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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57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경전 강의와 불교사회대학 강의가 열리는 날입니다. 서울에는 하루 종일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경전 강의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1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생방송으로 56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금강경 강의 열한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금강경 제23분까지 배웠습니다. 스님은 금강경 제24분부터 제29분까지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금강경 제24분 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은 ‘복과 지혜가 비교할 바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상에 집착하지 않고 행한 보시가 상에 집착한 보시에 비해 그 공덕이 한량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나다’, ‘너다’, ‘우리다’ 하고 구분 짓는 마음 없이 다만 행할 뿐이라면 그 복이 한량없다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아무리 많은 보시를 해도, 눈을 뜨면 다만 꿈에 불과합니다. 꿈에서 깨어 물 한 사발을 보시하더라도 꿈속에서 수미산만 한 칠보로 보시하는 것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공덕이 크다는 겁니다. 꿈은 그냥 꿈속의 일일 뿐입니다. 깨고 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입니다.”
이어서 제25분을 설명한 후 제26분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다음은 제26분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입니다. 여기서는 금강경의 사구게가 나옵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에 색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부처는 깨달은 자를 말합니다. 이 문장은 모양이나 소리, 냄새나 맛, 감촉이나 생각으로 부처를 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생각마저 멈춰야 우리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 그려낸 모든 것은 단지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신비상(法身非相)이라고 한 것입니다.”
다음은 제27분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을 읽고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수보리 여약작시념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설제법단멸 막작시념
須菩提 汝若作是念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說諸法斷滅 莫作是念
하이고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상
何以故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 於法 不說斷滅相
수보리여! 그대가 만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모든 법에 단멸을 말하였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마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는 법에 단멸상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것이 진리다.’ 하고 정해진 법이 있다고 자꾸 생각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 상을 깨뜨리기 위해서 ‘정해진 법이 없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정해진 법이 없고 다만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구나.’ 이렇게 깨달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또 ‘정해진 법이 없다.’라는 데 집착하게 됩니다. ‘정해진 법은 없다.’ 하는 데 집착하면 이제는 ‘진리란 없다.’라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진리란 없어!’ 이런 관점을 일컬어 ‘단견(斷見)’이라고 합니다. 정해진 법이 있다는 생각을 상견(常見)이라고 하고, 정해진 법이 없다는 생각을 단견(斷見)이라고 합니다. ‘있다.’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없다.’라고 해서 상을 깨트렸는데, 이번에는 ‘없다.’라는 데에 집착하니까 ‘없다고 할 수도 없다.’라고 하며 상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있다.’, ‘없다.’ 하는 상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중도입니다. 중도는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을 떠난 길입니다. 이해가 좀 되세요? 표정을 보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것 같네요. (웃음)
정해진 법이 없다고 하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 금강경의 핵심 내용이라고 하니까 이번에는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되느냐?’ 하고 의문이 드는 겁니다. 서울 가는 길을 물으니까 부처님께서 ‘서울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아무렇게나 가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길이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없다.’로 받아들이거나 ‘무수히 많다.’로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무유정법은 ‘없다.’도 아니고, ‘무수히 많다.’도 아니고, 다만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인천 사람에게 서울 가는 길은 동쪽이고, 수원 사람에게 서울 가는 길은 북쪽이듯이, 인연 따라 길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었을 때 ‘없다.’라고 대답해도 안 되고, ‘아무렇게나 가도 된다.’라고 대답해도 안 됩니다. ‘서울 가는 길은 동쪽!’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무단(無斷), 즉 끊어짐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유(有)에 집착하기에 유(有)를 부정했는데, 이번에는 또 무(無)에 집착하기에 무(無)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함에 집착하기에 무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무상에 집착하기에 그 마음을 경계하라고 해서 무단무멸(無斷無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있다.’라고 바라보는 것을 항상 할 상(常) 자를 써서 상견(常見)이라고 합니다. ‘없다.’는 견해를 단견(斷見)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있다.’, ‘없다.’에 자꾸 집착합니다. 우리는 항상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논쟁하는데, 신은 있다고 해도 안 되고, 없다고 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객관적으로 말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이며 인식의 문제입니다. 마음에서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신이 있는 것이고, 마음에서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신이 없는 거예요. 객관적으로 실체를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믿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밖에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컵이 있다고 합시다. ‘있다.’라는 것은 뭘까요? 나한테 컵이 인식되니까 있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이 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우주에서 본다면 여전히 컵이 있을까요? 인식이 안 되면 없어지겠죠. 반대로 내가 점점 작아져서 소립자의 시선에서 이 컵을 보면 있을까요? 인식이 안 되고 허공처럼 보일 겁니다. 그래서 적당한 위치에서 봤을 때 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빛의 파장도 마찬가지예요. 파장이 너무 짧아도 인식할 수 없고, 파장이 너무 길어도 인식할 수 없고, 적당한 범위 안에 있는 파장만 내가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식이 되면 있다고 생각하고, 인식되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있고 없음은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볼 때 이렇다.’, ‘내가 인지하는 바로는 그렇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이렇게 표현해야 맞는 표현입니다.
