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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속가능한 개발’을 주제로 부탄 젬강주에서 열리는 JTS 워크숍의 마지막 3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에 숙소를 출발해 워크숍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30분을 걸어서 젬강 스타트업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9시부터 워크숍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어제 토론한 내용에 대해 한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여러분이 어제 마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많은 사업들을 제안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주민들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업의 집행 여부도 주민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는 것만 시범 사업에 포함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지난 2박 3일 동안 무엇을 느꼈는지 한 명씩 일어나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유엔과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진행하는 사업과 JTS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단체는 지원만 해주고 끝나는데, JTS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성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님께 너무 감사한데 감사함의 보답은 이 프로젝트의 성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JTS의 원칙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정부가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의식이 너무 강했습니다. 의식을 바꾸어서 이제는 기다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을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겠습니다.”
소감을 이야기하다가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가 되면 스님이 노래를 한 곡씩 청했습니다. 누구든지 가벼운 마음으로 노래 한 곡씩을 술술 불렀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무 잘하겠다고 각오하고 결심하지 말고 노래 부르듯이 웃으면서 가볍게 하세요.”
“네.”
다시 소감문 발표를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스님이 바로 부처님 같은 분이구나 느꼈습니다. 이런 시골 마을까지 오셔서 좋은 법문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탄의 전체 국민들이 스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느냐 여부는 우리들이 시범 사업을 성공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시범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으로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워크숍을 하는 동안 JTS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모델이 될 수 있겠구나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JTS의 원칙은 항상 ‘나’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참가한 모든 사람의 소감을 들은 후 스님이 정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 말씀 잘 들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대화를 나누며 우리가 하려는 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면 신이 감동해서 모든 일이 성취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너무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마을과 우리나라를 새롭게 건설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앞으로도 이곳에서 살아갈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외국에서 유학을 했거나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운동은 팀푸나 파로 같은 곳에서 시작하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젬강이나 트롱사 같은 곳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조건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런 운동을 하는 데 우리의 조건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러분께서 어느 정도 이해하시고 마음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내는 그 마음에 부처님께서 응답하셔서 가피를 내리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건강, 가족과의 화목, 지역의 평화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잠시 휴식한 후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스님이 회향 법문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마을로 돌아가면 이미 승인받은 프로젝트는 곧바로 시작하게 될 것이고, 이후 필요한 프로젝트는 제출해서 승인을 받은 후에 시작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추수철이 가까워 오니까 너무 서둘러서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민들에게 너무 부담이 되지 않도록 상황을 고려하여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너무 성과에 연연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항상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향을 떠나 멀리 가 있는 분들은 이럴 때 간식이라도 기부하면서 마음을 보태고, 또 중간중간 노래도 부르면서 즐겁게 하면 좋겠습니다. (웃음)
하반기에는 시범 사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내년 상반기에 진행되는 본 프로젝트 계획을 함께 세워야 합니다. 내년 3월에는 시범 사업을 진행하면서 나온 문제점들에 대해 함께 토론하면서 개선을 해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농번기가 끝나야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는 자원봉사자들은 아마 10월 말쯤 참여가 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기술을 가진 사람이 참여하느냐에 따라서 사업의 내용에도 변화가 조금씩 있을 거예요. 만약 포클레인 전문 기사나 토목 기술자가 참여하게 되면 도로 공사를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목수나 미장 기술자가 참여하게 되면 집수리를 더 많이 확대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해 주기 위해 함께 봉사해 주면 마을 사람들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어떤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을 주민들이 우리 마을의 일을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하는 공동체 정신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실의와 좌절이 생기면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일을 하는 가운데 술 한잔 마시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에너지가 됩니다. 이것은 건강한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춤과 노래를 꼭 축제 때만 할 것이 아니라 농수로를 만들거나 도로를 포장하고 난 후 그 기쁨을 나누면서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다 함께 부탄식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부탄에 들어오는 길에 인도에서 사 온 선물을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외국을 계속 다니다가 부탄에 들어와서 한국에서 좋은 선물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정성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골고루 선물을 나눠준 후 다 함께 밖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따뜻한 햇살을 머금고 모두 환한 웃음을 내비쳤습니다.
