 왼손으로 만지면 부정이 탄다고 생각합니다. 뒷물을 할 때는 왼손을 사용하고, 음식을 먹을 때는 오른손을 사용하는 문화 역시 이런 관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부정 탄다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른손을 바른 손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인도의 종교·문화적 환경 속에서 부처님의 법이 살아남았고, 또 당시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의 기적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도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람이 윤회하지 않는다면 굳이 좋은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좋은 일을 하는 이유를 다음 생에서 복을 받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복을 받기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행동은 그 자체로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인도에서는 이런 수행적 관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보니 불교도 점차 신앙 중심의 형태로 발전한 측면이 큽니다.
오늘날 힌두교는 인도의 전통 종교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불교의 많은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힌두교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브라만교가 새로운 종교로 탄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유교가 불교를 수용하고 또 그에 대항하는 논리를 구축하면서 성립한 주자학과도 유사합니다.

이러한 상카시아 설화가 생겨난 원인은 인도 민중에게 단지 깨달음만으로 불법을 전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인도 민중에게 불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야기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새기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계를 받고 성지순례 13일째에 접어들었는데, 어땠어요? 할 만했다면 아예 머리를 깎고 출가해 버리는 것은 어떻겠어요? 경전에는 마하파자파티 부인과 야소다라 공주를 비롯해 오백 명의 여인이 출가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만약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 모두가 머리를 깎고, 백 명의 비구와 사백 명의 비구니가 함께 출가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우리 시대에 하나의 큰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역사적 인물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웃음)
이렇게 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8대 성지를 순례하는 일정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어머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며, 잠시 명상을 하겠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10분간 명상을 했습니다.

