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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48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1080배 정진을 하고, 오후에는 방송·영화·연극·예술인들의 모임인 '길벗'에서 주관하여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서는 9시부터 많은 대중이 사시예불에 참석하여 정성껏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시예불을 마친 후 잠시 자리 정돈을 했습니다.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대중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정진을 하기 위해 150여 명의 대중이 자리했습니다. 정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참여 인원이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정진에 임해야 하는지 법문을 했습니다.
“1080배 정진을 시작하고 나서 일곱 번째 정진을 하는 날입니다. 처음에는 참여 인원이 많았고 공간이 너무 빽빽해서 정진을 할 때 쾌적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참여 인원이 점점 줄어들면서 지금은 공간에 여유가 생겨서 정진하기 딱 좋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웃음)
정진은 꾸준히 해야 비로소 ‘정진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0일 정진을 시작했으면 100일 동안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이번 1080배 용맹 정진은 100일 동안 열다섯 번 진행이 되는데, 매주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반짝하고 말죠. 두세 번 하다 그만두고, 다시 시작했다가 또 그만두는 식으로 정진이 불규칙해지기 쉽습니다. 물론 불규칙하게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단 낫습니다. 그러나 정진을 할 때는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절을 하는 정진만 용맹 정진이 아닙니다. 일주일간 잠을 자지 않고 참선하는 것도 용맹 정진이라고 해요. 이러한 용맹 정진이 주는 공덕이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감이 생깁니다. 왜 자신감이 생길까요?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성취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이 있으면 어려움이 닥쳐도 물러나거나 두려워하는 일이 적어집니다. 왜냐하면 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1080배 정진을 하다 보면 한 700배쯤에서 딱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어집니다. 3000배를 매일 하다 보면 2000배쯤에서 죽어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겨요. 즉, 자신을 신뢰하게 됩니다. 반대로 절을 하다가 그만두는 경험을 몇 번 반복하면 자기 자신을 못 믿게 됩니다. ‘나는 해봐야 안 돼....’ 하는 식으로 자꾸 물러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힘든 정진을 꾸준히 해나가면 자신감이 생기고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정진을 하는 가장 큰 공덕입니다.
둘째, 몸이 건강해집니다. 절을 너무 많이 해서 무릎이 상했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욕심을 내서 절을 빨리 하다가 무릎이 상하는 경우입니다. 시간에 쫓겨서 무리하게 하지만 않는다면, 절은 건강에 매우 좋습니다. 제가 대중과 함께 사찰 순례를 하면서 설악산이나 오대산 같은 높은 산에 올라 보면, 절을 하는 사람과 절을 하지 않는 사람을 금방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매일 절을 하는 사람은 조금 힘들더라도 대부분 무리 없이 산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경주 남산만 올라가도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럴 때 제가 ‘108배를 안 하죠?’ 하고 물어보면 딱 맞습니다. 특별히 병이 있거나 다리를 다친 게 아니라면, 매일 108배만 해도 해발 1000m 정도의 산을 오르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이 맑아집니다. 몸이 자꾸 아프면 육체에 끄달리게 되고, 아플까 봐 겁이 나면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육체가 편치 않으면 정진에 큰 장애가 됩니다. 반대로 절하는 대신 참선만 하겠다고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가 있습니다.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절하는 것보다 무릎에 더 안 좋습니다. 또 치질에 걸리기도 쉽습니다.
셋째, 집중력이 생깁니다. 처음 절을 할 때는 온갖 생각과 망상을 피워가며 몸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그러다 점점 몸이 힘들어지면 번뇌가 일어나도 생각이 한쪽으로 집중이 됩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집중이 되든, 적어도 산만하지는 않게 됩니다. (웃음) 그러다가 너무 힘들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미워하는 마음조차 잊고 절만 하게 됩니다. 보통 어떤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을 따라가서 화도 내고 미워하기도 하는데, 절을 할 때는 절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보니 그러한 번뇌도 오래 붙들고 있기 어렵습니다.
