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12.13. 필리핀 민다나오 6일째, 마닐라 즉문즉설 강연
“해외에 취업한 남자친구와, 몸이 아픈 엄마 사이에서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 민다나오(Mindanao)를 출발하여 마닐라로 이동한 뒤 한국 교민들을 위해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민다나오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아침입니다. 어젯밤 민다나오 JTS 센터에서 하룻밤을 보낸 JTS 방문단은 새벽 4시 15분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라 무더운 나라임에도 이곳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 아침 공기가 더욱 상쾌하게 느껴졌습니다.

민다나오 JTS센터에서는 바로 앞에 해발 약 2,899미터에 이르는 키탕글라드 산(Mount Kitanglad)이 보입니다. 민다나오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입니다.

“저기 보이는 산은 백두산보다 높은 산입니다. 경치 좋죠?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스님의 제안에 키탕글라드 산을 배경으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한 후 오전 6시부터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날씨가 좋아 식탁을 야외로 옮겨, 모두 함께 아침을 나누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필리핀 JTS 현지인 활동가들과 한국인 활동가들 모두에게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로 용돈을 전했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7시 30분부터는 JTS센터 강당에서 필리핀JTS의 올해 사업 보고와 내년 사업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필리핀JTS 노재국 대표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학교를 많이 짓다 보니까 JTS 활동가들이 좀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대표를 맡고 나서 이제 2년이 지나니까 적응이 되긴 했지만, 저의 부족함도 돌아봤습니다. 여러분이 내년에도 계속하라고 시켜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어서 필리핀JTS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향훈 법사님이 올해 사업 결과와 내년 사업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교육, 의료, 긴급 구호까지 쉼 없이 달려온 필리핀 JTS의 한 해

“올해는 원주민 마을에 학교 10개를 지었고, 장애 아동 특수 학교(SPED)를 5개 지었습니다. 워낙 많은 학교를 짓고 있다 보니까 바쁘긴 했지만 JTS가 지금까지 지은 모든 학교에 대해 2년에 걸쳐 학용품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육을 통해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는지 전수 조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16개 학교에 학용품을 지원했고, 하반기에 17개 학교에 학용품을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부모들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장애 아동들을 데리고 현장 학습도 다녀오고, 의료인 정토회의 도움으로 4개 군에서 의료 캠프를 진행하여 1,500여 명을 진료했고, 태풍 피해를 크게 입은 세부 주민들을 돕기 위해 긴급 구조단을 파견하기도 했고, 시설 봉사단이 와서 JTS센터의 각종 시설을 점검해 주기도 했습니다.

내년에는 올해 착공했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은 4개 학교를 마무리하고, 새로 원주민 학교 3곳, 특수 학교 4곳을 지을 예정입니다. 아울러 교사 연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후 위기로 재난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 신속한 긴급 구호 방안에 대해서도 오늘 함께 의논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이번 준공식에 참석하면서 제안하고 싶은 사항이나 내년 사업에 반영했으면 하는 사항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건의 사항을 말하거나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습니다.

  • 도심에 있는 특수 학교 건설에 JTS가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원주민 학교에 더 많은 지원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특수 학교 교실이 지어진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내부에 교육 기자재는 부족해 보입니다. 가령 가루가 생기는 칠판보다는 화이트보드가 낫지 않을까 싶은데, 교육 환경 개선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 장애 아동의 출산율을 줄이기 위해 주민들에 대한 산파 교육을 진행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어떤 장애는 외과 수술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장애 아동에 대한 수술 치료 지원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중 한 명은 JTS의 인력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대책이 필요하다며 몇 가지 아이디어를 말하고, 이에 대한 스님의 조언도 구했습니다.

젊은 활동가가 줄어드는 시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필리핀JTS가 그동안 사업을 해 오면서 늘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활동가 부족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거겠죠. 이와 관련해 스님께서는 어떤 복안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업은 확대가 되는데, 한국에서 젊은 활동가들을 파견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스님께서 정년퇴직한 사람들이 와서 봉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을 봐도 아직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데, 은퇴 후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시간만 보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봉사에 관심이 있는 은퇴자들을 모아서 JTS 필리핀 사업이나 인도 사업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스님께서 직접 이 역할을 해 주시면은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스님의 생각을 여쭙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첫째, ‘사업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더 확장하지 않거나, 아니면 기존 사업을 좀 줄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정토회의 원칙도 지키면서 사업도 원활히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이 방법이 제일 좋습니다.

