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봄을 맞이하여 나무를 심고, 새해 들어 처음으로 은사 스님인 불심도문 큰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작업복을 입고 산 윗 밭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봄햇살을 맞으며 농사일을 하는 날입니다.
곳곳에 꽃이 활짝 피어서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길가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산과 들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아주 좋은 봄날입니다.
스님은 산을 오르는 길에 대나무를 하나 베어 지팡이를 뚝딱 만들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산길을 올랐습니다. 진달래가 아침 햇살을 머금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춥더니 봄이 오긴 왔네요.”
스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오늘은 거사님들과 함께 산에 나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스님과 함께 나무를 심기 위해 아침부터 대구경북, 부산울산 두 지부에서 거사님들 10명이 모였습니다. 스님이 산에 도착하자 이미 몇몇 거사님들은 덩굴로 뒤덮인 곳에서 덩굴과 잔가지를 쳐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다들 일찍 나오셨네요.”
작년 식목일에도 함께 나무를 심었던 거사님들이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스님은 거사님들과 인사를 나눈 후 나무 심기를 시작했습니다.
산 위에는 총 일곱 개의 평평한 땅이 있습니다. 모두 덩굴로 뒤덮인 정글 같은 땅이었는데 스님과 거사님들의 손길로 밭이 되고 과수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래쪽 1단지와 2단지는 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 3단지에는 나무 60여 그루를 심었고, 4단지와 5단지에는 8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몇몇 나무에서는 이제 꽃이 피고 싹이 트고 있습니다. 반대편에는 작년에 잔가지를 쳐내어 새로 정비한 1단지와 2단지가 있습니다. 옛날에 뽕나무 밭이었는데 누에를 키우지 않으면서 밭이 산이 되었다가 다시 밭으로 일구어가는 중입니다.
작년에 한 번 나무를 심었던 곳인데 묘목이 많이 죽었습니다. 빈자리마다 보식을 하는 방식으로 묘목을 하나씩 심어 나갔습니다.
먼저 3단지에 올라가서 매실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묘목의 뿌리를 잘 펴서 곧게 세운 후 파낸 흙으로 구덩이의 3분의 2 가량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긁어온 부엽토를 덮어주었습니다. 스님이 나무 심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릴 수 있게 둔턱을 주위에 쌓고, 원을 크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운 흙을 조금씩 넣고 손과 발로 여러 차례 다져 주었습니다.
“땅을 다져줄 때는 나무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다져주어야 해요.”
이번에는 4단지로 올라가서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어서 5단지에 올라가서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5단지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보자 시원한 봄바람이 이마에 고인 땀을 금방 식혀 주었습니다.
다음은 새로 정비한 우측 2단지로 가서 나무를 심었습니다. 거사님들이 구덩이를 이미 파 놓아서 나무를 금방 심을 수 있었습니다. 밤나무 세 그루를 차례대로 심었습니다.
구덩이가 하나씩 메워져 나갔습니다.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는 사람을 피해 폴짝폴짝 뛰어다녔습니다.
1단지로 내려가 감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무 심기를 마쳤습니다. 거사님들이 심은 밤나무 세 그루까지 총 열 그루를 심었습니다.
거사님들은 덩굴과 잔가지, 잡목 쳐내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무 심기를 마친 스님도 합류하여 잡목을 제거했습니다.
곳곳에 잡목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낫으로 잡목을 하나씩 쳐냈습니다. 꼬챙이처럼 올라온 잡목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낫으로 베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스님이 낫과 톱으로 잔가지를 자르고 있으니 거사님 한 분이 스님에게 나뭇가지 자르는 전기 공구를 건네주었습니다.
“스님, 이거 써보세요. 더 빨리 자를 수 있어요.”
전기 공구를 사용하니 일하기가 쉽고 속도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 그 많던 잡목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잠시 참을 먹으며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을 먹고 다시 힘을 내어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잔가지를 자르면서 산속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난 두릅, 오가피, 엄나무, 원추리나물 등 다양한 산나물을 만났습니다.
한참 울력을 하다 문득 스님은 잘려나간 얇은 가지를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칼로 껍질을 벗기고, 입구를 다듬고, 구멍을 뚫었습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불자, ‘뿌우’하고 굵은 소리가 나왔습니다. 스님은 크기를 달리해서 피리 세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가지 굵기에 따라 음높이가 달랐습니다.
재미난 피리 소리가 숲 속을 스치고 흘렀습니다. 순간, 울력하던 사람들도 잠시 고개를 들고 웃었습니다.
