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1.19 국립공원공단 경주남산 순례 및 즉문즉설
“맞벌이를 하는데 집안일을 안 하는 남편이 밉상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국립공원공단에서 근무하는 불자들과 함께 경주남산 순례를 함께 하기로 한 날입니다.

어제 제주도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성황리에 잘 마쳤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5시 45분에 숙소를 나와 제주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오전 7시 45분에 제주 공항을 출발해 1시간을 비행한 후 8시 45분에 대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을 나와 곧바로 경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에 경주 남산 식혜골 고개 공터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오늘 일정과 코스에 대해 간단히 안내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날씨가 쌀쌀하네요. 경주남산의 서쪽은 해가 잘 안 들어오니 추위를 피해 먼저 동쪽을 돌아보고 오후에 서쪽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요즘 무릎이 안 좋아져서 높은 산은 잘 못 올라가요. 그래서 낮은 능선을 돌면서 문화유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서늘하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가을빛으로 물든 산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능선을 따라 걷다가 넓은 공터에서 잠시 멈춰 서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을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이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법륜입니다. 정토회에서 지도법사 역할을 하고 있고요. 평화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참석자들은 각자의 이름과 근무지, 그리고 불교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한 사람씩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했고요. 지금은 통영에서 행복시민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왔습니다.”

"국립공원공단 동부지역 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 일을 제쳐두고 왔습니다. “

스님이 웃으며 질문했습니다.

"무슨 핑계를 대고 오셨어요?"

"연가를 냈습니다!"

"저는 주왕산 국립공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토회에서 전법회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주왕산에서 근무하고 계실 때 저도 꼭 한번 주왕산을 가야겠네요."

스님은 참가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따뜻하고 재치 있는 답변으로 화답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소개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산길은 아름다웠고, 참가자들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인 감실 불상 앞에 도착했습니다. 공식 명칭은 ‘불곡마애여래좌상’입니다. 잠시 멈춰 서서 참가자들과 함께 불상을 향해 삼배를 올렸습니다. 스님은 이 불상의 소박하고 친근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경주남산은 남북으로 약 8km, 동서로 약 4km에 걸쳐 있는 약간 타원형의 산입니다. 남산에는 50여 개의 골짜기와 약 700점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립니다. 이 불상은 자연 암벽에 감실을 파내고, 그 안에 부처님을 조각한 독특한 형태입니다. 경주 사람들은 이 불상을 ‘할매부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표정이 온화하고, 마치 친근한 이웃 어르신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겨울에는 눈이 와도 금세 녹아서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스님은 국립공원과 문화재 관리의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남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잘 보호되고 있지만, 문화재 탐방이라는 관점에서는 약간의 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자연보호가 중심이지만, 남산은 문화재 보호와 탐방이 주요 목적입니다. 이 두 관점이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지요.

가령 탑이나 절터가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신라인들은 탑을 산 정상에 세워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소나무가 자라 그 탑을 가리고 있어요. 탑을 중심으로 한 경관을 복원하려면 나무를 관리해야 하는데, 현재 규정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중국 환도산성에 가보면 30년 전만 해도 올라가는 길에 환도산성의 기암절벽과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무가 자라 모두 가려졌습니다. 이렇게 경관을 잃어버리는 일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경주 남산 역시 자연보호와 문화재 탐방의 균형을 맞추는 새로운 관리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중에는 앞으로 더 높은 직책을 맡게 될 분도 계실 텐데, 경주 남산의 문화재 탐방과 자연보호가 조화를 이루도록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불곡마애여래좌상 앞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다음 목적지인 부처바위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단풍으로 물든 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선물 같았습니다. 옥룡암을 지나 어느덧 부처바위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바위에서 만난 경주의 신비

스님은 부처바위의 북쪽 면부터 차례로 돌아가며, 각 면에 새겨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바위에 새겨진 두 탑을 가리키며 이야기했습니다.

