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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하죠?” - 스님의하루

스님의하루

2025.3.8. 백일법문 20일째, 1080배 정진, 발심행자 수계식
“수행을 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하죠?”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20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지난 일주일 동안 들은 법문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정진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서는 9시부터 많은 대중들이 사시예불에 참석하여 정성껏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시예불을 마친 후 잠시 자리 정돈을 했습니다. 정진을 하기 위해 24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대중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정진에 임해야 하는지 법문을 했습니다.

“정진은 쉼 없이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근본 불교의 팔정도(八正道)에서 말하는 여덟 가지 수행법 중 하나도 정진이고, 대승보살의 수행법인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여섯 가지 수행법 중 하나도 정진입니다. 그만큼 수행을 쉬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진은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법(善法)과 악법(惡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선과 악을 나누는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악(惡)이라 하고 도움이 되는 요소를 선(善)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방해 요소는 게으름입니다. 해태(懈怠)와 방일(放逸)이라는 나태함, 게으름, 무기력함을 통칭하여 악법(惡法)이라고 합니다.

수행을 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힐 때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가 지닌 업식(業識)은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된 습관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이 나도 모르게 자동화되어 그냥 일어나 버립니다. 그런데 그 행동이 나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 업식과 습관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고치기 쉽지 않습니다. 업식의 결과를 보고 ‘이제는 고쳐야겠다.’ 하고 각오하고 결심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다시 본래의 습관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정진을 하다가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러다가 다치는 것이 아닐까?’, ‘병이 나는 것은 아닐까?’, ‘죽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정진을 멈추게 됩니다. 그래서 업식을 소멸시키고자 하면 ‘죽어도 좋다!’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죽음을 각오한 대결정심(大決定心)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각오와 결심만으로는 업식을 소멸시키기 어렵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기 싫을 때도 있고,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처음의 마음과는 다르게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등산을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처음 출발할 때는 평지를 걸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즐겁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개울과 숲을 지나 가파른 비탈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어 물러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고 능선까지 올라가면 등산하는 맛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다시 출발하면 또다시 힘이 들어서 후회하는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수행을 하면서도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겪게 됩니다. 이럴 때 그 마음을 따라다니면 번뇌가 생깁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원래 이렇게 저렇게 일어나는 거야.’ 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원래 가기로 한 길을 가야 합니다. 힘들어도 가고, 편해도 가고, 가팔라도 가고, 기어오르기도 하고, 밧줄을 타면서라도 그냥 가야 합니다.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이르게 됩니다. 정상에 도달하고 나면 오는 길이 가팔랐건, 개울이 있었건, 그런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산에 오르는 과정에서는 힘들기 때문에 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일단 정상에 오르면 지난 과정은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힘이 드니까 이런 핑계가 생기는구나

정진도 마찬가지입니다. 1080배를 하면서 엎드렸다가 일어섰다가를 반복하게 되면 처음에는 가볍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힘이 들면 갖가지 번뇌가 생깁니다. 그럴 때 번뇌에 끌려갈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직시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힘이 드니까 이런 생각도 드는구나.’, ‘이런 핑계도 생기는구나.’ 이렇게 직시하면 번뇌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우리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여러 가지 감정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협박하면서 온갖 방해를 합니다. 그럴 때 그런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80배 절을 하면 하기로 한 것을 꾸준히 해보는 연습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힘들다는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한 번 엎드렸다가 한 번 일어나고, 한 번 엎드렸다가 한 번 일어나 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갑자기 울분이 치솟으면서 온갖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080배를 마치고 나면 절을 하면서 일어났던 번뇌가 모두 꿈 같이 느껴집니다. 번뇌가 일어난 순간 순간에는 큰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됩니다. 그러니 ‘비바람이 몰아쳐도 지나가리라.’ 하고 생각하면서 순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을 정진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도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이렇게 말씀하시며 정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

불교 수행법으로는 보통 108배 정진을 많이 합니다. 108배 정진은 108개의 번뇌를 없앤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불교에서는 ‘사고(四苦)’라 일컫습니다. 이 네 가지 고통에 정신적인 네 가지 고통을 더한 것이 ‘팔고(八苦)’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미운 사람과 만나는 고통,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고통, 변하지 않기를 원하는데 변해 버려서 생기는 고통을 말합니다. 여기에 초조, 불안, 미움, 원망, 교만, 번뇌 등과 같은 괴로움을 더 세분화하여 나누면 108가지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일으키는 번뇌의 종류를 옛사람들은 108가지나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108 번뇌라고 합니다. 하지만 번뇌는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하여 팔만사천 번뇌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108배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입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할 때마다 그런 번뇌가 사라지기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1080배는 그런 108배를 10번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미에서 절하는 것은 자신의 번뇌로부터 자유롭기 위함입니다. 종교적인 의미로는 부처님께 경배를 올리는 뜻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존경하여 그분의 발 아래 엎드리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 분의 부처님에게 절을 하거나, 만 분의 부처님에게 절을 한다는 의미로 천배나 만배를 하기도 합니다.

