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네루대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아침부터 천둥을 치며 비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업무를 보다가 오전 11시 40분에 숙소를 나와 네루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스님과 오랜 인연이 있는 시방빵집 사장님 부부가 차량을 지원해 주어서 미팅 장소를 편하게 오갈 수 있었습니다.
12시 30분에 네루대학교에 도착하여 산스크리트어학과 차우두리 우펜드라 라오(Chowduri Upendra Rao) 교수님과 미팅을 했습니다. 우펜드라 교수님은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분야의 권위자로 인도 전통 사상을 가르치는 저명한 학자입니다.
교수님은 네루대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불교철학 관련 강의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불교학을 전담하는 독립적인 센터는 아직 본격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대학 내 절차를 거쳐 불교학 연구센터 설립이 승인되었지만, 재정과 제도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아 실제 출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인도 정부가 불교를 국가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학문적 연구 기반은 아직 부족하다며 국제적 협력과 조언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그동안 학문 연구보다는 사회적 실천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고 설명한 후 학문적 협력은 한국의 불교 전문 대학인 동국대학교와 연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어서 불교가 문화유산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없으며, 현대 사회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사상적 대안을 제시할 때 비로소 큰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인도 정부가 불교를 그냥 ‘부처님이 인도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나 유적 중심으로 활용해서는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 인류는 환경 위기와 기후 변화, 불평등과 갈등 같은 문명적 한계에 와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불교 사상을 깊이 연구해서 미래 사회에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 연구가 대학에서 이루어질 때, 인도는 단기적인 행사 중심의 영향력이 아니라 장기적인 문명적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불교 연구의 방향과 역할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미팅 장소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는 네루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모두 한국어를 가르치는 분들이라 통역이 필요 없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편하게 한국말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석한 8명의 교수님들 중 6명이 수자타 아카데미가 위치한 비하르주 출신이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한국어과 교수님들은 먼저 네루대학교 내 외국어 교육 체계와 한국어과의 위치를 설명했습니다. 한국어과는 인도에서는 유일하게 독립 학과로 운영되고 있으며, 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아랍어와 함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몇몇 교수님들은 한국 유학 경험과 한국 대학에서의 강의 경험, 템플스테이와 사찰 방문, 한국 음식과 채식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특히 한국 불교, 한국 사회의 종교 환경, 그리고 한국과 인도 간 학문·문화 교류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며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인도에서 30여 년간 달리트 계층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해 온 경험을 이야기한 후 한국과 인도의 교류, 불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로 한 곳은 네루 대학교 한국어과 강의실입니다. 강의실 입구에 한글로 된 간판이 있어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강의실에는 한국어과 학생들을 비롯하여 다른 학과 학생들까지 50여 명이 자리하여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어과 교수님들도 맨 앞자리에 앉아 스님의 강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본 후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섰습니다. 스님의 환한 웃음과 함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과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학교 옆에 있던 절의 스님에게 붙잡혀 말 그대로 억지로 스님이 됐어요. 처음에는 전혀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스님 생활이 어느덧 56년이 되었고, 지금 와서는 꽤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사실 저는 과학자가 되려 했던 사람이라 종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인들이 종종 합리적이지 않은, 허황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공부할 때도 과학자의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가능한 한 허황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과학처럼 우리의 정신 작용과 삶을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여러분도 무엇이든 의문이 생기면 ‘이건 뭐지?’ 하고 연구하듯이 살펴보고, 대화하며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믿어라!’ 하고 강요하는 것은 여기에는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무엇이든 학문을 연구하듯 탐구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먼저 질문을 시작해 보세요.”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누구든지 손을 들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학생들의 개인 고민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을 받은 후 교수님들도 불교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시간 동안 13명이 스님에게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법륜스님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스님의 법문을 보고 있다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돈은 왜 목적이 되면 안 될까요?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스님의 영상을 봤습니다. 돈에 대해 상담하시는 내용이었는데, 그중에 ‘돈은 수단이지 목적지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설명이 필요합니까? 돈은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잖아요.” (웃음)
“우리는 보통 돈을 먼저 벌고 그다음에 쓰니까, 순서로 보면 목적이 먼저이고 수단이 나중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행위의 순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유쾌하게 의문이 해소되자 질문자가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행복하려면 꼭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까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저는 현재 한국어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어떤 때는 이 과정이 만족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또 어떤 때는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족스럽다’는 것이 곧 ‘행복하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행복하다’는 것이 ‘만족스럽다’는 의미일까요?”