“카딘체!” (감사합니다.)
이어서 12시부터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예빌랍사 학교로 향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입니다. 지난번에는 학용품과 운동기구를 전달해 주기 위해 방문했고,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얼마 전 젬강주에서 상급학교에 불합격한 학생이 자살한 일이 있어 주지사가 스님께 학생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길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교장,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서부터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꾸주장포라!” (안녕하세요)
오후 1시 30분에 학교에 도착하여 교장 선생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학생들이 몇 명이나 참석하나요?”
“7학년부터 10학년까지 285명이 참석합니다. 6학년 이하는 공간이 부족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차담을 마친 후 스님은 교장 선생님과 함께 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이 강당에 들어서자 왼쪽과 오른쪽에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기립하여 스님을 반겨주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왜 부탄에 오게 되었는지 소개하며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부탄에 오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전 지구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여러분은 그중에서 우리 인류에게 닥친 제일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학생들은 다양하게 대답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요.”
“기후 온난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인간 세상의 문제로 국한해서 말하자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장 큰 이슈라고 할 수도 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즉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무력 충돌이 가장 큰 이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절대 빈곤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빈부 격차는 점점 더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문제는 기후 위기입니다. 기후 위기는 인류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면서 과다하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로 인해 비롯되었습니다. CO2가 누적되면서 지구 대기에 온실 효과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지구 전체의 기온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기온이 오르면 그냥 날씨가 더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바닷물의 온도 또한 상승하면서 해류가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수분의 증발량이 많아지면서 폭우와 가뭄 같은 기상 이변이 일어납니다. 북극을 둘러싸고 있는 제트 기류가 극지방의 냉기를 보호해 주고 있는데, 그 장벽이 뚫려버리면서 더운 날씨가 갑자기 극심한 추위로 변하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폭염과 폭우, 산불 등 수많은 자연재해 속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많은 생물들이 생태적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아마 부탄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은 이런 기후 변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러분에게도 기후 변화의 피해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히말라야의 빙하가 점점 녹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부탄으로 흘러오는 강물이 줄어들게 되겠죠. 특히 건기에는 수력 발전량이 모자라게 되어 전기를 수입해야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부탄의 수입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전기 수출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앞으로는 전기의 수출량보다 수입량이 더 많아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후 변화는 우리들의 삶에 큰 재앙을 초래합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300여 년 동안 인류는 점점 더 잘 살게 되었다고 평가합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인류의 물질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편리해졌습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잘 사는 것의 기준을 물질적 소비의 양으로 측정합니다. 지금도 어느 나라가 잘 사는지 비교할 때 GNP(국민총생산) 또는 GDP(국내총생산)와 같은 물질 생산 지수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물질적 생산과 소비를 점점 늘려나가고 있습니다.
