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8.16. 고(故) 묘향법사 49재 막재, 청춘캠프 2일째
“묘향법사님, 극락왕생하시어 다시 보살로 돌아오소서”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故) 묘향법사 49재 막재에 참석하여 영가 천도 법문을 한 후 청춘캠프 2일째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고(故) 묘향법사 49재 막재에 참석하기 위해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대웅전에서는 49재 막재를 봉행하기에 앞서 오전 9시부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헌공예불을 했습니다.


헌공예불이 끝나자 스님은 아침 일찍 출발하여 먼 길을 와주신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악수를 건넸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전 10시에 고(故) 묘향법사 임혜진 님 결사행자장 49재 중 막재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영가 사진을 영가단으로 옮긴 후 대중을 대표하여 여광법사님, 이승용 님이 분향을 했습니다.


앳되고 고운 얼굴의 영정 사진을 보니 가슴이 저미듯 아프고, 선한 미소가 더욱 그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어서 상주 대표가 영가전에 차를 올리고 삼배를 했습니다.

다음은 유수스님이 참석한 대중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부모님과 가족들, 전국의 정토행자님들이 멀리서 이곳 수련원까지 와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묘향 법사님께서는 이미 왕생극락을 하셨지만, 우리의 풍속과 인연을 따라서 지도 법사님을 모시고 법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회가 부처님의 법을 이어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고인이 생전에 직접 쓴 글을 묘수 법사님이 낭독해 주었습니다.

“1995년 깨달음의 장을 통하여 비로소 불교를 만나게 된 내 삶은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를 맞이했고, 1997년에는 북한동포돕기 100만 인 서명운동을 위해 한 달간을 거리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서명운동을 회향하는 날, ‘두만 강변에 굶어 죽은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는데 건지지도 못하고 있다. 시체 건지러 갈 사람 손 들어보라’ 하시는 유수스님의 말씀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울 홍제동 정토포교원으로 올라와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것으로 내 삶은 정토회로 쑤욱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 다시 시작된 나의 두 번째 인생

이어서 좋은벗들에서의 활동,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활동했던 정토출판의 업무를 정리하고 스님의 하루 담당자를 거쳐 맞이하게 된 행자교육은 저에게 다시 새로운 인생의 기회였습니다. 행자교육에서는 나의 밑 마음까지 솔직하게 마주 할 수 있었고, 법사 수계를 한 뒤 깨달음의 장 수련 안내자가 되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진리에 눈뜨고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대중들의 삶을 만나는 것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공동체에 더욱더 깊이 뿌리내리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러한 기회가 함께 하는 모든 도반들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법명 뒤에 붙어 있는 법사라는 이름은 제가 지니고 있기에는 부족함이 큽니다. 다만 그런 나의 부족함을 스스로 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늘 겸손해야겠구나 마음 다잡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에 막 들어왔을 초기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네가 제일 잘 산다’ 하시고, 힘들 때 함께 의논할 대상이 된다고 하십니다. 부모님께 그런 믿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한편 세상 사람들은 고민이 있을 때 믿고 찾아가 물어보고, 함께 의논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토회가 할 일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이 기쁘고 은혜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올리니 바쁜 와중에도 법륜스님께서 답신을 주셨습니다.

‘삶이란 지금 여기 살아있는 것일 뿐입니다. 특별히 빚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 몸의 손발일 뿐. 모든 것은 그동안 지은 우리 모두의 공덕입니다.’

법륜스님의 말씀을 새기며 다시 출발합니다. ‘행복이란 괴롭지 않은 상태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시간 나는 더 나은 무언가를 쫓아서 살아왔구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현실에 없는 무언가를 구하며 살고 있었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열과 성의를 다했던 것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구나 싶어 다시 마음을 지금 여기 출발선상에 둡니다.

알게 모르게 살펴주는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정말 만물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부모님의 은혜도 새삼스럽게 느껴져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할 일이 넘쳐납니다. 일상이 시작됨에 감사합니다. 묘향 보은행 임혜진 올림.”

