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11.19. 수행법회, 평화연구 세미나
"어머니 위독 소식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죄책감이 듭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00여 명의 대중이 모여 있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 독송으로 수행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화상 회의 방에 접속해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주간 정토행자의 소식을 영상으로 본 후 참석한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여는 말씀을 했습니다. 스님은 다가오는 1차 천일결사 회향수련에 대해 안내한 후 기복적 신앙을 넘어 스스로 행복을 가꾸고 사회적 가치를 실천해 온 정토회 활동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1월도 어느덧 중순을 지나고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추위로 초겨울이 성큼 다가온 듯합니다.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연말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정토회는 4주 후면 지난 3년간 이어온 천일결사 기도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마음 운동’입니다

정토회는 ‘기도하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는 식의 종교적 기복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이러한 기복적 종교 행위는 점점 쇠퇴하고 있으며, 인류의 주요 관심사에서 밀려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기독교 보수 세력이 극단적 정치 행위와 결합해 국제 사회에 큰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고, 일부 저개발 국가에서는 종교가 봉건적 가치와 결합해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종교가 더 이상 중심 관심사가 아니며, 영향력 또한 빠르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종교는 문화의 한 요소로 남아 있는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정신적 가치를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처럼 기복적 종교에 기대지 않을 뿐이며, 특히 젊은 세대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정토회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이러한 시대 흐름을 내다보고 수행의 가치를 중심에 두며 환경, 평화, 나눔의 실천을 꾸준히 이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토회가 추구해 온 가치는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행복학교와 행복시민운동이 국민들에게 잘 정착된다면, 대한민국 사회를 새롭게 리셋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1970년대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했던 시절, 온 국민이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해 나라의 기틀을 세웠던 새마을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스스로 가꾼다.’는 새로운 ‘새 마음 운동’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불교를 보다 쉽고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깨달음의 장과 정토불교대학이라면, 행복학교는 불교적 형식을 뛰어넘어 누구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모델이자 사회적 운동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행복해지는 수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의 상황에 맞게 정토불교대학이나 행복학교를 권해 주는 일 또한 매우 뜻깊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도 좋은 법을 만나 방황에서 벗어나,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에서 두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오랫동안 멀어져 지냈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에게서 예상치 못한 감정이 올라왔다며 그 마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머니 위독 소식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죄책감이 듭니다

“어머니는 제가 세 살 때 가출하신 후 아버지와 이혼하셨습니다. 그 후로는 연락 없이 지내다가,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연락이 닿아 가끔 안부를 묻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돌아가실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경제적 도움은 드리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연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저도 모르게 들뜨고 이유 모를 쾌감이 올라왔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니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살펴야 할까요?”

“우선 그런 소식을 들었다는 것은 일종의 자극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눈으로 봤다면 시각, 소리를 들었으면 청각, 냄새를 맡았다면 후각, 맛을 봤다면 미각, 접촉이 있었으면 촉각, 그리고 머릿속 생각까지, 이렇게 여섯 가지 감각을 통해 자극을 받는 거예요.

자극을 받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총체적인 습관, 즉 카르마(karma)가 자동으로 반응을 일으킵니다. 아무리 슬퍼야 한다고 해도 웃음이 날 수 있고, 아무리 웃어야 한다고 해도 눈물이 날 수 있어요. 이러한 반응을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런 반응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카르마에 이런 자극이 오니까 쾌한 반응이 있구나.’ 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것이 잘못됐다거나 좋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쾌한 반응이 있다는 사실만 있는 것이죠.

