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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 보드가야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탄 파로에 도착한 뒤, 다시 차로 10시간을 이동해 트롱사 납지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인도 공동체에는 아직 몇몇 봉사자들이 인도 성지순례 뒷정리를 하기 위해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대중들의 건강 상태와 향후 이동 일정 등을 물어본 후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오늘 부탄으로 갑니다. 다들 건강 잘 챙기시고, 내년에 다시 만납시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스님은 부탄으로 이동할 짐을 정리했습니다. 오늘은 인도 교육의 신 기념일이어서 수자타 아카데미는 휴교입니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으니 JTS 센터도 평소보다 한산했습니다. 인도 공동체 대중들과 인사를 나누고, 8시 30분에 수자타 아카데미를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 스님은 보광 법사님과 JTS 운영 방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JTS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장기적으로 함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봉사자들이 기본적인 생활은 유지할 수 있도록 복지는 보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태프들이 식료품을 사 먹어야 한다면 적어도 쌀은 부담 없이 구할 수 있도록 JTS에서 지원해야 합니다. 또, 마을 사람들은 다 집을 짓고 사는데, 우리 스태프만 돈이 없어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면 집 짓는 재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자녀 교육비가 부담된다면,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중학교까지 무료 교육할 수 있으니 그 시스템을 활용하면 됩니다. 이런 지원을 할 때는 모든 과정을 공식화해야 합니다.
스태프들이 30대까지 학교와 JTS에서 봉사하면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하고, 40대가 되어 자녀를 대학에 보내거나 결혼을 시킬 때도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무엇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할지 연구해야 합니다.”
스님은 얼마 전 스태프들과 회의하면서, 봉사하며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은 한 스태프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부탄으로 가기 직전까지도 스님은 스태프들의 복지를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했습니다.
보드가야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배웅 나온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국 수속을 마쳤습니다.
오전 11시,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부탄 근처에 도착하자 창밖으로 우뚝 솟은 히말라야산맥의 설산이 보였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설산이 잘 보이네요.”
스님도 맑은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설산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12시 40분이 되어 파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출발이 1시간가량 지연되었지만 도착 시간이 예상보다 빨랐고, 출입국관리소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는 중앙정부 소속의 이시 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 어서 오세요. 성지순례는 잘 마무리하셨나요?”
“성지순례는 잘 마쳤습니다. 이시도 잘 지냈어요?”
오후 1시, 공항을 출발해 한 시간가량 이동해서 팀푸에 도착했습니다. 팀푸에서는 통역을 맡은 린첸다와 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린첸 님, 집안일이 있어서 못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와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트롱사주 답사가 훨씬 수월해지겠네요. 아이와 산모는 모두 건강한가요?”
“네, 스님.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과 함께 부탄 일정을 10여 일간 동행할 일행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인 트롱사주 납지 치옥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앞으로 차로 약 10시간을 이동해야 합니다.
운전기사들이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고 해서 도중에 식당에 들러 간단히 만두로 식사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트롱사주에 도착했습니다. 식당에 들러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잠시 원고를 교정한 뒤, 납지 치옥으로 계속 이동했습니다.
밤 10시 20분에 목적지인 납지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트롱사주 기획관과 납지 촉바, JTS활동가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스님, 어서 오십시오.”
“다들 잘 지냈어요?”
“네.”
숙소에 짐을 풀고, 집주인이 준비해 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현지 책임자 박시현 활동가와 이번 답사 일정과 점검할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스님은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피곤했지만 원고 교정을 마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제 부탄 트롱사주 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내일은 한국에서 초빙한 농업 전문가들과 함께 납지 치옥 주민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후 전문가들은 납지에 남아 주민들에게 유기농 농업 교육을 진행하고, 스님은 랑텔 게옥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31일 금요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6살과 4살 아이들을 둔 엄마입니다. 이혼 후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와 합가한 지 2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육아 문제로 힘들 때 어머니께서 먼저 아이들을 봐주시겠다고 해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손님으로 잠깐씩 찾아뵐 때는 좋았는데 막상 같이 살게 되니 갈등이 많아졌습니다. 이대로 어머니와 같이 사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분가하는 게 맞을까요?”
“질문자가 시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갔어요? 아니면 시어머니가 질문자의 집으로 들어오셨어요?”
