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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종교인 모임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로 지하 1층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 밥상으로 식사를 한 후 평화재단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나누며 지난 7월에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과 평화와 화해를 주제로 대화하고 교류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다들 그때의 감회를 떠올리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많은 영감을 준 아주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종교가 화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습니다.”
“30년의 내전 상황 속에서 종교인들이 연합해서 화해의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어요. 저런 모습이 기적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 종교 간 연합이 대한민국에서만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스리랑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고 하셨잖아요. 마지막 날 각 종단의 최고 지도자들을 예방함으로써 저희의 경험이 대한민국 전체 종교인들에게도 공유가 된 것 같아 더욱 뜻깊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종교인들의 권위가 많이 추락했지만, 스리랑카에서는 종교인들이 국민들로부터 여전히 신뢰와 권위를 얻고 있어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 크게 대비되어 느껴졌습니다. 종교인들의 역할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오늘의 대화 주제인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어떻게 해야 남한과 북한 간에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상황은 남북 정부 간 소통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남북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서 남북 비상 연락망 복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쟁 중이거나 적대 국가 관계일지라도 비상 연락망은 필수적이거든요.
남북 관계가 단기간에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제가 지난 6월에 미국에 갔을 때,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어떻게 하면 북한을 대화에 나오게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2자 회담, 3자 회담, 4자 회담, 6자 회담까지 모두 시도해 보았지만, 한국이나 미국은 정권이 바뀌면 이전 합의가 뒤집히지 않았냐며 신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단순한 대화 거부라기 보다는 북한이 대화에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봐야 합니다. 아예 말을 안 하는 것보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저는 긍정적 신호라고 생각해요. 며칠 전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의 일부 연기는 아무 의미 없다’라고 발언한 것 자체가 이미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의미가 없다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남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전 정부가 해왔던 적대적 행위들을 하나하나 없애나가면 됩니다. 다만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를 철거했더니 북한도 철거했다.’ 하는 것처럼 공개적으로 북한의 행위를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북한이 반박하면 우리 정부의 입장만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지만, 우리부터 적대적 분위기를 하나씩 없애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추진하되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하니 조금 더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김홍진 신부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좋은 신호네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평양 상공에 드론을 날릴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네요.”
이어서 스님은 얼마 전 동북아 역사 기행을 갔을 때 바라본 북한 국경변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종교인 분들은 현재 북한의 상황이 어떠한지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서민들의 삶의 현실은 어렵다고 하는데 무역 거래 수치는 좋아지고 있어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분간 변화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얼마 전 동북아 역사 기행을 가서 북한 국경 변을 보고 왔습니다. 중국과의 인력, 물자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건축도 활발히 진행 중이었어요. 평양과 원산뿐만 아니라 30년간 새 건물을 짓지 않았던 압록강과 두만강 변에서도 고층 아파트가 많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건물 색상도 화사하게 바뀌었고, 변방의 작은 마을에도 새집이 들어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환율은 1달러당 북한 돈 8천 원에서 현재 4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주민들의 생활은 곤궁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건축과 인프라 조성은 계속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국가 경제는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즉 북한 정부가 자금력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겠죠. 북한은 러시아에 군병력과 노동자를 파견하고, 또 중국에도 파견된 북한 노동자가 2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만큼 이들을 통해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 정부 차원에서 요청한 물건들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계속 들어가고 있고, 예전에는 대금 지급이 늦었지만 요즘은 선지급을 할 정도로 지급이 원활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북한 무기를 러시아에 팔아서 번 돈이 아닐까요?”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환율이 8천 원에서 4만 원까지 올랐다면 엄청 많이 올랐네요.”
“환율이 폭등하니까 물가가 안 오를 수가 없죠. 물가가 폭등하면 서민들은 살기가 어렵습니다. 평화재단 전문가들이 모여서 토론을 해보니까 북한 경제가 좋아졌다는 쪽과 나빠졌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예전에는 의견이 하나로 모였는데, 현재는 서민들의 소식을 듣는 사람과 무역 거래 수치로 북한 경제를 평가하는 사람 간에 입장이 엇갈립니다. 서민들의 소식을 전하는 전문가는 북한 경제가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무역 거래 수치를 분석하는 전문가는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네요.”
“그렇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끼니도 제대로 못 먹고 있고, 잘 사는 사람은 명품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이 현재 북한의 현실입니다.
