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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부터 4박 5일 동안은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평화재단 종교인 모임과 종교 간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과 스리랑카의 종교·민족 갈등 경험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아시아 지역의 평화 구축을 위한 종교인들의 역할과 기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평화재단에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환영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평화재단 종교인 모임 어르신들도 속속 도착했습니다.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은 어제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여 밤늦게 한국에 도착하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어 평화재단 회의실에 모두가 모였습니다. 기독교, 천주교, 성공회교, 불교, 원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천도교까지,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종교를 넘어선 대화의 장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평화재단 종교인 모임의 좌장인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님이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의 대표들께서 대한민국을 방문해 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에만 다종교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스리랑카에서 오신 다종교 지도자분들을 뵙게 되니 한결 마음이 흐뭇합니다. 이번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앞으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어서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인 ‘다르마샥티(Dharmashakthi)’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아사지 스님(Ven.Assaji)이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아사지 스님은 다르마샥티 회원들과 함께 스리랑카의 분쟁 상황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스리랑카에는 네 개의 주요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그것입니다. 저희는 ‘다르마샥티(Dharmashakthi)’라는 단체를 대표하고 있으며, 저는 이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불교에는 세 개의 종단이 있습니다. 그중 시암 종단은 태국에서 왔고, 아마라푸라 종단과 라만냐 종단은 미얀마에서 왔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아마라푸라 종단은 1802년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 저는 16대 지도자입니다. 저와 법륜스님은 15년 정도 알고 지낸 좋은 친구 사이입니다.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경조 전 성공회 주교님은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아누라 목사님에게 먼저 질문을 했습니다.
“아누라 목사님께 여쭙겠습니다. 스리랑카의 기독교는 처음 어디에서 들어왔나요?”
아누라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스리랑카의 기독교는 1505년에 포르투갈을 통해서 처음 들어왔고, 그다음에 네덜란드와 영국을 통해서도 전해졌습니다. 이후 스리랑카에는 다양한 기독교 종단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포르투갈인들이 스리랑카에 오기 훨씬 이전에도 기독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증거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 같은 것들이에요. 스리랑카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역사 또한 굉장히 오래됐는데, 이슬람교는 아주 오래전 상인들을 통해 전파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스리랑카는 불교 인구가 가장 많아서 70퍼센트 가까이 되고, 힌두교가 14퍼센트, 이슬람교가 8퍼센트, 기독교가 8퍼센트 정도입니다. 기독교에는 천주교와 다양한 개신교 종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박경조 전 주교님이 오늘 모임에 참가한 소감과 더불어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성직자를 만나 뵈었습니다. 한국에는 불교 인구가 많아서 스님들은 여러 분을 만나 뵈었고, 기독교 목사님도 많이 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성직자를 뵙게 되어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아누라 목사님의 발제문을 미리 읽어 봤습니다. 특히 다르마샥티의 활동을 읽고 굉장히 훌륭한 역할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년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오랜 전쟁과 정부 권력의 부패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여러분이 해 오신 일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서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종교를 떠나서, 또 피부 색깔을 떠나서, 한 인간으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다음은 스리랑카의 힌두교를 대표하여 온 다르샤카(Darshaka) 사제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다르샤카 사제님은 스리랑카 국민들 간의 종교적 조화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 및 비정부 기관, 언론,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많은 강연을 하고 있는 분으로, 이번 참가자 중에서 가장 젊은 분입니다.
“시바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종교 간에 대화를 하는 커뮤니티가 한국에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힌두교에는 ‘우리는 시바 신의 가족이다. 그리고 전 세계는 하나의 가족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지역에서 일하고, 서로 다른 믿음을 갖고 있지만,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 아누라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힌두교는 스리랑카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종교입니다. 스리랑카의 힌두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저희는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힌두교에서 섬기는 신들 중의 하나라고 여깁니다. 이렇게 힌두교와 불교는 문화와 종교, 정치 등 다양한 방면에서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힌두교와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은 스리랑카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스리랑카는 30년 동안 오랜 내전을 겪었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회복되어 가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이를 극복해 가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평화와 화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스리랑카의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 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사지 스님께 항상 감사합니다. 아사지 스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의 롤 모델이었습니다. 인권, 종교의 자유, 그리고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고, 저희처럼 젊은 세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셨어요. 아사지 스님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 분들께서 스리랑카 사회의 사랑과 화합을 위해 일해 주셨습니다.