둘째, 사업을 좀 더 확대하겠다면 말씀하신 대로 직장에서 은퇴하신 분들이 와서 봉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공동체에 상주하는 젊은 활동가들을 파견해서 그들을 기반으로 사업을 운영해 왔지만, 앞으로는 은퇴하신 분들 중심으로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계속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선 정년퇴직을 하셨어도 현지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면 봉사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은퇴하고 필리핀에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주로 교사나 공무원을 하다가 정년퇴직한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한국에서 중산층 생활을 누리던 분들이라서, 막상 현지에 오면 열악한 생활 환경과 공동체 생활을 힘들어하십니다.

현재 필리핀JTS의 활동가 숙소나 부대시설조차 JTS 사업 원칙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도JTS 사업장에서는 현지 주민들과 거의 비슷한 생활 수준으로 지내며 봉사한다는 원칙을 아직까지 지켜내고 있습니다. 보통 젊은 활동가들을 해외 사업장에 파견하면 초기의 어려움만 넘기고 나면 대부분 현지에 적응합니다. 그런데 정년퇴직하신 중장년층은 현지 환경에 적응하는 걸 제일 어려워합니다. 은퇴한 봉사자들이 어려워하는 첫 번째는 ‘열악한 숙소’입니다. 두 번째는 ‘현지 기후 환경에 대한 적응’입니다. 인도 같으면 여름에 너무 더워서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걸 견디지 못해요. 세 번째는 ‘음식’입니다. 청년 활동가들은 빵만 먹어도 사는데 중장년 봉사자들은 꼭 한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네 번째는 ‘공동체 생활의 어려움’입니다. 봉사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사업을 하거나, 고위직으로 은퇴하신 분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공동체 생활을 힘들어합니다. 개인 방도 따로 없고,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함께 맞추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집에서 직장에 다니듯이 각자 개인 생활을 하면서 일하는 출퇴근 봉사를 원합니다. 다섯 번째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입니다. 중장년층은 목공이나 전기 같은 기술을 갖고 있지만 외국어를 잘 몰라서 현지인들과 소통을 거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갈 때 꼭 통역할 사람이 동행해야 해요. 현재 은퇴자 세대는 농사일부터 산업화 시기의 건축이나, 공업 현장 등을 모두 어깨너머로 경험한 세대입니다. 꼭 전문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일단 현장에 나가 보면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금방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어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역해 줄 사람이 없으면 현장에 나가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은퇴자들이 여기 와서 봉사하려면 이런 어려운 조건들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렇다면 한국에서 은퇴하신 분들이 현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생활 수준을 높여 주면 되지 않느냐?’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렇게 하면 현지 주민들과 생활 수준 격차가 생깁니다. 그러면 다시 ‘평등을 지향하는 JTS 활동가들이 현지 주민들보다 호의호식하는 생활은 올바르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렇게 되면 현지 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함께 끌어올리는 사업을 병행해야 하고, 결국 현지인 활동가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려다 보면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사람을 고용해서 활동하지 않는다.’는 JTS의 원칙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JTS가 현지인을 고용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JTS는 월급을 많이 주고 근무 여건이 좋은 ‘직장’으로 소문이 납니다. 그러면 다른 NGO 단체들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일반 NGO 단체에서는 기부금의 30퍼센트를 경상비로 지출하지만, 현재 JTS는 기부금의 3퍼센트 정도만 경상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어려운 분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활동가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생활 조건을 개선하면 아마 경상비가 많이 늘어날 겁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어떤 봉사자는 JTS 활동가들의 생활 여건이 너무 열악하다며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현지 주민들보다 JTS 활동가들의 생활 수준이 너무 높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생각이 다 달라서 늘 논란이 반복됐어요. 물론 인도에서 제가 처음 활동했을 때처럼 동네 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함께 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러면 어떤 논란도 일어날 일이 없어요. 제가 현지인들보다 더 가난하게 사니까 동네 사람들이 음식을 자꾸 갖다 주곤 했어요. 그런 관계에서는 차별 의식 없이 서로 평등한 관점에서 사업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방식은 일의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봉사자들이 새로 올 때마다 이런 문제 제기가 반복되고 있어요. 처음 온 단기 봉사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JTS가 어떤 시행착오를 겪고 현재에 이르렀는지 충분히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 자원봉사자들이 오면 비슷한 문제 제기가 계속 반복됩니다.

