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6.26 일본 오사카(大阪市), 한국 교민 즉문즉설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 저의 정체성은 무엇이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본 오사카(大阪市)에서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6시 30분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일본식 백반으로 아침을 먹고 정비를 한 후 오전 10시부터 숙소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숙소가 좁아서 침대 위에 앉아서 법회를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여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잠시 명상을 한 후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동북아 역사기행 재개를 위한 중국 현지답사 일정을 끝내고 어제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서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오사카와 도쿄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또 일본어 통역으로 현지인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인류의 행복 증진을 위해 정토회 회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어서 베트남으로 가서 5일 동안 베트남의 여러 절을 방문하고, 스님들의 교육 문제에 대해 논의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캄보디아로 가서 여학생 기숙사 준공식을 합니다. JTS에서 캄보디아 왕립 불교대학에 여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기숙사를 건립했는데 이번에 완공이 되어서 준공식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부탄으로 가서 현재 부탄에서 진행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 시범 사업들을 점검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이번 여름에는 법문도 하고 인도적 지원도 하면서 10개국을 방문합니다. 저는 해외에서 인류의 행복 증진을 위해 정토회 회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나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국내외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도록 전법에 전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국제지부는 외국인들도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실수를 자주 하는데, 실수를 줄이려고 하면 긴장을 하게 된다며, 어떻게 하면 긴장하지 않고 실수도 줄일 수 있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긴장하지 않으면서 실수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산만해서 실수가 잦았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써서 작은 실수에도 자책하거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긴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불교대학 돕는 이를 하다 영상을 제대로 틀지 못하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어제는 리허설 시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아이 학교 일정을 놓친 일도 있었습니다. 실수가 잦아지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실수를 줄이려고 애를 쓰다 보니 또 긴장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긴장하지 않고 실수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일에 집착하지 않으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누구든지 일을 할 때 일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세세하게 살필 수 있으면 제일 좋죠. 그런데 다수의 사람은 일을 잘하려고 늘 긴장하고 애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너무 힘들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포기해 버려서 아무렇게나 일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이 편안한 경우에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을 잘할 때는 엄청나게 긴장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이렇게 두 가지를 왔다 갔다 되풀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명상을 할 때도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펴거나, 다리를 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참거나, 두 가지 길 중에 한 길을 갑니다. 이 두 가지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욕구가 일어났을 때 욕구에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이 욕구를 따르든지, 욕구를 참든지, 하는 식으로 반응합니다. 욕구를 따르게 되면 과보를 받게 되고, 욕구를 참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고락이 윤회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윤회의 고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해탈은 욕구를 따르지도 않고, 참지도 않는 거예요. 즉 긴장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 편안한 가운데 아주 세세한 살핌을 유지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편안한 가운데 다만 알아차릴 뿐이다’ 하고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늘 욕구를 따르거나, 이를 악다물고 참거나, 둘 중의 하나를 행해왔기 때문에 참다가 못 참아서 터지고, 터지고 나서 손실이 발생하니까 후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습관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이쪽저쪽을 되풀이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옛말에 ‘기지도 못하는 놈이 날려고 한다’하는 말이 있잖아요.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단박에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잘 안 됩니다. 예를 들어, 건물과 건물 사이에 밧줄을 매달아 놓고 줄타기를 한다고 합시다. 이론적으로는 줄에서 떨어지지 않는 방법을 짧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저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고 쭉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줄 위에 올라가면 이쪽으로 기울어 넘어지든, 저쪽으로 기울어져 넘어지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여러 번 시도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요?’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누구나 다 가능할까요?’ 하고 묻는다면, 가능하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쉽게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쉽지는 않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건 아니고 누구나 가능하지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렵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해탈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지만 조금씩 개선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10미터 줄타기를 완전히 해내는 것을 100퍼센트라고 하면 8미터를 가다가 넘어지든 9미터를 가다가 넘어지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줄타기가 거의 이루어진 거나 진배없지만 100퍼센트에 비하면 아직 완성이 안 된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은 성공을 못 했다’ 하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줄 위에 서지도 못하다가 조금씩 한 발 한 발 나아가게 되는 겁니다. 현실에서는 점진적으로 개선이 되는 것이고, 이론적으로는 단박에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긴장해서 조금 더 일을 잘할 것인지, 아니면 긴장을 놓고 편안한 가운데 실수를 조금 더 많이 하는 것을 받아들일지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편안한 가운데 실수가 조금 더 많은 쪽을 현실적으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긴장을 풀고 편안하다고 해서 반드시 실수가 잦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편안한 가운데에 일을 하면 오히려 실수가 더 적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초심자는 긴장을 풀고 편안하면 실수가 더 잦아지는 것이 현실이에요. 이런 현실을 일단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실수가 조금 더 잦아지더라도 일단 편안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실수했을 때는 사과를 하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편안한 가운데 다시 일을 하는 거예요. ‘살다 보면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저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실수를 합리화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부족한 것을 인정하되 편안한 것을 더 우선시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자꾸 연습해 가면 자신이 편안해짐으로써 오히려 긴장할 때보다 더 살핌이 뚜렷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초병이 주위를 꼼꼼히 살필 때는 아주 긴장해서 살핍니다. 긴장해서 살피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졸거나 자기도 모르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위의 움직임을 놓치게 됩니다. 편안하면 살피는 힘이 약해집니다. 졸음이 많이 오기도 하고요. 그러나 편안한 가운데 살피는 힘을 점점 키우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 힘이 들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훨씬 더 오래도록 살피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지금의 현실은 받아들이되 꾸준히 연습해 나가면 오히려 편안한 가운데 더 세세한 것을 살피는 힘이 커지는 결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해탈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는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할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실수를 안 하는 것을 중요시할 것인지, 편안한 것을 더 중요시할 것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늘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편안한 것을 더 우선시하겠다면 실수에 대해서는 기꺼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사과를 하며 살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편안한 것에 만족하고 실수하는 것을 합리화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긴장하지 않고 꾸준히 살피는 힘을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알아차림의 힘을 조금씩 늘려가겠다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지금 정일사에 입재해서 정진하시는 전법회원들은 정진에 집중해 주시고, 정일사에 입재하지 않은 회원님들은 6월 13일에 죽림정사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와 국민통합을 기원하는 6.13만인대법회’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 있으니, 그것을 주위에 널리 알려서 전파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9월에 개강하는 정토불교대학에 많은 사람들이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해서 그들의 삶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게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짐을 정리한 후 점심식사를 하러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길에 천주평화연합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과 스님의 하루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서 스님이 일본에 올 때마다 숙소와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분이 특별히 소개를 해서 잠시 들르기로 했습니다.