대중들은 고인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영가천도 노래 ‘고운님 잘 가소서'를 함께 불렀습니다. 묘향법사님과 함께 한 추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와 그리움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이어서 참석한 가족들과 대중들을 위해 법륜스님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묘향법사님은 스무 살 때까지는 부모님이 낳아주고 길러주고 공부시켜 주고 해서 가족의 일원으로 부모의 은혜와 형제간의 우애 속에 곱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세상에 눈을 뜨고, 가족을 넘어서서 타인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발원하였고, 정토회에서 굶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을 하였습니다. 북한에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 오다가 강물에 빠져 죽거나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이 가는 대학 졸업과 취직, 결혼의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누구도 돌보지 않아 세상으로부터 외면된 사람들을 돕는 길을 갔습니다. 중국에서는 자기 국민이 아니라고 외면되고, 남한에서는 북한 사람이라고 외면되고, 북한에서는 민족을 배신하고 도망갔다고 외면되어,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이 비참히 죽어가는 그들을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데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데도, 오직 그들의 고통만 보고, 청년으로서 깨끗한 마음을 일으켜서 그들을 돕는 일에 뛰어들고 참여하였습니다. 그렇게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살다가 가셨습니다.

돌볼 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묘향법사님

부모님이 볼 때는 묘향 법사님이 어린아이일 때 키웠기 때문에 안쓰러운 아이 모습만 상상이 되니 그 슬픔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토회 대중들이 볼 때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도 아닌 한 사람의 활동가로, 법사로 꿋꿋이 30여 년을 살아갔습니다. 헤어짐의 아쉬움은 가족이나 정토회 대중들이나 같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어릴 때의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정토회 회원들보다 더 클 것입니다. 정토회 회원들, 도반들, 법사들도 그 아쉬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의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을 기억하기에 가족보다는 슬픔이 적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여기 있든 어디를 가든 잘 살아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방금 부른 노래처럼 헤어짐의 아쉬움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특히 여기 모인 많은 정토회 회원들이 묘향 법사님에 대해서 애틋한 마음을 갖는 것은 바로 자기보다 나이가 더 적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도움을 받는 정보다 도움을 주는 정이 훨씬 더 강합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나를 사랑해 준 부모라도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부모 앞에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군가를 돌볼 때 그 애틋함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의 기억이 더 오래가고 더 강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슬픔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정토회 대중들도 묘향 법사님의 후배들보다는 묘향 법사님의 선배들이 더 마음이 아프고 애틋합니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는 세상 속 인연의 순으로 선배니, 후배니, 부모니, 자식이니 이렇게 이름을 짓지만, 세상 속 인연이 끝나면 우리는 새로운 관계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다음에 죽어서 극락에 가면 묘향법사님의 후배가 됩니다. 그래서 세상 속 인연이 끝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건 다 없어집니다.

묘향법사님께서는 첫 발심을 하고 돌볼 이 없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보살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이후에 주로 가장 많이 활동한 분야는 정토출판에서 정토회를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법사 수계를 받고 나서는 정토회에서 나라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천룡사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 불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살아계셨다면 더 큰 역할을 하실 차세대 지도자였지만 인연이 다해서 먼저 가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법사님이 못다 한 일들을 우리가 계승해서 이어 나간다면 법사님이 늘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묘향법사님이 우리 곁에 늘 함께 있도록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자리를 빌려서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세상을 위해서 봉사하도록 보내주신 부모님과 가족들께 정토회를 대표해서 또 북한 동포들을 대표해서 깊이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은 영가가 된 묘향법사님을 위해서 천도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묘향법사님, 오늘 묘향법사님의 49재일을 맞아서 묘향법사님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가족과 친지 그리고 선후배 도반들, 정토행자들이 이 자리에 참여했습니다. 법사님께서는 이미 극락세계에 가 계시겠지만, 우리는 눈이 어두워 알 수 없으니 이미 가셨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아직 가지 못하셨다면 오늘 우리의 간절한 염원으로 마지막 집착을 끊으시고 이곳을 떠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기를 발원합니다.

묘향 법사님, 이 세상에 살 때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옳다’ 이렇게 주장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봤다’, ‘내가 들었다’라고 하면서 ‘내가 옳다’라는 확고부동한 믿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고 들은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고, 맛볼 수도 없고, 만져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데, 묘향법사님께서는 무엇으로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옳다’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냄새 맡지도 못하고 맛보지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때, 묘향법사님의 본래 면목은 무엇입니까?

만약에 묘향법사님께서 이 법사의 질문에 단박에 대답할 수 있다면 살아생전에 어떤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것은 꿈속에서 한 일이라 꿈을 깨고 나면 다 헛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법사님께서는 저 극락세계에 즉시 환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 법사의 질문에 머뭇거림이 있고 망설임이 있고 불안함이 있다면 법사님께서 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또한 좋은 꿈을 꾼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지금 열반을 증득하는데 아무런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묘향 법사님이시여! 이 세상에 살 때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것, 친하거나 친하지 않다는 것,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것 등 모든 분별을 다 내려놓고 ‘나의 본래 면목은 무엇인가?’ 오직 여기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냄새 맡지도 못하고 맛보지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때, 단박에 이 관념의 벽을 뚫고 어둠의 장벽을 걷어내고 밝은 햇살을 보셔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입니다.