“왼쪽에는 9층탑, 오른쪽에는 7층탑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당시 신라인들이 바위에 새길 정도로 큰 탑은 황룡사 9층 목탑이었습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은 높이가 약 67m, 20층 건물에 해당하는 크기였으니 신라인들에게는 엄청난 상징성이 있었을 겁니다. 7층탑은 분황사탑을 떠올리게 합니다. 현재 분황사탑은 3층만 복원되어 있지만, 원래는 7층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스님은 이어 탑 아래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탑 아래에는 사자상이 탑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한쪽은 입을 벌리고, 다른 한쪽은 입을 다물고 있어 대칭을 이루고 있죠. 연꽃무늬 위에 앉아 계신 부처님 모습도 보입니다. 그 위에는 닫집도 새겨져 있어 당시 조각 기술의 정교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주도 최근에 공기가 나빠지면서 검은 이끼가 많이 끼어 조각들이 점점 잘 안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일행은 동쪽 면으로 이동하며 삼존불과 천인상을 살폈습니다.

"이곳에는 삼존불상이 있습니다. 가운데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는 보살상이 합장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죠. 부처님 아래에는 연꽃받침이 있고, 위쪽에는 하늘을 나는 천인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옷자락과 날개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금강역사상은 많이 마모되었지만, 여전히 그 강인한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금강역사는 전통적으로 성문을 지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절의 입구에서 사찰을 수호하는 존재였어요.”

남쪽 면으로 이동해 삼존불과 입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 남쪽 면에는 삼존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감실처럼 파낸 공간에 중앙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양옆으로 보살상이 서 있습니다. 저 보살입상은 별도로 만들어 세운 입체 조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파손되었지만, 여전히 그 형태와 우아한 자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처바위에 새겨진 조각의 전체 개수가 34점에 이릅니다. 그래서 부처바위라고 하는 겁니다.”

부처바위를 떠나 사천왕사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삼국통일의 숨결을 품은 사천왕사지

사천왕사지에 도착해 먼저 입구에 위치해 있는 비석 받침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비석 받침돌은 당시 비석 구조를 잘 보여줍니다. 비석은 아래에 받침돌, 가운데 몸돌, 위에 머릿돌로 구성됩니다. 받침돌에는 주로 거북이가, 머릿돌에는 용이 새겨지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중간 몸돌은 평평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빨랫돌로 재활용할 수 있어서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1970년대에 한 마을 빨래터에서 사천왕사지의 비석 몸돌조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 받침돌의 거북이는 정말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실제 거북이와 똑같은 모습인데, 안타깝게도 머리는 누군가 훼손해 버렸습니다.”

절터로 자리를 옮겨 스님은 사천왕사지의 이름과 그 유래, 불교의 세계관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천왕은 동서남북 네 방향을 수호하는 신들입니다. 이들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 중턱에 거주하며, 인간계를 포함한 네 개의 섬을 관장합니다. 불국사에 들어갈 때도 사천왕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는 사왕천을 지나야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스님은 사천왕사지가 단순한 절 터가 아니라 신라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호국 사찰임을 강조했습니다.

"사천왕사는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사찰이 아니라,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세운 사찰입니다. 신라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불리해지자, 신불(神佛)의 힘을 빌리기 위해 이곳 신유림(神遊林)에 절을 세우고 유가승 12명이 이곳에서 문두루 주문을 행했습니다. 이는 제석천과 사천왕의 힘을 빌리는 비법으로, 서해에서 폭풍이 일어나 당나라 군대가 수장된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이 경험은 문무대왕에게 큰 영향을 미쳐 그가 죽은 후 용이 되겠다고 한 신앙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는데, 지정된 장소가 남산 꼭대기였습니다. 이는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제석천을 말하는데 선덕여왕이 죽고 30년 뒤, 이곳에 사천왕사가 세워지면서 선덕여왕의 예언이 실현된 거예요. “

스님과 일행은 사천왕사지의 유적들을 하나하나 돌아본 후 삼릉으로 갔습니다.