인도 사업을 예로 들면, 간호사 한 분이 봉사하려고 왔다가 3일 만에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어쩌다 그분이 병원에서 현지 활동가가 약품을 훔쳐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거든요. 그분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봉사를 못 하겠다.’며 3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중장년의 봉사자들은 각자 출신 배경도 다르고 자기 생각이 완고한 편입니다. 그래서 막상 사업장에 오면 대부분 문제 제기를 많이 하세요.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다 보면 온갖 일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낯선 곳에 파견 가는 활동가들에게 처음 3개월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한국에서만 살다가 처음 현지에 오면 이런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고, 분별심부터 먼저 일어납니다. 물론 부처님 당시의 수행자들처럼 그냥 나무 밑에서 걸식하며 산다는 관점을 갖고 현지에서 생활하면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다 보면 이런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한국에서 직장을 은퇴하고 오신 분들이 중심이 되어 사업을 이어 가는 것입니다. 은퇴하신 분들은 앞으로 20년은 더 이곳에 와서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은퇴자들의 현지 적응 문제들이 있어요. 어떤 분은 공동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인근 도시에 자비로 숙소를 따로 마련해서 출퇴근하겠다고 제안한 적도 있습니다. 월급은 드리지 않아도 먹는 것은 챙겨 드려야 하는데, 그것 또한 현지 활동가들보다 좋은 것으로 따로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이런 사례들을 말씀드리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업을 오래 하다 보니 반복적으로 드러난 문제들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금 부탄에서 활동하는 공동체 상근 활동가들은 부탄 현지인들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늘 뭔가 갖다 준다고 해요. 너무 어렵게 산다면서요. 부탄에 파견된 한국 활동가들이 이런 원칙으로 생활하고 있으니까 은퇴하고 부탄에 간 중장년층 봉사자들은 생활이 제일 힘들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봉사 자체가 힘든 게 아니라 생활 수준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해외 파견 생활을 3개월 정도하고 나면 체중도 많이 빠지고 대부분 현지 생활을 힘들어합니다.”

“특별히 해외 파견 봉사자를 모집한다고 대중에게 홍보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정토회 안에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수행법회에서 공지도 하고요. 수행법회를 듣지 않는 걸 들키셨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스님이 한 가지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빈도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필리핀은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JTS도 긴급 구호 파트에 인력을 따로 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료 캠프를 열어서 주민들에 대한 의료 지원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마침 의료 장비를 JTS에 기부하겠다는 분이 계셔서 백내장 수술, 언청이 수술, 이런 것들을 민다나오뿐만 아니라 필리핀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대표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 건설, 긴급 구호, 의료 봉사, 이렇게 업무를 셋으로 나누어서 책임자를 배정하면 어떨까 합니다.”

스님의 제안을 두고 잠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긴급 구호를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오갔습니다. 토론을 정리하며 스님이 다시 한번 질문했습니다.

“이규초 부대표님이 긴급 구호 책임을 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해보겠습니다!”

최종 결정은 이사회에서 하기로 하고, 큰 틀에서는 학교 건설은 노재국 대표가, 긴급 구호는 이규초 부대표가, 의료 봉사는 이원주 전 대표가 맡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끝으로 박지나 JTS 대표가 필리핀JTS 활동가들 모두 올 한 해 너무 수고가 많았다며 마닐라에 3일 동안 휴가를 보내 주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모두가 동의하여 JTS 이사장인 스님이 최종 승인도 해주었습니다.

“한국인 활동가들은 마닐라에서 3일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게 계획을 세워 보시고, 필리핀 현지 활동가들은 하루 코스로 소풍을 다녀오면 좋겠습니다. 대신에 비행기 표가 비싼 연말은 피해 주세요.” (웃음)

“감사합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학교를 20개 지을 수 있어요? 제시 님은 최소한 10개는 지어야죠.”