묘향법사님, 극락왕생하시어 다시 보살로 돌아오소서

이 세상에 살면서 좋은 일, 나쁜 일, 그 모든 인연에 얽매인다면 해탈의 길은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49재일을 맞아서 이 굴레의 장벽을 끊어버리시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극락에 왕생할 뿐만 아니라 다시 이 사바세계에 보살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살아계실 때 굶어 죽고 병들어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보며 큰마음 내어 정토회 활동에 참여했듯이,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극락세계를 버리고 이 사바세계에 다시 빛으로 돌아오소서. 혹시라도 아직 조금이라도 미련이 남아 있다면 여기 모인 대중들이 온 마음을 다해 법사님의 천도를 염원할 것입니다. 그 공덕에 힘입어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

오늘 묘향법사님의 49재일을 맞아서 법사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천도한 공덕으로, 이 자리에 참여한 부모님과 가족, 친지 여러분, 그리고 정토행자 여러분 모두 다생겁래 지은 모든 업장이 녹아나고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지이다. 오늘 묘향법사님 천도한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유주무주 모든 고혼도 묘향법사님을 따라 극락왕생하옵소서.”

고인의 뜻을 기리며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천도기도 장엄염불을 다함께 독송했습니다.

상주 분들부터 영단에 차를 올린 후 이어서 스님도 영가를 위해 차를 올리고 삼배를 했습니다. 차를 올리고 싶으신 내외빈 분들도 차례로 나와서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장엄염불이 끝나고 고인의 뜻을 기리는 추모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공연은 오랜 도반인 이수진 님이 해주었습니다. 순백의 한복 차림으로 정성스레 하얀 살풀이 천을 흩날리며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춤사위가 펼쳐지자, 순간 법당 안은 고요하면서도 숭고한 기운으로 가득 찼습니다. 공연을 지켜보던 대중은 숨소리마저 조심스레 고르며, 고인을 향한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을 함께 느꼈습니다.

이어서 고인을 잊지 않고, 그 뜻을 우리 삶 속에서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담아 노래 ‘네버엔딩스토리’를 모두 함께 불렀습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고인과 깊은 인연을 지닌 대중들은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차마 감추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주를 대표하여 묘향법사님의 아버님이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혜진이를 보살펴주신 법륜스님과 유수스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장례식장에서 정토회 활동가들이 저한테 ‘저희들도 혜진이의 가족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고, 지금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가족들이 저희들의 슬픔을 덜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아버님의 말씀에 대중들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받으며, 함께 눈물을 글썽이고 따뜻한 박수로 위로와 공감을 전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고(故) 묘향법사 임혜진 영가의 49재 막재를 마쳤습니다.

참석자들 모두 대웅전 계단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묘향법사님의 아버님이 영정 사진을 가슴에 안고, 가족들이 가운데에 서고, 그 뒤에 정토회 도반들이 나란히 줄을 맞춰 섰습니다. 대중들의 표정이 너무 어둡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웃어도 돼요.”

대중들은 스님의 말씀에 굳었던 얼굴을 풀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다함께 가슴 속에 묻어둔 말을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묘향법사님, 사랑합니다.”

묘향법사님을 떠나보내며, 대중들은 각자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고인에게 따뜻한 웃음을 선물했습니다.

대중들은 대강당으로 이동하여 수련원에서 준비한 음식과 과일로 점심식사를 하고, 스님은 대중들과 인사를 나눈 후 청춘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청년들과 함께 하는 행사가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12시에 선유동 정토연수원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잠시 후 청년들도 오전 프로그램을 마치고 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대강당에 모여 다가오는 11월에 하기로 한 ‘청년 페스타’ 행사를 개최하게 된 배경과 취지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대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오전 일정 잘 보냈습니까?”

“네”

“청년 페스타 행사를 개최하고자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기상을 심어주고, 희망을 주고, 재미를 주자는 것입니다. 내용이 너무 많으면 무겁게 느껴져서 재미가 떨어지고, 반대로 재미만 있고 내용이 없으면 행사를 개최하는 의미가 없어져요. 그래서 우리는 적절한 재미와 내용을 담아서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해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도록 공간도 넓히고 참여 인원도 늘려나가 보았으면 합니다. 개최지도 서울에만 한정하지 말고 지방으로도 넓혀보고, 더 나아가서 국제적인 청년 행사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그런 방향에서 실험적으로 출발하는 자리입니다. 우선은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중심으로 우리가 가진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면서도 경비는 최소로 하여 한번 해봤으면 합니다.