그런데 생각과 마음의 반응은 다릅니다. 생각은 주로 윤리나 도덕, 가치관에서 비롯되지만, 마음의 반응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오랫동안 형성된 습관대로 나타납니다. 육체가 생존을 위해 반응하듯 마음도 자동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누군가 지팡이를 나에게 들이밀었을 때, 그 사람이 뒤에 뱀을 보고 나를 도우려던 것인지 공격하려던 것인지와 관계없이 몸은 우선 방어 반응을 일으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도와주려던 것임을 알게 되면, 반응은 바뀌겠죠. 그것처럼 마음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일으키는 반응 자체를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 약간 슬픈 감정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데, 쾌한 감정이 올라온 건 어릴 때 형성된 어머니에 대한 원망 때문일 수 있어요. 어른이 되어 겉으로 이해한다고 해도, 어린 시절의 상처는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나 북한에서 우리나라를 비난하는 사람이 죽었다고 합시다. 죽음 자체가 기뻐할 일은 아니지만, 속으로 ‘잘 됐다.’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쾌한 감정이 올라왔다면 ‘내가 어머니에게 원망이 있었구나.’ 하고 자각하는 계기로 삼으면 됩니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에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자신에게 해롭다고 느껴진다면, 이해의 폭을 넓히면 됩니다. 어린 내가 보기에는 나쁜 일이지만, 한 여인으로서 어머니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었다고 보면 돼요. 시댁이나 남편과의 관계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으로서는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거예요.

여기에 두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첫째, 어린 시절 입은 상처는 그때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갈 수 있나?’ 하는 마음이 당연하죠. 그러나 어른이 되어 보면,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가정을 떠날 때 아이가 있다면, 내 선택과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아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아이가 상처를 문제 삼을 때, ‘너는 엄마 심정을 몰라서 그렇다.’라고 말하면 안 돼요. ‘그때 상처받았구나, 미안하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내 삶에 급급했구나.’ 이렇게 대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세 살까지는 아이를 엄마가 키워야 한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가능하면 이혼하지 말고 맞추며 살아라.’ 하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는 다투는 이유를 알 수 없고, 설명한다고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마음의 반응은 그저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세 살 때 엄마가 떠났다면 원망할 만합니다. 이유가 어떻든 원망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질문자의 잘못이 아니에요. 다만 원망을 붙잡고 있으면 자신에게 손해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어머니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해심을 넓히면 원망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옅어집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어서 한 명의 질문을 더 받았습니다.

  • 지인이 형편도 넉넉하지 않은데 무슨 보시를 하느냐고 했습니다. 보시는 적당한 때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을 하고 나니 법회를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예정된 다양한 정토회 행사 소식을 영상으로 본 후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를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회의실에서 ‘북극해 시대에 북극의 변화와 그 의미’를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오늘 세미나에서는 김석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 교수가 두 시간 동안 깊이 있는 발제를 해주었습니다.

