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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2024년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일곱 번째 강연이 전라도 광주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치고 오전에는 휴식을 했습니다. 오후에는 누님 댁에 잠시 들러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2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광주로 향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광주에서 오프라인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오후 5시에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광주광역시청 대회의실입니다. 시청 앞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광주 행복센터에서 온 많은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강연장을 찾아온 시민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6시 30분에는 강연장 옆 대기실에서 광주광역시 시의원 등 네 분이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시의원 분들은 평소에 즉문즉설을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많이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여러 질문에 대해 웃으며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즉문즉설 하시는 모습을 보면 즉석에서 바로 임기응변으로 답변을 하시더라고요. 일반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답변을 즉석에서 하시는데, 그만큼 평소에 공부를 하시는 건가요?”
“시간이 나면 일을 하거나 휴식을 하지, 공부할 시간은 크게 없어요.”
“과학, 문화, 예술, 윤리, 모든 분야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시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항상 궁금했습니다.”
“대단하게 생각할 건 없습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방안에 물건을 찾으려면 굉장히 어렵잖아요. 손으로 더듬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눈을 뜨고 물건을 찾으면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특별히 신비스러운 것은 없어요. 윤리나 도덕이라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관념의 울타리 안에서 살다 보니까 길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단지 사실을 말할 뿐이거든요.
애를 낳아서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개도 강아지를 낳아서 키우고, 모든 동물이 새끼를 낳아서 키우거든요. 새끼를 낳아서 키우기 어렵다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것은 생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 키우겠다’ 하는 집착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시의원들과 차담을 나눈 후 함께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600여 명의 시민들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먼저 광주 지역 음악인 팬플룻연주 그룹인 펜타곤이 축하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색으로 마음과 귀가 즐거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축하 공연이 끝나고 저녁 7시 30분에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지난달에 튀르키예-시리아 접경 지역 지진 피해 복구 현장을 방문하고, 부탄에서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방금 영상에서 보셨겠지만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실 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먹는 한 모금의 물을 나눈다면 그들도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배부른 사람이 한 줌의 쌀을 나누어야 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한 봉지의 약을 나누어야 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가진 한 벌의 옷을 나누어야 합니다. 난민들에게는 텐트라도 쳐서 거주지를 제공해야 합니다. 독재 치하에서 억압받고 갇혀있는 양심수들에게는 우리가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그들이 희망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행위들을 다른 말로 ‘인도적 지원’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이런 인도적 지원의 원칙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최후의 심판 날 주께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다 일으켜 세우고 양 떼와 염소 떼를 가르듯이 나누어 한쪽에 앉은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주여, 왜 우리가 지옥에 가야 합니까?’ 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주여, 언제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저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보면 저는 불교냐 기독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믿는 신앙의 가르침을 얼마나 실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대한민국 안에 사는 사람들은 온갖 불평불만을 갖고 살지만, 밖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괜찮은 나라예요. 경제적으로도 먹고살 만한 나라이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다만 한 가지가 큰 문제입니다. 바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아주 높은 나라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는 모래 위에 성 쌓기 식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안 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시리아에는 전쟁으로 인해서 수백만 명의 난민이 생겼는데, 난민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막막합니다. 물론 죽은 사람에 비해서는 낫다고 하지만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는 미얀마에서 넘어온 100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있습니다. 마치 닭장에 갇힌 닭처럼 UN에서 주는 음식을 먹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 교육도 안 되고, 어떤 희망도 없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굶주리는 사람, 병든 사람, 난민이 된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그들을 돕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이 좀 더 보람을 느끼게 되고, 자긍심도 갖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으시겠지만, 이처럼 정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비록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주민등록증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그들이 보기에는 큰 재산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유튜브 생방송에는 52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먼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이어서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2시간 동안 여덟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출산을 앞둔 산모였는데, 남편과 계속되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첫째, 제일 좋은 방법은 남편과 같이 안 사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고민을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부부가 꼭 같이 살아야 한다고 정한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질문자가 남편과 같이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남편과 갈등하며 괴롭게 살 건지, 아니면 갈등하지 않고 괴롭지 않게 살 건지 질문자가 선택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부라도 성격, 생각, 습관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남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편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내가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남편이 나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와 다른 남편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 그런 남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편이 옳고, 질문자가 틀렸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기독교인이 제게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 이렇게 얘기할 때, 제 중심으로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종교의 자유를 간섭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는 그가 가진 신앙의 관점에서 제게 얼마든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신앙에서 보면 어떻게 해서든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상대가 스님이더라도 충분히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 하면서, 제 턱밑에 십자가를 들이댄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저를 지옥에 가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저는 그걸 믿고 싶으면 믿고, 믿고 싶지 않으면 안 믿어도 됩니다. 기분 나쁠 일도 아니고,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제가 요즘 해외로 다니는 곳이 선진국보다 후진국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후진국에 어려운 사람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런 제 성향으로 보면 저는 천당에 가는 게 맞을까요? 지옥에 가는 게 맞을까요? 모든 게 잘 갖추어진 천당 같은 선진국에 가면 제가 할 일이 별로 없으니, 온갖 어려움에 처한 지옥에 해당하는 후진국에 가는 것이 더 맞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아우성이니까요. 이렇게 제 성향으로 보면 저는 지옥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교리에서 보면 이렇게 인도적 지원을 하는 사람은 지옥보다 천당에 갈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그분은 저를 지옥에 간다고 하셨으니 제게는 굉장히 좋은 일이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결혼해서 한집에 살고 있지만, 질문자는 남편과 다르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편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면 우선 내가 편안해집니다. 그러면 둘이서 평화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질문자가 선택하시면 됩니다. 지금처럼 싸우며 사는 길도 있고, 남편에게 맞추며 사는 길도 있습니다.