잠시 후에 청년 페스타 행사의 전체적인 기획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예정되어 있고, 어제 입재식에서 제가 충분히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이 시간은 조금 줄이겠습니다. 혹시 청년 페스타 행사에 대해서 질문이 있으면 짧게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곧바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청년들은 청년 페스타의 방향성과 실질적인 운영 방법을 중심으로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청년들의 기상 부족과 은둔(히키코모리)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청년들이 기상을 가질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청년 페스타의 취지인가요?

“저는 청년 페스타 행사의 취지가 궁금했는데요. 스님의 입재 법문을 듣고 나니, 지금 청년들의 기상이 좀 떨어져 있으니 기상을 가질 수 있게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 행사의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취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청년들에게 더 잘 전달될 것 같은데요. '내가 이렇게 살아보니까 내 삶에 기상이 생겼어. 우리 같이 이렇게 살아볼래?'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저는 젊은 세대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저한테 답을 찾지 말고, 여러분들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청년들이 지금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청년 페스타의 취지는 은둔하는 청년들만 모아서 행사를 해보자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치료센터의 역할밖에 못 합니다. 출세, 공부, 경력 등 개인의 문제에만 몰두하는 젊은이들이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오면 역사의식이 생겨나고 사회의식을 갖게 되는 것처럼,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거예요. 방콕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방에서 나오는 계기가 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치유의 기회가 되고,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사회성을 갖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프로그램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있어야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이런 사람에게, 저런 프로그램은 저런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뷔페처럼 제공해야 합니다. 한 프로그램이 모든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부스든 강연이든 체험 프로그램이든, 누구는 이게 좋고, 누구는 저게 좋다고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청년들은 '이럴 때 반드시 이걸 해야 한다' 하는 식으로 당위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약간의 재미가 들어가야 청년들이 관심을 가집니다. 그 재미라는 건 단순히 춤추고 노래하는 것만이 아니라 신기하고 관심을 끌 만한 요소를 말해요.

재미만 따지면 전문 기획사가 더 잘할 겁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단순히 재미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정토회에 맞는 내용을 가미해야 합니다. 사회적인 실천, 즉 환경, 평화,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복지와 같은 주제들도 포함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모아 놓는 행사는 다른 단체들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각자 다 관심이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 실천이 도움이 되고, 또 누군가는 심리적 안정이나 치유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 호기심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단순한 재미 요소를 찾을 수도 있어요. 이처럼 다양한 요소를 적절히 섞어서 행사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잠시 후에 행사 계획을 들어보면 여러분도 추가하거나 보완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길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청년들은 ‘청년 페스타’가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년에게 의미 있게 다가가고, 다양한 계층과 사회적 이슈까지 포괄할 수 있을지 많은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 다른 나라 청년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 정토회 청년들이 자긍심을 가질 만한 특징은 무엇일까요?

  • 청년 페스타를 정토회의 내부 자원 중심으로만 해야 하나요, 아니면 외부 자원도 적극 활용할 수 있을까요?

  • 왜 청년 페스타의 목표 인원을 1만 명으로 정했으며, 이를 어떻게 모집할 계획인가요?

  • 청년 페스타에 청소년도 함께 참여할 수 있을까요? 은둔 청년들을 위해 온라인 프로그램도 마련해 보면 좋겠습니다.

  • 정토사회문화회관 앞 도로를 막고 부스를 운영하여 지나가는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요?

  • 법륜스님께서 청년 페스타 홍보 영상에 광고 모델로 참여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정치적 성향이 서로 다른 정치인들을 초청해서 ‘국민 통합’을 주제로 강연을 해봐도 괜찮을까요?

질의응답 시간을 마치고 청년 페스타 집행위원회의 각 팀장들이 앞으로 나와 며칠간 밤을 지새우며 기획하고 준비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각 팀이 쏟아낸 아이디어는 단순히 행사 운영을 넘어, 청년들의 삶과 고민을 담아낸 작은 선언 같았습니다.

강연기획팀에서는 “청년들이 진짜 즐기고 싶은 건 무엇일까?”를 끝없이 고민했다고 합니다. 단순한 강연이나 세미나가 아니라, 놀면서 배우고, 체험하며 연결되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느껴졌습니다. ‘페스타’라는 이름 그대로, 청년들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 돋보였습니다.

부스팀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청년들이 직접 몸으로 참여하며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습니다. 환경 보호, 평화, 나눔, 명상 등 정토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청년들이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보는 축제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축제"라는 메시지가 느껴졌습니다.