나무가 쓰러져서 길을 막고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울력을 마칠 무렵 스님과 거사님들이 전부 붙어서 쓰러진 나무를 옆으로 옮기고 넝쿨을 쳐내서 원래 다니던 길을 복원했습니다.
잡목이 무성한 수풀 사이로 길이 환하게 드러났습니다.
"자, 이제 정리하고 갑시다."
사용한 연장을 챙겨 산을 내려와 복사꽃이 예쁘게 핀 나무 아래에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각자 돌아가며 오늘 함께 일하며 느낀 점을 가볍게 이야기했습니다.
“스님께서 올해 처음으로 두북 수련원에 오셔서 반가웠고요. 공기 맑은 곳에서 함께 일하니 더 기뻤습니다.”
“오늘 스님과 함께 일해서 영광이었고, 일을 마치고 나니까 과수원이 훤해져서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나무를 심으면서 산불을 끄기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불에 탄 나무만큼 다시 나무를 심고 가꾸어야 하니까요.”
“바람이 불고, 햇빛이 따스해서 일하기가 참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며칠 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명이 힘을 합하니까 금방이네요. 일을 마치고 나니 개운합니다.”
“나무를 심을 때도 같이 했기 때문에 오늘 다시 와서 가꾸는 일을 하니까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들 공기 맑은 곳에서 재미있게 잘 놀았다며 함박 웃음을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거의 4개월 만에 두북 수련원에 온 것 같아요. 백일법문 중이어서 일정을 안 잡으려고 하다가 도문 큰스님을 뵌 지 오래되어서 큰스님께 인사도 드릴 겸 해서 내려왔습니다. 온 김에 농사일도 좀 하려고 시간을 내었습니다. 작년에 같이 나무를 심었던 분들이 다시 와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노동을 했어요. 연초에 부탄과 인도를 다녀오느라 농사일에 거의 손을 못 대고 있다가 오랜만에 땀을 흘리니까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울에서 지낼 때는 계속 겨울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봄이 벌써 와있네요. 봄이 왔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나무 심기 울력을 모두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스님은 두북수련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수련원에서는 오전에 나비장터가 열렸고, 지금은 봉사자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수련원 안팎으로 농사짓는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2시 30분이 되어 은사 스님인 불심도문 큰스님을 뵙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이동하여 오후 4시에 큰스님이 머물고 계신 중생사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큰스님은 빨리어로 삼귀의를 염송 하셨습니다.
삼배가 끝나자 큰스님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큰스님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실 것을 당부했습니다.
“아이고, 법륜스님처럼 바쁜 분이 없는데 저처럼 쓸모없는 노인네를 보러 이렇게 시간을 내게 해서 미안합니다. 저한테 인사하러 오지 않아도 돼요. 전 세계를 다니며 법문 하는 것이 도문 법사에게 인사하는 겁니다. 제가 이제 몸을 바꿀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연장이 되고 있어서 법륜스님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네요.”
“아닙니다. 큰스님께서 전해주신 법을 저희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전하고 있고요. 큰스님께서 지으신 죽림정사에도 지금 용성기념관을 새로 짓고 있습니다. 천룡사도 복원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요. 그래서 큰스님께서 천룡사가 다 복원이 되는 것을 보시려면 조금 더 생명을 연장하셔야 합니다.”
“아이고, 계속 받기만 하니까 미안해서 그렇지. 다른 제자들은 유학도 시켜주고 그랬지만, 법륜스님은 유학 한번 못 시켜주었는데 이렇게 많은 일을 해주니까 미안할 수밖에 없죠. 내가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실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다 보니까 성지마다 땅을 구입하는 데에 돈을 다 써버렸어요. 지금 제일 후회가 되는 것은 땅은 절반만 사고 나머지는 법륜스님을 주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한 겁니다.”
“땅을 사놓은 게 잘하신 겁니다. 지금은 돈으로도 그 땅을 못 사요. 부모가 젊을 때는 부모가 자식을 돕지만, 자식이 다 크면 자식이 부모를 돕지 누가 부모가 자식을 돕습니까? 그러니 큰스님은 옥체 보존만 잘하시고 계세요. 성지를 복원하는 나머지 일들은 저희가 다 하겠습니다.”
큰스님의 건강이 예전보다 조금 나아 보였습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하며 서류 뭉치를 건넸습니다.
