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6.16 일본 방문
“마지막 통화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한 아버지, 죄책감을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일 관계 및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을 방문하여 조·야의 원로들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새벽 4시 30분에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5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7시 1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10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여 가와무라 다케오 한일친선협회 회장님(전 관방장관)과 호사카 산조 한일친선협회 부회장님을 만났습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한일 관계와 북일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이야기하였고, 일본의 원로 정치인들도 스님의 생각에 적극 동의하며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스님의 생각을 전해주기로 했습니다.

통역은 정토회 해외지부 도쿄모둠 그룹장을 맡고 있는 이화영 님이 해주고, 해외지부 실천활동 팀장인 이주은 님과 도쿄 모둠 그룹장인 김형석 님도 함께 동행하여 운전과 의전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봉사해 준 정토회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미팅을 마친 후 공항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소센지라는 절을 참배했습니다.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밤 9시 15분에 일본을 출발하여 비행기를 타고 태국 방콕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일주일 간 부탄을 방문합니다. 현지 시각으로 새벽 2시 40분에 태국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방콕모둠 황소연 님이 남편과 함께 새벽 1시부터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완나품 공항으로 이동해 쌀국수를 먹고 4시 30분에 부탄 파로 공항으로 가는 수속을 밟았습니다. 내일은 방콕에서 오전 7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부탄 파로 공항으로 이동한 후 하루 종일 차를 타고 트롱사까지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엊그제 대전에서 열린 행복시민 활동 큰 잔치에서 청중들과 즉문즉설을 한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마지막 통화 직후 극단적 선택을 한 아버지, 죄책감을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3년 전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허리 관절 통증으로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무렵에는 마약성 진통제조차 듣지 않아서 거의 잠도 이루지 못했고, 정신과 약까지 복용하셨습니다. 평소에도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는데, 건강이 나빠지면서 사소한 일에도 자주 부딪히셨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아버지와의 갈등을 하소연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부 사이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어선 안 되었는데, 그땐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두 분은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투셨고, 어머니는 또 제게 전화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으니, 제가 직접 통화해 보라고 하시면서요. 당시 저는 아들이 큰 사고를 친 일로 마음이 힘든 상태라 예민해져 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도대체 왜 자꾸 어머니와 다투시냐, 불편하시면 요양원을 가시든가 차라리 저희 집으로 오시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든든한 제 편이셨고, 저도 그런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통화에서는 아버지도 많이 흥분하셔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셨고, 저도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너랑은 싸우고 싶지 않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리고 1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제초제를 드셨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른 채 오빠에게 전화해 ‘이제 부모님을 따로 사시게 해야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제초제를 드셨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119를 부르는 등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날 제가 아버지께 조금만 더 따뜻하게 말씀드렸더라면 아버지가 좀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어머니와 오빠는 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으려고 참회 기도도 하지만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가 가벼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마음 아픈 사연이네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질문자에게는 이 일에 대해 약간의 과대망상이 있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너무 위대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혹시 자신이 부처님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정도 된다고 생각해요?”

“안 그렇습니다.”

“성 프란체스코 교황 정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굉장히 선량하고 위대한 존재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어머니나 오빠는 질문자를 그렇게까지 위대한 존재라고 보지 않아요. 그냥 평범한 시민, 세상에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한 평가가 서로 다른 거예요.