명상을 할 때 감정에 너무 끄달려서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을 할 때는 절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감정에 끌려갔다가도 되돌아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산만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수행법이 호흡에 집중하는 수식관입니다. 그런데 산만한 사람은 호흡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만한 사람은 명상보다는 절을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심리가 불안하거나 정신이 분열되는 사람 혹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일수록 명상보다는 절이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하체가 건강하면 정신 질환도 덜 생깁니다. 하체가 약한 사람은 대부분 정신도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절을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 많이 걷고 육체노동을 하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절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절을 하는 것은 수행의 기초 체력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넷째, 절을 많이 하면 믿음이 좀 더 깊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티베트에서는 절을 할 때도 온몸을 바치는 오체투지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력을 하고, 긴 경전도 통째로 외웁니다. 이런 부분들이 믿음의 힘을 키워 주기 때문에 티베트나 부탄 사람들은 신앙심이 굉장히 깊습니다. 다소 종교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비교적 재물을 덜 밝히고, 신앙심과 믿음을 매우 중요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법이 공한 이치라든가 무상이나 무아와 같은 불법의 깊은 뜻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그 믿음 자체는 더 깊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머리로만 불법을 아는 경우는 신앙심이 제일 낮습니다. 심지어 기복 신앙보다도 믿음의 수준이 낮습니다. 종교를 탄압하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것도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종교입니다. 기복 신앙은 숨어서라도 복을 빌며 끝까지 살아남습니다. 중국에서도 공산주의가 들어오면서 종교가 대부분 해체됐는데, 밀교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집 곳곳에 주문을 그려 놓고 언제 어디서든 외우다 보니 문화로 정착했습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방식이냐 하는 문제는 별개지만, 종교를 지키는 것이 자기 문화와 전통을 지키는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듯 어느 정도 믿음이 있어야 꾸준히 수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책만 읽고 머리로 아는 수준으로는 꾸준히 해나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부처님은 108배 절을 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부처님은 절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왜 불교에서는 절을 하도록 하느냐는 것이죠. 그러나 불교가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 내려오면서 정진의 밑바탕에는 체력과 믿음이 있어야 그 가르침이 오래도록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 열심히 하다가도 금방 관두게 됩니다. 절을 많이 한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절을 많이 하면 무엇이든 이겨내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정진의 공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태국이나 미얀마처럼 명상을 많이 하는 수행자들은 대체로 차분합니다. 성질이 덜 급하고 서두르지도 않아요. 반면 절을 하는 문화권에 있는 수행자들은 힘을 얻는 대신에 편안함이 적습니다. 절을 할 때도 욕심내서 하기 때문에 급한 성질이 잘 고쳐지지 않아요. 명상하는 사람들은 동작이 느리고, 화나 짜증을 덜 내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평정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같이 지내 보면 그들은 너무 힘이 없어서 때로는 게을러 보이기도 합니다. 추진력이나 박력도 부족한 편이에요.
한국 불교와 테라밧다 불교의 차이도 여기서 비롯됩니다. 한국 불교는 선(禪)의 가르침을 계승했는데, 힘이 있지만 성질도 급하고 화도 내고, 제자가 수행을 제대로 안 하면 스승이 때리기도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심지어 전쟁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중국 불교에서는 소림권법 같은 무술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완전히 어긋납니다. 물론 부처님도 6년 고행을 통해 엄청난 힘을 지니셨고, 경전에는 마왕과도 싸움으로 표현되는 장면도 나옵니다. 물론 나중에 중도를 깨닫고 방법을 바꾸셨지만요. 어쨌든 그런 경험 덕분에 부처님은 겁이 없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분이기도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너무 안일하게 공부하면 막상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동안 공부한 것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책을 보고 한 공부가 제일 빨리 사라져요. 반대하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공부해야 제대로 연습이 됩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끼어드는 차, 급정거하는 차를 다 겪어 봐야 운전을 잘하게 돼요. 그래서 혼자서 조용히 수행만 하는 고승 중에는 현장에서의 경험이 없는 분도 있습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하며 세상을 떠나서 조용히 지내면 남을 해치지 않는 장점은 있지만, 실제로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힘이 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상만 하게 되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부족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요함과 힘, 두 가지를 잘 배합하는 게 좋습니다.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경전도 공부하고, 선정도 닦아야 합니다. 동시에 절을 통해 기본적인 체력과 힘도 길러야 해요. 현대인은 운동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절은 필수입니다. 절을 통해 체력을 보강하고 힘을 기르면, 머리로만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사변적으로 빠지는 경향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일 최소 108배를 하고, 주말에는 500배 정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체력도 보강이 되고, 약간의 힘도 길러집니다. 정토회는 다양한 사회 실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려면 겁 없이 나서야 합니다. 농사를 짓든, 길거리에서 홍보물을 나누어 주든, 모금을 하든, 이 모든 활동에는 힘과 용기가 필요해요.
