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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방문 마지막 날로 내각 장관을 만나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부탄을 출국하여 호주 시드니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7시에,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10시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스위스와 독일, 튀르키예를 거쳐 시리아 접경 지역에 지진 피해로 무너진 학교를 복구하는 현장을 들러보고, 인도를 거쳐서 부탄으로 왔습니다. 부탄에서는 2박 3일간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워크숍을 하였습니다. 워크숍에는 앞으로 마을 개발을 책임질 최말단 정부 행정 요원이기도 하고 또한 주민 대표라고도 할 수 있는 겁, 촉바, 행정 담당관들이 모두 참여했습니다. 한국의 이장, 면장과 같은 분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워크숍을 통해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무엇인가, 마을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자세로 할 것인가, 여러 주제를 갖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부분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워크숍에서는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은 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자립적인 입장에서 동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주민들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점검하고 앞으로 각 사업을 어떻게 할지 계획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튀르키예-시리아의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하고 온 모습을 잠깐 여러분에게 공유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스님이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복구 현장을 방문하고, 부탄에서 JTS 워크숍을 진행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스님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하는 이야기나 시리아 사람들한테 하는 이야기나 부탄 사람들한테 하는 이야기나 근본적으로는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내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괴롭히고 남 탓을 하면서 남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우리 마을의 일은 우리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일은 우리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힘이 부족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할 수가 있는 겁니다.
옛말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도 이제 더 이상 남을 탓하거나 나의 괴로움을 합리화하지 마세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2600년 전에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이후로 역대 조사님들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국내 문제든, 국제 문제든, 기후 위기 문제든, 어떤 문제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이고, 중생 구제의 원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금 영상에서 본 활동들은 모두 정토행자의 서원에 해당하는 활동들이기 때문에 이런 활동들이 모두 여러분의 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과 공유해서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총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만화를 그리는 일을 해왔지만 경제적 수입이 불안정한 탓에 마음도 늘 불안하다며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겪는 어려움은 만화 그리는 일을 해서, 직업이 없어서, 젊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정신질환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그래서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입니다. 둘째, 매일 아침마다 절을 하면서 ‘저는 편안합니다’ 하고 자신에게 암시를 줘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묻는 건 지금 자신이 불안하다는 겁니다. 지금 내 상태가 불안하지만 ‘저는 편안합니다’ 이렇게 자꾸 자기 암시를 줘서 편안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만화를 그리면서 밥을 적게 먹으면 됩니다. 정말 먹을 양식이 없으면 정토회에 도움을 요청하면 양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옷이 없다고 요청을 하면 재활용 센터에서 옷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실제로는 직업이 없거나 수입이 불안정해서 심리가 불안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질문자가 사는 삶이 지금 시리아 난민들이나 부탄에 사는 시골 사람들과 비교하면 열 배는 더 부유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리아 난민들이나 부탄의 시골 사람들에게도 ‘의식주만 해결되면 물질적인 것은 너무 추구하지 말라’ 하고 이야기하는데, 질문자가 불안한 것이 과연 경제적인 원인 때문일까요?
부탄 사람들은 집안 내부 시설이 너무 열악하거나 집이 아예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제가 집짓기와 집안 내부 시설 개선을 지원해 줄 테니 같이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시리아 난민들에게 집을 짓자고 하는 건 JTS가 도저히 부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리아 난민들에게는 ‘우선 텐트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살더라도 내 아이들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니까 지금 당장 집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상기시켜 줍니다. 아이들은 커버리면 교육받을 기회를 놓치게 되니까요.