정토회의 창립 정신이 깃든 곳

삼릉에 있는 식당에서 국수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삼릉골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이 ‘머리 없는 불상’이라고 부르는 조각상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 불상은 스님과 정토회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 상징적인 유물입니다. 모든 사람이 도착하자 스님은 불상을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골짜기로 올라오면 우리가 첫 번째로 만나는 불상입니다. 이 불상이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길이 따로 없어서 개울을 따라 걷곤 했는데, 당시 이 불상이 엎어져 있어 사람들이 불상의 등을 밟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이 불상을 발견해 뒤집어 보니, 매우 아름다운 불상이었습니다. 앞부분이 땅속으로 묻혀 있어서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깨끗하게 남아 있었어요. 제가 1970년에 경주남산 보호 운동을 시작하면서 ‘부처님의 머리를 찾아 복원하자’ 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 계곡 밑으로 몇 번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머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상의 머리를 찾고, 파손된 손 모양을 고치는 것이 복원인가? 정말 이 불상을 복원한다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이 불상이 꼭 한국 불교 같았습니다. 당시의 한국불교는 불교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인 지혜도 없고, 부처님의 실천행인 자비도 없었습니다. 이 불상이 그 모습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없다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지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두 손이 파손된 것은 자비행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몸이 있다는 것은 불교라는 형태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현재 한국 불교의 모습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부처님께서 스스로 이런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한국불교의 현실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불상을 진정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복원이 아니라, 불상의 머리를 의미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근본불교를 새롭게 정리하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또 불상의 손은 자비행이라는 실천을 의미하므로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사회적으로 부조리한 것을 정의롭게 만드는 사회실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파손된 불상을 통해 정토회가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있었고, 정토회의 창립정신을 정립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침 1982년, 한국 대학생 불교연합회 행사에서 제가 강연을 하게 된 인연으로 대학생 지도부와 함께 이 아래 망월사에서 연수교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교 신앙과 사회운동을 따로 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사회적 실천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부처님의 일생과 근본 교리를 가지고 실천적 불교 사상을 정립했습니다. 현재 정토불교대학의 교재는 모두 이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 초기에는 임원단이 새로 구성되면 반드시 이곳 남산을 함께 순례하며 초심을 다졌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뜻깊은 곳을 방문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러니 ‘부처님 머리가 없네?’, ‘부처님 손이 없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부처님의 머리와 손이 되어 드려야겠다’ 하고 발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다 함께 머리 없는 불상 앞에서 경건하게 삼배를 올렸습니다. 한국 불교의 현실과 각자의 역할을 성찰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머리 없는 불상 옆으로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삼릉곡 마애관음보살상이 있었습니다.

보살상의 상반신은 바위에서 선명하게 드러나 있지만, 하반신은 자연스럽게 바위 속에 녹아 있습니다. 스님은 이 조각 방식이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관세음보살상입니다. 신라 사람들이 바위를 조각할 때는 바위에 보살상을 새긴다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바위 안에 보살님이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위를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덮여 있던 부분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조각을 한 겁니다. 또 입술을 보면 붉은색입니다. 이것은 물감으로 칠한 것이 아니라, 바위 자체의 붉은 부분을 활용해 조각한 것입니다. 마치 입술에 붉은빛이 자연스럽게 더해진 것처럼 보이죠. 이런 섬세함은 신라 조각의 뛰어난 미감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또 이곳은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기도를 하던 신앙의 자리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병만 낫게 해 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막상 병이 낫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약속을 잊어버려요. 또 무언가 일이 생기면 다시 와서 난리를 칩니다. 이렇게 ‘사후약방문’ 식으로 기도를 해요. 수행은 예방입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여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번에는 머리 없는 불상과 삼릉곡마애관음보살상을 지나 삼릉골 깊숙이 자리한 선각육존불 앞에 도착했습니다.


