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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 15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정토회 회원들도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지난 한 주 동안 정토행자들의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북미 동부 지역 순회강연, 청년 페스타 홍보, JTS 복지사업, 에코붓다 옷 안 사 입기 챌린지 등 일주일 동안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펼쳐졌습니다.
큰 박수로 서로의 활동을 격려한 후 다 함께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과거의 인식 틀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연휴 동안 워싱턴 D.C.에 머무르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러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과 각 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나 북미 대화 재개와 한미 우호 증진에 관한 상호 관심사를 나누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갈등 속에 있어 왔고, 지금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 상황을 보면 그 갈등의 양상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해진 듯합니다. 이처럼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개인이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이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급변하는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과거의 인식 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 안에 이미 형성된 인식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틀을 스스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혼란스러운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인식으로는 지금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옛 관점에 머문 채 세상의 안정을 바란다면, 그것은 세상이 과거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현재의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기반 위에서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철학, 사상, 종교가 존재하지만, 그 대부분은 과거 어느 시대의 특정한 인식 틀 위에 세워졌습니다. 불교도 종교나 사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은 기존의 인식 틀을 버리라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과거로부터 전승된 관습이나 습관, 윤리나 도덕, 계율이나 경전에 의해 진리를 검증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곤 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과거에 형성된 고정관념, 그리고 한국 중심의 사고방식 같은 기존의 틀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와 타인을 함께 바라보고,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며, 한국과 이웃 나라를 함께 보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면, 불교는 오늘날처럼 혼란스럽고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인류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늘날 세계의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양심이나 윤리의식은 찾아보기 어렵고, 예의와 품격에서도 한참 벗어난 경악스러운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행태가 비난받거나 도태되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의 불평 속에서도 점점 더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말입니다. 어제 신문에는 유럽의 각국 지도자들이 마치 트럼프 대통령의 신하인 양 줄지어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정렬해 있는 사진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볼 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비난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본질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고방식과 행동이 이제는 현실 속에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봐도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 젊은이들이 캄보디아에서 납치·감금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현지로 갔다가 범죄 조직의 하부책으로 이용당한 이들이 많습니다. 뉴스에서는 이들을 피해자로 보도하지만, 실상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보이스 피싱이나 마약 밀매 조직의 일부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아니라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는 ‘대학 교육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게다가 이런 범죄 조직들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언론에서 여러 차례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치되었습니다. 결국 한 대학생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사회가 뒤늦게 떠들썩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회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을 보면 상식이 무너졌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어린아이들 싸움도 아니고, 거리의 폭력배 싸움도 아닌데, 그들의 언행은 국민에게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 줍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문명이 마치 퇴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긴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이런 후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인류의 발전은 직선적이지 않았고, 때로는 ‘중세 암흑기’처럼 질서가 붕괴하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그 혼란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제 정세도, 국내 사정도, 나아지기보다는 악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까지 혼란에 휩쓸리면 결국 자신의 삶마저 불행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바깥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 하는 식의 태도는 수행자의 길이 아닙니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미 2,600년 전 부처님께서는 ‘세상이 계급차별과 성차별을 하더라도 우리 안에는 차별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어지러움에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깨어 있는 것, 그것이 곧 수행입니다.
나아가 수행자는 자신의 평정심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의 혼란을 조금이라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물줄기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혼란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돕는 것, 그것이 수행자의 길입니다.
정토회는 복을 비는 곳이 아닙니다. 죽어서 좋은 곳에 가거나, 재물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돕는 것이 정토회의 설립 취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은 보석과 물건을 탐할 때, 정토회 회원들은 과소비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고,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버린 음식이 지구 반대편 어린이의 굶주림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검소하게 살면서도 존엄을 지키고, 남는 재화를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각자 ‘내가 옳다’고 주장하며 다투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며 평화를 지켜가야 합니다. 이런 길을 걷기 위해 정토회가 만들어졌고, 지금 우리가 바로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혼란한 시대일수록 수행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매일 수행 정진을 이어가며,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는 존재가 정토회 회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사회적으로는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 수행자의 삶입니다.
특히 이번 주와 다음 주, 2주간은 정일사 정진 기간입니다. 자기 정진과 세상의 평화를 함께 기원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이번 주에는 조금 더 자신의 정진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오롯이 알아차리는 데 마음을 두고, 자신을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며, 주변을 살피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봉사와 보시를 실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차례대로 질문을 했습니다. 현장에서 두 명, 온라인에서 한 명이 각각 질문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교통사고 이후 만성 통증으로 인해 일상과 마음이 모두 무너진 자신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3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뇌출혈과 엄지발가락 골절로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만성 통증으로 10년 넘게 해오던 간호조무사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약에 의존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약에 의존하며 살다 보니 일상생활도 어렵고, 정진도 못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게 병이 낫는 걸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약을 안 먹는 걸 말하는 거예요?”