저는 힌두교를 대표하여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타밀인 커뮤티니(Tamilians)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저희 지역 사회 역시 한국과 역사적으로 굉장히 큰 연결 고리가 있어서 예전부터 영향을 많이 주고받아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시바 신을 사랑의 화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시바 신의 사랑으로 축복하며 우리가 함께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어서 스리랑카의 무슬림을 대표하여 온 피르도스(Firdous) 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피르도스 님은 다르마샥티의 지도자들과 함께 스리랑카에서 불교와 가톨릭의 충돌 문제, 불교와 무스림의 충돌 문제, 불교와 타밀족의 충돌 문제 등 다양한 분쟁 상황에 개입하여 평화를 가져오는 일에 앞장서 온 분입니다.
“먼저 이슬람 방식으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신의 가호로 모두에게 평화와 번영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법륜스님께서 스리랑카에 방문하셨을 때 저희 단체의 대화 모임에 참가하셔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 자리에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희는 종교와 신앙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했지요. 그 덕분에 오늘 한국의 훌륭한 종교 지도자분들을 직접 만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희 네 명의 종교 지도자들은 스리랑카 사회에서 훌륭한 롤 모델로 존경받는 분들입니다. 내전이 30년간 이어지는 동안에 저희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화합을 통해서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 시기에 종교 지도자들은 전쟁을 옹호하는 세력들의 잔혹함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목숨을 걸고 평화와 화합을 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다르마샥티(Dharmashakthi)는 스리랑카 내에서 평화를 옹호하는 가장 강력한 단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스리랑카는 굉장히 부유한 국가였지만, 수많은 침략자들의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오랜 시련을 겪으며 스리랑카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대와 연대가 중요한 이상이 되었지요. 그러나 이후 많은 정치인들은 인종주의와 차별주의를 활용하여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 다르마샥티(Dharmashakthi)는 차별의 문화에 반대하고,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더 이상 분열의 정치가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게 되었고, 스리랑카에는 평화와 화합, 그리고 서로를 아껴주고 돌봐주는 문화가 조성되었습니다.”
다음은 천주교 김홍진 신부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신부님은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궁금하다며 질문도 했습니다.
“다르마샥티(Dharmashakthi)의 활동들을 보면서 놀라움과 감사와 기쁨이 함께하였습니다. 동시에 지난 30년 동안 여러분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었는지, 이 모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특히 아누라 목사님이 저와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더 친구 같은 느낌입니다.” (웃음)
이어서 법륜스님이 스리랑카에서 일어난 갈등 상황에 대해 짧게 설명했습니다.
“스리랑카는 종교적으로는 불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렇게 네 개의 종교가 있고, 민족적으로는 싱할라족과 타밀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갈등과 민족 갈등이 섞여 있어요.
LTTE는 ‘타밀 일람 해방호랑이’라고 하는 타밀족 반군 조직을 말합니다. 반군 조직이 북부 지역을 장악하고 정부군이 그들을 공격하는 가운데, 계속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반군들은 소수였으니 테러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부군은 다수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이고, 반군은 소수 민족인 타밀족이었습니다. 싱할라족은 불교도였고, 타밀족은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믿었습니다. 이때 기독교는 스리랑카에 나중에 들어왔기 때문에 타밀족과 싱할라족 모두에게 퍼져 있어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여기에 언어적으로도 타밀어와 싱할라어로 나누어지면서 민족 간 분쟁이 생긴 것입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박종화 목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국은 민족도 하나이고, 언어도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갈등이 심합니다.” (웃음)
그러자 아누라 목사님(Rev. Anura)이 방금 김홍진 신부님이 질문한 내용에 대해 답변했습니다. 아누라 목사님은 종교 대표단이 되어 LTTE(타밀 일람 해방 호랑이, 무장 반군 단체)와 현 정부 간 폭력을 중단하고 전면전으로 가는 것을 자제하도록 중재한 역할을 하였고, 다르마샥티 모임이 시작한 종교 심포지엄 및 기타 모든 활동의 진행자 중 한 명입니다.
