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4.3 전법회원 법회
“소비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려면”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전법 회원들을 위해 오전과 저녁에 생방송 법회를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한 후 정토회 대표 전해종 님이 정토회의 3월 사업 결과를 보고하고, 무변심 법사님이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며 새로 진행되는 소임자 교육에 대해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활동가들이 삼배의 예로 법을 청하자 스님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이 소임자 교육을 처음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스님은 전법 회원들을 위해 정토회의 미래 30년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정토회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미래 30년을 내다볼 때 정토회는 소비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소비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차 만일결사가 진행되는 향후 30년의 과제는 전 세계인에게 행복을 전하고, 소비주의, 자본주의,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소비주의나 기후위기 극복은 어떤 과제를 갖고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고 실천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과제를 가지고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조금이라도 많이 쓰는 것이 더 잘 사는 것이다’ 하는 가치관이 자본주의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옛날 노예제가 행해지던 시대에나 봉건주의 시대에도 그런 가치관이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는 늘 인간의 지나친 욕망이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화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시대는 달라도 대부분의 가르침은 욕망을 절제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죠. 그러나 여전히 가르침 자체는 항상 욕망을 절제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물질이 중심이 되면 안 된다고도 가르쳤습니다. 이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반대 개념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본주의에서도 물질이 중심이 되지는 않습니다. 신본주의는 자칫 잘못하면 인간을 노예화시킬 소지가 있지만, 핵심은 인간의 정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신본주의에 반대하면서 인본주의가 일어났는데, 이렇게 발생한 인본주의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가치관을 옮겨오는 동시에 인간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신 중심의 신본주의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부정 시 했습니다. 그래서 금욕주의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이 겉으로는 금욕주의를 주장하면서 뒤로는 물질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모순을 드러내면서 금욕주의도 신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금욕주의에 반대하면서 차츰 인간의 욕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시각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학문을 연구하거나,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도리어 금욕주의를 내세운 중세 봉건주의 시대를 우리가 문명사적 암흑기라고 표현할 정도니까요.

이처럼 사람의 욕망을 인정하자는 건 처음에는 좋은 의미였는데, 이런 사고방식이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는 더 이상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고 자본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끝없는 욕망을 좇는 걸 합리화하고, 오히려 욕망을 추구하는 삶을 장려하기까지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의 가치 기준이 더 이상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다른 사람과 얼마나 더불어 잘 살아가는지, 다른 사람과 얼마나 협력을 하면서 살아가는지가 아니라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돈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으로 사람을 평가했다면, 이제는 계급도 아니고, 남녀 성별도 아니고, 오로지 돈으로만 평가하고, 돈만 많으면 우대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즉, 물질적 소비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 대우를 받는 사회인 거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불법만 저지르지 않으면 술집을 해서 돈을 벌든, 무엇을 해서 돈을 벌든, 그저 돈을 많이 벌기만 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됩니다. 조선시대와 같은 계급사회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신분이 낮으면 대우를 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기준이 되는 사회입니다.

또,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돈이 돈을 버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을 해서 받은 월급을 저축하고, 그렇게 저축한 돈을 모아서 집도 사고, 삶을 꾸려 나갔는데, 요즘은 재테크라고 해서 투자한 돈으로 다시 돈을 버는 일에 다들 뛰어듭니다. 투자라는 이름하에 투기를 하기도 하고, 도박 같은 게임에 참여해도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인데, 요즘은 집들이 투기의 대상이 된 측면이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과거에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함으로 인해 초기에 문명의 발전을 이끈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던 데 반해, 지금은 지나치게 물질 중심의 사고 방식으로 흘러가게 되어서 많은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즉, 소비주의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데 제도적인 뒷받침을 자본주의가 해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왕이면 아들도 왕이 되고, 아버지가 양반이면 아들도 양반이 되고, 아버지가 관료면 아들도 관료가 되는 게 일상적이었습니다. 즉, 신분세습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한 신분세습을 과감하게 철폐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분 대신 자본이 세습되는 모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분이나 권력이 세습되는 건 반대하면서도 아버지의 재물이 그대로 아들의 재물이 되는 자본 세습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부러워하기까지 합니다.