OECD라고 불리는 선진국들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15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약 12억 정도가 되는데 이들의 경제 개발로 인해서 전 지구에 기후 위기라는 큰 재앙이 초래되었습니다. 이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해서 중국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인구가 14억입니다. 또 다른 인구 14억의 나라 인도 역시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최근 들어 지구의 기후 위기는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벌써 겪고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10대, 20대 젊은이들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후 위기에 대해 마치 전쟁처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든 나라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한 고등학생은 옷도 다 떨어진 것을 입고 운동화도 헌 것을 신고 샤워도 잘 안 하고 다녀서 부모님이 걱정을 했습니다. ‘아이한테 아무리 얘기해도 말을 안 들으니 스님이 좀 얘기를 해 주세요’ 하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 학생을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학생들 사이에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옷도 안 사고, 신발도 안 사고, 샤워도 적게 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물질을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하는 방향으로 계속 간다면 인류는 50년, 또는 길어야 100년 안에 공멸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멸을 피하려면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적게 소비하고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부탄의 4대 왕께서는 이미 20년 전에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인간이 잘 산다는 것의 가치 기준은 물질 생산 지수로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행복 지수로 잘 사는 기준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GNP 대신 GNH(국민총행복)를 제창했습니다. 그래서 부탄 사람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도가 높은 사람들로 알려졌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렇게 기후 위기가 대두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부탄의 행복도는 세계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은 GNP, GDP 대신 GNH가 우리 삶의 가치를 표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널리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일례로 뉴질랜드에서는 정부 투자의 기준으로 국민의 행복지수를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투자를 할 때는 얼마나 많은 경제 생산 유발 효과를 내느냐가 결정의 기준이 되었죠.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서 어떤 투자를 하게 되었을 때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얼마나 올라갈 것인가, 즉 GNH 수치가 얼마나 변하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세계는 부탄이 가르쳐준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정작 부탄 안에서는 반대로 물질주의 바람이 불어 사람들이 거기에 끌려가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부탄 젊은이들은 공부를 좀 잘한다 싶으면 다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 합니다. 외국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와서 여기에 좋은 집을 짓기를 원합니다. 지방에 사는 젊은이들은 팀푸나 파로와 같은 대도시로 나가고, 대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다시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똑똑한 사람의 길이라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 부탄에 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물질을 쫓아 나아가서는 인류의 미래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습니다. 부탄 4대 왕께서 제시한 GNH를 중시하는 새로운 길을 갈 때만이 우리 인류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탄이 인류의 희망이 되기는커녕 거꾸로 서양의 물질주의에 물들어가는 풍조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막고 부탄의 가치를 세계의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 제가 부탄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국왕 전하를 뵙고 많은 대화를 한 후에 부탄에서 가장 개발이 덜 된 젬강을 선택해서 기후 위기 시대에 적게 소비하고도 사람들이 행복한 지역으로 만들어 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 세계에 CO2 제로, CO2 마이너스인 국가가 세 곳 있는데, 부탄이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가장 개발이 안 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물질 지수를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에서는 ‘가장 개발이 덜 됐다’는 것은 ‘가장 후진적’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환경 위기 시대에는 ‘가장 개발이 안 됐다’는 것은 ‘가장 친환경적이고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정반대의 개념이 됩니다. 그런 부탄에서도 가장 개발이 덜 된 지역이 바로 젬강입니다. GDP 개념으로 보면 부탄에서도 가장 빈곤율이 높은 지역입니다. 이 말은 거꾸로 환경적 가치에서 보면 가장 환경이 잘 보전된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젬강을 개발이 덜 된 곳이라고 생각하여 위축되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환경적 가치가 가장 높은 지역에 산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쪽으로 가치관을 전환해야 합니다.
물론 인간의 행복도가 높아지려면 삶의 조건이 너무 열악해도 안 됩니다. 여러분도 어릴 때 경험해 봤겠지만 전기가 안 들어오고, 식수와 식량이 부족하고, 주거 환경이 지나치게 열악한데도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열악한 생활 조건은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개발을 해야 지속가능한 개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선진국들의 개발 방식은 결국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상은 개발하지 않음으로써 CO2 제로 상태를 유지하는 새로운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환경을 중시하고 적게 소비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이 필요합니다.
