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10.21. 애광원 가을 나들이, 행복한 대화(4) 진주
“고집 센 어머니, 어떻게 하면 농사를 그만두게 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생활인들과 함께 가을 나들이를 한 후 진주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애광원을 도와준 일을 인연으로 해서 그 후 20년이 넘게 정토회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애광원 생활인들과 함께 나들이를 다녀오고 있습니다. 이번 나들이는 전라도로 가서 구례 화엄사와 천은사를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치고 오전 7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구례 화엄사로 향했습니다.

차로 2시간을 달리자, 섬진강이 나타났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 가까이 점점 다가가 오전 10시에 화엄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JTS 조끼를 입은 경남지부 정토회 회원 40여 명이 애광원 생활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함께 기념사진을 먼저 찍었습니다.

“오늘 하루 수고해 주세요.”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스님은 화엄사를 미리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화엄사의 홍보국장을 맡고 있는 범정 스님이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화엄사에서는 애광원 생활인들을 위해 간식도 준비해 주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일주문 앞에서 애광원 생활인들을 맞이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이 되어 애광원 생활인들이 탄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경증 장애가 있는 30명의 생활인을 비롯하여 대표이사님과 10명의 선생님이 함께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스님은 버스 문 앞에서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반가워요!”

“스님, 안녕!”

스님의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린 애광원 생활인들은 다시 봉사자와 손을 잡았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함께 나들이할 짝지입니다. 몇몇 분들은 봉사자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와락 껴안기도 했습니다.

생활인들과 봉사자들은 손을 잡고 먼저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스님은 화엄사 안내도 앞에서 애광원 생활인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렸습니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는 기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생활인들이 다 모이자, 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애광원 형제자매님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를 기억해요?”

“알아요!”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습니다. 스님도 웃음을 건네며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은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입니다. 화엄이란 꽃으로 장엄을 해놓았다는 뜻이에요. 부처님의 말씀을 꽃에 비유해서 여러 가지 꽃이 어우러진 화단을 만들 듯이 부처님의 여러 말씀이 담겨 있는 경전을 화엄경이라고 합니다. 그 화엄경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지은 절이 이곳 화엄사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과 산책도 하고, 구경도 하겠습니다.

애광원 선생님들이 평소에 고생을 많이 하시는데,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습니다. 애광원 선생님들은 오늘 사고만 나지 않게 지켜보시면서 함께 즐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생활인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애광원 송우정 이사님이 인사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오랫동안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 애광원 친구들에게 전해져서 기분 좋은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친구들도 스님 말씀 잘 새겨듣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스님이 화엄사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화엄사는 1500년 전에 지어진 절입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신라 진흥왕 때 지어진 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백제의 절이 아닌가 싶지만, 이곳은 원래 가야 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진흥왕 때 가야가 신라로 통합이 되었기 때문에 나중에 이곳이 신라의 땅이 된 거예요.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목조 건물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복원이 된 겁니다. 그중에 이 절을 대표하는 건물이 각황전입니다. 규모가 아주 커요. 유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불교가 국가의 지원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큰 규모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큰 시주자가 필요했지요. 그와 관련해 여러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절의 주지 스님은 각황전을 짓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렸습니다. 백일기도가 끝나갈 무렵, 꿈인지 생시인지 어떤 선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정성이 참으로 갸륵하구나. 백일기도를 마치고 산문을 나가다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 절을 지을 시주자가 될 것이다.’

기도를 마친 스님은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바랑을 메고 산을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내려가던 길에 처음 마주친 사람은 다름 아닌 한 거지였습니다.”

생활인들은 깜짝 놀라서 이구동성으로 눈이 동그랗게 변했습니다.

“거지요?”

그러자 스님이 다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거지가 이런 큰 절을 지을 만큼의 시주를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하지만 부처님께서 점지해 주신 분이라 믿은 스님은 거지에게 다가가 ‘당신이 이 절을 지을 시주자입니다. 부디 시주해 주십시오.’ 하고 정중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거지는 깜짝 놀라 대답했습니다.