아들이 사고를 치고, 부모님은 싸우고, 어머니는 전화하고, 아버지와 통화하게 된 그 상황에서 질문자가 한 대응이 특별히 잘못된 건 아닙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 그 정도밖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어머니나 오빠도 질문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대신 전화했어도 너처럼 밖에 할 수 없었을 거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질문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집착 때문에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 하며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아버지 편이 되어 위로를 건넬 수 있으려면 질문자가 예수님이나 부처님 수준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약간 과대망상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아니고, 공자님도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같은 일이 다시 벌어져도 결국 그때처럼 밖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버지를 위로했을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어머니나 오빠에게 유사한 일이 생긴다면, 또 같은 식으로밖에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자가 그만큼 위대한 성인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어머니나 오빠가 질문자를 바라볼 때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 정도밖에 못 한다.’라는 전제를 두고 있으니까,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사로잡혀서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아버지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셨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기를 위대한 존재로 설정해 놓고,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한 자신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어머니와 오빠가 보는 ‘나’와 질문자가 생각하는 ‘나’ 사이에 평가가 다른 이유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더라도 질문자는 크게 다르지 않게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처럼 행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부처님이 어떤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갔는데, 상대가 막 쌍욕을 퍼부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빙긋이 웃을 수 있을까요? 사실 쉽지 않죠. 그러나 부처님은 빙긋이 웃으며 상대와 대화를 했습니다. 아침부터 보자마자 욕을 들으면, ‘왜 욕을 하냐?’ 하고 대꾸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상대는 또 ‘네가 아침부터 밥 얻어먹으러 오니까 욕하지!’하고 나올 수 있겠죠. 그러면 ‘내가 언제 밥 달라고 했나. 그냥 집 앞에 서 있었을 뿐인데 왜 욕을 하냐?’ 하면서 말싸움이 붙기 십상이에요. 그 상황에서 빙긋이 웃으며 대화를 이어간다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직 부처님 수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스스로를 마치 부처님 수준쯤 되는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부처님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거예요.

질문자는 부처님이 아닙니다. 물론 부족한 건 맞지만, 이 일이 자기 잘못은 아니라는 걸 먼저 알아야 합니다. 질문자가 정말 부처님 수준이라면, ‘그때 내가 잘못 대응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수준에서는 그 정도 대응은 부족하니까요. 하지만 지금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그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마약성 진통제로도 통증 조절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저라도 안락사를 선택했을 거예요. 저는 한 달 동안 편두통이 지속된 적이 있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막말로 정말 작두로 목을 자르고 싶을 정도였어요.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계속되니까 정말 지옥이 따로 없더라고요. 이렇게 통증이 심하면 사람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보통은 통증이 너무 심하고, 연세도 많고 치료도 어려우면 대부분 모르핀으로 조절합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가면 그런 환자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죽음을 선택하면 자살이 됩니다. 법적으로 허락을 받으면 안락사이지만, 허락을 받지 못하면 자살이 되는 거예요. 자기 목숨인데도 허락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 되는 셈이죠.

아버지는 병원 치료로도 회복 가능성이 없고, 극심한 통증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결심하신 겁니다. 그래서 죽을 준비를 미리 해두신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결정을 마음속으로 이미 하고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자기를 비판하면 그 말이 더 섭섭하게 다가오는 거예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런 결심을 모르고 말씀하신 건데, 아버지는 이미 각오가 서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산다고 저런 말을 하나’ 하고 더 서운하게 받아들이신 거예요. 만약 아버지가 그런 결심을 미리 말했더라면, 어머니도 질문자도 태도가 달라졌을 겁니다. 어머니는 몰랐기 때문에 ‘당신 왜 이러냐’고 말했고, 그 말이 아버지에게는 더 상처가 되었을 겁니다. 이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요. 좋은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일로 어머니를 탓하거나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혹은 스스로 자책해서는 안 됩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봐야 합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이런 일을 막을 방법이 달리 없습니다.

선거할 때 정말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어서 투표하는 사람도 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투표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바람직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생각하면, 저는 안락사 같은 제도도 일정 부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질문자의 아버지 일은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긴 하지만, 이 일을 두고 스스로를 탓하며 오랫동안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18

0/200

순선

스님 존경합니다 감사드립니다

2025-06-19 10:09:28

길상화

감사합니다

2025-06-19 09:54:45

임무진

제 수준을 알아차립니다. 별 것도 아니면서 너무 높게 제 자신을 생각하는 것 같네요. 그래도 꾸준한 수행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을 세웁니다.

2025-06-19 09:43:44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