JTS가 젬강에서 하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열악한 생활환경은 개선하되, 둘째, 친환경적인 가치관을 지키는 것입니다. 지역 개발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 상태를 개선하는 동시에 ‘더 이상 개발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하고 받아들이는 멈춤의 철학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스님은 이런 얘기를 왜 어른들에게 하지 않고 우리 같은 고등학생한테 하십니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새로운 운동을 하려면 청소년기에 그런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학교에 온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공부를 잘해서 외국에 유학을 가고 돈을 많이 벌어 와서 여기에 큰 집을 짓고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이것은 전 세계 인류가 지금 가고 있는 길입니다. 다른 길은 어떤 게 있을까요? 나의 재능을 나 자신을 위해서만 쓸 게 아니라 이 나라에 사는 국민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 내 고향을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는 길이 있습니다. 자연을 잘 보호하고 사람이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인생의 길을 살 것이냐’는 지금 여러분 나이 때 방향이 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의 선배들이 갔던 길, 즉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외국으로 나가는 길 말고도 다른 길이 있다는 얘기를 여러분께 해주려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서구 근대화 이후로 우리 인류가 걸어왔던 길은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점점 비대해지는 물질적인 욕망 때문에 더 큰 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자연재해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아직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훨씬 더 전파력이 강하고 살상력이 높은 바이러스들이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인류는 이와 같은 길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를 것입니다. 그때 인류는 부탄 사람들의 친환경적인 삶에 대해 재발견을 할 것입니다.
저는 젬강과 부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인류에게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현재 JTS의 계획은 5년 동안 젬강의 빈곤 상태를 개선하며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방학 때 젬강 개발에 합류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고쳐주거나 농수로를 고치는 등 주민들을 위한 활동에 자원봉사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학생들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스님이 언급한 행복지수(GNH)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은 행복지수(GNH)를 어떻게 중요시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첫째, 누구 집이 더 부자다, 누가 더 좋은 신발을 신고 있다, 누가 더 좋은 가방을 가지고 있다, 누가 더 좋은 물건 가지고 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부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소비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사람은 오히려 큰 범죄자라고 생각해야 해요. 그러니 소비를 많이 하는 것을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것을 가지고 기쁨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협력을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나보다 공부를 못하거나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가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인이 가야 할 보디사트바의 길이고, 그것이 긴장을 풀고 더 큰 기쁨을 가져오는 길입니다.
그리고 학생 여러분들은 다음의 6가지 분야에 대해서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첫째, 물질의 근원이 무엇인지, 우주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둘째, 생명의 근원이 무엇이고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셋째, 인류가 어떻게 출현했으며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넷째,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알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인류문화사라고 할 수 있는데, 문명이 어떻게 발전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 부탄 사람이라면 부탄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여섯째, 어떨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쁨이 일어나는지, 어떨 때 괴로움이 일어나는지, 인간의 정신작용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든, 미래에 무엇이 되든, 이 여섯 가지에 대한 공부는 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인간의 사고방식이 편협되거나 폐쇄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긴 모양이 서로 다르듯이 사람의 생각, 가치관, 믿음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다, 혹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고, 인간관계에서 평화를 가져오는 길입니다. 그러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지고, 누구든지 어떤 사람 하고도 만나서 평화롭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을 언급하며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현재 이 모든 갈등의 근본 뿌리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입니다. 그것의 일부로서 지금 변두리 지역에서 분쟁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제가 사는 한반도에도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있고요. 대만 해협을 중심으로 양안 관계에서도 분쟁이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직접 무력으로 충돌한다면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납니다. 과거로부터의 역사적 흐름으로 볼 때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패권 경쟁을 할 경우 대부분 무력으로 그것을 해결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살려서 무력 충돌이 인류에게 큰 피해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전쟁을 피해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도 그냥 내버려 둔다면 충돌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평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 스님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잘하는 방법에 대해 노하우를 알려준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끝까지 스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오후 3시 40분에 예빌랍사 고등학교를 출발하여 트롱사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젬강 휴게소에 내려 젬강 공무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저녁 7시에 트롱사에 도착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식당에 가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며 부탄 정부 공무원들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트롱사 기획담당관이 주지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트롱사 주지사님께서 갑자기 해외 출장이 생겨서 스님을 뵙지 못했다고 무척 아쉽다고 하셨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괜찮습니다. 공무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트롱사주 담당 공무원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8시 2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트롱사를 출발하여 팀푸로 이동한 후 오후에는 로얄 팀푸 칼리지에서 대학생들을 위해 강연을 하고 총장님과 차담을 나눕니다. 이어서 부탄 관광청과 농업부 공무원, 따라야나 재단 실무자들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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