누군가가 ‘탄핵을 인용해야 합니다.’ 혹은 ‘탄핵을 기각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다면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런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특별히 나쁜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다만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이유는 뭘까요? 서로 얻은 정보가 다르거나, 믿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것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믿음을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상 모든 불행이 단죄하는 마음에서 비롯됐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죽이고, 신을 믿지 않는다고 죽이고, 이런 게 다 단죄입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갈등도 모두 단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북한에 식량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식량을 보낸다고 하면, 우파에서 반대합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고 주장하면서요. 이때 북한에 살고 있는 민간인까지 다 적이 되는 거예요. 북한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말을 적을 도와주자는 뜻으로 해석하여 종북 빨갱이라고 비난합니다. 또한 북한 주민 중에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굶는 건 마찬가지예요. 그들을 도와주면 이번에는 북한 측에서 반대하고 나섭니다. 자기만 살겠다고 민족을 배신하고 넘어간 민족 배신자를 왜 돕느냐고 하면서요. 자신의 관점에서만 보면 이런 식으로 보이는 겁니다. 국경 안에 있든, 국경 밖에 있든, 한국으로 왔든, 중국으로 갔든, 밥을 못 먹는 사람은 그냥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안에 있으면 안에서 돕고, 밖에 있으면 밖에서 도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이념에 좌우되지 않고, 누구든지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돕는다는 원칙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을 짓게 되면 상대를 적대시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모두가 자기 편한 대로 상을 짓습니다. 그래서 자기 입장에서는 다 옳은 겁니다. 우리는 상에 집착하고, 또 그 집착을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기 동네를 떠나봐야만 집착을 놓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한, 아무리 공부하고 생각해도 무의식에서 내가 옳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건 다 놓아도 돈만은 못 놓습니다. 이념에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건 다 놓아도 이념만은 붙잡고 있습니다. 물론 전부를 못 놓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다른 건 다 놓는데 딱 하나 못 놓는 게 있다면 그 집착은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있다.’, ‘없다.’ 하는 생각을 떠나야 합니다. 요즘처럼 국론이 분열되어 있을 때는 ‘옳고 그름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면 ‘옳고 그름이 없으면 내란 동조 세력을 어떻게 처단합니까?’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본래 옳고 그르다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옳고 그름이란 인연을 따라 형성된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고 상대적일 뿐입니다. 모든 게 인연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윤리나 계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율은 가능한 보편성을 갖는 게 좋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연까지 고려하여 생태 윤리에 기반한 인간 윤리를 설정하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이어서 제28분과 29분에 대해 설명을 한 후 강의를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1층 식당으로 이동하여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불교사회대학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11강 강의를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대통령 탄핵 문제를 중도적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시사 특강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붓다는 구도자인가, 혁명가인가?’ 하는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붓다는 구도자인가, 혁명가인가.’입니다. ‘구도자’와 ‘혁명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구도자란, 어떤 사상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이나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기존에 있는 사상이나 사회 질서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학자나 사상가라고 할 수는 있지만 구도자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습니다. 