“약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럼 약을 안 먹으면 되잖아요. 본인이 약에 의존하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죠. 그런데 지금은 뇌 손상도 있고, 만성 통증도 있다면 약을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통증을 완화하려면 약이 필요하잖아요. 약을 안 먹어도 괜찮다면 안 먹어보면 됩니다. 그런데 안 먹어보니 통증이 너무 심하다면, 그건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 아니겠어요?”
“약을 타러 가면 늘 의사가 심리적인 요인이라고만 하세요. 아무 문제 없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닌 것 같거든요.”
“그건 질문자가 ‘약을 안 먹어도 될까요?’라고 물어서 그렇죠. ‘약을 먹기 싫다.’는 그 마음이 심리적인 요인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정말 심리적인 문제라면 의사가 왜 약을 주겠어요? 의사라면 ‘심리적인 문제니까 약은 안 드셔도 됩니다.’라고 했겠죠. 그런데 의사가 약을 주잖아요. 질문자가 ‘약을 안 먹고는 못 삽니까? 약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까요?’라고 자꾸 말하니까, 그걸 두고 심리적인 요인이라고 한 겁니다. 그러니 병원에서 주는 약은 꼬박꼬박 먹으면서 생활하세요.
그리고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지만,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잖아요. 지금 상태에서는 직장 생활을 하기가 당연히 어렵죠. 지금 이 상태로 어떻게 직장까지 다니겠어요? 그런데 치료비는 다 보험 처리가 되었나요?”
“네.”
“그럼 생활비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됐잖아요.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면서 약을 잘 챙겨 먹으면 됩니다. 몸이 안 좋은데 어떻게 일을 해요? 그냥 그렇게 살면 됩니다. 정토회 실무자들도 앞으로 늙으면 다 기초생활수급자예요. 수행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전부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얼마나 좋은데요. 65세가 되면 노인기초연금도 나오잖아요.
질문자는 교통사고로 인해 지금 일을 못 하게 됐지만, 그 덕분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잖아요. 정토회 법사님들 중에도 교통사고로 일을 못 하는 분이 있는데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그분을 볼 때마다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저의 기쁨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살아있는 기간이 1년이든 10년이든, 팔이 하나 없든, 다리가 하나 없든, 눈이 안 보이든,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실명한 사람이 꼭 다시 볼 수 있어야 하고, 다리가 다친 사람이 반드시 다 나아서 걸어야 한다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런 마음을 내면 자신의 인생이 초라해집니다. 그런데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내 삶이 복 된 삶이 되잖아요.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라면 교통사고가 재앙으로만 느껴집니다. 교통사고가 난 것은 재앙이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안 죽고 살아있는 것은 복입니다.
안 죽고 살아있는 것을 복으로 받아들이면 지금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을 때를 기준으로 보면 늘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어차피 사는 동안은 행복하게 사는 게 좋겠어요? 불행하게 사는 게 좋겠어요?”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요.”
“행복하게 살려면 내가 안 죽고 살아 있는 것을 복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떡하겠어요? 그래도 약이 있으니까 통증 없이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약이 왜 문제예요? 약은 좋은 겁이다. 저는 약이 없으면 통증 때문에 법문도 못 할 텐데, 그래도 약이 있으니까 약 먹고 법문도 하고 걸어 다닐 수가 잖아요. 그런데 약이 왜 나빠요?”
“약을 먹을 때마다 자존감이 떨어져요.”
“그게 바로 의사가 말한 심리적인 문제라는 겁니다. 약을 먹는데 자존감이 왜 떨어져요? 그렇게 말하자면 저는 밥 먹을 때마다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웃음) 의사가 심리적인 문제라고 하는 이유는 질문자가 ‘약을 안 먹는 방법이 없을까요? 약 먹을 때마다 자존감이 떨어져요.’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약을 먹는다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스님 말씀을 들으니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늙으면 젊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사고로 다치면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젊고 다치지 않은 상태라면 그 상태에 만족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눈이 좀 더 동그랬으면 좋겠다고 성형 수술을 하고, 턱이 마음에 안 들어 깎고, 코를 높이고, 가슴을 풍만하게 만들기 위해 보형물을 넣기도 해요. 아이가 있는 사람은 ‘빨리 컸으면 좋겠다.’ 하고, 아이가 없는 사람은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죠. 이렇게 바라는 것이 끝이 없어요.