질문자가 불안감을 극복하려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확고하게 가져야 합니다. 만화 그리는 일을 하느라 수입이 없어서 내 심리가 불안한 것이 아닙니다. 계속 그렇게 접근하면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밥을 얻어먹거나 옷을 주워 입고 살더라도 나는 만화를 그리겠다’ 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도를 전하기 위해서 먹는 것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도 좋다. 그러나 나는 이 법을 괴로워하는 중생을 위해서 전하겠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평생 걸식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셨습니다. 지금 제가 전 세계를 이렇게 다니는 이유는 기후 변화가 더 악화되면 전 인류와 만 생명이 고통을 겪으니까 우리 모두가 소비를 줄이도록 사람들의 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먹고, 좋은 옷을 입고, 여기저기로 놀러 다니다가 결국 우리 후손들까지 다 공멸한다면, 과연 그것이 잘 사는 길일까요? 먹고 입고 생활하는 것은 간소하게 하더라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길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더 나은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살면서 자꾸 경제적 부족함을 얘기하면 불만이 끝이 없습니다. 본인이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만화를 그리면 돼요.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더라도 만화를 그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만화를 그리고 살면 됩니다. 남보다 먹고 입고 자는 것을 더 잘하고 싶으면 만화 그리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그만둬야 합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 하는 공사장이나 슈퍼마켓에 가서 일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10만 원 벌어서 5만 원짜리 음식을 사 먹든지 하는 식으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시리아 난민촌에서는 하루 만 원 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질문자의 심리 불안 문제는 만화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닙니다. 직업을 못 구해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일자리가 많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만 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자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적게 일하면서 돈은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런 일은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고 싶다면 돈을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누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은행에 천만 원을 넣으면 십억을 준다고 해서 넣었다가 날렸다면, 그건 내 욕심이 자초한 일이 아닐까요? 허황된 생각이 큰 손실을 불러온 겁니다. 그래서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욕심이 내 눈을 어둡게 했구나! 다음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지금 질문자의 어려움은 정신적인 질환에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둘째,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팔다리가 없거나 눈이 안 보이는 것보다는 정신적인 결함이 조금 있는 것이 낫다는 관점을 가져 보세요. 그리고 약만 먹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조건에서 내가 조금 더 나를 위하는 길은 ‘지금 이대로 좋습니다. 저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자꾸 자신을 안심시키는 암시를 줘서 편안해지는 겁니다. 셋째, 질문자가 중요시하는 것이 의식주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기보다는 돈이 벌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면 먹고 입고 자는 것은 좀 포기하고 살아도 좋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가지면 비록 육체적인 한계로 인한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능히 극복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제 얘기를 들으면 답답할 거예요. 그러나 제가 얘기하는 대로 관점을 딱 갖고 살아가 보세요.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서 또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아침 8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다음 주 수행법회에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 중이라 생방송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다음 수행법회에는 제가 법문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법회가 끝나면 저는 부탄의 내각 장관을 만나고 방콕을 거쳐 호주 시드니로 가게 됩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주요 도시에서 한국어 강연과 영어 강연을 하고, 동티모르로 가서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를 만나고, 캐나다와 미국 서부로 가서 영어 강연과 한국어 강연을 합니다. 아마 다음 주 수행법회 시간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이어서 제가 직접 법문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대신 그다음 법회에서 제가 활동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곧바로 짐을 챙겨 팀푸 주변을 답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원래 공무원 연수 교육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부탄 정부의 자체 사정으로 인해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팀푸 주변의 불교 유적지를 답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팀푸 북쪽을 둘러보고 싶어도 늘 시간이 없었는데 잘됐네요.”
먼저 팀푸시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탱고 승가 대학(Tango Buddhist University)을 방문했습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승려들이 발우공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식사 중이라 법당을 참배만 하고 조용히 나왔습니다.
탱고 대학의 승려들은 이곳에서 9년 과정을 학습하고,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인근에 체리(Cheri) 수도원에서 3년 3개월 동안 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17세기에 부탄을 통일하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한 자브드롱(Zhabdrung) 린포체가 이곳 동굴에서 명상을 했기 때문에 부탄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곳입니다.
승가대학 내부를 둘러본 후 차를 마시며 잠시 앉았다가 안내를 해 준 스님에게 보시금을 전달하고 승가대학을 나왔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데첸푸그 라캉(Dechenphug Lhakhang) 사찰로 향했습니다. 데첸푸그 라캉 사찰은 팀푸 계곡의 서쪽 경사면에 위치한 요새화된 수도원입니다. 부탄 전역에 드룩파 불교를 대중화한 파조 드루곰 시그포(Phajo Drugom Shigpo, 1184-1251)의 아들인 담파가 12세기에 세운 절이라고 합니다.
사찰 안에는 팀푸의 호법신이 모셔져 있는 요새화된 탑인 고엔캉(Goenkhang)이 유명한데, 이 탑은 부탄 국민들만 방문할 수 있고, 외국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앞에서 참배만 했습니다. 스님은 절을 향해 합장을 올리며 기원을 했습니다.
“부탄에서 진행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이 잘 이루어지이다. 한반도와 세계가 평화로워지이다.”
다음은 부탄 내각 장관을 만나기 위해 팀푸 시내로 향했습니다. 부탄의 수도 팀푸에는 수년 전부터 신도시를 중심으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개발이 되었는지 보기 위해 신도시를 둘러서 갔습니다.