상카시아 탑 참배를 마치니 오후 1시가 넘었습니다. 성지를 나서는 길에는 주황색 가사를 입은 수행자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시를 하고, 회향식을 하기 위해 담마센터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 20분에 담마센터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석가족이 꽃목걸이를 들고 순례단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입장하자, 석가족들은 꽃목걸이를 걸고 꽃잎을 뿌리며 환영했습니다. 순례단도 꽃목걸이를 하나씩 받으며 담마센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대 앞에 자리하자 석가족의 환영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깐노즈(Kannauj), 이타와(Etawah), 깐푸르(Kanpur), 메인뿌리(Mainpuri), 에타(Etah) 등 각지에서 온 석가족 약 200명이 스님과 순례단을 환영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작년 모리야족 3만 명 법회에서 스님을 초청했던 이들과, 깐노즈 아쇼카 석주 기공식 때 함께했던 부부도 자리했습니다. 석가족은 한 사람씩 나와 스님에게 꽃목걸이를 걸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꽃목걸이 전달식 후에는 석가족 학생들이 준비한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스님은 석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환영식에 찾아와주신 석가족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불법은 물질적으로 접근하거나 학문처럼 연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법에 대한 이해와 믿음, 실천이 중요합니다. 석가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넘어서, 불교가 다시 부흥하는 데 힘을 보태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환영식을 마치고, 오후 2시 35분부터는 제35차 성지순례 회향식을 시작했습니다. 순례단은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성지순례를 마무리하면서 상카시아에 담마센터를 짓고 인도에서 불교를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뜻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일에는 저보다 먼저 헌신한 분이 계십니다. 석가족에게 수계를 주고 이곳에서 불교 개종 운동을 일으킨 분은 스리랑카의 노스님이었습니다. 그 스님은 처음 이곳에 와서 석가족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았지만, 아이들이 자라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고 크게 실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제가 ‘제가 당신이 죽기 전에 당신의 소원을 이뤄 드리겠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약속했지만, 끝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젊을 때부터 평생을 바쳐 온 일에 성과가 없으면 누구라도 실망하기 마련입니다. 수행자는 실망할 것이 없다고 하지만, 저는 그분이 스리랑카에서 이곳에 와 평생을 바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돌아가시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라도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는 불사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천룡사는 우리 큰스님의 원이기 때문에 돌아가시기 전에 이루고 싶어 제가 서두르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에도 큰스님께서 ‘이제 너무 늙어서 죽어야겠네’라고 하시기에, 제가 ‘그러면 천룡사 불사 안 합니다. 불사가 끝나면 그 모습을 보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전에는 죽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더니, ‘그럼 억지로라도 몇 년 더 살아야겠네’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수행이란 되고 안 되고에 구애받지 않는 것입니다. 원을 세웠으면 이루는 것은 차선입니다.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자르듯이 일을 해 나가면 됩니다. 이 불사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석가족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일입니다. 이 불사가 이루어지면 이들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갖고 단결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는 것이지, 이곳에 건물 하나 더 세우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지금 인도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힌두교 사원들이 거대한 규모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경제가 살아나면서 종교 건물들이 대규모로 들어서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과 경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규모나 화려함이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불사의 진짜 목적은 불사를 매개로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고 마음을 내며 원을 세우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이 몇 년 뒤 다시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오신다면 지금과는 다른 변화된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제도 천축선원에 와 계신 불자들이 18년 전의 수자타아카데미와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큰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빈 터에 불과한 이곳이 몇 년 뒤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보는 것 또한 큰 감동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현장 학습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살펴보고 유적지를 돌아보며 인도의 문화와 자연환경을 이해함으로써 불법에 대한 이해를 더욱 바르고 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도의 인구는 약 14억 명에 이릅니다. 중국과 같이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유럽연합에 속한 20여 개 나라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4억 명 정도에 불과한데, 인도는 단일 국가임에도 그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법 활동으로 인도가 다시 불법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것은 세계를 전법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니게 됩니다. 마침 인도 정부도 불교를 내세우고 있으니, 이 흐름을 잘 살려 인도에서 불교가 다시 일어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시기일수록 설화나 전설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말법 시대’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부처님 입멸 후 처음 500년은 해탈견고 시기로, 불법을 듣고 수행하면 많은 이들이 해탈을 얻는 시기라고 합니다. 두 번째 500년은 선정견고 시기로 선정을 닦는 사람은 많지만 해탈을 얻는 이는 드문 시기입니다. 세 번째 500년은 불교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선정을 닦는 사람은 별로 없는 시기입니다. 네 번째 500년은 불사는 활발하지만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드문 시기입니다. 다섯 번째 500년은 불사도 하지 않고 다투기만 하는 투쟁견고 시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기가 지나면 인도에서 나간 불교가 다시 인도로 돌아온다는 속설이 전해집니다. 이런 이야기는 인도 불교인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인도에 다시 정법이 구현되거나 불교가 부흥하는 새로운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인도 불교의 부흥은 중국 불교처럼 물질적인 외적 부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큽니다. 큰 절을 짓고 웅장한 탑을 세우며 기복적 불사를 불교 부흥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수자타아카데미를 지어 운영하고 있는 데에는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불교가 새로워진다면 어떤 모습으로 새로워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불교의 새로움은 큰 탑과 화려한 사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고통과 번뇌를 덜어 주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차별이 있는 곳에서 평등을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구현되는 쪽으로 불교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속적인 잣대로 불교의 부흥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바둑판에 바둑알을 여기 한 수, 저기 한 수 두면서 15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일을 설계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도에 다섯 번은 태어나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태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길게 보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바둑돌을 하나 저 구석에 턱 놓은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설계해야 세월이 흘러도 이 일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이어질 수 있을지를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유적지로서만 보면 부처님의 8대 성지 가운데 이곳 상카시아는 특별히 중요한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부처님의 친족인 석가족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처님의 친족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인연은 그들이 발심할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인연을 건드리면 마음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석가족이라면 불법을 옹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지만, 이들에게는 통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인연은 인도의 젊은이들입니다. 델리대학이나 네루대학처럼 인도의 영재들이 모이는 곳에서 지난번에 제가 즉문즉설 방식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제가 ‘인도 사람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 방식이었지요?’라고 물었더니, 그 대학의 교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인도 젊은이들에게 딱 맞습니다. 이제 그들도 종교적인 접근법은 와닿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인연들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이 미래에 꽃피우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카시아에 담마센터를 짓고 석가족을 교화하는 일 역시 그 가운데 하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성지순례를 함께한 경험이 어떻게 삶의 자산이 되는지, 물러서는 마음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에게 믿음과 어떤 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또 정토회 전체 차원에서도 공동의 원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됩니다. 보름 동안 같이 밥 먹고, 길거리 가다가 용변도 같이 마주 보고 누고, 이런 경험을 함께 한다는 건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사람은 꼭 어떤 하나의 계기만 가지고 변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인연들이 모여서 어떤 원을 세우게 되고, 거기서 힘을 받아야 ‘하자!’ 하면 그냥 확 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처음에는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계획이 계속 변경돼도 잘 적응하고 있잖아요. 한국에서 이런 훈련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속에 항상 물러서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걸 ‘퇴굴심’이라고 합니다. ‘싫어’, ‘안 돼’, ‘하면 뭐 해’ 이런 식입니다. 이런 마음을 우리가 극복해야 됩니다. 되고 안 되고는 그때 가서 보고, 일단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 ‘새벽 다섯 시에 어떻게 일어나지?’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벌떡 일어나 보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다고 하더니, 여기 오니까 새벽 두 시에도 잘만 일어나잖아요.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기도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게 될 겁니다. 이렇게 일단 해보는 적극적인 마음을 가질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걸 한 번 경험해 보는 거예요.