절을 하는 이유가 어떻든 일단 절을 하면 힘이 듭니다. 힘이 들면 무의식 세계에 숨겨져 있던 번뇌가 많이 올라오게 됩니다. 그러니 절을 하는 것이 좀 힘이 들더라도 그때 일어나는 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그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꾸준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108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목탁 소리에 맞춰 모두가 우렁차게 염불을 하며 절을 했습니다. 염주가 한 알씩 돌아갈 때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쉼 없이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1080배를 다 하는 데에 3시간이 걸렸습니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사홍서원을 하며 정진을 마쳤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3시부터는 지난 1년 동안 전법회원 교육을 수료한 분들을 위해 발심행자 수계식을 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과 전국 으뜸절, 그리고 온라인에서 총 156명의 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타종, 예불, 반야심경을 하며 수계식을 시작했습니다.

지부별 환영 영상과 경과 보고 영상을 함께 본 후 수계자를 대표하여 김소영 님이 수행담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지인의 소개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였고, 전법회원 교육까지 추천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행을 하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내가 참 많이 힘들었구나.’ 하고 내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옳다며 나만 앞세웠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참회의 절을 하며 많이 울기도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많이 싸워서 울면서 학교 갔다는 이야기를 열 번도 넘게 얘기했던 남편의 모습, 집안 어르신들과 아버지를 뒷바라지하고 일찍이 장례식을 치러 드려야 했던 그의 무거운 어깨가 그제야 제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상대의 무거운 책임감과 외로움이 느껴지자 화가 난다고 한 달이고 석 달이고 입을 다문 채 상대를 투명인간 취급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상대 탓만 하며 미워했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남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조금씩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돕는이를 할 때는 처음에 내 할 일에만 급급하여 학생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익숙해지자 학생들이 가진 각자의 괴로움을 알 수 있었고, 가벼움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같이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법문을 다시 듣고 수행 연습을 하면서 놓치게 되는 수행의 관점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저는 예전보다 괴로움을 빨리 알아차리고 그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빠져 있던 과거의 내 모습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자유롭고 행복한 삶으로 금방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도반들과 함께 이 길을 꾸준히 나아가고자 합니다.”

진솔한 수행 소감에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신규 발심행자들이 삼배의 예로 법을 청하자, 스님은 삼귀의와 오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후 앞으로 발심행자가 되면 어떤 실천 덕목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과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이것을 해탈과 열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는 나도 부처님처럼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수행자’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불자란 부처님의 제자인 동시에 수행자를 의미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서 부처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을 보디사트바, 즉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보살은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를 의미합니다.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자를 말합니다. 줄여서 ‘발심한 자’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이 계를 받고 발심행자가 되는 자리입니다. 오늘로써 초발심 수행자인 보디사트바가 되는 것입니다.

발심행자 수계식, 계를 받고 발심한 자가 되는 자리

불자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자입니다. 수행자가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가치인 계율을 포기한다면 수행자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세상에는 각 지역이나 단체마다 나름의 규칙과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서로 다릅니다. 그렇다면 인류 보편적으로 누구나 다 동의할 만한 가치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보편성을 중요시하셨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그것이 바른 것인가’ 하는 것과 ‘그것이 두루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 두 가지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보편 타당하다.’고 말합니다. 보편적이고 타당한 깨달음 가운데 가장 높은 깨달음을 인도말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계를 받아 수행자가 된 사람은 보편 타당한 다섯 가지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즉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성적으로 남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거짓말, 욕설 등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중독성 있는 물질에 취해서 남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불교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계율입니다. 이것을 ‘오계’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과 있으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계를 지키면 사람 관계에서 두려움과 불안함이 사라집니다. 적어도 저 사람이 계를 받은 수행자라면, 사귈 때 폭행할 일이 분명히 없고, 재산상 손해를 끼칠 일도 없고, 성추행을 할 일도 없고, 욕설이나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술을 먹고 주정 부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편안합니다. 선생님이 불교 신자라면 학생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고, 사장이 불교 신자라면 직원들이 만세를 부르겠죠. 그래서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이 늘어나는 일이 중요한 겁니다. 단지 불교 신자 수만 늘어나는 게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도둑이나 사기꾼 중에 불교 신자나 기독교인은 없을까요? 분포를 따져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세상의 종교 분포도와 비슷할 거예요. 절에 다니나 교회에 다니나, 어떤 종교를 믿으나, 사실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자 수나 기독교인 수가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적어도 불교 신자라면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걸 합리화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기본 생존에 필요한 재물을 뺏거나 훔쳐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타의에 반해서 싫다는데 성적으로 괴롭혀서는 안 되고, 말로 욕설하거나 거짓말하는 것도 안 됩니다. 술 문화가 없으면 좋지만, 있다 하더라도 술을 취하도록 먹는 것은 절대로 수행자 집단에서는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보편 타당한 가치를 지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늘어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어서 참회, 연비, 수계 약속이 이어졌습니다.