만약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휴전한다면, 북한의 전투병은 철수하더라도 공병대가 대규모로 투입될 겁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노동자들이 상당수 러시아로 파견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노동력이 매우 부족하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여기에 더해 중국에도 노동자를 보내고 있으니 개성공단 재가동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북한도 첨단 산업 단지 조성에는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 제조업은 더 이상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더라도 산업의 내용이 일부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어서 박남수 교령님은 국민통합과 내란세력 척결이라는 목표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습니다. 종교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다 보니, 국민 화합을 이끌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25일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을 서로 나누고 난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설법전에서는 14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가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도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정토회 대표님이 전국회의 의결사항을 보고한 후 다 함께 주간 정토행자 소식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무덥던 여름의 기세도 한풀 꺾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덥긴 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는 분명 지나간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의 더위는 견딜만하죠? 다만 햇볕에 달궈진 건물 안, 특히 맨 위층은 여전히 40도가 넘는 사우나 같기도 합니다.
오는 9월 7일은 1차 천일결사의 마지막 백일기도 입재식 날입니다. 이번에 백일기도에 입재해 천일결사에 참여하면, 훗날 만일결사가 끝났을 때 ‘나는 1차 천일결사부터 참여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백일을 놓치고 내년 봄부터 참여하면 2차 천일결사부터 참여한 것이 됩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졸업생 중에 아직 천일결사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은 이번 백일기도부터 시작해 턱걸이라도 1차 천일결사에 함께하기를 권합니다. 이미 천일결사에 참여 중인 분들은 이번이 마지막 백일기도인 만큼 꼭 동참하시고, ‘이번 백일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진하겠다.’ 하고 다짐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먼저 온라인에서 두 명이 질문한 후, 이어서 현장에서 두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외증조부님이 친일파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무겁고 부끄럽다며 후손으로서 어떤 심정으로 살아야 할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질문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최근 집을 정리하다가 외증조부님의 이력이 담긴 오래된 일본어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기사를 읽고, 외증조부께서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국의 고위 관료로 재직하며 항일 세력 탄압에 적극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친일 인명사전’과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에도 외증조부님의 이름과 행적이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친일파를 비판해 온 제가 그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고 깊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친일파의 후손으로서, 저는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며 어떤 실천을 해야 옳은지 스님의 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알고 보니 조상이 독립운동가라면 자부심이 생길 겁니다. 반대로 질문자처럼 알고 보니 조상이 친일파라면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런 원리를 알면 돈과 명예가 아무리 좋아도,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며 살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후손과 미래 세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내가 선생이라면 제자들이, 혈통적으로는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랑스럽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누가 되지 않도록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자부심을 물려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이번 질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자를 위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은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묻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범죄자의 친족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연좌제(緣坐制)’라고 해요. 옛날에는 ‘역모를 하면 삼족을 멸한다.’라거나 ‘구족을 멸한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삼족(三族)은 일반적으로 직계 3대, 즉 아버지, 자식, 손자를 말하고, 구족(九族)은 외가와 친가를 포함하는 더 광범위한 연좌를 뜻해요. 과거에는 이렇게 연대책임을 지워 한 사람의 죄에 친족이 함께 화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재 정권 시절에는 남북 대립으로 인해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좌익 활동을 했거나 친족이 북한 관리였다면, 자손은 사관학교 입학이나 정부 요직 진출에 제한을 받았습니다. 농사나 장사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국가 기밀과 관련된 직책에는 제한이 있었어요. 형제자매 중에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자가 있어도 공직 진출에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연좌제가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질문자는 증손자 세대이기 때문에 이미 삼대를 넘어선 일입니다. 조상의 친일 행적을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질문자가 관여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은 내가 책임지지만, 부모나 조부모의 잘못까지 책임지는 것은 민주사회의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반일 감정에 일본이 반발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을 괴롭힌 일본인은 지금 거의 살아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일본인을 구성하는 대부분은 1945년 해방 이후 출생자이고, 그 이전 세대라도 그때는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사과를 요구하면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반발이 생기겠죠.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일본에 태어났다는 사실뿐이니까요. 