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5.11~12 부처님 오신 날 맞이 온종일 청춘 톡톡
"오늘은 내가 붓다가 되는 날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청년들과 함께 하루 종일 청축 톡톡 행사를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어젯밤 11시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출발하여 12시간 동안 비행하여 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전 4시 20분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짐을 풀고 세면을 한 후 여독을 풀 시간도 없이 오전 9시 30분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배우 조인성 님과 함께 청년들을 위해 청춘 톡톡 행사를 하기로 했는데요. 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조인성 님과 사전 미팅을 했습니다. 특별 게스트로 김제동 님도 오랜만에 함께 자리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스님은 잘 지내셨습니까?”

“미국에서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요.”

“도착하자마자 하루 종일 행사를 하시고 강행군이시네요. 연세도 있으신데 몸이 안 힘드십니까?”

“맨날 노는데 뭐가 힘들어요.” (웃음)

조인성 님은 영화 촬영을 준비하고 있고, 김제동 님은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강연을 많이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얼마 전 부탄을 답사하고 온 내용과 미국을 방문하고 온 내용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차담을 나눈 후 10시 30분에 맞춰 행사가 열리는 지하 대강당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400여 명의 청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자연을 노래하는 에코밴드 ‘요술당나귀’의 신나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요술당나귀의 편안하고 활기찬 노래로 청춘 톡톡을 힘차게 시작한 후 1부에서는 스님을 모시고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함께 들어보는 ‘붓다 톡톡’ 시간을 가졌습니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 청년 법회 행사는 저녁에 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청년들을 위해서 초파일 행사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모아져서 이번에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인류 문화사적인 의미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렇게 청년들만 다 함께 모여서 더더욱 반갑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부처님은 태어날 때부터 부처가 되도록 예정된 사람’이라고 이해했어요. 왜냐하면 한 사람이 태어나 출가해서 6년간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어 이런 인물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부처님의 인격이 너무 위대했습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전통에 따라서 ‘이분은 이생에서만 수행 정진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한량없는 생을 통해 수행 정진을 하여 이생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많은 전생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경전에 남아 있는 전생 얘기가 547편이나 됩니다.

이런 전생 이야기에 대해 사실이라고 접근하면 종교적 믿음이 됩니다. 반면에 ‘이건 거짓말이야’ 하고 접근하면 과학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 나온 새로운 학문이 ‘인류 문화사’입니다. 인류 문화사란 ‘이것이 사실이다. 아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이것은 무엇을 상징할까?’ 이렇게 접근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도 인류 문화사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시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하필 일곱 걸음일까요? 인도 전통에서 ‘육도윤회(六道輪廻)’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은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제일 나쁜 지옥부터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돌고 돈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이 여섯 가지를 돌고 도는데 부처님은 이 윤회에서 벗어나신 분입니다. 이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해탈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절대적 자유’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섯 걸음은 윤회를 의미하고, 부처님이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이분은 태어날 때부터 해탈 열반을 성취하여 부처님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경전에는 부처님이 ‘한 손은 하늘을,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키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이 외쳤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존귀하도다.

삼계 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삼계가 다 고통 속에 빠져있구나. 내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여기서 하늘 위는 천상, 신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하늘 아래는 천하, 인간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신들의 세계와 인간들의 세계를 통틀어서 깨달은 이가 가장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신이 가장 존귀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신보다 더 존귀하고, 이 세상에서 이분하고 비교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천상천하 무여불(天上天下 無如佛)’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이분은 이 세상 사람이 어리석어서 고통에 빠져있는데 이들을 다 편안하게 할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런 목적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분이 부처가 된 거예요? 아니면 이분이 평생 스스로 자유롭고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삶을 살았기에 이렇게 묘사가 된 거예요?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를 한 겁니다. 즉, 부처님의 전기를 쓴 작가가 이분이 평생 동안 산 모습을 태어나는 모습에 상징적으로 묘사를 한 겁니다. 그러니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를 보고 ‘이상한 것을 믿는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위대한 붓다의 일생을 전기 작가가 인도의 전통문화 속에서 이렇게 묘사했구나’ 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나는 가장 고귀한 존재입니다