“Yes, I’ll give it a try.”
(예, 한번 해보겠습니다.)

모두가 큰 박수로 회의를 마쳤습니다.

트럭에 짐을 다 싣고 난 다음 오전 10시에 JTS센터를 출발하여 카가얀데오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카가얀데오로 도심에 들어서자 차가 엄청 막혔습니다. 교통 체증을 겨우 뚫고 2시간 40분을 이동하여 12시 40분에 카가얀데오로 라긴딩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필리핀JTS 사무국장 향훈법사님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서둘러 수하물을 부치고 탑승 수속을 했습니다. 비행기가 늦게 출발하면 강연 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30분만 연발되어 2시 30분에 카가얀데오로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비행기는 민다나오 섬을 떠나 바다 위를 날았습니다. 1시간 20분을 비행하여 오후 3시 50분에 무사히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오후 4시 30분에 공항을 나와 마닐라 교민들을 만나기 위해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마닐라 시내 중심가인 마카티 시티에 위치한 아시안 경영대학원(AIM)입니다. 아시아 지역의 리더와 전문 경영인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경영대학원인데, 오늘은 이곳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분주하게 강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장 앞에서는 필리핀JTS 20년 역사를 기록한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교민들과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사진전을 관람했습니다.

2002년 스님이 막사이사이상(Ramon Magsaysay Award)을 수상한 것을 인연으로 토니 대주교님의 부탁을 받아 민다나오 지역을 답사하였고, 2003년부터 민다나오 지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23년 동안 86개의 학교를 지으며 민다나오에 평화의 씨앗을 심어 오고 있습니다.

일찍 도착한 교민들도 사진전을 관람하며 봉사자들이 준비한 김밥, 햄버거, 떡, 차 등 다과를 들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진전 관람을 마치고 스님은 역대 필리핀 한인회장, 부영사, 국제학교 교장 선생님, 노인회 회장을 비롯한 마닐라 교민 사회의 원로 인사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일 년 만에 만나 안부를 주고받다 보니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1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오자 큰 박수와 함성이 터졌습니다.

스님은 먼저 필리핀JTS가 올해 민다나오에 15개 학교를 지었다고 소개하면서 지난 5일 동안 준공식을 하고 온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어느덧 또 한 해가 지나고 연말이 되었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저는 이곳 필리핀에 오게 되었습니다. 올해 JTS는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에서 원주민 학교 10개와 장애 아동 특수 학교 5개를 포함해 총 15개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학교가 생기자, 교육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JTS가 지금까지 가장 중점을 두고 해온 일은 원주민 지역에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필리핀 오지 산간 지역은 교통 사정이 좋지 않아 원주민 자녀들이 교육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합니다. 학교가 있는 바랑가이(Barangay)까지 통학하려면 2~3시간을 걸어가야 하므로 어린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가까운 읍내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지만, 그 외의 대부분은 학교를 보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JTS는 산악 원주민 마을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이 약 4km 이내를 걸어서 통학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무슬림과 갈등이 있는 분쟁 지역에도 대부분 학교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NPA(공산반군)의 활동 때문에 원주민 지역에 학교가 없었는데, 요즘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NPA의 활동이 거의 멈춘 상태입니다. MILF(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와 갈등이 있었던 지역은 현재 평화 조약이 체결되어 교육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여 년간 이원주 전 대표님이 65개 정도의 학교를 세웠고, 현재는 노재국 대표님이 그 활동을 이어 가고 계십니다. 예전에는 학교를 1년에 3개 짓는 것도 힘들었지만, 요즘은 1년에 10개 가까이 짓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학교를 많이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JTS의 노력뿐 아니라 지방 정부나 교육청의 교육에 관한 관심이 부쩍 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학교를 지어 놓아도 선생님을 보내 주지 않았지만, 요즘은 원주민 지역의 움막 같은 곳이라도 선생님을 먼저 보내 교육을 시작한 후 JTS에 학교를 지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필리핀 당국이 학교를 짓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저희도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JTS가 필리핀에서 하는 일은 교육 지원 사업뿐만이 아닙니다. 몇 년 전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었던 학교를 많이 복원했듯이 올해도 홍수나 지진 피해가 발생했을 때 긴급 구호 활동을 펼쳤습니다. 저희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은 민다나오이며, 요즘에는 특히 부키드논 주에 집중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지은 이후에는 학교가 실제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합니다. 작년에는 학교 건립 외에도 원주민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 바닷가나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왔고, 활동하기 어려운 장애 아동들에게도 현장 학습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의료인 정토회를 통해 마을로 직접 찾아가 의료 지원도 했고, 세부 지역에 홍수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긴급 구호 활동을 했습니다.