“저희 단체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평화를 위해 헌신해 온 분들 덕분에 지금은 스리랑카 내에 극단주의자들의 권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초창기에는 13명의 설립자가 각자 종교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가지고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단체가 결성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사지 스님이 비난을 많이 받으셨죠. 왜냐하면 다수 종교인 불교가 다른 종교와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5년 전만 해도 ‘아사지 스님이 교회로부터 자금을 받은 것 아니냐.’, ‘해외에서 자금을 받았다더라.’, ‘아사지 스님은 NGO 스님이다.’ 하는 비난이 난무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르마샥티에 불교 스님이 여섯 명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와 힌두교 지도자도 몇 명 없었고, 이슬람교 지도자는 한두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희가 거의 모든 종교를 대표하고 있고, 추기경님과 전 주교님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 지도자 분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다르마샥티라는 단체는 저희가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든 것이 아니고, 스리랑카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응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스리랑카 사회는 심각한 분열 상태에 있었습니다. 스리랑카 북쪽에는 주로 타밀족이 살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에는 싱할라어를 쓰는 싱할라족이 살고 있습니다. 타밀족은 대체로 힌두교를 믿고, 싱할라족은 불교도들입니다. 두 민족 사이의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불교계는 타밀족을 대변해 주고, 힌두교는 싱할라족을 대변해 주는 방식으로 우리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기독교는 항상 중간 역할을 해왔죠. 저희는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을 대표하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 왔고,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면, 전쟁이 발발하자 스리랑카 정부는 북쪽으로 보내는 모든 생필품을 법적으로 금지시켰습니다. 코코넛 오일, 연필, 책 같은 물품이 힌두교도들에게 보내지면 결국 LTTE(타밀일람 해방호랑이, 무장 반군 단체)에 흘러가서 전쟁을 계속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기독교인들이 먼저 나서서 컨테이너 화물차 열 대에 해당하는 생필품을 보내는 운동을 조직했습니다. 기독교 신자 중에는 타밀족과 싱할라족이 모두 있었거든요. 하지만 당시 기독교인들의 시도는 경찰로부터 제지를 당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사지 스님을 포함한 세 명의 불교 스님들이 이 일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불교의 권위가 높아서 승복을 입고 있는 스님을 보면 정부나 경찰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분쟁 지역 경계선의 남쪽까지 불교 스님들이 동행하여 화물차 이동을 도왔고, 경계선 북쪽에서는 기독교의 종교 지도자들이 동행하여 생필품이 배송되도록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종교인들이 함께 힘을 모으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누라 목사님의 설명을 듣고 법륜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저희 종교인 모임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할 때와 비슷하네요.”
그러자 아사지 스님이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이 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추가로 설명했습니다.
“다르마샥티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전쟁을 막는 것입니다. 스리랑카에는 오랫동안 내전이 계속되었고, 그로 인해 저희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에도 남북 간 분단 상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스리랑카와는 조금 다른 사안인 것 같습니다. 굉장히 수위가 높은 분쟁인 것 같아요.
스리랑카의 일반 시민들은 저희 종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역할을 기대했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상황이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이 개입해 주기를 바랐어요. 당시 정부와 LTTE 반군 모두 종교 지도자가 한 명만 있을 때는 그 의견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다르마샥티를 통해 네 개 종교의 지도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니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스리랑카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강제적으로 저희 단체가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남수 전 교령님이 아사지 스님의 설명에 적극 공감하며 말했습니다.
“아사지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의 종교 지도자가 나서서는 정부와 대화가 잘 되지 않지만, 여러 종교가 연합하여 나서면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국민들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밑바탕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교의 힘을 모으는 것이 화해와 평화를 위해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서로에게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내일 본격적인 토론 시간을 갖기 전에 오늘은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륜스님은 힌두 사제님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스리랑카 북부의 타밀족 지역에는 어느 정도의 독립된 자치권이 있습니까?”