“지금 질문자는 수단을 자꾸 목적처럼 받아들이다 보니 약간의 혼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린 중학생에게 이렇게 묻고 대화를 나눈다고 해봅시다.
‘너 소원이 뭐니?’
‘공부를 잘하는 거예요.’
‘공부를 잘해서 뭐 하려고?’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가죠.’
‘좋은 대학에 가서 뭐 할 거니?’
‘그래야 좋은 회사에 취직하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뭐 하려고?’
‘그래야 돈을 많이 벌죠.’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려고?’
‘집도 사고 차도 사야죠.’
‘집 사고 차 사서 뭐 하려고?’
‘그래야 행복하죠.’
이 대화를 보면, 결국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행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과정을 다 거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웃음)
“네, 그렇네요.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슬픔을 처음 겪으며 아직 아픔이 남아 있습니다. 이 슬픔을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가면 좋을까요?
아버지의 조각상을 도난당해 상실감이 크고, 멀리 사는 어머니도 혼자 남아 마음이 더 아픕니다. 이 ‘잃어버림’에서 오는 상실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죽음과 탄생 이야기가 나와 불교가 말하는 죽음의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부처님과 불교는 ‘죽음’을 어떻게 설명하나요?
스님이 과학자적 관점으로 불교를 본다고 하셨는데, 종교의 ‘신’ 개념이 과연 합리적인지 궁금합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신은 정말 말이 되는 개념인가요?
담마(진리)를 따르고 싶지만 감정은 흔들리고 애착이 생겨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며 다르마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스님이 정의하는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불교 해석이 서로 다르고 모순되기도 해서 무엇이 ‘부처님이 원래 말한 불교’인지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해석 속에서 ‘원래의 불교’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왕이나 권력자의 교만을 극복하여 어떻게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겸손해지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해야 하나요?
카르마와 의도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헷갈립니다. 아픈 아이를 먹이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경우 잘못은 ‘행위’에 있는지 ‘의도’에 있는지, 무엇이 더 핵심인가요?
어떤 선택을 한 뒤 뒤늦게 후회가 올라오며 죄책감이 생깁니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모든 걸 내려놓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선택이 자유인지 책임 회피인지 경계가 헷갈립니다. 어떤 선택이 자유이고, 어떤 선택이 회피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요? 물론 여러분에게는 때로 위로의 말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담마(Dhamma)는 위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담마는 사실입니다. 붓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진실만 이야기한 부처님
예를 들어, 여기에 음식이 하나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그 음식 안에 독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그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붓다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우리는 보통 ‘독이 들어 있으니 먹지 말아라’라고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붓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안에 독이 들어 있다’라고만 말했을 뿐입니다. 먹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입니다. 죽고 싶으면 먹으면 되고, 죽기 싫다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붓다의 가르침이 점점 윤리적인 명령처럼 바뀌어 왔습니다. ‘그 안에 독이 들어 있다’라는 사실의 전달이, 어느새 ‘그러니 먹지 말아라’라는 당부나 금지로 강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마음속에는 ‘왜 맛있는 것은 전부 부처님이 먹지 말라고 하지?’라는 저항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을, 좋은 것들을 모두 금지하는 가르침으로 오해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붓다는 진실만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살고 싶어서 먹었는데도 결국 죽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후회가 생기고 괴로움이 따릅니다. 그래서 저는 붓다 담마가 과학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공부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인류의 미래에 이러한 붓다 담마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600년 전 인도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가 이러한 진실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경외할 만한 일입니다. 제가 한국 사람인데, 한국의 전통과 문화가 아닌 인도에서 온 가르침을 왜 좋아하겠습니까? 한국에는 K-pop도 있고 좋은 문화도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나라와 종교를 초월합니다.