앞으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려면 남과 부딪히는 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명상만 하고 복만 빌면 정작 그런 일을 마주했을 때 겁이 나서 행동을 못하게 돼요. 혼자 수행은 잘해도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 한마디 못합니다. 수행자는 밖에 나가서 잘난 체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조차 말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의사를 뚜렷이 밝히고, 어떤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극복해 나갈 줄 알아야 이 사회에 부처님의 법을 전파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힘을 너무 중시해서도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신통력은 못 쓰게 하셨어요. 세상은 돈의 힘, 권력의 힘, 폭력의 힘을 숭상하지만, 불교는 비폭력을 추구합니다.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라 재물이나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정진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지금부터 정진을 해보겠습니다.”
이어서 108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목탁 소리에 맞춰 모두가 우렁차게 염불을 하며 절을 했습니다. 염주가 한 알씩 돌아갈 때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쉼 없이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1080배를 다 하는 데에 3시간이 걸렸습니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사홍서원을 하며 정진을 마쳤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점심 식사 후에는 지속 가능한 정수기를 개발하신 분이 스님을 찾아와 식수가 깨끗하지 못한 지역에 공급할 정수기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정수기는 박지나 JTS 대표가 미얀마 지진 피해 현장에 가지고 갔습니다.
보통은 정기적으로 필터를 교환하고 폐기해야 하는데, 이 정수기는 두 필터를 교대로 바꿔가면서 무한대로 쓸 수 있어서 새 필터가 필요 없는 친환경 시스템이었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용한 필터를 일정 농도의 소금물에 1시간 정도 담갔다 다시 쓸 수 있고, 또 다른 필터는 내용물을 뜨거운 프라이팬에 태워서 다시 쓸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방송·영화·연극·예술인들의 모임인 '길벗'에서 법륜스님 초청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오후 1시부터 연기자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강연에 앞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노희경 작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잘 지냈어요?”
“작품은 초고를 다 썼습니다. 지금은 제작팀이 드라마 촬영을 한창 진행 중입니다.”
배우들은 각자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를 소개한 후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요즘 영화 드라마 업계의 현황이 어떠한지 질문했습니다.
“작년에 듣기로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 편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업계가 많이 어려워졌다고 들었는데, 올해는 어떻습니까?”