“용성조사님이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그에 필요한 자금을 전부 준비해서 지원을 했는데, 그 내용에 대해 얼마 전 인터뷰를 하고 왔어요. 3.1 운동과 국내외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뿐만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도 용성조사님이 많은 역할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 내용을 지금 나눠줄 테니까 꼭 한번 보세요.”
스님은 얼마 전 밝혀진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 KBS 피디가 일본에 가서 윤봉길 의사가 재판장에서 심문받은 기록을 전부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중에 ‘너의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불교입니다’ 하고 대답한 기록이 새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스님이 늘 강조했듯이 윤봉길 의사가 용성조사님으로부터 삼귀의 오계를 받았다는 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당당하게 그 사실을 말씀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대화를 나눈 후 큰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중생사를 나왔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되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스님은 행자들을 데리고 경주 시내로 밤 산책을 나갔습니다.
“시기를 잘 맞춰 왔어요. 경주에 벚꽃이 만발했으니까 잠깐 산책하고 옵시다.”
가장 먼저 김유신 장군묘로 향했습니다. 김유신 장군묘로 가는 길인 흥무로는 이미 벚꽃이 터널을 이루며 피어 있어, 차가 지나가는 내내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경주에서 손꼽히는 벚꽃 명소답게 봄빛이 온 길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미추왕릉으로 향했습니다. 담장 너머로 솟아오른 거대한 벚나무들이 마치 하얀 팝콘처럼 피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꽃잎이 흩날리며, 시간마저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문단지로 가보았습니다. 이곳 역시 벚꽃이 만개해 길가를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이 봄의 절정을 수놓고 있었습니다. 하얀 벚꽃을 보니 마음까지 환해지는 듯했습니다.
“오늘 구경 잘했어요?”
“네, 감사합니다.”
한 시간 남짓 산책을 한 후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오후에는 동네 어르신의 병문안을 다녀온 후, 저녁에는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8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선택하고 나면 늘 찜찜합니다. 선택 장애를 어떻게 치료하죠?
“저는 선택 장애가 있습니다. 한 가지를 선택해서 그냥 개운하게 하면 될텐데 늘 60대 40으로 찜찜함이 있습니다. 어떤 걸 선택할 때 ‘아! 이거 해야겠다!’ 하면서도 40퍼센트의 찝찝함이 있어서 ‘그래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런 성격 때문인지 망설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작년에 백일출가를 하여 절에서 몇 달 살아봤습니다. 이제 다시 밖에 나와보니 제가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녀온 효과가 진짜 있네!’ 하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쪽에는 또 직장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취직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백일법문이 시작되었고, 참여해 보니 또 너무 좋았습니다. ‘취업 준비는 나머지 시간에 하고 법문을 열심히 들어야겠다!’ 하다가도 ‘혹시 이력서를 냈다가 취직이 되면 백일법문 못 듣는데 어떻게 하지?’ 하며 고민이 됩니다. 예전 직장에 다닐 때는 그 일이 너무 지겨웠는데, 지금은 새로 좀 재미있는 일을 찾아보면서도 ‘원래 내가 하던 일을 하면 경력도 살리고 직급을 높일 수도 있을 텐데!’, ‘내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맞나?’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질문도 한 시간 전에는 ‘할까? 말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질문을 드리면 왠지 ‘그런 걸 왜 물어? 그냥 아무거나 선택하고 후회하면 되지!’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서 걱정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질문했으니 혼나더라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여쭙습니다.”