‘스님, 제정신입니까? 저는 당장 오늘 먹을 끼니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스님은 거지에게 계속 절을 지을 수 있도록 시주를 해달라고 청했고, 거지는 그럴 수 없다며 물러섰습니다. 그렇게 뒷걸음질을 치던 거지는 그만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져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깊은 자책에 빠졌습니다. 절을 짓기는커녕, 오히려 한 생명을 잃게 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지요. 그런데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 거지가 죽은 뒤 청나라의 황제로 다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후 그 황제는 밤마다 한 스님이 꿈에 나타나 시주를 해달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그 꿈이 전생의 인연과 관련된 일이라고 설명해 주었고, 그 말을 들은 황제가 시주를 결심해 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절이 바로 오늘날의 각황전(覺皇殿)입니다. ‘깨달을 각(覺)’ 자와 ‘황제 황(皇)’자를 합쳐, ‘깨달은 황제의 전각’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십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왜 생겨났을까요? 이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처님이라는 뜻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큰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이나 권력자, 부자, 임금이 부처님이 아니라,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이들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가르침이지요.

성경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작은 자’란 목마른 이, 배고픈 이, 헐벗은 이, 병든 이, 나그네 된 이, 그리고 감옥에 갇힌 이를 말합니다. 그들에게 베푼 선행이 곧 하나님에게 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늙었거나, 여성이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누구를 낮춰보아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이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작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신다는 사실을, 이 설화를 통해 다시금 배울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출발해 봅시다. 절에 갈 때 첫 번째로 통과하는 문이 일주문이에요. 그럼, 일주문을 먼저 통과하겠습니다.”

봉사자들은 생활인들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일주문을 통과하여 오르막길을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생활인들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천왕문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귀여운 불상들이 나란히 서 있고, 불상마다 경전 문구가 한 줄씩 적혀 있었습니다. 눈을 가리고 있는 불상 앞에는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고 하지 마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스님은 문구를 직접 읽고 그 뜻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라는 말이에요.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바로 그 얘기와 똑같은 말입니다.”

스님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듣다 보니 어느덧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우락부락한 얼굴의 거대한 목조 조각상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위엄에 압도된 몇몇 사람들이 숨을 삼키며 속삭였습니다.

“무서워요!”

스님이 말했습니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깨끗한 마음으로 절에 들어가도록 지켜주는 사천왕이라는 수호신들입니다.”

천왕문을 지나자 또 한 구절의 경전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에 ‘성 안내는 그 얼굴, 참다운 공양구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설명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화가 난다고 해서 성질을 팍 내고, 그러고 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것보다는 성을 내지 않는 그 자체가 진정한 기도라는 의미입니다. 알았어요? "

“네!”

더 올라가자, 보제루가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은 보제루 밑으로 지나가게 되어 있는데 화엄사는 보제루 옆으로 둘러 가도록 가람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이 그 이유에 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보통은 사찰의 중심이 대웅전이기 때문에 대웅전 앞에 동탑과 서탑이 대칭을 딱 이루도록 가람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화엄사는 대웅전보다 더 큰 각황전이 왼쪽에 치우쳐져 있어서 균형이 안 맞아요. 그런데 보제루 옆을 돌아가서 여기 서서 대웅전과 각황전을 바라보면, 대웅전 앞에서 동탑, 각황전 앞에 서탑, 이렇게 균형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지형에 맞게끔 절을 지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도 담고 예술미도 살리고 시각적인 효과도 내기 위해서 이렇게 지은 겁니다.”

화엄사를 대표하는 각황전을 배경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애광원, 화이팅!”

사진 촬영을 마치자, 애광원 생활인 한 분이 스님에게 다가와 손을 꼭 잡고 웃음을 보였습니다. 스님도 웃으며 반가움을 표현했습니다.

“어쩌다가 이가 다 빠졌어요?”

애광원 식구들은 그냥 스님을 다시 만난 것이 좋기만 했습니다. 스님을 보기만 하면 계속 웃었습니다.


스님이 대웅전을 참배하는 동안 애광원 식구들은 대웅전 앞에서 조별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원통전, 나한전을 지나 드디어 각황전 앞에 다다랐습니다.

스님이 계속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각황전 앞에 있는 이 석등이 국보입니다. 지금 복원을 한다고 분해해 놓은 상태입니다. 각황전을 바로 앞에서 보니까 아주 크죠? 거지가 원을 세워서 만든 건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보고 무시하면 안 돼요. 하나님은 왕이나 부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게 아니라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출현하십니다.”