한류가 오래 가려면, 무엇을 함께 해야 할까요?

여러분도 이곳에 오셔서 돈만 벌지 마시고, 번 돈의 일부를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조금이나마 사용해야 합니다. 요즘 한류라고 해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뻗어 나간다고 하여 다들 굉장히 좋아합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국 음식, 옷, 화장품이 잘 팔리니 좋은 일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활동하며 동남아시아 여러 곳을 다녀 보면 그곳의 어른들은 한류를 썩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한류가 유행이라며 한국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사고, 춤추고 노래하는 데 돈을 쓰려고 해서 골치가 아픈 거예요. 우리가 말하는 한류라는 것은 결국 소비문화 아닙니까? 돈을 지불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생각할 때 한류를 오래 지속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역 사회의 교육, 건강, 지역 개발을 위한 지원을 함께 해야 합니다. 한국이 수출을 많이 했다고 자랑하지만, 국가 차원이든 비영리 단체 차원이든 수익의 일부를 다시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를 가질 때 비로소 한류의 흐름이 지속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현재는 이익을 보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재투자하는 일에는 다소 소홀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국위 선양을 내세우기보다는, 지구 공동체 차원에서 서로 나누고 협력하는 자세가 매우 필요합니다. 그래야 한류가 단기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도 지속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지 지역사회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어서 인생 고민에 대해 손을 들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4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자친구와 몸이 아픈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해외에 취업한 남자친구와, 몸이 아픈 엄마 사이에서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저는 여기에 1년 정도 일하러 왔습니다. 원래는 1년 뒤에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남자친구가 4년 정도 해외에 취업할 것 같아요. 엄마는 제가 얼른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가 몸도 안 좋으셔서 제 마음이 불편한 상황입니다. 한편으로는 남자친구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따라가 있는 동안 엄마 건강이 더 안 좋아질까 봐 걱정도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됩니다. 남자친구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큰데, 이걸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 보면, 남자친구를 따라가려니 엄마가 조금 걱정이 되고, 엄마를 보살피려니 남자친구하고의 관계가 문제인 거네요.

질문자 생각에는 이게 남자친구나 엄마 문제로 보이는데 그 둘은 아무 관계가 없어요. 남자친구하고 관계가 좋으면 그냥 결정해서 따라가면 됩니다. 엄마는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독립 변수로 생각해서, 이 남자와의 관계를 이어 가는 게 좋은지, 아니면 안 가는 게 좋은 지만을 두고 결정하면 됩니다.

엄마와 연계해서 결정하면 그 선택 때문에 나중에 관계가 나빠졌을 때 엄마한테 책임을 물게 됩니다. 엄마 때문에 내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병간호를 하든 곁에 남아 있든 ‘엄마를 위해서 내가 여기 남는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결국 관계가 나빠집니다. 엄마가 건강이 나빠졌을 때 내가 후회할까 봐 결정한 거지,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한 선택입니다. 만약에 엄마를 위해서 가지 못했다면 엄마가 내 인생의 장애 요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와는 아무 관계없이 선택하면 됩니다. 스무 살이 넘었으면 엄마가 병이 나든 돌아가시든 상관 안 해도 죄는 안 됩니다.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죄라고 할 수도 없어요. 자연 생태계를 보더라도, 어미가 어린 새끼를 돌보는 것은 종족 보존을 위한 생태적 원리지만 성체가 된 새끼가 부모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이 없습니다. 성체가 되면 자기 생명은 자기가 보호해야 합니다. 군집 생활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공동 대응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책임집니다.