웅장한 바위 면에 섬세하게 새겨진 여섯 분의 부처님 상은 고요한 숲과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스님은 먼저 선각육존불의 이름과 그 의미를 소개했습니다.

“이 불상은 선각육존불입니다. 여섯 분의 부처님이 계신다고 해서 ‘육존불’이라고 부릅니다. 앞쪽으로는 바위 가운데에 부처님이 서 계시고, 양옆에 보살님들이 앉아있습니다. 뒤쪽에도 가운데 부처님이 앉아계시고 양옆에 보살님들이 서 있어요. 마애불처럼 깊이 새긴 것이 아니라, 선으로만 조각해서 ‘선각육존불’이라고 불립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조각이 아주 선명했는데, 지금은 검은 이끼가 많이 끼어서 모양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노천불 위로 올라가 보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불상 위로 쏟아질 수 있으니 홈을 파서 물이 옆으로 흐르게 해 놓았습니다. 주춧돌도 보이죠? 기둥을 세우고 경사지게 덮개를 얹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불상이 원래 채색되어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색이 모두 벗겨졌다고 합니다.

남산 골짜기 중에서도 유물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이곳 삼릉골입니다. 계속 올라가서 금오산 정상에 오른 후 용장골의 용장사로 내려갈 수 있어요. 탑과 불상들을 많이 보려면 이 코스를 완주해야 하는데, 오늘은 제가 다리가 좋지 않아 평지 위주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함께 올라가 보면 좋겠습니다.”

선각육존불을 끝으로 경주남산 순례를 마쳤습니다.

다시 삼릉골로 내려오니 국립공원공단 경주사무소에서 차를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긴 시간을 걷고 나니 차 한잔이 꿀맛이었습니다.

다 함께 버스를 타고 스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버스로 30분을 이동해 오후 3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스님이 저 멀리 논밭과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곳이 저희가 농사짓고 있는 농장입니다.”

얼마 전에 수행자들이 머무는 처소를 새로 리모델링을 했는데, 그곳으로 가서 함께 대화를 했습니다. 가볍게 요기를 한 후 방 안에 모여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부터는 대화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주제에 상관없이 무엇이든지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을 하세요.”

주제를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평화 문제, 사회 갈등 문제, 불교, 장례 문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명은 개인적인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맞벌이를 하는데 집안일을 안 하는 남편이 밉상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같이 사는 사람 백 명이 있으면 그중에 한 명 정도나 그렇지, 대다수는 그냥 맹숭맹숭하게 사는 게 일상입니다. 매일 보는 사람한테 그렇게 가슴이 막 뜨거울 수 있겠어요? 그런 건 지나친 욕심입니다.”

“요즘은 무슨 주제로든지 남편과 대화할 때 냉소적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목표를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보다는 ‘내가 냉소적인 태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잡아야지요. 행복은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란 ‘미워하지 않음’으로 정의해야지, ‘열렬함’으로 정의하면 안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마음이 열렬히 샘솟는 것은 미친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는 남편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어요?”

“집안일도 안 도와주고, 완전히 자기 편한 대로만 살려고 하니까 밉상입니다.”

“아이는 몇이에요? 다 컸어요?”

“둘입니다. 중3 하나, 고2 하나예요.”

“집안일 중에 질문자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주로 뭐예요?”

“밥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쓰레기도 버려야 하는데요.”

“남편은 왜 집안일을 안 한답니까?”

“본인은 직장 마치고 퇴근하면 너무 힘들대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왔다고 집안일을 안 해요.”

“남편의 직업은 뭐예요?”

“남편은 측량 일을 하는데 요즘에 계약이 좀 많아요. 그래도 집에 오면 집안일을 조금은 해야 하잖아요. 옛날에는 하는 척이라도 했는데, 요즘은 그러지도 않아요.”

“남편이 당연히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갈등을 풀 수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남편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정말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와서 피곤하게 보이면 ‘여보, 요새 일이 많죠? 집안일은 하지 말고 좀 쉬어요’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피곤하다면서도 주말에는 오토바이를 타러 나간단 말이에요.”