힌두 사제님이 답변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자치권이 주어져 있지만, 지방 정부에 부여된 자치권이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는 정부에서 새롭게 조직을 구성하겠다고 공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스리랑카에서는 너무 중앙 집권적인 체계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수도인 콜롬보(Colombo)에 와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법륜스님이 웃으며 공감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박종화 목사님은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이 해온 일을 경청한 후 분쟁을 없애고 평화로 가는 길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각자의 삶은 태어남에 의해 주어진 것일 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저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만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대화가 점점 무르익어 갈 무렵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사지 스님은 오후 불식 계율을 지키기 위해 12시가 되기 전에 식사를 해야 해서 서둘러 대화를 마쳤습니다.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평화재단 종교인 모임의 좌장인 박남수 전 교령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좋은 시간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오늘 저희들이 스리랑카에 대한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아누라 목사님은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대표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들 한국에서 굉장히 바쁘시고 중대한 책임이 있는 분 들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정토회 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접시에 담은 후 모두가 자리하자 아사지 스님이 테라바다 불교 방식으로 식사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스님이 목사님과 신부님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테라바다 불교에서는 ‘아멘’이라고 하지 않고 ‘사두’라고 합니다.” (웃음)
종교인 분들은 식사를 하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박경조 주교님이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를 당했을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힘을 합해서 3.1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스리랑카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아는데, 그때도 종교 간에 함께 협력하고 그랬습니까?”
아누라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네. 스리랑카에서도 영국의 지배를 받을 때 종교인들이 협력했습니다. 그러나 인도만큼 강렬한 저항 운동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국으로부터 독립이 된 이후에 내전을 겪으며 분열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서로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2층 쉼터로 이동하여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한국에 스리랑카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다고 설명하면서 정토회가 그들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을 소개했습니다.
“한국에는 스리랑카를 비롯한 동남아 각국에서 온 많은 노동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그들을 위해 여행도 함께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담마 토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다문화센터를 운영하여 몸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도 하고, 한국어도 가르쳐 주고, 법률 상담도 해주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종교인 분들은 오늘 처음 접한 천도교와 원불교에 대해서도 궁금해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 후 차담을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 2시에는 다 함께 국제화해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출발하여 서울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오늘은 국제화해학회 참석자들이 모두 모여 개막식을 하는 날입니다. 차로 30분을 이동하여 개막식이 열리는 서울대학교 호암 교수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개막식을 시작하기 전에 스님은 국제화해학회를 주관한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남기정 소장님과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먼저 남기정 박사님이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번 국제화해학회는 23개국에서 1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스님께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까지 초청해서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차담을 나누는 동안 씨알재단의 김원호 이사장님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화해는 정말 가능한 것일까요? 요즘은 남한과 북한의 통일도 정말 가능할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자꾸 과거를 문제 삼으면 문제를 풀기가 어렵습니다. 과거가 어떠했든 일단은 두고 미래에는 협력하는 게 좋은지, 갈등하는 게 좋은지를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미래에는 협력하는 게 좋겠다는 방향을 먼저 잡고 나서 그다음에 과거의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문제를 풀기가 쉽습니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자꾸 과거에 누가 잘했느냐 잘못했느냐만 따지니까 밤새도록 토론해도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독일과 프랑스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두 차례나 전쟁을 치른 오랜 앙숙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는 미래를 내다보며 석탄과 철강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경쟁의 대상이던 자원을 협력의 기반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훗날 유럽연합(EU)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협력하는 게 미래에는 이익이다는 사실을 먼저 내세우면, 과거 문제를 풀기가 훨씬 쉽습니다.
한국과 일본도 과거만 따지면 철천지 원수지만 지금과 같은 미중 패권시대에는 협력하는 게 좋은지, 갈등하는 게 좋은지에 대해 먼저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협력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먼저 방향을 잡으면, 피해를 입은 사람도 너무 피해 입은 것만 내세우지 않게 되고, 피해를 준 사람도 사과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화해를 하게 되지만, 과거의 잘잘못만 따지면 화해를 못하게 되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개막식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함께 개막식이 열리는 호암 교수회관 무궁화홀로 이동했습니다.
국제화해학회는 일본과 독일이 주축이 되어서 주변국과의 과거사 화해와 평화 구축을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입니다. 2020년 설립되어 매년 학술대회를 열고 있으며, 일본, 르완다, 이탈리아 등에서 개최되었고, 올해는 한국 서울에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서울 대회의 주제는 ‘분단을 넘어 다리를 놓다(Bridging a Division)’입니다.
전 세계 23개국에서 온 150여 명의 학자들이 자리한 가운데 서울대 일본연구소 남기정 소장님이 환영사를 했습니다.
“화해학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연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불가능성 속에서도 가능성을 탐색해야 합니다.”