그러니 해외에 가는 게 자기 인생에 좋다고 판단되면, 어머니가 편찮으신 건 어머니 인생이고 질문자는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요. 어머니로 인해서 해야 할 걸 못 하면 어머니가 내 인생의 장애 요인이 됩니다. 부모는 자식을 도와주고 싶지,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어요. ‘부모 때문에 내가 못 간다.’ 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그러니 어머니에게 내가 이러 이러 해서 가야 하겠다고 말하고 그냥 가면 됩니다.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범위 안에서 도울 만큼 돕는 거지, 자기의 진로를 훼손해 가면서 도울 필요 없어요. 그렇게 하면 결국 나중에 어머니를 원망하게 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원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부모는 당연히 몸이 아프고 자식이 보고 싶으니까 ‘가지 마라. 여기 있어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자신을 위한 마음도 있어요. 그렇다고 부모가 자기를 위해 자식을 이용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중심에 놓고 사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모를 두고 내가 어떻게 할 건지는 나의 선택이지, 부모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하고 사업을 할 때 상대가 약간 이익을 추구하는 걸 가지고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 사업을 못해요. 이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익을 얻으려고 사업을 하는 거잖아요. 다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상호 이익이 되기 어려우니까 욕할 필요는 없고 ‘이 사람과 사업을 안 하는 게 좋겠다.’라고 내가 결정하면 되는 겁니다. 저 사람이 이익을 추구하는데 나는 이익을 추구 안 하면 그 사람과 관계가 나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손해 봐 가면서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나도 손해 보기 싫으니까, 저 사람이 너무 이익을 추구한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게 인간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걸 나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상대가 이익을 추구하는 건 얄밉게 생각하고, 자기가 이익을 추구하는 건 정당하게 생각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교환하는 물품이 서로 다를 뿐 종교든 상업 거래든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라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수행자가 설법을 통해 삶의 지혜를 보시하고, 재가자는 그 가르침을 듣고 수행자가 생존에 필요한 재물을 보시합니다. 이게 바로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결국 결정은 자기 스스로 해야 합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엄마와 연관지어서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엄마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방해 요인이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그걸 자꾸 연관지어서 머리를 굴리는 거예요. 스스로 결정해서 행동하면 됩니다. 남자친구가 괜찮다면 그냥 따라가세요. 그리고 엄마를 핑계로 삼는다는 건 남자친구가 백 프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부모가 반대해서 결혼이 어렵다는 말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결혼하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해서 못 하는 걸까요? 사실은 본인 마음도 조금 흔들리는데, 부모까지 반대하니 부모를 핑계 삼고 있는 겁니다.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대부분 그래요. ‘나는 정말 하고 싶은데 부모가 반대해서 어렵다.’라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내가 딱 해야겠다면 부모가 반대해도 ‘안녕히 계세요. 어머님, 빠이빠이!’ 하고 가버리면 됩니다. 그런 결정을 안 하는 건 주판알을 튕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요? 자기 마음을 깨끗하게, 투명하게 딱 보고 결정해야 후회가 적습니다. 엄마도 돌봐야 한다는 식으로 자기를 미화하면,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겁니다.”

“엄마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게 좋을지요?”

“부모와 자식 관계인데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되죠. ‘엄마, 나는 이 남자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이 남자를 따라갈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엄마가 ‘나를 두고 어떻게 그렇게 갈 수 있니?’라고 하면 ‘제가 죽을 때까지 엄마만 모시고 살 순 없잖아요. 평생 결혼도 안 하고 엄마하고만 살면 좋겠어요?’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엄마가 ‘결혼은 해야지.’라고 하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평생 결혼은 안 할 거예요.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내가 평생 혼자 살기를 원해요?’

이렇게 물어도 엄마가 수긍하지 않으면 ‘엄마가 그렇게 반대한다면 저는 엄마와 당분간 관계를 끊고 따로 살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살아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어야 해요. 이렇게 말하지 않고 나중에야 ‘그때 그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 했다.’라고 하는 건 사실 다 핑계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혹시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 혼자 계세요?”

“네, 엄마 혼자 계세요.”