신분이든, 권력이든, 재물이든 세습되는 건 막아야 하는데, 요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분이나 권력이 세습되는 건 막지만 자본이 세습되는 건 그대로 둡니다. 그래서 결국 자식이 부모의 자본을 받아서 그 자본의 힘에 의해 다시 권력을 잡는 권력세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가진 권력을 상당 부분 자식이 물려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요즘은 더 이상 아버지가 왕이기 때문에 자식도 왕이 되고, 아버지가 관료니까 자식도 관료가 되는 세습이 일어나지는 않지만,실제로는 돈으로 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변형된 신분세습, 변형된 권력세습이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그래도 옛날에는 농촌집 아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 변호사가 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사다리가 많이 무너진 상황입니다. 요즘에는 변호사 아들이 변호사가 될 확률이 높고, 의사 아들이 의사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의과대학도 보낼 수 있고, 아들이 의사가 되어서 졸업을 하면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을 하며 경험을 쌓다가 아버지가 은퇴하면 아버지가 돌보던 환자들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병원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배경이 없는 사람과는 출발점이 많이 다릅니다. 이런 건 법률회사들도 마찬가지죠. 심지어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서는 세습정치라고 말할 정도로 아버지가 정치를 하면 나중에 아들이 그 지역구를 물려받아서 정치를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질서가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다시 옛날 계급사회와 같은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스스로 노력해서 돈을 벌고 자수성가하는 사례는 가뭄에 콩 나듯 아주 드물고, 오히려 물려받은 재산이 있느냐 없느냐가 다음 세대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다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그로 인해 다시 계급사회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재물의 많고 적음만 따졌지만 앞으로 바이오 산업이 발전하면 재물에 따라 삶도 많이 달라질 겁니다. 돈 있는 사람은 나이가 100살이 되어도 50대의 피부와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보통 사람은 명대로 살다가 죽고, 가난한 사람은 명대로도 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상류층은 명이 길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젊음을 유지하면서 살고, 그러면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도 너도 나도 돈을 벌어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많이 쓰기 시작할 거예요. 지금은 화장품을 사거나 수술하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나중에는 수시로 약을 사먹거나 주사를 맞는 쪽으로 나아가서 결국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는 삶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들을 보면서 열등의식을 느끼고 부러워하겠죠. 옛날에 하인이 양반을 부러워하듯이, 요즘 돈 없는 사람이 돈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듯이, 훗날엔 육체를 젊게 유지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거예요. 사실 요즘에도 이미 이런 현상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습니다. 60대인데 30대의 피부를 가졌다거나 40대의 건강을 가졌다는 사람이 미디어에 나오면 사람들은 그런 걸 보고 부러워합니다. 어쩌면 돈이나 권력보다 그런 걸 더 부러워하게 될지도 몰라요.

이런 것들이 전부 물질중심의 가치관으로 인해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가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는지, 그가 얼마나 평화적인지, 그가 얼마나 지구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서 후대의 삶이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지, 이런 건 삶의 평가 기준에 전혀 안 들어가고 있잖아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가지 않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교회를 팔 때 교회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십일조를 내는 신도가 몇 명인지 등을 기준으로 합니다. 교인 등록 수가 아니라 예배참석자가 몇 명인지를 따집니다. 왜냐하면 일요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십일조 헌금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참석 교인’으로 소개를 합니다. 이렇게 헌금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 시설이 얼마나 큰지를 기준으로 교회를 얼마에 팔지를 결정합니다. 그러니 장사하는 가게를 팔 때와 다를 게 없죠. 가게를 팔 때도 손님이 몇 명인지, 매출이 얼마인지, 건물의 평수가 얼마인지를 기준으로 권리금 등을 책정하니까요.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절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를 기준으로 잘 되는 절인지 아닌지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절이나 교회에서도 결국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장로가 되고, 대보살이 되고, 신도회장이 되곤 합니다.