물론 일본 정부에는 역사적 책임을 물을 수가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일본 국민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당시 가해자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과거에는 부모나 조상의 행적 때문에 ‘좌파다.’, ‘친일파다.’ 하며 차별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었지만, 현대 대한민국은 민주화된 사회이며 헌법에서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직접 관여하지 않은 조상의 행적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무관하다고도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자가 경제적 혜택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일제강점기 고위 관리였다면 재산이 있었을 텐데, 해방 후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했기 때문에 전면 몰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일파 중에는 부자가 많았고, 반대로 독립운동가들은 가산을 독립운동에 쏟거나 일제에 몰수당해 집안이 풍비박산 난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해방 이후에도 독립운동가의 후손 상당수가 빈곤과 교육 기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열악한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재는 국가가 어느 정도 이들을 돌보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합니다. 최근에는 동학농민운동이나 항일의병 후손까지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있어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원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희생된 사람의 후손까지 돌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약 100년 이내 사건에 대해서는 후손 지원이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 경우 개인의 복지보다는 동학 혁명의 명예 회복과 같은 공적 의미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또한 친일 세력이 일제에 공로를 세워 재산을 형성한 사실이 명백히 증명되면, 국가는 그 재산을 환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명의나 부모 명의의 재산을 갑자기 내놓으라는 요구가 사유재산 보호 문제와 맞물려 있으니까 저항을 하게 됩니다. 현금과 같은 동산(動産)은 손대기 어렵지만, 종중(宗中) 소유의 토지와 같은 부동산은 환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만약 해당한다면 재산을 내놓기 싫어 ‘내 것이다!’ 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이미 받은 혜택이 많다면 일부를 사회에 돌려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환수될 재산이 없다면 그 자체로 다행입니다. 환수될 재산이 없는 것은 죄가 되지 않거든요.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때도 갚을 돈이 없다면 죄가 되지 않지만 돈이 있는데도 갚지 않으면 죄가 되듯, 없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면 국가에 기증하거나 사회에 환원을 하면 됩니다. 개인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남들과 차이 없이 활발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재산 관련해서는 해방 이후에 쫄딱 망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산 환수에 대한 저항이 아주 큽니다. 질문자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며, 더 이상 책임질 일은 없습니다. 쫄딱 망했다면 이미 다 내놓은 것과 같습니다. 조상의 행적을 자랑하거나 떠벌릴 일은 아니지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미 100년 전 일이므로 역사의 일부일 뿐, 개인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에요. 이렇게 받아들이고,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대중은 모둠별로 마음나누기를 한 후 백중 기도를 하였고, 스님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회의실에서 ‘대한민국,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되다.’를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오늘 발제를 맡은 분은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입니다. 지금은 사단법인 은구(NGU, NEVER GIVE UP) 대표로서 마약퇴치 운동을 이끌고 있는 그는, 정치가 아닌 인생의 또 다른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법륜 스님 앞에서 발제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기분이랄까요. 스님이 계신 자리라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걸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약보다 끊기 어렵다는 정치를 이미 끊어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약 치유 운동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이 ‘마약과의 전쟁’이라고 해서 다소 거창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약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심각하게 퍼져 있는지 먼저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제목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남경필 대표의 이야기는 단순한 통계나 제도 비판을 넘어, 아버지로서 겪은 피눈물 나는 경험에서 출발했습니다.
“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힘만으로는 마약의 늪에서 끌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들을 직접 경찰에 신고했고, 재판정에서 실형을 받도록 했습니다. 아들은 두 차례 자수를 했지만 풀려났고, 병원에 맡겼지만 전염병으로 강제 퇴소 되는 바람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댔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다시 신고했고, 마침내 구속되어 교도소와 국립법무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제가 아들에게 한 말은 ‘아빠는 널 절대 포기하지 않아.’ 이 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가족이 저를 포기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깨끗해져서 아버지와 함께 마약 퇴치 운동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약속이 저희 단체의 이름, 네버 기브 업이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말하는 남경필 대표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아들을 잃지 않기 위해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던 한 아버지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사실 국가를 위한 일이었다기보다 제 아들 문제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아들 면회 때 의기소침해 있는 아이에게 제가 농담처럼 이런 말을 했어요.
‘정치를 할 때 가장 힘든 게 뭔지 아니? 바로 인지도를 올리는 거야.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너 모르는 사람이 있니? 남경필 전 도지사 아들이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너는 대한민국에서 인지도로 따지면 거의 1등이야. 만약 네가 그 나쁜 인지도를 마약을 완전히 끊고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데 쓴다면, 아빠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신저가 될 수 있을 거야.’