“남편도 주말에 하루는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거 아니에요.”

“하루 쉴 때는 집안일도 좀 해주고 그래야죠. 자기만 혼자 일하는 게 아닌데요. 똑같이 맞벌이를 하고 있거든요.”

“그럼 질문자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본인이 집을 좀 비울래요?” (웃음)

“그래서 제가 집을 종종 비웠습니다. 교육도 받으러 가고 출장도 가면서요. 제가 집에 없을 때는 또 남편이 집안일을 잘해요.”

“그 정도만이라도 해주는 것을 고마워하면 안 될까요? 남편이 집안일을 완전히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를 믿고 자기는 좀 쉬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요?”

“맞아요. 저를 너무 믿나 봐요. 저는 아플 때도 집안일이 눈에 보이면 그걸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저도 힘들지만 자꾸 일을 하는 거예요. 남편은 옛날에는 같이 집안일을 하더니 요즘은 아예 마음을 접었는지 아무것도 안 합니다.”

“질문자도 집안일을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봐요. 남편이 미워서 집안일을 안 하는 것과 내가 힘들어서 안 하는 것은 성격이 다릅니다. 내가 힘들어서 집안일을 안 하는 것은 내 자유입니다. 그러나 상대에게 그 일을 하라는 것은 내 영역이 아니에요. 질문자가 집안일을 안 해서 남편이 ‘왜 청소도 안 하느냐’고 지적하면, ‘여보, 내가 요새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겠어’ 이렇게만 말하세요. 이렇게 접근하면 갈등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드니까 당신도 좀 해’ 하는 식으로 말하면 나무라는 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무라는 식으로 말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제가 말을 안 하니까 남편이 점점 더 집안일을 안 하더라고요.”

“질문자도 집안일을 안 하면 돼요. ‘너는 왜 안 하느냐’ 하고 나무라기보다는 차라리 나도 집안일을 안 하는 게 더 낫습니다. 남편이 괘씸해서가 아니라 내가 힘드니까 안 하는 거예요. ‘네가 안 하니까 나도 안 한다’ 하는 식으로 나가면 싸우자는 말밖에 안 돼요. ‘여보, 나 힘들어서 그래’ 이렇게 얘기하면 서로 싸우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에요. 기도가 무슨 죄가 있어요. 집안일이 힘들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 억지로 ‘내가 이를 악물고 이겨내야지’, ‘남편이 협조하게 해야지’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집을 너무 깨끗이 하려다 보니 본인 몸이 힘들고, 그래서 남편한테 도움을 요청하니까 그 사람도 힘들다고 한다는 것이 지금 상황입니다. 본인도 힘들다고 얘기했잖아요. 하기 싫어서 안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요. ‘여보, 나도 힘들어’ 하고 얘기하는 것이 ‘당신은 그렇게 힘들다면서 주말에는 쉬지 왜 놀러 나가?’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사람이 힘들고 지치면 뭔가 다른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의 사장이 매일 일을 해서 너무 힘들다고 하는 종업원들에게 주말에는 쉬라고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주말에 등산을 가고 놀러 다니면 사장이 보기에 어떻겠어요?

‘이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해서 하루 쉬게 해 줬더니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니네. 주말에 더 힘들게 놀고 와서 월요일에는 출근해서 졸고 앉아 있잖아! 휴일을 없애야 되겠어.’

