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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쑥을 캐고,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경주 지역의 지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새벽 수행을 마친 뒤 원고 교정을 보고, 아침 햇살을 따라 산 윗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2주 전에는 봉오리만 맺었던 모란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산 아래는 초록빛 물결이 봄바람에 일렁였습니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자란 쑥은 밭 여기저기에 힘차게 솟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낫을 손에 쥐고 쑥을 베기 시작했습니다.
낫 끝이 쑥쑥 춤을 추듯 움직이더니, 어느새 두 포대가 가득 찼습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이제 그만 갑시다.”
포대를 들고 내려와 창고 앞 그늘에 앉아 쑥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단단한 줄기를 걷어내고 연한 잎만 골라냈습니다. 손끝마다 봄 기운이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스님,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지인들을 찾아뵙고 인사 드리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남은 쑥이 눈에 밟혀 스님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10시 직전까지 쑥을 다듬다가 경주로 출발했습니다.
“그럼 남은 일을 잘 부탁해요.”
“네, 스님 잘 다녀오세요.”
남은 행자들은 쑥떡을 만들기 위해 쑥을 다듬어 삶고, 불린 쌀과 함께 방앗간에 맡겼습니다.
스님은 경주에 도착해 오랜 인연을 맺어온 지인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은 후 흥륜사와 망월사를 참배하고 연등을 달았습니다.
두북 수련원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공동체 지부 대중들과 백일출가 행자들이 쑥을 캐고 있었습니다.
행자들은 칼로 쑥을 한 땀 한 땀 따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낫을 들고 어떻게 쑥을 캐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캐면 얼마 못 캡니다. 한 명이 낫으로 한꺼번에 싹 베고 가면, 그걸 가져와서 여러 명이 다듬으면 많이 캘 수 있어요.”
스님은 낫으로 쑥을 한 번에 싹 베어낸 후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잎이 활짝 핀 것은 모아서 떡을 만들고, 보들보들한 것은 국거리로 쓰면 되고, 줄기는 버리면 됩니다. 이해했어요?”
“네!”
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자 스님은 실내에서 여러 업무들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와 맑은 공기를 마시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어제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제 마음에 끌려 살지 않고 제 스스로 주인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신나게 하지만, 조금이라도 싫어지면 금세 싫은 마음에 사로잡힙니다. 그러고 나서 곧 핑곗거리를 찾아 그만두곤 합니다. 21살 때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도 처음에는 꿈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일하면서 영어도 배우고, 나중에 거기에 정착해서 살아야지!’ 하며 갔는데, 막상 가보니 무섭고 불안해서 열흘 만에 돌아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와 보니 아쉬운 마음에 다시 일본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했는데 이번에는 혼자 밥을 해 먹고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힘들어 또 그만두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큰 포부로 도전했다가 여러 이유로 그만둔 적이 많습니다. 도전은 많이 하는데 끝맺음이 약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점점 약해졌어요.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거 했다가 또 그만두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저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오늘 누군가 이게 좋다고 하면 그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내일 다른 사람이 저게 좋다고 하면 또 그게 좋아 보입니다. 줏대가 없고 갈팡질팡합니다. 이런 저에게 주변 사람들은 ‘철이 없다’, ‘절실하지 않다’, ‘아직 어리다’ 같은 말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점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나이가 좀 들었다면 직설적으로 말씀드리겠지만, 아직 청년이라서 대답하기가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것은 정신 질환입니다. 병원에 가서 상담하고 약을 먹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다른 얘기는 지금 단계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워킹홀리데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오해를 하고 있어요. 그 제도는 이민 정착을 돕기 위해 만든 것도 아니고, 그 나라에 머물며 꿈을 실현하라고 만든 것도 아닙니다. 그냥 구경 한번 하고 돌아가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청년들은 여행할 돈이 부족할 수 있으니 아르바이트를 일부 허용한 것일 뿐, 이민을 돕는 정책이 아닙니다. 그런데 질문자 혼자 현실과 다른 환상적인 기대를 한 거예요. 워킹홀리데이로 그 나라에 정착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헛된 생각입니다. 워킹홀리데이를 간 것이 잘못이 아니라 질문자의 헛된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만 그런 환상만 덜 하면 됩니다.