신도 분들이 큰 박수로 환영하자 스님이 간단하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남한과 북한 간의 갈등이 심해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많이 해주셔서 평화가 유지되도록 마음을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을 극복하고 화해를 해서 한반도에 평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이 기도를 많이 해주세요.”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교회를 나왔습니다.

식당으로 가서 메밀 소바로 점심식사를 한 후 미팅 장소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오사카성과 시텐노지(사천왕사)를 지났습니다.


오후 2시에 약속 장소인 호텔에 도착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 민간단체 활동가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본 사회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해나가면 좋을지, 일본 안에서 조총련, 민단의 활동 상황은 어떠한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조선학교의 활용 문제 등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미팅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오늘 강연 장소인 아베노 구민 센터(阿倍野区民センター)로 갔습니다. 아베노 구민 센터가 있는 곳은 오사카에서도 신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곳입니다.


일본 정토회 회원들이 곳곳에서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강연을 마치자마자 기차를 타고 도쿄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봉사자들과 미리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빈 객석을 앞에 두고, 무대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사카 파이팅!”

기념사진을 찍고 그대로 객석에 앉아 봉사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봉사자들이 모두 일본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일일이 확인을 했습니다.


“다들 어디에 살고 있어요?”

교토, 도쿄, 오사카, 히로시마, 돗토리, 후쿠이, 나고야, 후쿠오카 등 일본 전역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 봉사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야마가타현과 심지어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큰 박수로 서로를 환영한 후 스님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강연을 할 때는 여러분이 봉사를 해야 하니까 우리끼리 먼저 대화를 합시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누구든지 손을 들고 가볍게 질문을 했습니다. 다들 스님의 하루를 보면서 정토회의 근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더 자세한 소식을 궁금해했습니다.