교수님은 북극해 시대가 기후 변화로 인한 해빙 가속화에서 비롯되며, 이로 인해 자원 개발, 북극해 항로(NSR) 개척, 해륙 복합 물류망 구축, 그리고 강대국 간 지정학 경쟁이 본격화되는 전환기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북극해 시대가 과거 에게해·지중해·대서양·태평양 시대처럼 해양이 세계 질서를 규정하는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그 변화를 촉발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특징을 갖는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러시아·중국과 미국·NATO 진영의 경쟁이 북극에서 심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북극 자원의 개발과 NSR 활성화는 에너지·물류·조선·환경 기술 등의 산업 지형을 재편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아울러 북극해 해빙은 유라시아 북부를 새로운 전략 공간으로 만들고 군사적 긴장까지 확대할 수 있어, 한반도 동해안 역시 경제적 기회와 안보적 위험이 동시에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극지 연구, 지속 가능한 기술 개발, 다자 협력 참여 등을 통해 북극 시대의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북극해 시대를 둘러싸고 다양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한 참석자는 한국의 쇄빙선 기술력과 북극 항로 운항 가능성에 대해 묻고, 또 다른 참석자는 북극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부처 간 협력이 부족한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기후 위기의 부정적 파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제기되었으며, 북극 개발 속에서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북극해 시대의 문명사적 의미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북극해 시대, 정말 문명사적 전환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북극 항로가 열리면 유럽까지의 거리가 짧아져 물류 측면에서 여러 이점이 생기고, 항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동토 지역 자원 개발도 훨씬 용이해질 것입니다. 또 기후 변화로 일부 툰드라 지대가 앞으로는 새로운 농산물 생산 기지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고, 수온 변화로 어종이 북상하면서 어업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전망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이런 변화를 에게해 시대, 지중해 시대, 대서양 시대, 태평양 시대와 같은 ‘문명사적 전환’의 흐름과 비교해 설명하시는 부분에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에게해 시대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충돌이 에게해를 무대로 벌어졌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고, 지중해 시대는 로마가 중심이 되면서 그리스·이집트·페르시아·서유럽으로 문명이 확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대서양 시대는 신대륙 개척으로 미국과 유럽이 연결되면서 세계 질서가 바뀌었고, 태평양 시대는 동아시아의 부상과 미국의 연결로 큰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문명 대 문명이 깊게 연결되거나 세계사의 축이 이동하는 과정이 있어야 해양 시대가 문명사적 전환점으로 작동해 왔는데, 북극해의 개척이 과연 그 정도 규모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동아시아와 유럽 간 물류 거리가 짧아진다는 것 외에, 지구적 차원에서 문명과 문명을 근본적으로 연결하거나 세계 질서를 재편할 만한 요인이 무엇인지요? 오히려 인도와 중국이 부상하면서 인도양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데, 북극해 시대가 문명사적 전환으로 평가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해 질문드립니다.”

이에 대해 김석환 교수는 북극해 시대의 개념은 단순한 항로 개척을 넘어 기후 변화가 인류 활동의 공간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문명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발명과 발견의 경계에서 새로운 인간 활동 영역을 창출했듯, 해빙이 열어주는 북극 공간 역시 기존 지리적 상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연결과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기후 변화가 인간뿐 아니라 지구 생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북극의 변화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가능성을 동시에 품은 거대한 문명 전환의 계기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스님은 기후 변화에 따른 농업 지도의 재편 가능성에 대해서도 추가로 질문했습니다.

기후 위기 속에서 새로운 농업 지대가 열릴 수 있을까요?

“기후 위기가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은 이미 여러 곳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온 상승이 새로운 농업 지대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도 과거 로키 산맥 인근은 황무지였지만, 지하수를 이용한 관개 기술이 확대되면서 경작 가능 지역이 점점 서쪽으로 넓어졌습니다. 이런 변화처럼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이나 캐나다 북부 일부 지역도 기온 상승으로 인해 앞으로는 밀농사가 가능해지는 등 새로운 농업 지대로 전환될 여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최근 파키스탄을 방문했는데, 히말라야의 영구 빙설이 녹아 인더스강 수위가 내려가면서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관계 수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농토가 대거 황무지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처럼 강 수위가 낮아지면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와 평야가 소금기로 뒤덮여 농사가 불가능해지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존 농업 지대가 기후 위기로 급격히 쇠퇴하는 상황에서, 반대로 그동안 농사가 어려웠던 북부 지역이 새로운 식량 생산지로 전환될 가능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러시아나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기온 상승에 따라 북부 지역을 미래 농업 기지로 전환하는 가능성에 대해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글로벌 식량 위기를 해결할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 교수님은 식량 문제는 국가 전략의 핵심 영역이며 러시아와 캐나다는 이미 기후 변화 이후의 농업 지도를 염두에 두고 장기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는 GMO를 금지한 채 자체 품종 개량과 병충해 연구를 강화하며, 북극 연안의 기온 상승을 활용하는 식량·정주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예니세이·레나·오브강 유역을 중심으로 북극과 시베리아를 잇는 북극 횡단 회랑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농업·정주·물류 축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기후 변화가 농업 지형을 재편하면서 식량 생산의 북상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정주 인구 이동과 새로운 산업·도시 전략이 강대국 중심으로 이미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산업, 정책, 기후, 국제 정치까지 폭넓은 주제가 오가며 북극해 시대가 던지는 다양한 과제를 함께 살펴보는 자리였습니다. 발표와 토론은 세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김석환 교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곧바로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전망을 모색한 후 갈수록 심해지는 여야의 대립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평화재단은 어떤 역할을 할지 이야기를 나눈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8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 화상 회의 방에 접속했습니다.