청년 여러분들도 본인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든,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가 홀로 나를 키웠든, 그런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예수님은 아버지가 원래 목수였어요. 그런데 위대한 성인이 되어서 자기가 바로 하느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즉, 최고로 존귀한 존재, 신의 아들이 되었어요.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또 다른 발상을 해서 부처님은 신보다 더 높은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창조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되었고, 부처님은 신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높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만큼 고귀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부처님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정을 받고 태어나서 그렇게 된 거예요? 아닙니다. 그분의 삶이 결과적으로 이런 존재가 된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어릴 때 부모님이 나를 사랑했든 안 했든, 어머니 혼자서 나를 키웠든, 어머니가 성폭행을 당해서 나를 낳았든, 이런 것에 연연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신분이 천하든 높든, 부자든 가난하든, 배웠든 안 배웠든, 장애가 있든 없든, 혼자서 키웠든,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고귀한 존재가 되면 여러분들의 태생은 바로 다 고귀해져 버립니다. 고귀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고귀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고귀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전생, 현생, 미래의 생까지 고귀해지는 거예요. 지금이 고귀해지면 내가 바로 하느님도 되고, 하느님의 아들도 되고, 하느님보다 더 높은 사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자각이 안 되니깐 ‘엄마가 어릴 때 나를 학대했다.’ ’ 욕을 했다.’ ‘아버지가 술 먹고 와서 때렸다.’ ‘부모가 이혼했다.’ ‘대학에 안 보내줬다.’ ‘누가 나를 성추행했다.’ 이런 핑계들을 대며 괴로워하는 거예요. 누가 나를 성추행하든 나를 때리든 어릴 때는 몰라서 큰 상처가 되지만, 내가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나면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에요.

바로 내가 붓다가 되는 날

예를 들어 한라산을 등반하는데, 평지로 갔다가 숲 속을 갔다가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가 개울을 건넜다가 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올랐다고 합시다. 정상에 오른 뒤에 뒤돌아보면 개울을 건널 때 신발을 벗고 건넜든, 누가 업어줘서 건넜든, 그게 중요해요? 뙤약볕을 걸어왔든, 그늘을 걸어왔든, 가파른 길을 걸어왔든, 완만한 길을 걸어왔든, 오다가 다섯 번을 넘어졌든, 한 번도 안 넘어졌든, 그런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아요. 정상에 올라서 뒤돌아보면, 그냥 하나의 과정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 여러분들이 자꾸 환경을 탓하고 누구를 탓하는 것은 스스로 붓다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 못지않은 나만의 고귀한 삶을 살아간다면 여러분 모두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든 다 붓다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바로 내가 붓다가 되는 날입니다.”


이어서 11시 20분부터는 배우 조인성 님과 청년들이 대화하는 제2부 ‘사랑 톡톡’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조인성 님이 출연한 ‘클래식’, ‘발리에서 생긴 일’, ‘괜찮아, 사랑이야’ 등 주옥같은 작품들에 대해 퀴즈를 풀어보는 시간을 재미있게 가진 후 본격적으로 조인성 님의 수행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청년들은 조인성 님이 배우 생활을 롱런할 수 있는 비결, 힘들 때 마음을 돌아보는 방법, 길벗 모임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 등 다양한 질문을 통해 조인성 님의 마음공부와 봉사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이 조인성 님에게 고민을 질문하는 ‘고민상담소’ 시간을 가진 후 12시가 넘어서 2부 프로그램을 마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400여 명이 질서 있게 줄을 서서 비빔밥과 오이냉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스님은 조인성 님, 김제동 님과 함께 식사를 한 후 공양간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식후에는 1층과 2층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홍보 부스에서는 법륜스님의 말씀이 담긴 예쁜 엽서를 나눠주었고, 연등 만들기, 부처님께 편지 쓰기 등 다양한 체험 부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부스를 한 바퀴 돌아보며 청년들을 격려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제3부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행복 톡톡’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정토회 청년특별지부 회원들의 여는 공연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예원 님은 바이올린 연주를 해서 큰 박수를 받았고, 김라결 님은 이무진의 신호등 노래를 신나게 불러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에 올라와서 청년들과 즉문즉설을 했습니다. 사전에 열 명이 질문을 신청했습니다.