  • 중국을 답사하고 오셨는데, 무엇이 많이 달라졌나요?
  • 다리가 아프시다고 했는데 지금은 괜찮으세요?
  • 동북아 역사기행은 언제부터 갈 수 있나요?
  • 스님의 하루에는 일본에서 스님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하는 활동들이 자세히 소개되지 않아서 궁금합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에 대해 우려가 된다며 일본에서 교민들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한반도에 곧 전쟁이 날 것 같은데, 한국 교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뉴스를 보면 한반도에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인데,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막연합니다. 스님의 입장에서 일본에 사는 교민들이 어떤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 위기를 푸는 열쇠는 일본이나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일본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가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북한도 대화가 안 되고, 한국과 북한도 대화가 안 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일본이라도 미국과 북한이 대화를 하도록 중간에서 힘을 쓰는 것이 전쟁 위기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백악관에 가서 일본과 북한이 대화하는 걸 미국이 좀 지원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더니 미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정치인들은 늘 몸을 좀 사리는 경향이 있고, 미국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저도 일본의 정치계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은 북한과 한국도 대화가 안 되고 있고, 미국도 북한과 대화가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나서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미국 대선이 끝나고 내년쯤 되면 미국도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니까 일본이 맨날 미국의 뒤를 따라가지만 말고 전쟁 위험을 막기 위해 한발 앞서서 행동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설득하는 일을 이번 일본 방문 기간에 해보려고 해요. 일본은 국력에 비해서 외교력이 약한 편이거든요. 특히 동아시아에서 더 그래요.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일본이나 한국을 넘어서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많이 죽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를 지켜내는 문제는 이제 한 나라의 문제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 것을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좀 죽더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만 하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바로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우리는 죽을 수 없다’ 이렇게 아우성을 쳐야 합니다. 그래야 밖에서 전쟁의 위험을 알게 되지, 안 그러면 미국 사람들이든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이 좀 죽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그래요. 예를 들어 우리도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 문제에 대해서 우리한테 유리하면 되지 거기에서 몇 명이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잖아요.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러니 한반도의 전쟁은 우리의 문제니까 어쨌든 우리가 나서서 설득도 하고 아우성도 치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강연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봉사를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쉽지만 대화를 끝내고 각자 자기 위치로 가서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곧 강연장에 청중이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책 사인회도 강연 전에 미리 하기로 했습니다. 사인회를 시작하기 전에 책이 모두 팔렸습니다.

저녁 6시가 되어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 최고로 존경합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사카에서 숙소와 식사를 준비해 준 김정남 님과 남편 다나카 님도 오셔서 함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사카에서 잘 머물다 갑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6시 30분부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160여 명의 교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고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가 오사카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었습니다. 2017년 오사카 강연장에 왔던 사람이 혹시 계세요? 얼마 안 되는 걸 보니 오늘은 전부 새로 온 사람들인가 봐요. 반갑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설명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차례대로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여섯 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한국 사람인데 중국에서 태어나서 일본 국적을 갖고 산다며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야 하며, 한국어를 배우지 않으려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 저의 정체성은 무엇이죠?

“저의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남편과 저는 20대에 일본으로 건너와서 귀화했습니다. 현재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저의 민족성은 한국이지만, 태어나기는 중국에서 태어났고, 현재 국적은 일본입니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모두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이지만 특별히 잘하는 언어도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저의 민족성 때문에 저를 한국인으로 분류하고, 한국 사람들은 저의 억양 때문에 저를 중국인으로 분류합니다. 또 중국 사람들은 저의 국적 때문에 저를 일본인으로 분류합니다. 국제 정세가 민감해질 때면 입장이 곤란해져서 도대체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자라나는 아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해서 걱정입니다. 어릴 때부터 아들을 데리고 친척이 살고 있는 한국과 중국에 많이 놀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아들이 중국과 한국을 싫어하고 일본만 좋아합니다. 아들이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옛날에는 주로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만 평생을 살았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평생 한국에서만 살고, 한국 안에서도 경상도에서 태어났으면 평생 경상도에서만 살고, 경상도 안에서도 경주에서 태어났으면 평생 경주에서만 살았어요. 그런데 시대가 변화하면서 태어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전라도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울산의 공장에 취직해서 이주해 자랐다면, 자신이 전라도 사람인지 경상도 사람인지 헷갈리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 나라 안을 벗어나서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미국으로 이주해 살거나, 조선족으로서 중국에서 태어났는데 살기는 일본에서 산다든지 하는 모습이 있겠죠.