공연팀은 문화와 예술을 통한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말보다 노래가, 강연보다 공연이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처럼, 가수 초청 공연, 청년 밴드 무대, 퍼포먼스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결합시킨 계획이 눈에 띄었습니다. 청년 페스타가 단순한 종교적 행사나 토론의 장이 아니라, 진정한 청년 문화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세미나팀은 청년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진로, 인간관계, 마음의 어려움 같은 주제를 청년 당사자와 전문가가 함께 나누는 소규모 대화 모임을 기획했습니다. 거대한 강연보다, 50명 안팎이 모여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훨씬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미디어팀은 행사에 오지 못하는 은둔 청년들이나 청소년들까지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프로그램 제작, 다시보기 영상 제공 등 접근성을 넓히려는 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페스타”라는 가치를 실천하려는 청년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홍보팀은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알려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습니다.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참여형 홍보 전략을 고민했습니다. SNS 숏폼 영상, 밈(Meme) 활용, 대학 동아리와 연계한 바이럴 캠페인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나왔습니다. “청년이 청년을 부른다”는 구호처럼, 청년 스스로 행사 홍보의 주체가 되는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청년 1만 명을 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모든 팀이 공유한 최대의 고민거리였습니다. SNS 홍보부터 유명 인플루언서와의 협업, 그리고 청년 스스로 홍보대사가 되어 친구를 데려오는 방식까지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습니다. 단순히 ‘숫자 채우기’가 아니라, 함께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발표를 마친 후 청년들은 서로의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며, 성공적인 개최를 다짐했습니다.

“청년! 나와라! 청년! 놀자!”

청년들은 주먹을 높이 치켜들며 힘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순간 강당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발표 내용을 경청한 후 몇 가지 의견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현실적인 실행 가능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공간 활용과 동선 관리, 강연·세미나 구성의 규모 차별화, 음식 준비와 봉사자 운영의 실질적 계획, 정부·전문가·연예인과의 협력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각 층별 수용 가능 인원과 용도를 구체적으로 산출해 보면 좋겠고, 엘리베이터는 환경과 효율성을 위해 정해진 층만 정차(예: 1층·5층·10층)하고 나머지는 계단을 이용하도록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면 좋겠어요. 12층 이상은 동선이 복잡해 효율이 저하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초청 가능 인사로는 정토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연예인, 젊은 정치인, 장관, 안보 전문가, 탈북민, 학자 등 다양한 인적 자원들이 많으니까 최대한 활용을 해보시면 좋겠어요. 청년 봉사자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나, 부족할 경우 40대까지 확장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신에 외모와 분위기를 청년답게 맞추도록 해야겠죠. 특히 서울시 청년정책과, 여성가족부, 문화체육부, 교육부 등 정부 부처에 자문을 구해서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반영하는 기획을 해보면 좋겠어요.”

스님의 제안을 받아서 이후에는 청년들끼리 세부적인 내용을 토론해 보기로 하고 대화의 장을 마쳤습니다.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함께한 3년, 함께할 30년, 청년 페스타 파이팅!”

청년들이 직접 고민하고 기획한 ‘청년 페스타’ 행사가 세대와 지역을 넘어 서로를 잇는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스님은 청년들끼리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이야기한 후 오후 4시에 선유동 정토연수원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청년들은 쟁점이 되는 사안을 두고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청년 1만 명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열띤 논의를 이어간 뒤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예불을 마친 뒤에는 팀별로 모여 세부 계획을 구체화하는 논의를 계속했습니다. 오늘 하루는 청년 페스타의 청사진을 함께 그려가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은 청춘캠프 3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다시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돌아와서 오전 10시부터 ‘2-2차 천일결사 청년지부 조직 개편’을 주제로 청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통일의병대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해 즉문즉설을 하고, 청춘캠프를 마무리하는 회향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4

0/200

정윤희

묘향법사님, 극락왕생하옵소서_()_

2025-08-19 07:36:37

지나가다

"중국에서는 자기 국민이 아니라고 외면되고, 남한에서는 북한 사람이라고 외면되고, 북한에서는 민족을 배신하고 도망갔다고 외면되어,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이 비참히 죽어가는 그들을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25-08-19 07:22:05

정태식

“묘향법사님은 북한에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 오다가 강물에 빠져 죽거나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보통 사람이 가는 대학 졸업과 취직, 결혼의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
묘향 법사님의 50년 일생은 다른 사람의 100년보다 몇 배 가치있는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25-08-19 07:16:3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