배우들과 제작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작품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상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지금은 넷플릭스 시장이 포화 상태입니다. 그로 인해 관계자들이 지금은 일거리가 없어서 갈 데가 없는 거죠. HBO(Home Box Office, Inc.)가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식도 있는데, 중국 시장이 열려야 출구가 생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캐스팅이 되지 않더라도 오디션을 많이 보거나 기회라도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 기회 자체가 많이 줄어들다 보니까 다들 힘들어하는 상황입니다. 배우들도 출연 기회가 없어지고, 제작하는 스테프들도 일거리가 없어지고요.”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 배우 분이 함께 자리해서 스님은 '오징어 게임'을 잠깐 본 기억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놀이를 하다가 규칙을 어기면 ‘너 죽었어!’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런데 '오징어 게임'을 보니까 진짜로 사람을 죽여버리더라고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배우들과 함께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240여 명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사회를 맡은 배우 임세미 님이 오늘 강연회의 취지를 소개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의 걱정을 하시나요? 글이 안 써져서 걱정하고, 시청률이 안 나와서 걱정하고, 이대로 절필할까 봐 걱정하는 작가 분들이 계시죠? 연기를 망칠까 걱정하고, 감독님 눈치 보며 캐스팅 안 될까 봐 걱정하고, 이러다가 연기를 접어야 하나 걱정하는 배우 분들도 계시죠? 스케줄을 놓칠까 봐 걱정하고, 사람 관계 속에서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걱정하는 스테프 분들도 계시죠?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하는 말도 있죠. 정말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없을까요? 오늘 법륜스님 강연에서 그 길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길벗 대표를 맡고 있는 노희경 작가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길벗 대표로 있는 노희경입니다. 제가 길벗을 만들고 나서 초창기에 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깨우침을 얻은 기억이 납니다. 스님께서 물었습니다.
‘천 년 동안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 있다. 일 년도 아니고 백 년도 아니고 무려 천 년이다. 그 어둠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저는 ‘정말 답답하겠다. 그렇게 오래된 어둠을 어떻게 없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촛불 하나를 켜면 된다. 그러면 천 년의 어둠이 한순간에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어둠이 사라지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촛불도 후 불면 한 순간에 꺼지지 않나요?’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스님께서는 ‘다시 촛불을 밝히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부정적인 사고에 길들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서도 누군가는 긴 터널 속에 갇혀 있다고 느끼실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천 년은 아니더라도 3년쯤 동굴 속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촛불을 밝히는 힘’과 ‘촛불이 꺼져도 다시 켤 수 있는 힘’을 얻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이 지난 12월에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원주민 학교와 장애인 학교 10개를 준공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박수갈채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JTS가 세계 곳곳에서 하고 있는 활동을 소개한 후 길벗 모임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해 줄 것을 당부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JTS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를 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구호 단체입니다. 영어로는 ‘Join Together Society’라고 합니다. ‘함께 참여해서 만드는 세상’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서로 함께 하자는 정신에서 출발했습니다. 지원 대상이 누구든 인종·국적·종교·성별에 관계없이 굶주리면 먹어야 하고, 병들면 치료받아야 하며,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30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인도 불가촉천민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으로 시작했으며, 이후에 결핵 환자가 많아지면서 작은 클리닉 병원을 세우게 되었고 점차 마을 개발로 그 활동 범위가 확장되었어요. 지금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두루 지원하고 있으며, 인도와 필리핀에는 각각 30년, 20년 이상 안정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민다나오의 산악 원주민 마을과 분쟁 지역에 학교 설립을 진행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1년에 두세 개도 짓기 어려웠던 것이 이제는 연간 10개 이상 학교를 건립할 수 있을 만큼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주로 오지에 학교를 지어 왔는데, 최근에는 이 지역에서도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 학교를 지어 달라고 요청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이제는 전체 지원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시리아 지진, 파키스탄 홍수, 미얀마 내전 등 재난 지역에 대한 지원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얀마 지진 피해 지역은 내전으로 인해 지원이 매우 어렵지만, 이전부터 태국 국경에서 난민을 돕고 있었고, 방글라데시로 넘어간 로힝야 난민에 대한 지원도 해오고 있어요. 노희경 작가와 배우 조인성 씨는 로힝야 난민촌을 함께 방문한 적이 있고, 한지민 님은 민다나오 산속 원주민 학교에서 일일 교사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길벗 모임은 매년 JTS와 협력해서 거리 모금과 연탄 배달 봉사를 하고 있고, 해외 사업장을 함께 방문하여 홍보 활동도 해오고 있습니다.