각황전을 지나자, 절의 서북쪽 높은 대지 위에 사사자(四獅子) 삼층석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계단이 가파르고 위험해서 애광원 식구들이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큰 목소리로 물어보았습니다.

“저 위에 석탑이 있는데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 보고 싶은 사람은 손 들어 보세요.”

모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애광원 선생님들은 내려오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부축할 수 있는 JTS 봉사자들이 많아서 안심하고 생활인들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왼발, 오른발!’하고 구호를 외쳐가며 조심히 한 계단씩 올랐습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계단이 끝나자 드디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사사자 삼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기가 네 마리 사자가 받치고 있는 삼 층 석탑입니다. 가운데에 한 스님이 머리로 탑을 받치고 있어요. 이렇게 특이한 탑을 이형 탑이라고 합니다. 주변에 경치를 한 번 보세요. 잘 왔죠?”

“네!”

“저도 여러분 덕택에 30년 만에 여기 다시 올라와 봤어요.”


사사자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시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계단이 가파르니까 봉사자들은 애광원 식구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꼭 잡아서 조심히 내려가 주세요.”

모두가 계단을 무사히 내려온 후 스님은 각황전에 들어가서 참배했습니다. 각황전에는 용성조사님의 수법 제자인 동헌완규 조사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각황전을 참배한 후 스님은 대웅전 앞에 모여 있는 애광원 생활인들에게 다시 안내했습니다.

“이제 점심시간입니다. 식당에 음식들을 푸짐하게 차려 놓았으니까 맛있게 드세요.”

애광원 생활인들과 봉사자들은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고, 스님은 얼마 전 새로 화엄사 주지가 된 우석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하였습니다.

전임 주지였던 덕문 스님의 요청으로 5년 전에 화엄사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우석 스님은 덕문 스님의 업적을 계승하여 문화공간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확장해 새로운 사찰의 가능성을 열고자 다양한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의 제자인 동헌완규 조사님이 화엄사 조실에서 입적하셨기에 해마다 추모대제를 이곳에서 열고 있는데, 스님은 주지 스님에게 그 정성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화엄사를 나왔습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애광원 생활인들은 오후 장기 자랑 시간에 부를 노래를 각자 연습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노랫소리가 흥얼흥얼 흘러나왔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스님도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에 도착하자 봉사자들이 일대일로 애광원 생활인들과 마주 앉아서 식사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생활인들은 오랜만에 나온 나들이에 기분이 좋은지 봉사자들에게 하트를 날리기도 하고,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며 즐겁게 식사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지리산 역사문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내려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연못을 건너자 넓은 중앙 광장이 나왔습니다.

다함께 중앙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1관 전시실을 관람했습니다.

1관은 구례와 지리산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을 비롯하여 농경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과 사진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진들을 관람하고 나오자, 마당에는 전통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기구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애광원 생활인들은 딱지치기,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팽이치기, 굴렁쇠 굴리기, 한반도 지도 만들기 등 다양한 놀이를 봉사자들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전통 놀이를 즐기는 동안 스님은 역사문화관 2관과 3관을 조용히 둘러보았습니다.

30분 동안 신나게 놀고 나니 목이 말랐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잠시 휴식을 한 후 다시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는 오후 2시 30분에 천은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애광원 생활인들이 모두 모이자, 스님이 다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천은사입니다. ‘천은’이란 샘이 숨어있다는 뜻입니다. 이 절은 신라 시대에 세워진 절인데, 원래는 이곳에 있는 샘에서 나오는 물맛이 아주 좋아서 감로사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이 절도 불에 타버렸어요. 새로 절을 지으려고 하니까 샘에서 이무기가 나타났습니다. 그 이무기를 죽여 버렸더니 그다음부터는 샘에서 물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이 ‘천은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샘이 숨겨져 있는 절이라는 뜻입니다. 그 후에도 절에 불이 자꾸 나서 어떤 사람이 ‘지리산 천은사’라고 글씨를 물이 흐르듯이 썼더니 물이 다시 나왔다고 해요. 믿거나 말거나.” (웃음)

스님의 재미있는 설명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일주문을 지나자, 계곡을 건너는 수홍루가 나타났습니다. 멋진 다리 위에 멋진 누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수홍루 아래로 흐르는 물은 곧바로 천은 저수지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고, 인생 사진을 남기는 곳으로 유명해서 이곳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홍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자, 천왕문이 나타났습니다.