마음 공부라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일어나고, 가고, 먹고, 쉬고, 땡볕 아래에도 앉아 있어 보고, 싫은 마음이 일어나도 그냥 하자는 대로 해보는 겁니다. 이런 마음을 적극적인 마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성지순례를 하면서 이런 적극적인 마음을 내는 훈련을 아마 제일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이 적극적인 마음을 내는 연습이 여러분 삶에 가장 큰 자산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이번에 고생스럽게 순례를 다녔지만, 이 고생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더러운 데서 고생만 실컷 했다’ 이런 마음으로 순례를 마치면 손해만 본 게 됩니다. 그러나 그걸 극복한 경험으로 남기면, 그건 내 인생의 큰 자산이 됩니다. 이번 성지순례가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자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꾸 미적거리지 말고, 끈적끈적하지 말고, 바삭바삭하게 좀 살았으면 좋겠어요. 비싼 돈 내고 여기까지 와서 그런 경험 하나 하지 못하고 돌아가면, 그건 자기만 손해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지순례가 잘 마무리됐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이번 순례에 함께한 태국 출신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이번 성지순례에는 태국에서 오신 스님 한 분이 함께 하셨습니다. 원래 태국에서 스님은 높은 지위에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불평 없이 우리와 같은 조건으로 순례를 마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순례객 대우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스님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순례단은 모두 일어나 삼배로 인사하겠습니다.“

삼배를 드린 후 스님은 이번 순례 동안 고생한 각 버스의 차장님들에게 염주를 선물했습니다. 국회의원 민병덕 님과 운전기사님들에게 겨울 외투를 보시한 거사님에게도 염주를 전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조장, 인솔 법사, 스태프, 의료 봉사자들을 차례로 소개했습니다. 순례단은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벽 이동과 장거리 운행이 이어지는 빠듯한 일정에도 안전하게 운전해 준 버스 기사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안내로 가사와 발우를 반납하는 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순례단은 먼저 가사를 입고 삼배를 올렸습니다.

이어서 가사를 벗어 가지런히 접고, 무릎을 꿇은 채 가사 위에 발우를 얹어 눈높이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을 따라 말했습니다.


"자, 따라하세요. 가사와 발우를 부처님께 바칩니다.“
"가사와 발우를 부처님께 바칩니다.“

"다음에 또 출가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출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삼배를 올리고 반납 의식을 마쳤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물었습니다.

"자, 이제 홀가분합니까?“
"네.”(웃음)
"마음을 조금 숨겨야지요. (웃음)“

사홍서원을 끝으로 제35차 성지순례 회향식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회향식을 마치고 오후 4시에 석가족이 순례단을 위해 정성껏 준비해준 저녁공양을 했습니다. 스님은 공양 후에 행사에 참여한 석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순례단은 식사를 마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고, 스님은 오늘 공양을 준비해 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숙소로 갔습니다.

내일은 델리로 이동해 박물관을 방문하고, 즉문즉설 방송을 진행한 뒤, 델리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위한 강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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