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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규모 지진 피해가 있었던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서 남서쪽으로 2시간 떨어진 오스마니예 캠프에 구호물품을 배분하는 날입니다. 새벽 4시 30분에 공항으로 이동해 7시 35분 비행기를 타고 9시가 다 되어 가지안테프에 도착했습니다.
가지안테프 공항에는 JTS와 함께 구호 물품을 배분하고 있는 튀르키예 단체 샤팍(shafak)의 활동가 와합 님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샤팍 단체의 대표와 함께 오스마니예 캠프로 이동했습니다. 차 안에서 샤팍 대표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보통 후원자들은 물품과 비용만 지원하는데 이렇게 직접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의 방문 덕분에 이 일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언론에서 지진 피해 소식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저도 기쁩니다.”
대화를 나누며 2시간을 이동해 오스마니예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구호물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12시 30분부터 물품 배분을 시작했습니다. 물품은 쌀을 비롯해 14개 품목으로 1개 박스와 2개의 봉지로 40kg이 넘는 물품이라 혼자 들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오스마니예 캠프에서는 5백 가구에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구호 물품을 배분할 가정에 방문해서 명단을 확인하고, 물품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오늘은 35도를 넘어서는 매우 건조하고 뜨거운 날이었습니다. 이 더운 날씨에도 무슬림을 믿는 튀르키예 활동가들은 라마단 기도 기간이라 물도 마시지 않고 물품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새벽 4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까지 물도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날이 더워 활동가들이 갈수록 지쳐갔습니다. 지쳐 보이는 활동가들에게 스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물을 마셔도 되니까 제가 다 할게요.”(웃음)
“그럼 물 좀 드시고 하세요.”
“괜찮아요. 제가 물을 마시면 다들 마시고 싶잖아요.”
스님도 물을 마시지 않고 계속 배분 작업을 했습니다. 지진 피해자들은 한국 사람을 알아보고는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물품 배분을 시작한 지 3시간 후 현장에 오스마니예주 주지사가 방문했습니다. 주지사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튀르키예도 어렵지만 시리아 지역은 정부 지원도 없어서 더욱 어렵다고 해서 JTS에서는 앞으로 시리아 지역에도 지원을 하려고 합니다. 주지사님께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주지사와 대화를 마치고 활동가들과 함께 30분간 더 배분 작업을 했습니다.
4시 30분에 하던 일을 마치고 차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7시에는 현지 활동가들과 라마단 식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라마단 기간이면 저녁에도 기도를 하는 시간이 있습니까?”
“네, 8시 30분부터 기도시간입니다.”
“30분밖에 안 남았네요. 기도시간은 맞춰야지요”
스님은 기도시간을 고려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시리아 국경에 있는 와탄 캠프로 가서 구호 물품을 배분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에 수현사 초청법회 때 있었던 즉문즉설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불교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대학생입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이 깨달음인데요. 정확히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깨달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왜 깨닫고 싶은데요?”
“궁금해서요.”
“깨달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말에 걸려 들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남의 말에 현혹된 거예요.”
“그렇게 보실 수도 있는데, 제 성격이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어서요. 그냥 깨달음이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갑니다’ 하는 말을 들었을 때도 ‘천당이 어떤 곳인가?’ 하고 궁금해서 천당에도 한번 가 볼 거예요?”
“글쎄요.”
“이런 사람을 보고 귀가 얇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질문자는 이 사람이 말하면 여기에 끌려가고, 저 사람이 말하면 저기에 끌려가는 사람이에요. 별로 좋은 태도는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깨달으면 어떻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 사람이야 뭐라고 그러든 그것은 그 사람의 얘기입니다. 그 말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그것은 그냥 길 가는 사람의 얘기일 뿐이에요. 나한테 정말 필요해서 물어보고, 안 후에 직접 해봐야 딱 내 것이 됩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분들이 있어요.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가 자신의 자녀를 보고 ‘아이고, 이 아이는 단명합니다. 단명을 막으려면 부적을 사야 합니다’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저한테 찾아와서 ‘그 스님 말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그것은 그 스님한테 물어봐야지, 왜 저한테 물어요?
그걸 저한테 묻는 사람의 마음을 분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길 가던 사람의 말에 끄달린 거예요. 둘째, 그 스님의 말이 믿어지면 부적을 사면 되잖아요. 부적을 사지 않고 저한테 물어보는 이유는 값이 너무 비싼 거예요. 100원만 내면 된다고 했으면 저한테 물어보러 안 왔겠죠. ‘돈을 어떻게 좀 적게 들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런 욕심에서 고뇌가 생기는 것이지, 그 스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일상에서도 수도 없이 보잖아요. 이 사람은 이렇게 주장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주장하고, 이 사람은 이런 물건을 갖다 놓고 사라고 하고, 저 사람은 저런 물건을 갖다 놓고 사라고 합니다. 나는 그중에서 내가 필요한 걸 선택하면 됩니다.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전에 일단 그걸 먼저 지적하고 싶어요.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를 하는 순간 깨달음과는 거리가 먼 깨달음에 대한 지식을 얘기하게 됩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이런 고뇌가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질문자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깨달음이 무엇인지 아는 게 뭐가 중요해요? 지식에 불과한 것을 안다고 해서 인생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깨닫는다’ 하는 말을 썼을까요?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앞이 안 보입니다. 눈을 뜨면 환히 보입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바로 옆에 있는 물건도 찾을 수 없고, 눈을 뜨면 금방 찾을 수 있어요. 깜깜하면 눈을 떠도 못 찾고, 불을 탁 켜고 보면 물건이 어디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깨닫는다’ 하는 말은 ‘눈을 뜬다’, ‘불을 밝힌다’ 하는 개념입니다. 반대로 ‘눈을 감았다’, ‘어둡다’ 이런 표현은 무지(無知),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내가 뭘 모르니까 두렵고 괴로운 겁니다. 그것은 마치 눈을 감은 것과 같은 상태이고, 깜깜한 밤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내가 눈을 뜨고 불을 밝혀서 보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굉장히 쉬워집니다.
깨달음을 표현하는 다른 말로는 ‘꿈에서 깬다’ 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꿈속에서 강도에게 쫓기고 있다고 합시다. 꿈속에서는 아무리 도망을 가도 그 강도가 계속 따라옵니다. 그런데 눈을 딱 뜨면 해결이 돼요. 눈을 감은 상태, 즉 꿈속에서는 강도로부터 도망가거나 누군가가 강도를 막아주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뜨면 아무런 해결책이 필요 없어요. 원래 강도가 없었습니다. 누가 나를 구해줬다고 해도 원래 나를 구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도 원래 해결할 문제가 없었어요. 눈을 뜬다는 것은 본래 문제가 없는 줄을 아는 거예요. ‘꿈에서 깬다’ 하는 표현처럼 여러분들이 어떤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그럼 제가 이해한 대로 깨달음을 설명하자면 ‘있는 그대로를 보면 괴로울 일이 없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될까요?”
“정리는 잘하네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한문 용어로 표현하면 ‘실상(實相)’이라고 합니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고 하잖아요. 깨달음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거예요.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인식상의 오류가 발생하면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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