부부 같은 어른들 간의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맞추지 않고 서로 헤어지는 길을 선택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있다면 다릅니다. 부모의 스트레스는 자녀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모로서 할 일이 못 됩니다. 서로 싸우며 살겠다면 아이를 가지시면 안 됩니다. 결혼은 성인과 성인의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해약을 해도 됩니다. 그런데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그런 계약 관계가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낳아서 맺은 관계여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엄마가 화내고 짜증을 내고 살면, 첫째, 자라나는 아이에게도 나쁘겠지만 배 속의 아이에게도 안 좋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지금 엄마의 역할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엄마로서 좀 더 책임 의식을 가지셔야 합니다.
요즘에는 여성의 권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지금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산모의 자기 결정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견해와 태아의 생명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견해가 사회적으로 논쟁하고 있습니다.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이 사이의 타협안이 조금씩 다른데 보통 10주에서 20주까지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 관습적으로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인양 여기는데 지금은 아이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점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갓난아이에게 부모의 영향은 매우 큽니다. 누군가 화를 벌컥 내면 성인은 그냥 기분이 나쁘고 말지만, 아이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평생을 좌우하는 자아 형성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아이의 엄마는 그 생태적인 특성 때문에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엄마라고 해서 무조건 생모나 여성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를 기른 사람이 엄마입니다.
질문자가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태중에 아이를 가진 산모로서 ‘남편이 나를 돕지 않는다’ 하고 불평하는 것은 엄마로서 무책임한 자세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겁니다. 남편이야 어떻게 하든 질문자는 질문자의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화를 안 내려고 하는데, 안 됩니다’ 이런 말씀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어린싹에 오줌을 바로 주면 말라죽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라면 오줌은 거름이 됩니다, 사람도 어린아이는 보호해야 합니다. 외부의 어떤 도전에도 어린아이는 쉽게 상처를 입을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고 어느 정도 크면, 너무 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자생력이 떨어집니다. 아이는 크면서 어느 정도 외부에 도전받고, 거기에 스스로 대응하며 적응력을 키웁니다. 아이는 어릴수록 외부의 도전에 상처를 입기 쉽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엄마라도 어린아이를 야단치면 안 되고, 선생님도 어린아이를 야단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좀 크면 괜찮습니다. 아이는 세 살까지 무조건 보호해야 하고요, 초등학교까지는 야단을 치거나 가르치기보다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그렇게 자기 성질대로 살고 싶다면 저처럼 혼자서 살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엄마로 살면서 그렇게 자기 성질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저도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제가 결혼할 수준이 아닌데 아이까지 낳아서 큰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의 얘기는 사실 틀린 말이 없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말투 같은 것에 제가 자꾸 걸립니다. 남편에게만 걸리는 게 아니라 다혈질인 제 아버지께도 똑같이 걸립니다.”
“그건 트라우마예요.”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제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면서 이렇게 종교적 신비주의로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우선 남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꾸 남편을 틀렸다고 보기 때문에 시비하는 겁니다. 시비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건데, 옳고 그른 건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이에요. 기분이 나빠지면 ‘아! 내가 또 옳고 그름에 집착하는구나’, ‘내 관점을 고집하는구나!’ 이렇게 아셔야 합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는데, 한 명은 앞서가고 다른 한 명은 뒤에 올 수 있겠죠? 그럴 때 앞에 가는 사람은 자기 기준에서 ‘왜 그렇게 천천히 오니? 빨리빨리 와!’ 이렇게 얘기하는데, 뒤에 오는 사람은 또 자기 기준으로 ‘뭘 그렇게 서두르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이처럼 우리는 늘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얘기하기 때문에 항상 상대를 문제 삼습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부인은 수건을 한 번 쓰고 세탁하는 습관이 있는데, 남편은 걸어두고 말려서 다시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세수하고 물기만 한번 닦았으니 말려서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좀 지나쳐서 쉰내가 날 때까지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 명은 수건을 쓰고 바로 세탁기에 넣지 않는다며 시비할 수 있고, 다른 한 명은 환경위기 시대에 빨래를 너무 자주 한다며 시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에 간을 맞추는 일부터 모든 부분에 서로의 습관이나 취향, 생각이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가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인정하면 내가 화가 나지 않습니다. 화나 짜증이 난다는 것은 이미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편은 저와 다릅니다’라고 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남편의 기준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당신이 옳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계속 되뇌면서 명심하면 무의식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남편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고 있으면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걸 놓칠 때 화가 납니다. 그래서 늘 자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화가 났으면 ‘어! 내가 또 나를 고집했구나!’ 이렇게 자각하고 탁 내려놓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는데 물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식당을 접어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 새 직장을 찾기도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까요?
초등학생 6학년, 4학년을 둔 엄마입니다. 서울 아이들보다 지방 아이들의 교육 수준이 떨어진다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교육의 방향은 어떤 것인가요?
태어날 때부터 눈 한쪽 시력이 매우 낮은 초등 2학년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아이가 울먹이며 왜 자기는 한쪽 눈이 이런지 묻더라고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요?
체육관을 운영 중이고 다이어트 목적으로 다니는 회원들이 많습니다. 등록 초반에는 잘하시다가 원래대로 돌아가시는 분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법륜 스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정토회는 누가 이끄나요?
스님이 부탄에서 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요.
부정적인 마음이 일어날 때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참석한 대부분의 청중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매일 스님 법문 들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책 사인회를 끝마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광주, 파이팅!”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다시 광주를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새벽 1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행복학교 특강을 온라인 생방송으로 한 후 주말에는 1박 2일 동안 정토회 출판팀, 영상팀, 스님의하루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콘텐츠 봉사자들과 경주 나들이를 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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