“그러면 어머니에게 나한테 의지하지 말고 또래 남자친구를 한 명 사귀라고 이야기해 보세요. 이렇게 독하게 말해야 서로의 입장이 확실히 정리되면서 머릿속에서 잡념과 번뇌가 끊어집니다. 배우자와 이혼이나 사별을 했다면 다른 사람을 만날 자유가 있는 거잖아요. 현재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없는 상태라면 전혀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따라 죽는 걸 열녀(烈女)라고 칭송했지만, 현대 심리학적으로 보면 다 정신 질환에 속합니다. 남편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거예요. 연인과 헤어져서 잠 못 이루는 것도 다 헤어짐에 대한 후유증에 따른 정신 질환에 속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어쩌면 삶을 너무 건조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별의 아픔에서 벗어나야 다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동물들도 이별을 겪으면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을 흘린다는 건 특정 대상에 대한 집착이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동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연인과 헤어진 뒤에 곧장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것을 두고 ‘난잡하다.’, ‘비도덕적이다.’라고 판단합니다. 그런 시각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에요. 그렇게 보는 게 오히려 너무 인위적인 거라고 이해하셔야 해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30년 넘는 세월 동안 타국에서 열심히 살다 보니 가족을 챙길 시간이 없었습니다.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가장 좋은 삶이 될까요?

  •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시행착오를 토대로 둘째 아이는 잘 키웠더니 첫째 아이의 불만과 원망이 많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 제 스스로 꾸준히 뭔가를 반복해서 하는 것이 늘 어렵습니다. 의지박약인 나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어서 우울감을 자주 느낍니다. 어떻게 해야 나아질까요?

대화를 마치며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실내에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하체가 빈약하고, 정신 질환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이 너무 많아요. 제가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봉사를 하는 것은 남을 돕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의 육체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 생활 여건이 어려운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편한 곳에만 있으면 불평불만이 많은데, 어려운 사람을 보면 내가 지금 얼마나 좋은 환경에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밥 먹고 사는 것만 해도 참 다행이라고 여겨지면서 비교하는 평가 기준이 낮아집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확 줄어요. 그리고 주어진 삶에 대해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삶이 무거울수록, 오지로 가 보세요

그러니 여러분 모두 너무 현재 사는 문제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시간이 나는 대로 민다나오에 가서 봉사를 하세요. 그곳에 가서 힘들게 지내 봐야 지금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사는지를 자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 세계 오지를 다니면서 힘든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니까 공항에서 자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한여름에 에어컨 바람도 시원하게 나오고, 화장실에 가면 따뜻한 물과 시원한 물도 잘 나오잖아요. 그보다 더 좋은 잠자리가 어디 있어요. 우리가 감사할 줄 모르는 건 너무 편한 일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여러분도 삶을 좀 가볍게 사시길 바랍니다.”

강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닐라 파이팅!”

강연을 마치고 필리핀JTS 전 대표인 이원주 님 댁으로 이동하여 마닐라정토회 회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이번 필리핀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필리핀 마닐라 공항으로 갔습니다. 스님은 배웅을 나온 정토회 회원들에게 강연을 준비하느라 수고했다고 격려한 후 JTS가 민다나오에서 하고 있는 학교 건설뿐만 아니라 자연 재난에 대한 긴급 구호 활동, 백내장 수술을 비롯한 의료 지원 활동에도 많이 참여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스님은 탑승구 앞에 누워 잠시 쉬었습니다. 일주일 전에 시작된 어깨 통증이 계속 낫고 있지 않아서 몸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보았습니다.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탄 후 좌석에 앉은 채로 쪽잠을 잤습니다.

내일은 새벽 12시 25분에 마닐라 공항을 출발하여 약 4시간을 비행한 후 한국 시간으로 오전 5시 3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합니다. 곧바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하여 제2차 만일결사 1차 천일결사 회향식을 하고, 국제지부 회원의 날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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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남

싱가폴에 살고 있는 해외 정토회원 입니다. 법륜스님의 JTS의 사회실천 활동 늘 응원하며, 현실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 늘 통쾌하게 풀어주시는 즉문즉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5-12-16 15:16:03

최상훈

고맙습니다 ^^

2025-12-16 14:15:10

김애자

감사합니다

2025-12-16 13: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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