“제가 혼낼 걸 예상하셨다니 혼내면 안 되겠네요. (웃음)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좀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너무 잔머리를 굴린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하면서 너무 작은 이해를 따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선 가게에 갔다고 합시다. 그냥 생선을 사려고 갔는데 다른 해산물이 없고 생선만 있었다면 아무런 번뇌 없이 그냥 사 왔을 거예요. 그런데 가보니 가게에 오징어도 있고 조개도 있고 다른 좋아하는 해산물들이 많아요. 여러 가지를 사기에는 가진 돈이 부족하고 하나만 사려니까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저것도 맛있어 보여요. 질문자는 지금 그런 상태인 겁니다.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는 뿌리는 욕심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선택에 따른 그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돈을 빌릴까? 말까?’ 이렇게 고민이 될 때,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빌리지 않으면 생활이 궁핍하고, 빌리려고 마음먹으면 나중에 갚을 생각에 힘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망설이게 되는 겁니다. 돈을 빌리겠다면 기꺼이 갚을 생각을 해야 하고, 갚기 싫으면 빌리고 싶어도 빌리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갈치를 사겠다면 오징어를 포기해야 하고, 오징어를 사겠다면 갈치를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서 가장 서민 음식이라는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짬뽕을 먹으려니까 짜장면이 아쉽고, 짜장면을 먹으려니까 짬뽕이 아쉬워요. 그래서 누군가 그릇 가운데가 나눠진 짬짜면을 만들었죠. 한쪽에는 짬뽕을 담고 다른 쪽에는 짜장면을 담아서 파는 겁니다. 누군가 이런 인간의 심리를 이해해서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이처럼 질문자도 항상 욕심을 내고 있어요. 노력은 적게 들이고 성과는 많이 낼 수 있는 효율을 너무 따지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좋지만, 잔머리를 너무 굴리면 결정 장애를 겪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런 자신을 늘 자각하면서 선택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계속해야 합니다. 선택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백일법문과 취직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기 어려우면 동전을 던져서 나오는 대로 그냥 해버리면 됩니다. 취직이 되면 백일법문을 못 듣는 것이고, 취직이 안 되면 백일법문을 듣는 겁니다.
보통 어디에 원서를 내고 나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게 되죠. 그런데 이렇게 백일법문이 있을 때는 조건이 아주 좋습니다. 직장에 원서를 내어놓은 상태에서 취직이 되면 출근하면 되고, 취직이 안 되면 백일법문을 들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일법문은 번뇌의 원인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히 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일부러 직장도 버리고 백일법문을 듣는 사람들도 있는데, 취직 안 되는 김에 백일법문을 듣는 거예요. 배를 타고 가다가 물에 빠졌다면 그 참에 진주조개를 줍는 겁니다. 바다에 일부러 뛰어드는 사람도 있는데 사고가 난 김에 진주를 케오는 거죠. 이걸 수행이라고 합니다.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있죠? 고생은 돈 주고 사서라도 할 가치가 있는데, 어려움이 생겼다고 그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고, 돈도 안 들이고 저절로 고생할 일이 생겼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것이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불교 용어로 표현하면 ‘수처작주’라고 해요. 내가 처한 곳마다 주인 된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절에 가면 수행자로서의 주인 역할을 하고, 회사에 가면 직원으로서의 주인 역할을 하는 겁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손님이나 구경꾼 같은 자세가 아니라 주인 된 자세로 역할을 하는 거예요. 달리 표현하면 ‘똥을 거름이 되게 한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똥을 단지 버릴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거름이네!’라는 관점에서 쓰는 거예요. 이렇게 모든 존재는 ‘이것은 똥이다’, ‘이것은 오물이다’, ‘이것은 거름이다’ 하고 원래 이렇게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라고 하고, 똥을 밭에 뿌리면 거름이라고 합니다. 처한 위치에 따라 역할이 정해지는 거예요.
질문자는 먼저 직장에 원서를 내시는 게 좋겠어요. 취직이 되면 다니고, 취직이 안 되면 백일법문을 듣는 겁니다. 어느 것을 할지 고민하지 않고 둘 다 신청하는 거예요. 신청했는데 취직이 되면 직장을 우선 다니면 되고, 취직이 안 되면 백일법문을 계속 들으면 되고, 법문을 듣더라도 중간에 취직이 되면 회사에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집착을 하죠. ‘백일법문을 신청했으니 취직이 되어도 끝까지 들어야 해. 갈 수 없어!’ 이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둘 중 좋은 대로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걱정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입니다. ‘취직이 되면 직장에 다닐 수 있어서 좋고, 취직이 안 되면 백일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게 필요해요.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관점을 바꾸기가 좀 어려울 것 같아 보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차선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한 뒤에 무조건 딱 책임을 지는 걸 일단 해보시면 좋겠어요. 망설이지 마시고요. ‘이걸 할까? 저걸 할까?’ 고민이 되는 것은 둘 다 비슷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어떤 걸 해도 괜찮습니다. 남자를 사귀어도 ‘이 남자가 좋을까? 저 남자가 좋을까?’ 둘 중에 고민이 되면 아무 남자나 우선 만나보면 됩니다. 이 남자가 마음에 별로 들지 않으면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됩니다. 다른 남자가 이미 다른 데 가버렸으면 또 다른 남자를 만나면 돼요. 망설이는 것보다는 이게 나아요. 결정하겠다면 둘 중의 하나를 잡거나, 아니면 둘 다 버리면 돼요. 둘을 두고 늘 견주어 보기만 하면 후회만 생겨요.”