저는 요즘 제 아들뿐 아니라 이런 강력한 메신저들을 많이 모아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가 정책도 의미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 하는 일이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합니다. 제 아들도 마약으로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는데요.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위중했지만 살아 돌아왔고, 그 경험이 스스로 자수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경필 대표는 우리 사회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작년 우리나라에서 마약 사범으로 검거된 사람은 2만 명이 넘습니다. 올해는 약 3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요. 제가 마약 치유 운동을 하면서 여러 전문가의 통계를 접해 보니, 집계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 2만 명이라는 숫자는 사법 체계상 검거되어 처벌받은 사람만을 의미합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실제 중독자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마약은 숨어서 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또한 암수 범죄라고 해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범죄까지 고려하면 현재 우리나라 마약 중독자를 약 2만에서 3만 명이라고 할 때, 마약을 접해 본 사람은 그 백 배에 달할 수 있습니다. 즉, 200만에서 300만 명 정도가 마약을 경험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는 이보다 훨씬 많다고 보고 있고요. 특히 10대 마약 사범은 최근 10년 사이 50배가 늘었고, 여성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티핑 포인트입니다. 방치하면 우리 사회에도 ‘좀비 거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대마초가 입문 약물이었다면, 이제는 의료용 향정신성 의약품이 청소년과 젊은 층의 게이트웨이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제와 다이어트 약(일명 ‘나비약’)입니다. ADHD 약은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해 고등학생·대학생들 사이에서 남용되고 있습니다. 처음엔 한 알씩 먹다가 용량이 늘고, 결국 마약 재중독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다이어트 약은 직장인,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공동구매로까지 확산되며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고도비만 환자에게 단기간 처방되는 약물이지만, 날씬해지려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마약성 약물이 일상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남 대표는 요즘은 텔레그램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른바 ‘던지기’ 수법이 성행하면서, 돈을 입금하면 근처 특정 위치에 숨겨둔 마약 좌표를 알려주고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과 비대면 거래 방식이 결합하면서, 마약은 더 이상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국제적 위협으로는 펜타닐이 있습니다. 펜타닐은 암 수술에도 쓰이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0.02g만으로도 치명적입니다. 미국에서는 교통사고나 총기 사고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펜타닐 중독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전구체 화학물질을 생산해 멕시코 비밀 실험실로 보내면, 그곳에서 합성·정제되어 알약이나 주사로 만들어지고, 다시 미국으로 유통되는 구조입니다. 아직 한국에는 본격적인 정제·주사 형태 펜타닐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절실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약 대응의 세 축을 예방 교육, 사법적 처벌, 치유와 사회 복귀라고 정리했습니다. 예방 교육을 위해서는 ‘이노마(이젠 노마약)’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중독자·가족·경찰·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대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며, 셀럽들의 참여도 독려 중이라고 합니다. 사법적 처벌의 측면에서는, 자수하면 실적에 잡히지 않아 무시되는 현실, 구속영장 기각으로 정치적 오해를 받았던 경험을 언급하며 사법 제도의 미비를 지적했습니다. 치유와 사회 복귀를 위해서는 분당서울대병원과 협력해 의료 치료·관계 회복·직업 재활을 결합한 치유 공동체 모델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2시간 동안 강연을 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마약 문제를 더 큰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독일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는 ‘고독부’라는 정부 부서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마약청을 설치할 게 아니라 고독청을 설치하고, 그 밑에 마약국, 자살국, 우울국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문제가 이미 큰 사회복지의 과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마약, 자살, 우울 같은 문제를 따로따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독과 결핍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중독의 근본 원인으로 불안과 정신질환을 지적했습니다.
“마음의 불안과 허전함을 치유하지 않으면 알코올·담배·마약 등의 중독은 계속 반복됩니다. 약물 처방과 더불어 심리치료 병행이 필수적입니다.”