이러한 추세는 세계화로 인해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 시대가 변화하는 속도에 맞춰서 사람들의 생각도 함께 변화하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어디야?’, ‘어느 나라 출신이야?’ 하는 질문은 과거의 문화에 젖은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불교든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종교를 갖고 있으면,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님과 같은 종교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종교를 가질 수 있어요. 세상이 그만큼 다양해지면서 정체성의 분류 또한 다양해졌습니다. 국적이 미국인데 민족은 한국 사람이라면 이것을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분류합니다. 이처럼 중국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독일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등으로 정체성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정체성도 다양해졌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불교인이 됐다면 크리스천 부디스트(Christian Buddhist)라고 합니다. 기독교계 불교인, 한국계 미국인과 같은 것이 바로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니?’와 같은 질문은 옛날의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입국할 때 ‘국적이 어디니?’ 이렇게 묻습니다. 질문자는 일본이라고 대답하면 되겠죠. ‘모국어가 뭐냐?’ 하고 물으면 한국어라고 대답하면 되고, ‘어디서 태어났니?’ 하고 물으면 중국이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전에는 없던 변화된 모습이에요. 과거의 문화에 젖어서 고정관념을 갖고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자가 대답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묻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에 옛날 방식으로 묻는 사람이 있다면 질문자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돼요. (웃음)

안 그러면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상대에게 되물어도 됩니다. 국적을 묻는 것인지, 태어난 곳을 묻는 것인지, 모국어를 묻는 것인지, 상대에게 되묻고 질문에 맞게 대답하면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살았다면 한국어를 잘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가서 자랐다면 한국에서 평생 산 사람보다 한국어를 잘 못합니다. 또한 미국에 평생 산 사람보다 미국어를 잘 못합니다. 그건 너무 당연한 결과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나는 한국말도 잘 못하고, 미국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럴 때는 ‘나는 한국말도 할 줄 알고, 미국말도 할 줄 안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된 자기 정체성입니다. 질문자는 3개 국어를 하는 장점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본어가 일본 사람보다 부족하고, 중국어가 중국 사람보다 부족하고, 한국어가 한국 사람보다 부족하다고 비교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애초에 모국어만 써 온 사람보다 질문자가 더 잘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보다는 조금 부족하지만 세 가지 언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관점을 잡아야 합니다.

질문자가 자기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면, 조금 더 오래 살아보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왜냐하면 질문자와 같은 사람의 수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소수민족을 합쳐서 중화민국이 된 것이니까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그냥 세계인이에요. 국적은 일본이고, 민족성은 한국이고, 태어난 곳은 중국인 세계인일 뿐입니다.”

“아들이 한국을 싫어하고 한국어를 배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질문자의 아들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국적이 일본인 일본 사람입니다. 물론 엄마와 할머니가 한국의 민족성을 띠니까 아들은 한국계 일본인이 되겠죠. 아들이 한국어를 배웠으면 하는 건 질문자의 생각이고, 아들은 그게 싫으면 안 할 자유가 있는 겁니다. 물론 아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유리합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부모들이 예전에는 자식에게 한국말을 안 가르쳤습니다. 영어만 잘하면 되지 한국말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겠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K-문화가 발전하고 인기를 얻으면서 요즘은 미국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게 유리한 입장이 됐습니다. 그래서 굳이 한국말을 안 가르쳐도 한국계 젊은이들이 스스로 한국말을 배웁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들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한국계나 중국계라고 차별을 받았거나 반기지 않는 분위기를 느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출신에 대해서 입을 닫고 오히려 일본 사람으로 보이려는 방어적인 심리가 생겼을 수 있습니다.”

“아들의 친구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나쁘다는 말을 자주 한 것 같아요.”