JTS는 주로 어린이와 환자를 위해서 지원해 오다가, 최근에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적게 소비하고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모델’을 만들자는 목표를 갖고 부탄에서 지속 가능한 지역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부탄은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입니다. JTS는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주 두 곳 전역을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집 없는 사람에게는 집을 지어 주고, 주거 환경이 열악한 가정에는 부엌, 화장실 등 내부 수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농수로를 만들고, 농작물을 망치는 짐승들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설치하고, 가파르거나 개울이 있는 비포장 도로에는 부분적으로 시멘트 포장을 해서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높이고 있어요. 학교 시설도 함께 개선하고 있습니다. 또 시력이 나쁜 노인들에게는 백내장 수술을, 청력이 나쁜 분에게는 보청기를, 이가 다 빠진 분에게는 틀니를 지원하는 등 주민들의 실생활을 개선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길벗 여러분께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아홉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질문을 하고, 현장에서 즉석 질문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배우가 되고 싶은 꿈과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고민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합리화, 괴리감, 회피 같은 감정을 느끼며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주로 뮤지컬을 많이 했지만,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 있었고, 일반 뮤지컬 오디션 준비에도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호텔 리셉션에서 일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 있고, 그 덕분에 배우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부담이 줄어든 만큼 오디션 준비에 집중할 수 있지만 ‘꿈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다 보니 때로는 연습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예전에 배우 일만 하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안정적인 월급을 받다 보니 배우 활동만으로 다시 생계를 이어갈 용기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돈을 더 모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안정적인 재정과 배우로서의 꿈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요즘은 그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배우라는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병행하고 있는 현실적인 일 사이에서 생기는 합리화, 괴리감, 회피 같은 감정이 들 때 저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계속해서 꿈을 이어가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과 선택이 필요할까요?”
“지금 배우 지망생이에요? 배우예요?”
“작품을 쉰 지는 조금 되었지만 데뷔는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배우의 꿈은 이룬 거잖아요. 그런데도 ‘배우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고 싶다는 뜻인가요?”
“네, 이름을 더 알리고 싶습니다.”
“배우가 되는 꿈은 이미 이루었고, 이제는 유명해지고 싶은 것이 목표인 거네요. 예를 들어, 내가 가게를 여는 것이 꿈이었고 실제로 가게를 열었다면, 그 꿈은 이미 이룬 겁니다. 하지만 그 가게를 더 크게 키우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하겠죠. 질문자는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과 생계를 위한 직업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만약 배우로 데뷔하지 못한 상태였다면 생계를 유지하느라 연습을 제대로 못 해서 데뷔에 실패했다는 고민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이미 배우로 데뷔를 했어요. 지금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유명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유명해지고 싶어한다고 해서 모두가 유명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배우라는 직종은 더 그렇습니다. 밑바닥에서 출발해 유명한 배우가 되기까지 경쟁률이 매우 높습니다.
일반 회사나 공직에서 승진을 한다고 하면, 대체로 일정한 소요 기간과 경쟁률이 있습니다. 승진이 쉽지는 않더라도, 보통 일정한 기간 안에 4:1, 8:1 정도의 경쟁률을 갖게 되죠. 그런데 연예인처럼 인지도를 쌓아야 하는 직종은 다릅니다. 유명해지는 과정이 일정하지 않고, 그 길이 아주 좁고 불확실해요. 어떤 경우는 100:1 이상의 경쟁률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만큼 편차가 큽니다. 질문자가 데뷔한 지 몇 년이 지났다면,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지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재능이 특별히 두드러지는 사람은 캐스팅이 되자마자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며 유명세를 얻기도 하죠. 그런데 질문자는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 이제 남은 일은 뭘까요? 꾸준히 연습하면서 기회를 기다려야 합니다. 배우에게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작품에 캐스팅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흥행하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해 연기를 하다가 눈에 띄면, 그 반응으로 인해 유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회가 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기회는 내 손을 떠난 영역이기 때문에 나는 그 순간을 대비해서 꾸준히 연습을 해 나가야 합니다. 만약 ‘유명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생계와 관련된 일은 전혀 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질문자가 안정된 생활을 더 선호하는 것 같거든요.