모든 아파트가 전통 양식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모양이 똑같았습니다. 높이도 왕궁보다 낮게 지어야 해서 6층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팀푸 시내에 도착하여 한국 음식점 산마루에 들러 차를 대접받고 사장님과 인사를 나눈 후 약속 시간인 11시 30분에 맞춰 부탄 정부 관청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이 내각 장관실에 도착하자 장관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번 부탄 방문은 어떠셨나요?”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주 좋았어요. 겁, 촉바, 공무원들이 30명 정도 모여서 워크숍을 했습니다. 그동안은 짧게 만남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긴 시간 동안 만나니까 지속 가능한 개발의 취지와 방법에 대해 전반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자발적으로 나서서 마을 개발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성장하는 교육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주어지는 대로만 일을 했는데, 이번 워크숍을 통해 자기들이 계획해서 적극적으로 일을 해 나갈 것 같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부탄 정부에서 몇 가지 협조를 해주었으면 하는 내용에 대해 제안을 했습니다. 먼저 보건의료 진료에 대해 그동안 조사한 내용과 부탄 정부에 요청할 내용을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백내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안과 진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주민들에게 눈 수술을 해주려고 한국의 안과 의사와 의논을 해보니까 레이저 시술을 할 수 있는 기계가 작은 비행기로는 운반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로 기계를 가져와서 겔레푸에 설치한 다음 마을 주민들을 겔레푸로 데려와서 눈 수술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만 마련해 주시면 일 년에 두 차례씩 한국에서 의사들이 와서 의료캠프를 열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탄 정부에서 겔레푸에 있는 병원에 의료캠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는지 알아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다음에 틀니를 제공하는 치과 진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의사는 확보했지만 치아를 만드는 기공사를 아직 못 구했습니다. 보청기와 관계된 이비인후과 진료도 알아봤는데, 기존에 보청기는 1000달러가 넘는 고가여서 보급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어폰과 보청기의 기능을 동시에 제공하는 기계가 100달러로 나온 게 있었습니다. 테스트를 해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충분히 보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의 제안을 듣고 내각 장관님이 대답했습니다.
“부탄 정부에도 의료 분야 담당자가 있으니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의료 전문가들끼리 의논을 하면 더 좋은 방법들이 나올 것입니다.”
“네, 제안서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의료캠프를 진행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텐데,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수 있을까요?”
“JTS가 진행하는 의료캠프는 JTS가 일체를 부담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의사들을 데려오는 경비, 의료장비 이동비용, 마을주민들의 이동편 등 모든 비용을 JTS가 부담하겠습니다. 부탄 정부 공무원들이 출장을 와야 한다면 그 비용만 부탄 정부에서 부담해 주시면 됩니다.” (웃음)
다음은 파로 탁상 사원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대해 10월 말에 한국에서 전문가를 데려와 답사하는 것과 관련하여 협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이후 부탄 방문 일정에 대해 공유해 주었습니다.
“12월 말에 보름 일정으로 부탄을 다시 방문하려고 합니다. 보름 동안 젬강의 40개 치옥을 전부 방문할 계획입니다. 그다음에 2월 초에 열흘 일정으로 다시 부탄을 방문하여 트롱사의 30개 치옥을 전부 방문할 계획이고요. 왜냐하면 본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면 사전 조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내년 5월까지 연기를 하겠습니다. 올해 11월부터 내년 5월까지 파일럿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봐야 본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참여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적극적입니다. 그 이유는 정부가 준 돈이 아니라 라마가 준 돈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부탄 사람들은 다 불교신자이니까요. 본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서는 파일럿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그때 제출하겠습니다. 아직 실험 중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스님이 부탄을 방문하여 다시 미팅을 하기로 하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오늘 호주로 갑니다. 호주에 가면 부탄에서 온 유학생들에게 어떤 인생을 사는 게 좋은지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부탄에 오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오. 항상 시간을 내겠습니다.”
부탄 정부 관청을 나와서 곧바로 파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 파로 공항에 도착한 후 일주일 동안 스님과 동행하며 통역을 해준 린첸다와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통역하느라 수고가 많았어요.”
JTS 활동가에게, 이후에 부탄 공무원들과 마을 주민들과 추진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공항으로 들어가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했습니다.
오후 4시에 파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 10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간으로 저녁 8시 3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방콕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대기를 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밤 10시 20분에 방콕 공항을 출발하여 호주 시드니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본 후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었습니다.
내일은 밤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여 10시 20분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 후 영어 통역으로 시드니에 사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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