“한중 관계가 나쁘면 중국의 조선족들 입장이 곤란해지고, 한일 관계가 나쁘면 일본 교민들의 입장이 곤란해지고, 또 한국에 사는 일본계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어요. 함께 섞여서 살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모든 일에는 장점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 아들에게 너무 간섭하려 들지 말고 그냥 놔두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아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숨기려고 일부러 아이에게 한국말을 안 가르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엄마가 아이에게 한국말을 하는데도 아이가 그걸 싫어한다면 크게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가 한국말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면, 밖에서는 일본말을 하더라도 집에서는 한국말만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이가 집에서 일본말을 했을 때 엄마가 대답을 안 하면 본인이 급할 때는 한국말을 하게 될 겁니다. 아이에게 한국말을 쓰도록 강요하기보다는 질문자 자신이 집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면 조금씩 개선되지 않을까 싶어요.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현재 한국에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성이 10만 명 정도가 있습니다. 거기서 태어난 아이들도 질문자의 아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학교에 갔더니 놀림을 받거나 차별하는 분위기를 느껴서 베트남어를 안 배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자기 정체성이 약해져서 오는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베트남계 아이들을 모아놓고 베트남어로 웅변대회를 한다든지, 베트남어 노래 대회를 개최해서 상품으로 베트남 외갓집에 다녀오게 하는 걸 기획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베트남계 사람인 것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어머니를 존중하라는 의미입니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으로 한국계 여성 의원이 처음으로 당선됐는데, 한국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분입니다. 그분은 연방하원 개원식에 붉은색 저고리와 보라색 치마 등 한복을 입고 취임 선서를 해서 언론에 회자된 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 속에서 혹시 어머니가 자신을 못 알아볼까 봐 한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어머니를 존중하는 자세는 자신의 민족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에서 나오는 겁니다. 이것은 곧 자기 정체성 확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인 자신이 먼저 당당해져야 합니다. 아이가 정체성을 숨기려는 것을 보니까 질문자는 별로 당당하지 못했는가 봐요? 내가 태어난 곳과 내 민족을 숨길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처럼 비슷하게 생길수록 숨기려고 합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은 말만 안 하면 구분이 안 되니까 숨기려는 심리가 일어나는 거죠. 북한에서 온 사람이나 조선족도 한국에서 말을 안 하면 한국 사람과 구분이 안 되니까 자꾸 숨기려고 하거든요. 차별받기 싫어서 그런 것입니다. 민족 차별이든 성차별이든 차별을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분위기에 아이들이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숨기면서 살 때는 심리적으로 괴로움이 큽니다. 그래서 그냥 터놓고 사는 게 가장 좋습니다. 질문자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너무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아이가 세 명 있는데, 첫째와 셋째는 스스로 잘하는데 둘째가 가고 싶은 대학을 세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독촉은 안 하지만 부모로써 아이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면 좋을까요?
  • 참선 수행을 했지만 일에 지장이 있어 그만두었습니다. 두 번이나 신비로운 경험을 하여 병이 나았고, 가피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절을 짓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저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은 한국입니다. 저도 조선학교를 졸업했고, 아이들도 조선학교를 나왔습니다. 제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요?
  •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 이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가 나이고,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고, 내가 죽으면 1인칭 시점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런 생각을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나요?
  • 제가 살고 있는 와카야마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와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개인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우리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런 수행을 기초로 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도 여러분이 동참해 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데,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여러분들도 평화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질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기차를 타고 도쿄로 이동을 해야 해서 8시 15분에 강연을 마쳤습니다.

무대를 내려온 스님은 청중들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곧바로 떠나야 해서 모든 사람과 악수를 하지 못하고 급히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차를 타고 곧바로 신오사카역으로 갔습니다. 8시 50분에 기차역에 도착해 숙소로 가서 빠르게 짐을 찾아왔습니다.


짐을 메고 달리고 달려 9시 5분에 도쿄로 가는 탑승구 앞에 도착했습니다. 9시 24분까지 약 20분이 남았습니다.


“빨리 왔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강연을 10분 더 하고 올걸 그랬어요.” (웃음)

9시 24분이 되자 신칸센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기차에 올라 도시락으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신칸센 열차는 2시간 20분을 달려 밤 11시 44분에 도쿄역에 도착했습니다.

도쿄역에 내려 다시 전철로 갈아탔습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전철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12시 20분에 도쿄시 다카다노바바역에 도착하여 다시 짐을 들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골목을 지나 도쿄에 있는 동안 머물 숙소에 도착하니 12시 40분이 되었습니다.

숙소는 정토회 회원 이주은 님의 지인이 세를 주기 위해 새로 고친 집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입주하기 전에 잠시 집이 비어있어 스님 일행에게 집을 빌려주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하고 새벽 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입정교성회를 방문하고 니와노재단 이사장과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일본의 한국계 정치인을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저녁에는 도쿄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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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석

스님께선 지구촌의 세계인으로 참 바쁘게 사시네요.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4-06-30 09:24:26

박철성

오늘도 생생명경 법문 감사히 잘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4-06-30 09:21:29

수연

전법하시는 법륜스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파이팅입니다

2024-06-30 09: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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