“저희가 어머님 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럼 남의 집에 들어간 것과 같잖아요? 질문자의 직계 가족끼리 살았으면 주거비용이 따로 들었을 텐데 어머니 집에 들어갔으니 비용 절감이 되겠네요. 그렇다면 시어머니를 그냥 시어머니로 볼 것이 아니라 집주인으로 깍듯하게 대해야죠. 질문자는 현재 직장이 있어요?”
“네, 있습니다.”
“직장에 나가려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겠네요.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은 좋지만, 잔소리하는 건 싫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질문자는 시어머니의 집에 들어가서 사는 혜택과 함께 아이들까지 돌봐주는 은혜를 시어머니로부터 입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시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거기서 나오면 됩니다.
집을 살 형편이 안 되면 월세를 내야 할 것이고,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할 테니 지출이 늘겠죠. 힘이 좀 들더라도 자기 가족들하고만 사는 게 낫겠다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런데 만약 거기서 나오면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없겠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부가적으로 일이 늘면서 질문자는 또다시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두 가구가 같이 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효율적입니다. 대신 두 가구가 같이 사는 것으로 인해 갈등이 있는 거예요. 갈등이 싫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고, 경제적 어려움이 싫으면 그 정도의 갈등을 감수해야 하는 겁니다. 만약에 월세가 50만 원쯤 되는 집에서 공짜로 살고 있다면, 집주인에게 몇 마디 듣는 잔소리 정도는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잔소리 한 번에 3만 원이다’ 하면서 말입니다. 아이들까지 돌봐주신다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잖아요.
이런 관점을 가지면 시어머니와 같이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설령 집을 나온다고 해도 이 점만은 분명히 알고 나와야 합니다. 시어머니가 문제라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각각 독립된 두 가구가 지금 한집에 사는 거예요. 그러나 시어머니는 옛날에 아들과 한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 가구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새롭게 들어와서 문제가 된 거예요. 시어머니와 남편은 원래 한 가구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남편도 역시 어머니를 한 가구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질문자와도 한 가구이면서 어머니와도 한때 한 가구였습니다. 반면에 질문자는 두 가구라고 여기는 거예요. 우리 부부와 아이들이 사는데 시어머니라는 손님이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를 떠나서 보면, 방을 내어주고 아이들을 돌봐주는 고마운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 남편과 시어머니가 가깝게 지낸다고 해서 질투하면 안 됩니다. 모자 관계니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과 시어머니의 관계를 우선으로 생각해서 처신해야 해요.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시어머니와 같이 살아도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오히려 같이 살면 질문자에게 이득이에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시어머니의 비위를 좀 맞춰드리면서 이득을 보고 사는 게 지혜로운 선택 같은데요. 만약 ‘나는 돈도 싫고, 어머니가 육아를 돕는 것도 싫고, 우리 가족끼리만 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면 남편과 상의해서 내일이라도 집을 나오면 됩니다. 원래 서로 독립된 가구인데 질문자가 시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간 것이니까 분가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어요. 질문자의 가족이 그냥 그 집에서 나오면 됩니다. 어떻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나올 경제력이 안 되어서 시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나올 형편도 안 되는 처지에 분가할지, 말지를 고민했어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런 처지라면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따질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방을 내줘서 감사합니다’, ‘아이들까지 돌봐주시니 더 감사합니다’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시어머니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집주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집에서 나오려면 형편이 될 때 나와야죠. 아직 독립할 만한 경제력도 없으면서 벌써 ‘나갈까?’, ‘있을까?’ 하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어요.”
“나중에 형편이 되면 나가도 될까요?”
“당연하죠. 원래 각각 서로 다른 두 집입니다. 따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이것 하나는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형편이 안 되어서 시어머니의 집에 얹혀살면서 질문자가 큰소리를 쳐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 부부가 독립해서 사는데, 홀로 되신 시어머니가 손주들을 돌보며 아들 집에서 살겠다고 해도,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므로 잘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불평하는 건 속된 말로 좀 건방지다고 볼 수 있어요. 자기 처지를 너무 모르는 행동입니다. 죄인은 아니지만, 항상 어머니로부터 혜택을 받는 처지임을 알아서 ‘어머니, 아이들을 봐주시고 방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거부하거나 반문하지 말고, 그저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하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말에도 대꾸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두 말만 하고 살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시어머니께 미운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건 질문자가 회사에서 사장님이 한마디 했다고 해서 ‘회사에 다닐까, 말까?’ 하고 투덜거리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데 갈 곳이 없는 처지에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다른 회사에 충분히 갈 여건일 때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거죠. 지금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살아야 아이들한테도 좋고, 부부 사이도 좋아지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아집니다.”
“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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