스님은 한 시간 동안 청년들의 고민을 듣고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머니가 이혼을 두 번이나 해서 아버지가 계속 바뀌는 인생을 살았다며, 이런 어머니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혼하고 재혼, 또 이혼, 어머니의 삶을 받아들이기가 벅찹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가 어머니가 재혼한 뒤 새아버지의 자녀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다시 이혼했고 지금은 다른 분과 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길 원하셨지만 저는 거절을 했고, 그러자 어머니는 서로 얼굴을 보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지만, 상처가 남아 연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는 무속 신앙을 믿으시는데 저는 늘 그 부분에 대해 거부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를 이해해 보려고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굿당에 가서 일도 도와드리고 참회의 백팔배도 1년 가까이했습니다. 그러나 역효과가 났는지 정신병적인 증상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어머니 없이 자라며 힘든 세월을 보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제가 어머니의 삶을 받아들이기는 벅찬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질문자는 지금 스무 살이 넘었나요?”

“예, 넘었습니다.”

“스무 살이 넘었으면 이제 성인이에요. 이제 어머니에 대해서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 할머니 밑에서 자라고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상처를 입은 거예요. 지금 상처가 덧나서 힘든 거지 이건 어머니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한 부모 밑에서 쭉 자라는 것도 좋지만 매년 부모가 바뀌는 것도 괜찮지 않나요? 이런 부모와도 살아보고 저런 부모와도 살아보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한 남자하고만 쭉 살아도 괜찮지만 매년 바꿔가면서 살아봐도 괜찮고, 한 회사만 쭉 다녀도 괜찮지만 매년 직장을 바꿔 다녀도 괜찮아요. 그것을 가지고 어느 게 좋다 나쁘다고 할 수가 없어요.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주어진다면 그런 경험을 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할머니 밑에서 자란 경험이 있으니, 앞으로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과 대화할 때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또 의붓아버지 밑에서도 자라 봤기 때문에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해하기가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성추행의 위험이 있는지, 아니면 학대받을 위험이 있는지 잘 알 수 있으니 그런 사람들을 상담할 때도 많이 유리할 거예요.

이제 스무 살이 넘었는데 과거에 어떻게 자랐는가가 왜 중요합니까? 안 죽고 산 것이 중요하지요. 질문자의 지금 문제는 어머니에 대한 문제도 아니고, 아버지에 대한 문제도 아니고, 할머니에 대한 문제도 아닙니다. 질문자가 어릴 때 어리석어서 상처를 입은 겁니다. 어리니까 몰라서 상처를 입은 거예요. 그 상처를 지금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핵심 원인이에요. 이 상처를 치유하면 지난 과거가 내 삶에 유리해질 것이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괴로움을 안고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남의 문제는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어머니 문제 역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안 보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내가 어머니를 보고 싶으면 봐도 됩니다. 어머니를 이해하겠다고 노력할 필요도 없어요. 누구나 신앙의 자유가 있는데 어머니가 무당을 하든지 교회를 다니든지 남의 인생에 내가 왜 신경을 씁니까? 그냥 어머니께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면 됩니다.