한 참석자는 마약을 단순 범죄가 아닌 성과 중심 사회가 낳은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며, 입시와 경쟁 문화를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또 의사와 상담사의 역할 충돌로 인해 심리치료와 약물치료가 단절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학교 현장에서 ADHD 약 복용이 암묵적으로 권장되는 분위기, 청소년들이 외로움 속에서 마약에 노출되는 현실을 호소했습니다. 다양한 토론 속에서 드러난 공통된 문제의식은, 마약 문제의 뿌리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적 환경과 고독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미나를 마치며 스님이 몇 가지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대표님 말씀을 들으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뉴스로 마약 중독자가 늘어난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다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둘째, 향정신성 약물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마약 확산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일부 의사가 약을 빼돌린다는 정도로만 알았는데, ADHD 약을 많은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복용한다는 말씀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시험공부 할 때 잠 안 오는 약을 먹던 것처럼 요즘 학생들이 ADHD 약을 습관처럼 먹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이어트 약에도 마약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장기간 복용하면 마약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도 실정이 어떠한지 더 면밀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약 청정국을 벗어나 마약이 한번 확산되기 시작하면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방에는 1달러면 충분하지만, 치유에는 1만 달러가 들어도 쉽지 않아요. 국가 재정적으로도 큰 부담이고,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대표님이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도지사로서의 역할보다도 더 국가를 위해 더 큰 일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세미나를 마치며 남경필 대표는 다시 한번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마약은 ‘내 의지로 끊을 수 있다.’라고 자신할 때는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죽을 뻔한 상황에 부닥쳐야 ‘이건 내 힘만으로는 안 되는구나.’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런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지 않으면 끊어내기 어려운 게 마약입니다. 저는 고통받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일을 제 아들이 10월 1일 출소하면 조심스럽게 시작할 예정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오늘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법륜 스님께서 의료용 마약이 얼마나 위험하며, 더 큰 중독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가 있어야만 마약중독 예방의 첫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저의 이야기 들어주시고 앞으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실 것 같아 정말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남 대표에게 아들을 깨달음의 장에 보내라고 권유했습니다.
“아들이 나오면 깨달음의 장부터 먼저 다녀와야겠어요. 마음의 분노나 허전함이 사라져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거든요. 약물은 감옥에서 2년 동안 끊었겠지만, 심리적 습관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3년 살다 나온 사람이 니코틴은 다 빠졌는데도 습관은 안 빠지거든요. 그래서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어야 나온 것 같다고 그러잖아요. 그것은 니코틴이 몸에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만족감 때문입니다. 이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네. 아들을 꼭 깨달음의 장에 보내겠습니다.”
아들, 그리고 아들과 같은 수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간절함, 그리고 마약을 넘어 고독과 결핍까지 보아야 한다는 스님의 통찰까지 오늘 세미나는 그 어떤 통계나 수치보다 더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세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세미나를 진행해 준 남경필 대표에게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직접 농사지은 쌀과 스님의 저서, 그리고 '푸른배달말집'이라는 책을 선물했습니다. 남 대표님이 스님의 책을 선물 받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스님 책 읽고 크게 깨달아서 스님이 말씀해 주신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대중 강연 자리를 마련해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남 대표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곧바로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현황과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평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0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 화상회의 방에 접속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법회처럼 다가오는 백일기도 입재식과 청년 페스타 행사 소식을 전한 후 정토회 회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에서 네 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에 현장에서도 한 명이 직접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아침 정진을 할 때 기도문이 처음에는 ‘아빠, 감사합니다.’, ‘남편은 고마운 사람입니다.’, ‘아이는 지금 이대로 괜찮습니다.’ 이렇게 세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겠습니다.’를 시작으로 기도문이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형제자매에게 감사합니다.’, ‘돈의 노예가 아닌 내 자신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하는 말도 추가했고, 법사님께 여쭤본 뒤에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까지 넣어서 기도문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혹시 제 욕심은 아닌지, 이렇게 계속 기도문을 늘려도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맞고 틀린 건 없습니다. 본인이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그런 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모두 누군가의 도움 덕분이잖아요. 그래서 기도문을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하는 것처럼 한 줄로 해도 되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감사합니다.’, ‘농사꾼에게 감사합니다.’, ‘노동자에게 감사합니다.’, ‘천지자연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덧붙여도 괜찮습니다. 질문자처럼 덧붙이고 싶은 마음에 자꾸 덧붙이다 보면, 나중에는 책 한 권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것도 괜찮아요. (웃음)
다만 명심문이라고 하면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하여 한 가지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감사합니다.’라든지,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라든지, 이렇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거죠. 물론 발원문이라면 이것저것 덧붙여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질문자가 그만큼 바라는 게 많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대중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한 후 백중 기도를 하였고,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한 후, 오전에는 외교 안보 전문가들과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내일모레 부탄에 파견을 가는 JTS 활동가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하반기 사업 계획에 대해 의논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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