구도자는 기존의 사상과 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즉, 탐구적 자세가 강한 사람을 구도자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혁명가는 전 사회적인 대변혁, 즉 기존의 사회 질서나 시스템 자체를 넘어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한다면 그것은 쿠데타라고 해서 단지 권력 찬탈에 불과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붓다가 살았던 당시의 인도 사회가 어떠했는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배경을 알아야 붓다가 왜 구도자인지 혁명가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도 사회가 얼마나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이 심했는지 말한 후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이런 시대에 붓다의 삶은 먼저 구도자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붓다는 기존의 가르침에 따라서 위대한 자가 된 게 아닙니다. 전통 사상에 의문을 가지고 신흥 사상가로 입문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듭된 탐구로 스스로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구도의 성격이 강합니다. 중도라는 새로운 수행법을 발견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내용이 바로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이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내용입니다.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고 인연을 따라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전통 사상은 항상(恒常)함을 바탕에 두고 나만의 ‘나’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기존의 전통 사상을 뿌리째 흔든 것이 연기법입니다. 중도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다 포용하면서도 새로운 길을 간 것이고, 새로운 길을 가면서도 기존을 포용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형성되었으므로 소멸합니다. 괴로움이란 것도 본래부터 있던 게 아니라 인연을 따라 형성되었으니 인연을 따라 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운명론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던 시대에 일대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게 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에 의해서 정해졌거나, 전생에 의해서 정해졌거나, 아니면 사주팔자로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을 붓다는 모두 부정했습니다. 업식은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변화하고 사라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상적으로는 기존의 가르침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양반이 되고 상놈이 되는 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겁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께서 여러 비유를 들어 이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만약 그 의식을 버리면 존재는 다만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평등하다.’라고 말합니다. 붓다는 이렇게 현실 속에서 계급 차별을 부정했습니다.
그 당시 주인은 출가할 수 있지만 노예는 출가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있어야 출가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노예가 몰래 출가하면 주인은 자신의 재물을 잃은 것이니까 다시 잡아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발사 출신 우파리를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노예였던 수드라의 출가를 인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도 출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석가족 여인 중에는 부모도 죽고 남편도 출가하고 자식도 출가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여자는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해서 어릴 때는 아버지가 주인이고, 결혼하면 남편이 주인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이 주인이었어요. 그래서 여성이 출가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한테 매여 있는 존재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석가족의 여인들이 ‘우리도 출가하겠다.’ 하고 나선 겁니다. 당시 사회적 조건으로 보면 관습적으로는 출가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셨습니다. 출가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2600년 전에 계급 해방과 성 해방을 모두 실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전 사회적으로까지 계급 차별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부처님 법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4개의 강이 있지만 바다에 이르면 하나가 되듯이, 세상에는 4개의 계급이 있지만 내 법 안에서는 하나다.’
이것은 당시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이 극심했던 인도 사회에서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똥꾼 니이다이에게 ‘똥이 묻은 옷을 씻으면 깨끗해지는 것처럼, 천민이라고 하지만 너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본래 깨끗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니이다이는 천민이라는 허위의식을 벗고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문장 하나 못 외우는 바보 주리반특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소란 티끌을 털고 때를 닦는 거잖아요. 부처님은 주리반특에게 ‘티끌을 털고 때를 닦아라.’ 하고 계속 중얼중얼 거리며 반복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러자 주리반특도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각기 수준에 맞게끔 법을 설해서 누구나 깨달음을 얻도록 했습니다.