이런 생각이 들어서 기분 나빠하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죠. 종업원들은 일주일 내내 일했기 때문에 하루 노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라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상을 하면 진정한 휴식이 되는데, 여러분들은 명상을 하지 않고 놀이를 통해 쉬려고 합니다. 노는 것도 사실은 힘든 일이에요. 질문자의 남편은 아직 그 수준인 겁니다. 오토바이를 타는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5일을 일하는 거예요. 힘들게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을 ‘오토바이 하나 새로 사볼까?’ 하는 데서 찾는 사람한테 ‘힘들다는 사람이 오토바이 타러 나가냐’ 하고 문제 제기를 하면 서로 소통하기가 힘듭니다. 대신에 ‘당신 힘든 거 알겠어. 집안일은 내가 할게. 그런데 나도 힘들어’ 하고 자기도 집안일을 좀 안 하면 돼요. 그럼 집이 지저분해지겠죠. 하지만 좀 지저분하게 사는 것이 갈등을 일으키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우리 집에 남편은 없다고 생각할게요. 하숙하는 셈 치겠습니다.”

“있는 사람을 어떻게 없다고 생각해요? 법문을 듣고 나서 저렇게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있네요. 그런 관점을 가지면 본인만 더 힘들어집니다. 집안일이 너무 힘들면 그냥 내버려 둬요. 남편한테 따지지 말고요. 질문자가 ‘여보, 나 지금 힘든데 좀 도와줄래?’ 했을 때 남편이 ‘나도 힘들어 죽겠어’ 하면 ‘알았어, 그럼 내가 할게’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하세요. 그러다 본인이 너무 힘들면 ‘그럼 나도 이제 그만 쉬자’ 하고 내버려 두면 됩니다. 방을 두 번 닦을 것을 한 번 닦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남편이 보다가 집이 좀 지저분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그때 ‘여보, 나 혼자서는 너무 힘들어’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기도문을 받아서 이를 악물고 108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안일하는 게 힘들면 좀 내버려 두고 쉬어요. 아이들한테도 ‘엄마가 힘드니까 알아서 밥 챙겨 먹어’ 하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힘들어도 내가 꼭 일어나서 밥을 차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요.”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파병을 하게 되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다가 트럼프 재선으로 약간 소강이 되었는데, 평화를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의대 증원 문제로 촉발된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의료 대란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 탐방객 수가 줄어들면 국립공원공단도 위기가 찾아올 텐데, 마찬가지로 불교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에 대해 스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 예전과 달리 요즘 장례하는 방식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많이 바뀌고 있는데, 장례 방식과 전생하고 윤회하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불교식으로 스님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과 무속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마당으로 나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 사이 해가 저물었습니다.

“스님께서 하루 종일 설명도 해주시고, 저녁도 마련해 주시고, 너무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나중에 은퇴하시면 여기 와서 봉사를 많이 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함께 설거지까지 한 후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버스 타는 곳까지 사람들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조심히 올라가세요.”

“감사합니다. 스님”

버스가 출발하고, 스님은 방으로 돌아와 저녁 8시부터 정토사회문화회관 활성화 TF팀과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지난번에 제안이 된 법륜 스님의 백일 법문 프로그램에 대해 세부적으로 검토하고, 논쟁이 되는 부분에 대해 하나씩 논의를 했습니다. 경전 강의, 불교대학, 사회대학, 사회교양 강의, 수행법회 등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다양한 프로그램의 요일 배치, 내용, 방식 등 여러 가지 안건에 대해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한 후 밤 9시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이동한 후 오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고, 주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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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질문자가 ‘여보, 나 지금 힘든데 좀 도와줄래?’ 했을 때 남편이 ‘나도 힘들어 죽겠어’ 하면 ‘알았어, 그럼 내가 할게’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하세요. 그러다 본인이 너무 힘들면 ‘그럼 나도 이제 그만 쉬자’ 하고 내버려 두면 됩니다. 방을 두 번 닦을 것을 한 번 닦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

2025-01-07 11:40:24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11-29 07:38:00

고로케

집안일 안해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가게 말씀하신게 좋았어요. 저도 저랑 안맞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래요. 또 기도는 예방이라는 말씀도 좋았습니다. '왜 기도해야 하나?, 아무 문제없는데..' 라는 생각으로 아무것도 안했는데 쉽게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연습으로 108배를 하면 사는데 좀 더 편안해 질수 있을것 같구나 싶어요

2024-11-25 03: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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