수행이란 어제는 어제로써 좋았고, 오늘은 오늘로써 좋은 줄을 아는 겁니다. 젊을 때는 젊어서 좋고, 늙으면 늙은 대로 좋은 거예요. 저는 나이 드는 게 참 좋아요. 학생일 때는 매일 공부하고 시험 치느라 힘들지만, 이제는 공부 안 해도 되잖아요. 결혼하면 아이 키우느라 바쁘지만 그럴 일도 없고, 직장 다닐 일도 없어요. 버스를 타면 노약자석을 비워주고, 지하철은 무료로 탈 수 있어요. 65세가 넘으면 연금도 나옵니다. 그런데 나이 드는 게 왜 나쁜가요?
머리카락 색깔도 노란색, 검은색, 흰색 다 다를 뿐이에요. 그런데 왜 흰머리는 나쁘다고 생각하나요? 검은 머리는 일부러 노랗게 염색하면서, 나이 들어 흰머리가 되면 다시 검게 염색하려고 하잖아요. 결국 집착이라는 거예요. 수행이란 다리를 다치면 다친 대로 받아들이고, 못 걸으면 휠체어 타고 다니는 겁니다. 제가 머무는 시골의 할머니들은 저보다 훨씬 빠르세요. 전기차를 타고 쌩하고 지나가 버리고, 허리가 굽어 걷기 힘든 분들도 저보다 짐을 더 많이 싣고 다니십니다. 전기차 뒤에 손수레를 달고 짐을 한가득 싣고 도로를 달리시죠.
또 밥 먹을 때는 어떤가요? 음식에 고기가 있으면 건강에 나쁘다고 불평하고, 또 채식 위주의 식단에는 고기가 없다고 불평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괴로움이 끝이 없는 거예요.
내가 일부러 다리를 못 쓰게 한 것도 아니잖아요. 다리를 못 쓰게 되었으면 거기에 맞춰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이제 높은 산을 못 올라갑니다. 장시간 산행은 못 해요. 철들고부터 산이란 산은 다 다닌 사람인데, 그 시절에 집착하면 내가 불행해져요. 이제는 평지라도 걸을 수 있으면 감사하고, 평지도 못 걸으면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앉지도 못하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매 순간 자기 삶이 행복해집니다. 이것이 자기를 위하는 길이에요.
교통사고로 다쳤는데 지금 어떻게 하겠어요.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안 먹겠다면, 그건 그냥 자기 고집이에요. ‘약이 있어서 내가 통증 없이 살 수 있구나.’ 하고 감사하게 먹어야 합니다. 관점을 바꿔서 약을 먹을 때마다 ‘네가 내 생명이다.’ 하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과거에는 가난해서 공부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럴 땐 공부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겠어요. 공부할 수 있을 때는 공부할 수 있어 좋고, 직장 다닐 수 있을 때는 직장 다닐 수 있어 좋은 겁니다. 그런데 직장 잃은 사람은 직장 다니는 게 부럽고, 결혼 못 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이 부럽고, 아이 없는 사람은 아이 있는 사람이 부러우니 끝이 없는 거예요. 수행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히 여기고, 그 조건 안에서 만족하면서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작은 일이라도 봉사하면서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약을 먹는 게 존엄을 해치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는 몸은 조금 불편해도 말귀는 잘 알아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몸이 멀쩡한데도 말귀를 못 알아듣고 정신없이 사는 사람이 있어요. 몸은 큰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살다 보면 손을 다칠 수도 있고, 다리를 다칠 수도 있고, 머리를 다칠 수도 있어요.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감사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해서 우선 자신의 삶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할 수 있으면 하고, 안 되면 그만이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루하루가 편안해지고, 어떤 조건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답하다 보니 법회를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 시간에 또 대화를 나누기로 하고 11시 30분이 되어 수행법회를 마쳤습니다.
3층 설법전을 나온 스님은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국회 의원을 만나 점심 식사를 함께 한 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안보 분야의 위기관리 방안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2시에는 환경재단 최열 이사장과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스님을 찾아와 미팅을 했습니다. 지난 6월에 환경재단과 한화갤러리아에서 공동 주관하여 법륜스님 초청 그린 토크 콘서트를 열었는데, 그 후 4개월 만에 만남입니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기후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미팅을 마쳤습니다.
손님들을 배웅한 후 스님은 곧바로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 달린 후 저녁 7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한반도 평화와 K-이니셔티브’를 주제로 열리는 평화2.0 포럼에 참석한 후 울산으로 이동하여 울산라이온스협회 초청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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