이런 면모를 보면 부처님은 가히 혁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구도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부처님은 구도자를 넘어서서 당시 사회 질서였던 계급 차별과 성차별을 부정하는 혁명가였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율의 첫 번째가 비폭력입니다. 원하는 것을 힘으로 얻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힘을 동원해서 계급 차별과 성차별을 없애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장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상가라는 범위 안에서 실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부처님이 만든 모델을 확산해서 전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우리가 특별히 다른 것을 더 할 게 없습니다. 그만큼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 평가해도 혁명적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확산하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2600년이 지났다고 해도 발전한 게 없다고 볼 수 있겠죠. 오늘날에도 차별을 받아들이고 산다면 오히려 후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에 집안을 돌보는 하인, 말을 모는 하인, 음식을 만드는 하인 등 수많은 하인을 두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출가하고 나서는 죽을 때까지 하인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신라 시대는 신분 사회이면서 농경 사회였습니다. 당시에 가장 큰 재산은 첫 번째가 땅이고, 두 번째가 노비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포상할 때 땅과 노비를 주곤 했습니다. 양반은 옆에 시봉하는 몸종을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출가한 후 열반하실 때까지 그런 시스템 위에 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출가한 모든 승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신라 시대에는 임금이 절에 땅과 노비를 주면 그것을 기반으로 스님들이 살았습니다. 의상조사도 그랬고, 자장율사도 그랬고, 승려의 대부분이 그 시스템에 기반해서 학문을 연구하고 위대한 학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위대한 학자라고는 할 수 있지만 위대한 구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찰에서도 노동자를 고용해서 스님들이 살고 있습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가 중세에 오면 농노가 되고,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찰마다 가보면 밥 해주는 사람 따로 있고, 운전해 주는 사람이 있고, 청소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남아에 있는 절을 가봐도 절마다 이런 기반 위에 스님들이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기반 위에 절이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 스님들이 사회적 통념과 거리를 둔 것은 그나마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몇 가지를 빼면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기 위해 자원봉사 방식으로 모든 활동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토회는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역할 분담을 해서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은 유지해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규모가 작을 때는 가능한데 규모가 커질수록 어려움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부처님은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뛰어넘은 분이었습니다. 부처님은 2600년 전의 사람이고, 당시 사회는 신분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사회의 시스템에 구애를 받지 않으셨어요.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 있으니까 자본주의 시스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다음 단계, 즉 자본주의 시스템 밖에서 지금의 우리를 평가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조선 시대에 신분제 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평가가 될 겁니다. 만약 정토회가 노동자를 고용해서 어떤 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시대 안에서 조금 좋은 일을 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겠죠. 그런 면에서 붓다는 위대한 구도자이고 동시에 위대한 혁명가라고 할 만하지 않나요?
예수님의 삶도 구도자이면서 동시에 혁명가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회적 저항에 부딪혀서 순교하는 쪽으로 종결이 지어졌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붓다는 근원적 혁명을 했지만, 그 방식이 비폭력적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물론 석가족이 전멸하는 불행을 겪기도 하고, 제자 중에 앙굴리말라와 목갈리나가 살해되는 일을 겪기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붓다 자신이 살해되는 일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후대에 법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중국으로 온 달마 대사가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것 때문에 살해되었고, 2조 혜가대사 역시 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혁명적인 삶을 사신 분이 붓다입니다. 붓다는 신이 아닌 인간이며 인간 가운데 위대한 구도자이고 스승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쓴 책이 ‘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주제로 EBS에서 강의를 했는데, 강의 제목을 ‘혁명가 붓다’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 주제도 ‘혁명가 붓다’가 된 것입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부처님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청중으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즉석에서 세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정토회가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원봉사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전문 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며 이때 중도란 무엇인지 스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 공동체로써 모든 것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가 좀 더 대중적으로 확대를 해나가려면 전문 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원봉사 방식으로는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정토회를 자원봉사 방식으로 유지하면서 전문 인력도 어느 정도 고용하여 대중적인 확대를 도모하는 것이 중도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이라는 건물을 관리하는 것도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어느 정도의 절충안을 내는 것이 중도인가요?”
“해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처럼 큰 건물을 안 지으면 됩니다. 자원봉사자의 힘만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도의 건물만 지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한 수행자들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따로 일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옷은 주워서 입고, 밥은 얻어서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밥을 직접 해서 먹으려니까 밥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옷을 갖춰 입으려니까 옷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큰 건물을 지어서 사니까 건물 관리할 사람이 따로 필요한 거예요.