질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생활이 궁핍하더라도 유명해질 때까지 각오하고 배우 생활에 전념해 보는 거예요.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라면만 먹고 산다는 생각으로 복권 사듯이 계속 도전해 보는 것이죠. 기회가 생기면 어디서든 연기해 보고, 돈을 못 받아도 조연이든 단역이든 가리지 않고 출연하면서 일단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 보는 겁니다. 그러다 하나라도 큰 반응을 얻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길입니다.
둘째, 연기를 주업이 아닌 부업으로 삼아서 해보는 거예요. 질문자는 일단 배우가 되는 꿈은 이루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으니까 지금처럼 직장을 다니면서 배우로 등록만 해두는 거죠. 연락이 오면 가고, 안 와도 그만입니다. 배우라는 직업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아마추어 중에도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식으로 질문자도 생계를 위한 본업은 가지고, 연기는 파트타임으로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언젠가 좋은 기회가 와서 배우가 다시 주업(主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계를 위한 일을 한다고 해서 배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에 다니거나, 일용직 노동을 하거나, 청소 같은 일을 해보는 경험도 배우를 하는 데 모두 도움이 됩니다. 작가에게는 그런 경험이 글 쓰는 소재가 되듯이, 배우에게도 나중에 그런 배역을 맡게 되었을 때 미리 체험해 보는 연습이 되는 겁니다. 다양한 직업을 직접 경험해 보면서 ‘이건 연기 연습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보는 거죠. 농촌에 가서 농사일도 해보고, 손에 잡히는 일은 뭐든 해 보면서 연기 연습을 하는 겁니다. ‘그래도 내가 배우인데 이렇게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해도 되나?’ 하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이건 실제로 이런 배역을 맡았을 때를 대비한 연습이다.’ 하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어차피 방에서 혼자 연기 연습을 하는 것보다 실제 경험이 훨씬 더 연기 실력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나서 학교 공부를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대화를 나눠 보면 아주 무식하진 않잖아요? 그 이유는 제가 실제로 필요한 공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써먹을지도 모를 공부가 아니라, 당장 요긴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실전에 매우 강한 겁니다. 스스로 필요해서 하는 공부는 대부분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반면에 실제로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공부는 100개를 외워도 기억에 거의 남지 않아요. 여러분이 학교에서 한 시험 공부는 일회용이나 다름없습니다. 시험을 잘 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시험이 끝나면 쓰레기통에 들어가 버리듯 다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과학이나 역사에 대해 물어봐도 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끔은 ‘어떻게 대학을 나왔니?’ 하고 묻기도 해요. 그러면 사람들은 ‘스님, 그렇게 오래전에 배운 것을 어떻게 알아요?’ 하고 대꾸하죠. 중고등학교 수준의 질문인데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공부가 실제의 삶과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현장에서 꼭 필요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연구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것입니다.
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무대에서만 연기해야 연기 연습이 되는 게 아닙니다. ‘생활하는 자체가 연기 연습이다.’ 하는 관점을 가져보세요. 청소도 직접 해 보고, 뭐든지 직접 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 연기 연습도 되고, 돈도 생기니 좋은 일이잖아요. 배우로서 더 유명해지는 것을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만약 제가 배우라면, 세상에 있는 온갖 직업을 배우가 된 것처럼 대하며 해 볼 것 같습니다. 모두 연기 연습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배우로서 유명해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줄어들고, 내 생활도 가벼워집니다. 대박만 좇지 말고 내 삶이 곧 배우이고 동시에 직업도 된다는 관점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배우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참석자들의 마음도 밝고 가벼워졌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추첨을 통해 몇몇 분들에게는 스님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책을 선물했습니다. 한 분 한 분 호명이 될 때마다 모두 환호를 하며 앞으로 나와 선물을 받았습니다.
스님과 노희경 작가는 무대 앞에 서서 강연장 밖으로 나가는 참가자 한 명 한 명에게 합장을 하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참가자가 모두 나가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만 모여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길벗, 파이팅!”
이것으로 서른네 번째 길벗 강연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49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대중과 함께 명상을 하고, 오후에는 행복운동특별지부 리더십 연수에 온라인으로 참석하여 활동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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