질문자는 상처가 있어서 어머니가 싫기도 하고, 키워준 것에 대해 고맙기도 하고,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있어요. 이 마음은 어머니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본인의 마음에 생긴 상처가 계속 본인을 혼란스럽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내 상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내 상처가 치유됐는지 검증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무렇지도 않으면 상처가 치유된 것입니다. 갈 때마다 자극이 오면 상처가 남은 거예요. 상처가 남았을 때는 안 가는 게 제일 좋습니다.

또 상처가 좀 치유됐는지 검증하려면 어머니께 가서 테스트를 해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웃집 아저씨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면 부르면 되지 그게 뭐 큰 문제예요? 내 마음대로 불러도 되고, 안 불러도 돼요. 법륜스님도 스님이라고 부르고 싶으면 스님이라 부르고,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으면 아저씨라 불러도 됩니다. 마음대로 해도 돼요. 그런데 절에서는 스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에게 유리합니다. 그것처럼 그 집에 가려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나한테 유리한 거예요. 법륜스님을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지만, 절에서 그렇게 부르면 본인이 좀 불리해집니다.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부르는 게 더 낫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덕 볼 게 있으면 아버지라고 불러주면서 이익을 좀 챙기면 되고, 별로 덕 볼 게 없으면 아저씨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라 불러라’ 하고 말하면 ‘네’ 하고 돌아서서 ‘아저씨’ 이러면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나이가 스무 살 밑이면 이해가 되는데, 질문자는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이잖아요. 더 이상 남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 남을 탓한다는 건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몸은 성인이 됐지만 의식 구조는 상처로 인해 아직 열 살에 멈춰 있는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자기 치료를 해야지 더 이상 다른 얘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다양한 질문에 모두 답변을 한 후 스님은 마이크를 김제동 님에게 넘겼습니다. 스님에게 배정된 90분 중 30분을 특별 게스트로 온 김제동 님에게 부탁했습니다.



큰 박수를 받으며 김제동 님이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웃으며 박수를 치다 보니 30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종일 청춘 톡톡 행사를 마치며 스님이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현실에서는 주로 노인들이 많이 공부하는데 사실 젊은이들이 할 만한 공부입니다. 그리고 젊을 때 이 법을 알면 참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재미를 쫓다 보니 부처님의 법을 접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조금 더 틈을 내서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소비 중심의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소비 중심의 삶이 좋기는 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어느 시점에 들어섰을 때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하게 되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문명도 언젠가는 임계점에 다다를 건데 우리는 그것을 막지 못할 거예요. 그럴 때 다른 길의 인생도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정토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탄에 가서 또 다른 실험도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 청년 여러분도 이 일에 많이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행사를 기약하며 온종일 청춘 톡톡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조인성 님, 김제동 님과 함께 2층 카페로 이동하여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최근에 OTT 시장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이 속에서 한류 열풍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대중문화예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세 명이 유랑단을 하나 꾸려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합시다. 김제동 님은 개그맨, 조인성 님은 배우, 스님은 법문, 이렇게 역할을 나누어 맡으면 되고, 여기에 가수가 한 명 더 필요합니다.” (웃음)

김제동 님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기타 치고, 인성이가 노래를 불러도 됩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예전에 청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러 멘토들과 함께 전국 순회를 했던 청춘콘서트가 생각났습니다. 위축되어 있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 하는 스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스님은 두 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청년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진짜 하루 종일 시간을 내어 주었네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미국에서 도착하자마자 행사를 하느라 여독을 풀 겨를이 없었습니다. 몇 가지 급한 업무들만 처리한 후 스님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과 저녁에 전법 회원들을 위해 생방송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에서 회의와 업무를 볼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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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무살이 진작에 넘었는데 아직까지 남탓하고 있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고귀한 존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5-25 07:37:05

동동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고귀한 존재가 되어
나아가겠습니다.

2024-05-18 14:01:08

조연희

꾸준한 수행을 하는 김제동님과 조인성님을 응원합니다

2024-05-18 08: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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