천왕문을 지나자, 천은사 주지인 대진 스님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환대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제루를 통과하니 극락보전이 보였습니다. 극락보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관음전, 팔상전, 응진전, 명부전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주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애광원 생활인들과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갖기 위해 보제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보제루에 앉아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율동을 하며 몸을 풀었습니다. 신명 나는 반주에 맞춰 손뼉도 치고, 몸도 흔들고, 소리도 질러 보았습니다.



신나는 노래에 맞춰 한 사람이 앞에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하자 여러 명이 나와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순식간에 디스코장이 되었습니다.


아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눌하지만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도 있었고, 가사를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노래였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이 노래하고 춤을 출 때마다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신나는 디스코 음악이 끝나자 한 분이 마이크를 잡고 ‘꽃밭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다시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지자, 이번에는 다함께 기차놀이를 했습니다. 앞사람의 어깨를 잡은 채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원을 그리자, 애광원 생활인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누군가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리듬을 맞추고, 또 누군가는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흔들었습니다. 봉사자들도 함께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대며 리듬을 탔습니다.


몸이 조금 불편해도, 말이 서툴러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웃고 춤추는 하나의 기차가 되어 있었습니다. 음악은 점점 빨라지고, 환한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가 뒤섞여 강당 가득 따뜻한 행복이 흘러넘쳤습니다.

아쉽지만 해가 저물 듯, 나들이를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스님이 오늘 나들이를 마무리하며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모두 잘 놀았어요?”

“네!”


“여러분들이 노는 걸 지켜보니까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저는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재미있었다고 하니까 저도 기쁩니다. 애광원 선생님들이 여러분들을 돌보느라 애를 많이 쓰고 계시죠? 그러니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 봅시다.”

애광원 생활인들은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스님은 애광원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선생님들 모두에게 <혁명가 붓다> 책을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시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잘 놀았으니까, 애광원으로 돌아가서도 선생님 말씀 잘 들으세요. 원래 절에서는 이렇게 펄쩍펄쩍 뛰고 놀면 안 돼요. 절에서는 조용히 지내는 게 예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펄쩍펄쩍 뛰고 소리를 치는 바람에 부처님도 놀라서 쓰러지셨을 겁니다. 이렇게 마음껏 놀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천은사 주지 스님에게도 감사 인사를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애광원 선생님들도 스님과 정토회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애광원 송우정 이사님이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애광원 친구들이 지금까지 가본 소풍 중에 오늘이 제일 재미있어했던 것 같아요. 봉사자 여러분이 애광원 친구들의 마음을 읽어서 늘 한마음이 되어 움직여 주시니까 그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이런 모습을 보고 일심동체라고 하는구나 느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동행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도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를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한 번 더 찍고 천은사를 나왔습니다. 스님이 생활인들에게 ‘실컷 놀았느냐?’ 물어보자, 생활인들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애광원 생활인들의 손을 꼭 잡고 조심히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스님은 주차장에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저녁에 진주에서 강연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저녁 식사까지 맛있게 하시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애광원 송우정 이사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스님은 다시 차에 올라탔습니다. 애광원 식구들과 봉사자들은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고, 스님은 진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 천은사를 출발하여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6시에 진주에 도착했습니다. 강연장 근처 식당에서 국수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진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1층 대강당입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저녁 시간, 삼삼오오 짝을 지은 사람들이 강연장으로 줄을 지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강연을 준비한 행복 시민들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800석이 가득 찬 가운데 사전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배우 추성민 님이 재능 기부로 사회를 보는 가운데 진주에서 널리 알려진 노래패 가수인 이마주 님이 ‘뚜벅뚜벅’, ‘라라라’ 노래 두 곡을 신명 나게 불러 주었습니다.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른 가운데 7시 30분이 되어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큰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유튜브 즉문즉설 채널에서는 5,4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이렇게 여러분을 뵙게 되어 더 반갑습니다. 멋진 공연을 보여주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아침부터 하루 종일 전라남도 구례에서 일정을 가졌습니다. 거제도에 있는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 생활인들과 함께 화엄사와 천은사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어요. 장애가 있는 분들은 거동이 불편해서 외출하려면 누군가 꼭 부축해야 하기에 외출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희와 일 년에 두 번씩 소풍을 가는데, 이번에는 진주 강연 일정에 맞춰 가까운 곳으로 다녀왔습니다.