주간 정토행자의 소식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법회처럼 갑자기 추워진 날씨 이야기와 더불어 다가오는 1차 천일결사 회향 수련에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줄 것을 당부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김장이 끝나면 가을 들녘이 한층 황량해집니다. 지금은 무나 배추가 있어 간간이 녹색이 보이지만, 김장이 끝나면 황량한 들판만 남겠지요. 이렇게 한 해가 마무리되고 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시작됩니다. 옛말에 일년초는 내년에 봄이 올 줄을 모른다고 하고, 하루살이는 내일 아침 해가 다시 뜰 줄을 모른다고 하지요. 인생을 너무 짧게 보면, 지금 자신이 실수했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마치 인생의 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사실 다 별일 아니에요. 그다음 날에도 인생은 이어지고, 또 그다음 날에도 인생은 이어집니다.

하루하루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인생을 조금 더 길게 보십시오

찰나 찰나, 순간순간을 보면 성공과 실패가 있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그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기보다는 삶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에 너무 집착해 지치지 말고, 그냥 삶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 사고를 당하거나 죽는 등 하늘이 놀랄만한 일도, 지나고 나면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한 부분일 뿐입니다. 그 외의 소소한 일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예로부터 청운의 뜻을 품고 관직에 나가 출세를 꿈꾸는 것은 젊을 때의 생각입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하고 노년이 되어 돌아보면, 저절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해되곤 하지요. 조선 시대에도 ‘젊어서 유학하고, 나이 들면 불교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인생살이가 이런 줄을 미리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젊을 때도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살 수 있겠죠. 하지만 머리로 알기만 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번 경험해 보면서 ‘아, 이게 다 별일 아니구나.’를 몸소 깨닫게 되는 거예요.

요즘처럼 하루하루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는 뚜렷이 깨어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길게 보고 한 발 떨어져 보면, 이런 변화가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와이처럼 사계절이 따뜻하고 시원한 곳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하와이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너무 지루하다고 해요. 세월이 가는 줄을 잘 모른다는 거죠. 반대로 사계절의 변화를 겪으며 옷을 챙겨 입고 냉난방을 조절하는 일은 번거로울 수 있지만, 그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일상이 단지 외부 조건이 고요하기만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외부 조건은 자고 일어나면 변하고, 상황은 늘 바뀌기 마련이에요. 그럼에도 내 마음이 고요한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싶다고 해서 저절로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삶의 한 과정으로 보는 관점을 가지면, 마음은 저절로 여유로워지고 고요해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1시간 동안 두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 정토불교대학 실천적 불교 사상 수업에서 계율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해자가 덜 괴로운 경우는 어떻게 봐야죠?

  • 정토회가 청년페스타를 기획한 내용을 봤을 때 현재 청년의 고민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듭니다. 청년들의 고민을 반영하면 어떨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법회를 마친 후 대중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한 후 동작구청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동국대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최한실 선생을 모시고 진행되는 『푸른배달말집』책잔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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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관

고맙습니다...

2025-11-22 08:05:31

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5-11-22 07:21:28

정태식

“이제 종교는 문화의 한 요소로 남아 있는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정신적 가치를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토회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이러한 시대 흐름을 내다보고 수행의 가치를 중심에 두며 환경, 평화, 나눔의 실천을 꾸준히 이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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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의 선견지명이 대단합니다. 그러니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25-11-22 07: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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