물론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것이 좋은 점도 있어요. 그 덕분에 캐나다와 일본을 모두 구경하고 왔잖아요. 그것은 엄청나게 좋은 경험입니다. 거기서 꿈을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원래 워킹홀리데이가 그런 프로그램이 아닌데 질문자가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헛된 꿈을 꾼 덕분에 내가 밥을 해 먹는 것도 힘들어하고, 일자리 구하는 것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된 겁니다. 이렇게 반성하면 큰 학습이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지금까지 손해 본 게 하나도 없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내가 좀 허황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 ‘혼자 머릿속으로 꿈만 꾸는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이런 생각을 덜 해야겠다’ 하고 반성하면 됩니다. 첫째, 워킹홀리데이 경험으로 자기 모습을 알게 된 것은 좋은 일입니다. 둘째, 허황한 꿈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구경한 겁니다. 질문자는 정신적으로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뿐, 나머지는 다 괜찮습니다. 그 외에 다른 큰 문제는 없어 보여요.”
“그런데 부모님은 자꾸 제가 문제라고 하세요.”
“정신 질환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그 외에 별 문제는 없어요. 질문자가 그런 허황한 얘기를 주변에 하니까 자꾸 뭐라고 하는 거죠. 예를 들어, 병원에 갔더니 관절에 문제가 있거나, 인대가 늘어났거나, 뼈에 금이 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의사의 처방에 따라 깁스를 하거나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병원에 다니며 3년 간 치료를 받았는데, 이제 더 이상 안 와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병원에 다닐 정도는 아니란 뜻이겠죠. 그런데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 좀 더 다녀야 할 것 같아요. 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진료를 받아보고, 괜찮다고 하면 그만 다녀도 됩니다. ‘내가 허황한 면은 있지만, 병원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이렇게 내 성향을 알고 있으면 돼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할 때 헛된 꿈을 덜 꾸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헛된 꿈을 꾸지 않을 수 있나요?”
“스스로 이 꿈은 헛된 것이라 자각 하면 됩니다. 만약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면, 스스로 ‘이거 헛된 꿈이야’ 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뭘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헛된 꿈이야. 그냥 여기서 좀 놀다 가는 거야’ 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만약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건 헛된 꿈이야. 일단 아르바이트라도 해보자’ 이렇게 접근해야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마음에 들면 좀 더 하고, 근무 기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정규직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게를 차리고 싶다면, 일단 빵집 같은 곳에 취직해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한 열흘 다니다가 그만두면 헛된 꿈을 꾼 것입니다. 1년쯤 다니면 어느 정도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빵을 만드는 법, 직원을 관리하는 법, 가게 위치의 중요성 등을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준비가 되어야 가게를 열 수 있는 거예요. '빵 가게를 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런 생각은 헛된 꿈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장님과 제빵사들을 사귀고, 소비자 성향도 살펴보고, 재료 공급처도 익히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가게를 인수하거나 새로 열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준비하고 나와서 가게를 차려도 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월급을 따지지 말고, 마치 내 가게처럼 3년 정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사장님이 가게를 맡기게 돼요. 직원이 주인처럼 일하면 신뢰가 생기게 되고, 일을 조금씩 넘겨주게 되어 있어요. 보통 자영업 사장님들은 사람들을 못 믿어서 힘들어합니다. 믿을 만한 직원이 생기면 가게 일도, 돈 관리도 맡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게 운영을 배우게 되죠. 이렇게 경험을 쌓아서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자기 가게를 열 수도 있고, 다니던 가게를 인수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가는 것은 허황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가게가 잘 된다더라’, ‘누가 주식을 해서 돈을 벌었다더라’ 이런 얘기만 듣고 ‘나도 해봐야지!’ 하며 뛰어드는 것은 허황한 거예요. 질문자도 이렇게 허황한 면이 있어요. 주식을 해도 평균적으로 보면 잃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나는 수익을 낼 수 있어!’ 이렇게 믿으면 허황한 것입니다. 주식은 손실을 감안하고 놀이처럼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허황한 생각을 하는 겁니다. 세상에서는 재테크라고 포장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은 투기입니다. ‘투기’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돈을 내놓지 않으니까 ‘재테크’라고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면 다 잘된다고 믿는 것도 환상입니다. 물고기를 잡을 때 착한 사람이 잘 잡을까요, 좋은 그물을 가진 사람이 잘 잡을까요, 고기가 어디에 많은지 아는 사람이 잘 잡을까요? 어젯밤에 외도하고 온 사람이든, 가족과 잘 지내고 온 사람이든, 고기는 좋은 그물과 좋은 위치에서 잡는 사람이 더 많이 잡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일은 착한 마음과는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고, 물고기를 잘 잡는 것은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일을 연결해서 봅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텃밭에서 상추와 고수를 수확하고 밭 정리를 한 후, 오후에는 봉화 정토수련원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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