"저희 수계 제자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옵니다. 한량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법을 알기 전에 이미 지었던 살생과 투도와 사음 등 몸의 세 가지 죄업이 한량없을 것이 온대, 이제 저희는 몸과 말과 생각을 가다듬어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겠나이다."

오계를 지킬 것을 약속한 수계자들은 불단 앞으로 나가 헌화를 했습니다.

스님은 전법활동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발심행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다음은 수계증을 수여했습니다. 스님이 대표로 한 분에게 수계증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온라인으로 참석한 분들에게도 랜선으로 수계증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법사님들이 한 분 한 분에게 수계증을 전했습니다.

모든 수계자들이 수계증을 받고 자리에 앉자 스님이 수계자들을 위해 불명을 받는 의미와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불명(佛名)은 ‘부처님의 명호’라는 뜻입니다. 불명을 받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지금은 비록 내가 부처가 아니지만 앞으로 부처가 되겠다는 원을 세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언젠가 부처를 이루게 되면 불릴 이름을 미리 받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수기를 받는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명을 받는다는 것은 ‘너는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 그때 너의 부처 이름은 이것이다.’ 하고 예약을 한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들의 모임인 부처 클럽에 가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운 사람들

여러분은 아직 예비 가입자에 해당합니다. 예비 가입자를 보디사트바, 즉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성불을 해야 부처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불명 뒤에 보살을 붙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등’이라는 불명을 받았다면 ‘대등 보살’이라고 불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깨달음을 얻으면 그때 ‘대등 여래불’이라고 불리게 되는 겁니다.

불명을 지을 때 획수를 따져 짓거나 사주팔자로 짓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명은 짓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부처님의 명호를 받는 겁니다.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우고 거기에 합당한 절차를 거친 후에 인연을 맺어서 불명을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서로에게 불명을 불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불명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부처가 되기로 원을 세운 사람이지’ 또는 ‘내가 부처다’ 하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구 님, 이것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나 바빠서 안 돼요.’ 하고 거절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대등 보살님, 이것 좀 해주세요.’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해야 합니다. 이렇게 불명으로 불리는 사람은 ‘내가 부처구나.’ 또는 ‘나는 부처가 되기를 발원한 사람이었지.’ 하고 자각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곧 염불이니까 부르는 사람도 염불하는 공덕이 있습니다. 모든 불명이 부처의 명호로 되어 있으므로 부르는 자는 공덕을 짓게 되고, 불리는 자는 자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수행자끼리 서로를 부를 때 불명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정토회의 핵심 활동가입니다

오늘 수계를 받았으니 이제 여러분은 정토회의 전법회원이 되었습니다. 전법회원의 핵심 역할은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연습이 필요하면 돕는이를 한 번 더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전법회원을 양성하는 이유는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하는 봉사자를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할 역량이 안 되는 사람은 전법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로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할 수 없다면 일반 회원이 되거나 책임봉사자가 되어서 얼마든지 정토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정토회의 핵심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정토회는 여러분들의 수행, 보시, 봉사에 의해서 유지가 됩니다. 앞으로 전법행자대회를 통해 정토회의 모든 사업이 공유되고, 세부 사항을 열람할 권리도 주어집니다. 이제부터는 정토회의 핵심 활동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홍서원으로 수계식을 마친 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계를 받은 발심행자들은 이어지는 2부 프로그램에서 소감 나누기를 이어나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보고 원고 교정을 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21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대중들과 함께 명상을 하고, 오후에는 백일법문의 본강좌인 불교대학, 경전강의, 불교사회대학을 시작하기에 앞서 전체 입학식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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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승

보디사트바가 되신 모든 수행자님들께 거룩한 불성 앞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배올립니다. 축하드리며 수희찬탄합니다.

2025-03-11 10:26:24

유진화

정진.
해탈과 열반.
자유와 행복.
부지런히 정진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고맙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도반님들

2025-03-11 09:09:29

무위성

불자로서 부처가 되도록 꾸준히 정진해 나아갑니다. 감사합니다.

2025-03-11 09: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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