그래서 저는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붓다 담마를 공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로서가 아니라, 진실로서 말입니다. 우리 인류의 지혜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네루대학교 한국어과 학과장 사무실로 이동하여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인도 현지 시각으로 오후 4시, 한국 시각으로 저녁 7시 30분이 되자 3200여 명의 시청자들이 유튜브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지금 인도 델리에 있는 네루대학교에 와 있습니다. 네루대학교에는 한국어과가 있는데, 한 학년에 40명이나 모집한다고 합니다. 한국어 전공 교수님도 여덟 분이나 계십니다. 오늘은 교수님들과 한국어과 학생들, 그리고 다른 학과 학생들까지 함께 모여 즉문즉설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강연을 마쳤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시간이 촉박해서 지금은 네루대학교 한국어과 학과장 사무실에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2주 동안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과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아체 지역에서는 큰 홍수와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도왔습니다. 흙을 퍼내는 삽과 괭이, 청소 도구, 가스스토브 등을 수레에 실어 지원했는데, 주민들은 모두 밝은 얼굴로 고마워했습니다. 잠시 그 영상을 함께 보겠습니다.”
▲ 영상 보기
“집이 떠내려가고 살림 도구를 모두 잃었지만, 웃으며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집을 잃은 것도 큰 문제이지만, 농토까지 모두 흙에 파묻혀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가 더 큰 걱정입니다. 우선 무너진 집과 주변을 정리한 뒤, 앞으로 어떤 농사를 지을지, 모래로 덮인 농토에 당장 무엇을 심을 수 있을지에 대해 차분히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인도네시아 홍수 피해 지역 긴급구호 활동을 다녀온 영상을 함께 본 후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세 명이 차례대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도피와 쾌락 위주의 삶을 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며 지금부터 마음을 어떻게 가지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10년 동안 게임에 빠져 인생을 낭비했습니다
“스님께서 인도네시아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오신 영상을 보면서 제 인생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공대 2학년으로 복학하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존경해 왔고, 막연히 IT 사업가가 되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10년 넘게 게임에 빠지면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며 지냈습니다. 놀기만 했던 것이 결국 과보가 되어, 앞으로 평생 남들보다 뒤처진 격차를 메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사춘기 이후로는 부모님 몰래 PC방에 가거나 스마트폰을 하며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것이 습관이자 업이 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게임에서 이기는 것에만 집착했고 학교 공부는 뒷전이 되어 성적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생활은 아버지에게 의존하면서 아르바이트 한 번 제대로 해본 적도 없습니다.
재작년에는 큰 비용을 들여 유학을 다녀왔지만 실패로 끝났고, 돌아온 뒤에는 수능에 다시 도전했으나 성적이 나오지 않아 20일 전에 결국 포기했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니, 무의미한 것에 집착하고 욕심 때문에 제 열정과 에너지를 모두 소모해 버린 것 같습니다. 최근 스님의 법문을 접하면서 쾌락과 고통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극적인 요소들을 멀리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에서야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닌지, 꿈을 이루기에는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자살에 대한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무책임하게 살아온 제 자신에 대한 자책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의욕마저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다시 긍정과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한 10년간 정말 잘 놀았네요. 사실 모든 청소년들은 게임도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놀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살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원도 끝도 없이 실컷 놀아봤잖아요. 그것만 해도 하나의 경험이고, 어떻게 보면 성공입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자책합니까. 성공한 사람들 중에도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 마음껏 놀 수 없다는 사실을 후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질문자는 충분히 놀아봤으니 이제 ‘노는 건 이쯤에서 접어두고, 한번 일해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이다’라는 말, 들어본 적 있죠?”
“네, 많이 들었습니다.”
“한번 따라 해 보세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늦었다는 생각조차 못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늦었다는 건 알았어요. 다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 겁니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생각까지 가게 된 거예요. 아직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지점까지는 가지 못한 거죠.