“제가 이런 상황이 좀 습관처럼 반복되는 것 같아요.”
“습관을 고치려면 이렇게 몇 번 해보시면 돼요. 오늘부터 어느 정도 횟수를 정해놓고 망설일 때마다 무조건 바로 하나를 결정해 버리는 겁니다. 그에 따른 손실은 받아들이고요. 이렇게 한 열 번 정도 해보면 반쯤은 고쳐질 거예요. 무조건 딱 선택해서 해보면 ‘이거나 저거나 비슷하네!’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망설임이 많이 줄어들어요.”
“결정을 할 때마다 후회나 미련 같은 게 생깁니다. ‘이러면 안 돼’ 하면서도, 또 ‘빨리 결정해 버려야지’ 하기도 하고,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질문자가 결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제가 차선으로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드린 거거든요.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면 그냥 두고 살면 됩니다. 아무 문제없어요. 저 같은 경우는 결정해야 할 일이 수백, 수천 가지나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두고 살아요. 그냥 두면 어느 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이 일은 이렇게 하자!’ 하고 결정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다른 생각이 없는데 주변에서 ‘이 일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고 건의를 해서 결정할 때도 있습니다.
쉽게 비유를 들어 볼게요. ‘두 남자 중에 어느 남자를 선택할까?’ 하고 고민이 될 때는 결정하지 않고 그냥 두고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한 남자가 저절로 떠나면서 결정이 날 수도 있고, 어떤 남자가 딱 달라붙어서 결정이 날 수도 있습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마음이 한 남자에게 딱 꽂힐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둘 다 별거 아니네!’ 이렇게 결정이 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결정이 안 될 때는 그냥 두면 됩니다. 질문자는 ‘결정을 꼭 해야 해!’라는 강박관념이 있는 거예요. 결정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당장 결정해야 하는데 빨리 결정이 안 되는 게 문제라면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한 가지를 무조건 해버리면 됩니다. 도저히 결정이 안 된다면 그냥 두어도 됩니다. 그러면 세상은 내가 결정하지 않아도 저절로 결정이 되도록 되어 있어요. ‘혼자 살까? 결혼해서 살까?’ 이런 것도 결정할 필요가 없어요. 자기가 결정하고 싶으면 결정하면 되고, 그냥 두어도 저절로 결정이 됩니다. 어떤 남자가 딱 달라붙어서 결혼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혼자 사는 겁니다. 그래서 망설여질 때는 그냥 두면 됩니다. 어느 쪽으로든 저절로 결정이 나게 되어 있어요. 질문자는 특별히 지혜로워 보이지 않는데, 왜 그렇게 잔머리를 굴리세요? 잘 모르겠으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제가 잘 살다가도 가끔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면서 과거의 한순간에 딱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후회나 자책을 하는 게 제 습관인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사로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그냥 두면 될까요?”
“질문자 하고는 오늘 밤새도록 얘기해도 끝이 안 날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저게 문제이고, 저렇게 하면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내게 이런 미련이 생기는구나!’ 하고 그냥 알면 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다만 알아차릴 뿐이에요. 해결책이 생기면 그때 행동하면 됩니다. ‘지금 내게 후회하는 마음이 있구나!’ 하면서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후회하는 마음이 왜 들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그건 심리학자가 연구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잘 때 어떤 꿈을 꾸었으면 ‘이런 꿈을 꾸었구나!’ 하고 거기서 끝내야 합니다. 꿈은 현실이 아니에요. 그래서 잠에서 깨면 ‘꿈이었구나! 깜빡 속을 뻔했다!’ 하고 끝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꿈은 뭐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거기에 어떤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꿈은 허황한 것입니다. 수행자라면 ‘어, 꿈이네!’ 하고 끝내야 합니다. 그게 헛것임을 알면 해석할 필요가 없잖아요. 꿈에 대해 자꾸 해석하려는 이유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해서 그렇습니다. 분석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라 사색입니다. ‘아! 꿈이었구나!’ 하고 끝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32
디또
오늘도 많이 배워갑니다. 고맙습니다.
2025-04-02 14:18:14
임무진
수행은 다만 마음을 알아차릴 뿐이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생각하는 건 수행이 아니라 사색이다'라는 말씀 와닿습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이 마음이 어디에서 왔나 하고 자꾸 생각을 해서 사로잡히는데, 그냥 마음만 알아차려야겠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