특히 건물을 지을 때는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필요한 전문 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일시적 고용이라면, 건물을 지은 후 관리하는 인력은 상시적 고용입니다. 둘의 성격이 좀 다릅니다. 상시적 고용은 옛날로 비유하자면 양반이 하인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형식만 바뀌었을 뿐 월급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인력을 고용해서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수행자는 가능하면 세상일을 좀 적게 하고, 또 세상일을 하더라도 자체적으로 관리가 불가능한 일은 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 속에서 효율성을 고려하다 보니 큰 건물을 짓게 되어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건물을 짓기 전까지는 정토회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고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공사하는 중간에 이런저런 찬반 토론 과정이 많았습니다. 결국 자원봉사 방식으로 건물 관리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의견이 모아져서 지금껏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안에도 전문 인력이 필요한 영역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상을 편집해서 발행하는 일이나 건물의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일이 이에 해당합니다. 비전문 인력이 건물 관리를 하다가 화재와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와 함께 정토회 이미지가 동반 추락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애초에 그런 큰 건물을 안 짓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전법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다 보니 좀 큰 건물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제때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해외 곳곳에 학교를 지어서 운영해야 합니다. 학교에 선생님이 필요하니까 월급을 주는 고용 관계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최소한 파트타임으로 고용하거나, 졸업생이 자원봉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고용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다 보니 일을 한 대가로 양식을 주거나 최소한의 생활비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태프들의 경우 학교 일을 마치면 따로 부업을 해야 합니다. 현재는 완전히 자원봉사도 아니면서, 고용 관계도 아닌, 제3의 방식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 방식이 한국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해외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그런데 해외 구호 사업은 자원봉사 방식으로 유지가 안 되면 그만두면 되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이 없어도 정토회는 유지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원칙과 소신을 버린다면 정토회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집니다. 단지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 단체의 하나에 불과해집니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일반 종교 단체에는 보시가 중요합니다. 보시금으로 인력을 고용해서 단체를 운영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보시보다 봉사가 더 중요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있어야 정토회가 운영이 되기 때문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없으면 정토회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건물 관리 자격증이 있는 은퇴한 봉사자들에 의해 건물이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 시스템이 불가능해진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건물의 문을 닫으면 됩니다.
대부분의 사찰에 가보면 절을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신도들이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설거지하고, 자기가 쓴 공간은 자기가 청소해야 합니다. 공양 준비도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찰에 갔을 때처럼 ‘내가 보시까지 했는데 봉사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 정토회에 오래 있기 힘듭니다. 만약 여러분이 봉사를 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희생 위에 내가 법문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은 시작이 어렵지, 이미 시작한 일을 지속하기는 쉽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다릅니다. 처음에 부처님은 기존의 관습과 제도를 뛰어넘어 가히 혁명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갈수록 점점 세속화되어 그 정신이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습니다. 아마 정토회도 시간이 지날수록 원칙을 고수하기보다는 세속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따라 원칙적으로 살기보다는 세상과 타협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도 초기에 정토회가 출발할 때와 비교하면 이미 상당 부분 후퇴한 측면이 있습니다.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변화된 측면도 있지만, 최소한 제가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부처님 당시의 정신을 최대한 이 시대에 구현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수행자라는 정체성을 잃으면 정토회도 돈이나 지위에 현혹되어 점점 세속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권력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왕의 식사 초대에도 응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교가 어떤 나라나 정파, 권력자에게 종속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권력자들의 스승 역할을 하셨지, 그들을 추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인들은 권력자를 추종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정토회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추종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와서 의견을 물으면, 그들이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이야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추종한다면 이미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혁명가로서의 면모와 그것을 계승하고자 하는 정토회의 노력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부처님과 예수님의 삶을 함께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58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정토불교대학 6강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외교 전문가, 사회 인사들과 연달아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정토불교대학 6강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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