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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일본을 방문한 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9시에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니와노 평화재단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이사장님과 사무총장 이하 재단 직원분들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지난 2020년에 니와노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수상식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니와노 평화재단을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수상 후 3년이 지나서 재단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고 한일 관계와 북일 관계의 발전 방향,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나리타 공항으로 이동하여 오후 2시에 비행기를 타서 김해 공항에 4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내일 애광원과 자재요양병원에 가져다줄 배추와 무, 배가 어떻게 트럭에 적재되어 있는지 점검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제가 30분 먼저 출발해서 자재요양병원에 농산물을 나눠주고 나서 애광원으로 갈게요. 행자님들은 아침 8시에 트럭을 타고 애광원으로 출발해 주세요.”
문수 팀 행자님들과 역할 분담을 한 후 스님은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을 하며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까 서울은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 8도 이하로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 14도까지 내려간다고 합니다. 제가 있는 이곳 두북 수련원은 남부 지방인데도 영하 5도까지 떨어진다고 해요. 올해 들어 제일 추울 것 같습니다. 외출을 하실 때는 옷을 잘 챙겨 입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작년에는 11월 날씨가 따뜻해서 올해는 공동체 김장을 12월로 늦추었는데 갑자기 11월 날씨가 계속 영하로 떨어지니까 김장 날짜를 잘못 잡은 것 같아요. 보통은 김장을 할 때 무를 뽑는데 벌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니까 지난 금요일에 무를 미리 뽑았습니다. 무는 얼기 전에 밭에서 뽑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토요일에는 천룡사에서 불심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특별법회를 했고, 일요일에는 외국인 노동자 130여 명을 초대해서 봉암사를 참배하고 선유동 연수원에서 즉문즉설 법회를 했습니다. 봉사해 주신 정토회 회원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은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제안하고 논의하기 위해 일본의 원로들을 만났습니다. 일본에 간 김에 도쿄에서 한국 교민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도 했습니다. 35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2020년 10월에 아시아의 종교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니와노 평화상을 수상한 바가 있어서 니와노 평화재단을 방문하여 인사를 나누고, 법회 시간에 맞춰 방금 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으뜸절에서 회원들이 실천 활동을 한 모습과 스님이 무를 수확하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가을 나들이를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나쁜 인연과 좋은 인연이 있는 것인지, 불편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나에게 이득이 있으면 이름하여 ‘좋은 인연’이라 부르는 것이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면 ‘나쁜 인연’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선연(善緣)’이 따로 있고 ‘악연(惡緣)’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돈을 못 돌려받았다면, 내 입장에서 상대방은 악연이라고 느껴지겠죠. 그러나 악연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을 빌려 간 사람이 못 갚았다는 사실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악연이라고 이름 짓는 거예요. 우리가 살다 보면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을 때가 있고, 도움을 준 적도 없는 사람한테서 오히려 도움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이름하여 ‘선연이다’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내가 가게에 가면 나는 ‘손님’이라 불리고, 내가 학교에 가면 나는 ‘학부모’라고 불리고, 내가 절에 가면 나는 ‘신도’라고 불립니다. 이처럼 나는 어떠한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인연에 따라서 불리는 이름이 달라질 뿐이에요.
악연이니 선연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만나서 A는 이득을 보고 B는 손해를 봤다고 한다면, B가 볼 때 A는 악연이고, A가 볼 때 B는 선연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악연과 선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거예요. 만약에 누군가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다’ 하고 말한다면 이 말은 누군가를 만나서 이득을 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쳤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물건이 필요해서 가지고 간 거예요. 그런데 상대방은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렸으니까 그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나쁜 인연이 되는 거죠. 내가 어떤 물질을 먹었는데 병이 낫게 되면 그 물질을 이름하여 ‘약’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물질을 먹고 병이 안 나았다면 ‘약효가 없다’ 하고 말하고, 그 물질을 먹었는데 오히려 병이 생기게 되면 ‘독’이라고 이름 짓는 겁니다. 약이나 독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현재 약이라고 하는 물질의 대부분은 정량보다 많이 쓰게 되면 독성을 띠고, 적당히 쓰면 약성을 띠게 됩니다.
‘무아(無我)’란 어떤 것도 실체가 없으며 단지 인연을 따라서 이렇게도 이루어지고 저렇게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도 한번 보십시오. 남편이 아내하고 사이가 안 좋다고 해서 악연이 아니에요. 서로가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하니까 악연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상대방에게서 뭔가 이득을 얻으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사람한테서 손해를 보면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좋은 인연이 되고, 원하지 않는 결과가 일어나면 나쁜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에 따라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이 전쟁한다고 합시다. 한국이 이기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밤이고 낮이고 기도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기게 되면 우리는 ‘부처님 믿어도 소용없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반면에 일본의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피를 내렸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같은 부처님을 두고도 이렇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게 되는 거예요. 이렇듯 본래 좋고 나쁜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좋은 일이라고 평가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라고 평가되기도 하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닌, 그냥 사건이라고 평가되기도 하는 겁니다.
거란족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서희가 적장 소손녕과 담판으로 거란을 몰아냈던 상황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고려 입장에서는 활도 한 번 안 쏘고 승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란족 입장에서는 서희에게 속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정해진 인연이 따로 있다고 보면 안 되고 어떤 시간과 어떤 공간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고 봐야 합니다. 그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 차이는 각자의 입장, 사상, 이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때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불경기로 인해 엄청난 재앙을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지구 공기가 맑아졌다’ 하고 평가합니다. 이처럼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시각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인연만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은 마음속에는 인간관계에서 항상 이득만 보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수행자는 복을 받기를 바라기보다 복을 지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행위가 곧 복을 받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을 지을 생각은 안 하고 복을 받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자신은 다른 사람한테 아무런 이익을 안 주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익을 얻고자 하면, 첫째, 그렇게 되기가 불가능하고, 둘째, 주위에서 그런 사람을 보면 얄밉게 느껴집니다. 복을 짓는 사람이 되어 스스로 복 받는 길을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많이 베풀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선과 악으로 나누어서 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여러 인연들을 있는 그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한 시간 반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밤 9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자재요양병원과 거제 애광원을 방문하여 배추, 무, 배를 전달한 후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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