지난 시간을 제대로 반성하려면, 지금부터 신발 끈을 졸라매고 공부든 일이든 바짝 하겠다고 나와야 합니다. 죽어버리면 뭐가 됩니까. 결국 게임이나 하다가 실패한 인생으로 끝나 버립니다. 사춘기 때 방황만 하다가 인생이 끝난 실패자가 되는 거예요. 젊을 때 조금 방황했더라도 정신 차리고 성공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늦은 게 아닙니다.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말고, 오히려 젊을 때 원도 끝도 없이 놀아봤다는 데서 자긍심을 가지세요.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술 마시고 놀아도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됩니다. 지금부터 공부나 일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지금 놀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빨리 갈 수도 있어요. 학교나 직장에 다니면서도 계속 술 먹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동산 투자니 주식 투자니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게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게임에 불과한,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잖아요. 그걸 알았다면 절대로 늦은 게 아닙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걸 자각하면 됩니다. 앞으로는 집중해서 공부나 일을 하겠다는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게임을 했던 경험을 살려 게임 회사에 취직해도 되고, 어떤 회사에 가도 됩니다. 학벌 같은 조건은 점점 더 중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대학에 다녀도 되지만, 꼭 다시 갈 필요는 없습니다. 새삼스럽게 지금 공부를 시작해서 크게 한 번 잘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면 오히려 또 실망하게 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됩니다.”
“지금이라도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직장을 구해서 일하는 게 낫지 않아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서요. 일단 학교에 다니면서 변리사 시험을 병행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공부 머리는 좀 있었어요?”
“게임에 빠지기 전에는 어느 정도 집중해서 공부하긴 했습니다.”
“시험을 치는 공부를 하려면 먼저 공부 머리가 좀 있어야 합니다. 본인이 보기에 공부가 적성에 맞는다면 시험을 준비하고, 맞지 않는다면 기술을 익혀서 빨리 자리를 잡는 게 낫습니다. 남들이 시험 본다고 마냥 따라가면 안 되고, 자기 적성에 맞게 선택해야 합니다.”
“네, 고려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 덕분에 여태까지 반성은 제대로 하지 않고, 후회로만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명심하고, 예전처럼 살지 않도록 반성하며 충실히 살겠습니다.”
“젊은 시절을 후회하는 것은 깊이 반성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잘 놀았다’고 생각하며 과거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실컷 놀았으니 이제 그만 놀자’ 이렇게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누가 술 마시자, 놀러 가자고 해도 ‘어릴 때 많이 해봤고, 이제 졸업했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남들보다 공부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수험 생활을 했고 결과에는 만족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지난 시간과 비용이 헛되었다며 실망하셔서 억울함과 죄책감이 큽니다.
상처를 받아도 바로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분노와 후회를 반복해 대인관계가 힘듭니다. 갈등이 두렵지만 사람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요?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오후 5시가 넘었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오자 한국어과 교수님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다가 스님이 가시는 길을 배웅까지 해주었습니다.
네루대학교를 나온 후 근처인 인도 델리 라이 피토라 문화 단지에서 부처님 사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고 해서 잠시 참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한 시간가량 전시장을 둘러보며, 부처님의 흔적이 담긴 유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인도 정부 문화부가 ‘The Light and the Lotus: Relics of the Awakened One’이라는 이름으로 주최한 특별전이었습니다. 1898년에 발굴된 붓다의 사리와 유물, 그리고 최근 영국 페페 가문으로부터 반환된 유물과 보석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인도 국립 박물관과 콜카타 인도 박물관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던 유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서 더욱 특별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조각상과 문서, 의식용품 등 80여 점의 유물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차분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전 관람을 마치고 스님은 다음 미팅 장소인 인드라간디 예술센터로 향했습니다. 저녁 8시 30분에 미팅 장소에 도착하자 인도 국제문화연구소 소장 아쉬쉬 바베 박사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인도 보드가야에 있는 한국절 분황사의 주지인 붓다팔라 스님도 함께 동석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쉬쉬 바베 박사님은 작년 4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에 전래된 인도 문화와 불교문화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여러 전문가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스님은 박사님의 연구 활동에 존경을 표하면서 인도와 한국 사이의 교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국제불교연합(IBC)이 주최하는 제2회 글로벌 불교 서밋 행사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공항으로 이동하여 비행기를 타고 바라나시로 이동한 후, 저녁에는 사르나트에 도착하여 인도성지순례 입재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9
하니
고맙습니다
2026-01-26 07:16:22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1-26 07:15:09
정태식
“학교나 직장에 다니면서도 계속 술 먹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걸 자각하면 됩니다.
앞으로는 집중해서 공부나 일을 하겠다는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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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람에게나 오늘이 그 사람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