오늘 날씨가 약간 쌀쌀하지만, 가을은 원래 이렇게 서늘한 맛이 있어야 가을다워요. 며칠 동안 계속 비가 오다가 오늘 하루 날씨가 맑았습니다. 저도 농사를 조금 짓는데, 요즘 장마처럼 비가 자주 와서 아직 추수를 못 하고 있어요. 벼는 다 익고 낟알이 여물어서 무거운데, 비가 계속 오니 쓰러지는 게 많습니다. 올해 벼농사가 대풍이라더니, 막상 추수를 해보면 손실이 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먼저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즉석에서 손을 드는 사람들에게도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홉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평생 농사만 지은 어머니가 이제는 좀 쉬셨으면 하는데, 그 고집을 어떻게 꺾어야 할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고집 센 어머니, 어떻게 하면 농사를 그만두게 할 수 있을까요?

“홀어머니가 혼자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이제는 그만두셨으면 좋겠는데, 어머니의 고집 때문에 아직도 계속 농사를 지으세요. 그 고집을 어떻게 하면 꺾을 수 있을까? 해서 질문드립니다. 어머니께서 오래 건강히 사시다가 자연으로 돌아가셨으면 하는데, 지금까지 너무 고생만 하셨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게 어머니가 걱정되면 질문자가 농사일을 도와드리면 되죠. 도와주기 싫으면 안 도와드리면 되고요. 그런데 왜 어머니 인생에 간섭하려 하나요?”

“제가 이래 보여도 동네에서 효자라고 소문났습니다.”

“어머니 인생에 간섭하는 게 효자예요? 어머니 하자는 대로 하는 게 효자죠.” (웃음)

“어머니가 안쓰러워서요.”

“안쓰러운 건 질문자의 마음이지요. 어머니는 본인이 좋아서 농사일을 하시는 것인데, 왜 본인이 안쓰럽다고 느끼나요? 질문자가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자는 속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말든지, 아프다고 하려면 농사를 짓지 말든지, 농사를 지으려면 나를 부르지 말든지, 나를 부르려면 농사를 짓지 말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즉, 자기 계획에 어머니가 맞춰주길 바라는 거예요. 하지만 어머니는 농사를 짓겠다고 일을 벌여놓고, 또 아프다고 하시고, 그래서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해도 또 농사를 지을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질문자도 본인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어머니가 아침에 호미를 찾으시면 ‘여기 있습니다.’ 하고 가져다드리고, 저녁에 아프다고 하시면 주물러드리세요. 또 다음 날 아침에 밭에 나가신다고 하면 호미를 찾아 드리고, 아프다 하시면 병원에 모시고 가면 됩니다, 병이 나으시고 다시 밭에 가신다고 하면, 호미를 찾아서 밭에 모셔다드리세요. 이렇게 하는 게 진짜 효자예요. 어머니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말고, 먼저 본인의 고집을 꺾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머니 혼자 하시기에는 농사일이 너무 많습니다.”

“질문자가 도와드리면 되잖아요.”

“저도 주말에는 좀 쉬고 싶고, 너무 힘들어서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도와주기 싫으면 안 도와드리면 되지, 어머니 탓하지 마라.’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어머니가 도와달라 하시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안 가면 그만이에요. 왜 안 왔냐고 물으시면 ‘오늘 바빠서 못 갔습니다.’ 하면 되고요. 다음에 또 오라 하시면 ‘알겠습니다.’ 하고, 그날 시간이 되면 가거나 시간이 안 되면 못 가거나 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어머니의 노예가 아니잖아요. 시키는 대로 다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자식의 도리로 할 수 있는 건 하면 좋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도와주려니 힘들고, 안 도와주려니 동네에서 불효자 소리를 들을 것 같으니까, 걱정되는 거잖아요. 심보가 안 좋네요. 저런 사람을 누가 효자라고 하나요? (웃음)

질문자는 효자가 아니라, 효자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고집을 꺾으려 하지 말고, 자기 고집을 꺾으세요, 어머니는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세요. 어머니가 ‘와서 도와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도와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도울 수 있으면 돕고, 도울 시간이 안 나면 ‘어머니, 죄송합니다. 오늘 못 갔습니다.’ 하면 됩니다. 다만 미리 ‘내일 못 갑니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됩니다. 항상 ‘내일 오너라.’ 하면 ‘네.’ 하고, 다음 날 일이 생기면 ‘못 갔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면 돼요. 노인들은 그때그때 ‘예’하고 대답만 잘하면 문제 삼지 않습니다.