남기정 소장은 한국의 근대사—식민지 지배, 분단, 전쟁, 독재—속에서 화해는 단지 학문적 주제가 아니라 ‘삶의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아직도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지만, 그 회복을 위한 부단한 노력과 성찰의 경험들이야말로 세계가 주목해야 할 자산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남북 분단 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45주년, 2024년 비상계엄 사태 저지 1주년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이번 학술 대회가 한국적 화해학의 방향을 구체화하는 전환점이 되길 희망했습니다.
이어서 연단에 오른 국제화해학회 회장 카리나(Karina) 님은 화해를 단순히 갈등의 종식이 아닌, 관계 회복과 공동체 재건의 ‘지속적인 과정’으로 설명했습니다. 침묵이나 피상적인 통합이 오히려 분노를 키울 수 있음을 경고하며, 공개적이고 논쟁적인 대화의 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화해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입니다. 우리는 차이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특히 한국과 동북아의 상황, 우크라이나·가자지구·수단 등 세계 각지의 분쟁을 언급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화해는 절실하며, 우리의 전략적이고 용기 있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회의 후원자이자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원호 씨알재단 이사장님은 한국 민중 사상의 뿌리인 ‘씨알 사상’을 소개하며,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회복하는 화해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최근 한국 시민들의 촛불 저항을 언급하며, 이들이야말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킨 ‘위대한 씨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불화로 나뉜 세상에 다리를 잇는 오늘의 작은 행동이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김 이사장님은 전 세계의 평화와 연대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국제화해학회 서울대회를 그 희망의 출발점으로 제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교와 릿쿄 대학교에서 화해학 연구를 오랫동안 해온 이종원 교수가 연단에 올라 기조 발제를 했습니다.
“화해는 정의와 평화가 긴장 속에서 공존하는 예술입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을 모두 경험한 이종원 교수는 한일 관계를 중심으로 국제적 화해의 개념과 실제를 통찰하여 깊게 풀어냈습니다. 화해 개념의 네 가지 접근(도덕적, 제도적, 논쟁적, 상호의존적)을 소개하며, 한일 간에는 ‘논쟁적 화해’가 주요 방식이었다고 진단했습니다. 또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한일 양국의 인식 차이, 1965년 국교 정상화의 역사적 맥락, 이후의 공동 선언과 사죄 담화 등을 짚으며, 역사 문제 해결 없이 미래지향적 화해는 공허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평화의 나무 합창단에서 개막식을 축하하며 이번 학회의 주제와 어울리는 노래 세 곡을 불러 주었습니다.
먼저 전통 민요인 ‘가시리’를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아픔을 상징하는 노래로 편곡하여 부른 후, 이어서 한반도 분단의 현실을 담은 ‘철망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마지막으로 합창단의 창작곡인 ‘평화의 숲을 위하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선율이 널리 울려 퍼지자 행사장은 어느새 하나 된 마음으로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깊은 울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2시간에 걸쳐 진행된 개막식을 통해 화해는 마법처럼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각자의 상처와 차이를 품고 함께 걸어가는 길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분쟁으로 고통받고 있고, 또 누군가는 용기 내어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참가자 모두가 그 다리의 설계자가 될 것을 다짐하면서 개막식을 마쳤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무대 앞으로 나와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기념사진 촬영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서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고, 짧은 대화를 이어가며 개막식의 여운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저녁 만찬을 한 후 스리랑카 종교인 분들은 다시 차를 타고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도 내일 국제화해학회 행사장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스님은 저녁 7시부터 박지나 JTS 대표와 미팅을 했습니다. 지난 11일 동안 JTS에서는 활동가를 파견하여 지진 피해를 크게 입은 미얀마에 긴급 구호 활동을 하고 왔습니다. 지난번 구호 활동에서는 만달레이 지역에서 식량 및 구호품을 나눠주었고, 이번 구호 활동에서는 아마라푸라 지역 11개 이재민 캠프에 거주하는 3661 가구에 식량 및 가방을 지원했습니다. 박지나 대표가 긴급 구호 활동을 하고 온 결과를 자세하게 보고 하였고, 스님은 이후 지원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준 후 미팅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과 함께 서울대학교에서 열리는 국제화해학회 2일째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화해와 평화를 위한 아시아 종교 간 대화’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하고, 오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사회 원로들과 이웃 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더 깊이 있는 토론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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