어른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른에게는 맞춰드려야 합니다. 어머니에게 ‘내년부터 농사짓지 마세요.’ 하면 ‘그래, 알았다.’라고 대답하시지만, 막상 봄이 되면 또 나가서 농사를 짓습니다. ‘작년에 안 한다고 하셨잖아요?’ 하고 성질내는 건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일 뿐이에요. 어머니는 농사일을 평생 해오셨기 때문에,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겁니다. 노인들은 손바닥만 한 땅이 놀아도 엉덩이를 끌고 가서 일하세요. 제가 농사짓는 시골에도 백 살 넘은 어르신이 있는데, 걷지를 못해요. 그런데도 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끌고 가서 밭일을 다 하십니다. 놀랍게도 그분이 키운 배추가 제가 키운 배추보다 훨씬 잘 자라요. (웃음)

질문자는 효자가 아니라 효자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고집을 먼저 꺾으세요. 어머니께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하자는 대로 두세요. 그렇다고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할 수 있는 건 하고, 못 하는 건 ‘죄송합니다.’ 하면 돼요. ‘왜 일은 벌려놓고 뒷정리도 못 하시고, 바쁜 나한테 와서 도와달라 그래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어머니의 마음이 상합니다. 그저 ‘어머니, 죄송합니다. 바빠서 못 왔습니다.’ 이렇게만 말하세요. 도울 수 있으면 돕고, 힘들면 안 하면 됩니다. 그러면 농사일을 다 못하고 버리는 게 생기겠죠. 그럴 때 어머니께서 알아서 일의 양을 조절하십니다.”

“네, 너무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지만,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도전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지금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요?

  • 폐업 위기에 놓인 회사를 보며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끝을 앞둔 현실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 스스로 지칩니다. 나를 지키면서도 타인과 편안하게 관계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인생이 자꾸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관점을 갖고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 인생을 진지하게 가 아니라 가볍게, 하나의 게임처럼 살아도 괜찮을까요? ‘보잘것없는 인생도 행복할 수 있다’라는 제 생각은 불교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점점 허용적인 엄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가족과 함께 지낼 때, 아이들과 부딪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평생 신심 깊게 수행하신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처님의 자비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요, 그 자비를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 삶과 죽음이 모두 의미 없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 걸까요? 고통이 큰 사람들에게 ‘죽지 말라’고 말할 근거는 무엇일까요?

더 질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강연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이제 세계 상위권에 들어섰지만, 사회복지나 정신적 행복 수준은 그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풍요로워 보여도 국민들의 마음은 여전히 피폐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전국을 다니며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가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강사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강연장도 빌려야 하니까요.

행복하게 사는 법, 이제는 배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즉문즉설을 계속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 건강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잠시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히 보람을 느낍니다. 물론 강연장을 나서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요. (웃음)

하지만 이런 일은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불교·기독교·천주교 같은 종교 구분보다 인간의 정신적 건강이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종교는 각자 자유롭게 믿되, 모든 국민이 건강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민간에서도 함께 나서야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행복 시민들의 노력으로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학교가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일종의 국민 행복 운동입니다. 물질적 풍요에 걸맞게 정신적으로도 행복한 삶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뜻이니, 여러분도 많이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대강당을 무료로 대여해 주었기에 책 판매와 사인회 행사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돌아가는 진주 시민들에게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로비에서 강연을 준비한 진주 행복 시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진주 행복학교, 화이팅!”

모두 행복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다양한 지역 실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밤 10시에 진주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3시간 20분 동안 달려 새벽 1시 2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고 오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한 후, 오후에는 ‘AI와 인간의 정신 건강’을 주제로 대화하는 연구 세미나에 참석하고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2025 청년페스타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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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5-10-24 10:41:57

정의웅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25-10-24 10:22:34

풀빛KSY

매일 감사드립니다.🙏

2025-10-24 1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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