결국 모든 부분에서 자본이 중심인 세상이 된 겁니다. 종교 시설에 갔을 때 그곳이 영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결국 거기에 가서 기도를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 아니냐 하는 걸로 따지잖아요. 대형교회가 성장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은총을 물질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형교회가 됐다는 것 자체가 은총이 있다는 것으로 평가가 되고, 작은 교회는 그 자체로 은총을 받지 못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은총 받지 못한 교회에는 가서 기도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형교회로 몰리는 거요. 이런 게 다 자본주의의 폐단입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사회주의도 결국 시스템을 달리해서 물질적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주의를 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자본주의와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사회주의에서는 자본이 중심이 되지 않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를 지향할 뿐입니다.그래서 소비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혜택을 누가 받느냐, 어떻게 분배하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자본주의의 폐단을 지적한다고 해서 이런 시장 경제 시스템을 모두 다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또, 자본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는 것을 곧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것으로 받아들여도 안 됩니다. 우리는 물질 중심주의에서 인간 중심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고, 삶의 가치가 물질이 아닌 행복으로 옮겨가는 사회를 만들고자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국가를 평가할 때도 1인당 GDP를 비롯하여 그 나라에서 물질을 얼마나 생산 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부탄의 왕은 국가를 평가할 때 그 나라 국민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기준으로 지수를 잡는 게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걸 요즘은 ‘행복지수’라고 부릅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 수상이 행복을 중심으로 국가 예산을 편성하고 행복 증진에 맞춰 정부 정책을 집행하겠다고 하면서 행복 예산을 발표한 적이 있죠. 행복지수를 기준으로 삼으면 국가가 정책을 집행할 때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얼마나 올라가는가, 지역 주민의 행복지수가 얼마나 올라가는가 이런 걸 평가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 이처럼 세속에서도 더 이상 물질이 아닌 행복을 기준으로 평가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절에서도 무슨 행사를 할 때마다 대개 ‘이 행사를 하면 돈을 얼마나 벌 수있다’ 이렇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등을 달면 얼마나 벌리는가, 커피숍을 운영하면 수입이 얼마나 되는가,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서 팔면 수입이 얼마나 생기는가, 이런 관계들이 재정 자립이라는 이름으로 통용이 되는 거죠. 스스로 재정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점도 있지만, 자꾸 그렇게 흘러가면 불교를 통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뇌로부터 벗어났는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얼마나 돕고 구제했는가 하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역시도 자본주의적 폐단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극복해야 하는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입니다. 정토회가 추구하는 것은 불교적 관점이고, 불교적 관점은 중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토회는 자본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가 낫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신 중심이 낫다거나 인간 중심이 낫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떠한 극단적 폐단도 비판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불교는 지나친 권위주의도 비판하고, 지나친 물질주의도 비판하고, 지나친 자본주의도 비판하고, 지나친 소비주의도 비판합니다. 지나치게 소비주의에 빠져서 모든 것을 물질적인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결국 지구의 환경위기를 초래합니다.

개인의 자유에 있어서도 무조건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 자유주의의 한 측면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욕망에 대해서는 일정한 절제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갖고 정토회는 삶의 새로운 가치관, 삶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치우친 관점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모델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여기에 참여해서 함께 실험을 하는 중입니다. 스님도 참여하면서 실험하는 중에 있고,여러분도 참여자인 동시에 실험자입니다. 정말로 이렇게 사는 게 나은지, 아니면 그냥 친구들하고 몰려다니면서 목걸이 자랑하고, 귀걸이 자랑하고, 집 크기를 자랑하고, 아이 유학 보낸 것을 자랑하면서 사는 게 나은지, 여러분도 실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은 생활이 너무 곤궁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친구들과 어울려서 그런 수다만 떠는 것에서도 삶에 의미 부여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실험을 하면서 과연 어떤 삶을 살 때 내 삶에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한 신념이 생길 때 비로소 정토회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네, 스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실험이라는 말씀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우리 모두가 그런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저도 더 깊이 생각하면서 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정토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 궁금증을 많이 해소한 후 대화를 마쳤습니다. 전법 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 나갔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에는 인도에서 평화재단을 찾아온 인도 한인회 회장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손님을 배웅한 후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5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과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내일 스님의 해외 출국을 앞두고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점검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회원들을 위해 전법 회원 법회를 생방송 했습니다. 오전처럼 소임자 교육에 대한 안내를 듣고 나서 다 함께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봄소식을 전하면서 기후 위기, 인공 지능, 바이오산업, 전쟁 위험 등 지금 인류에게 주어진 과제를 언급하고 정토회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예년에 비해서 꽃피는 시기가 열흘 정도 빨랐습니다. 한 해는 빠르고 한 해는 늦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제가 어릴 때와 비교했을 때 열흘 정도 빨라진 것 같아요. 진달래가 4월의 꽃인데 지금은 3월의 꽃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후 변화를 꽃피는 것을 보면서 실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종의 소멸

제가 요즘 시골에 살면서 느끼게 되는 큰 현상은 벌의 개체 수가 많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겨울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면서 벌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채소나 과일이 수정이 안 돼서 채소 농사가 잘 안 되었습니다. 학자들의 발표에 의하면 만약에 벌이 멸종한다면 자연 수정이 안 되어서 인간의 삶이 한 3년 후에는 거의 파멸로 갈 정도로 식량 위기에 봉착한다고 합니다.

자동차가 문짝은 없어도 운행하는 데 지장이 없지만, 엔진에 관계되는 작은 부속품 하나가 없으면 차는 멈춥니다. 사람의 몸도 팔이나 다리가 하나 없는 것은 큰 상처인 것처럼 보여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내분비 기관의 작은 부분 하나, 동맥 하나가 막혀도 사람은 살 수가 없습니다. 마치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가 미물이라고 말하는 곤충들입니다. 아무래도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작은 생물들이 영향을 받게 되고, 그런 생물들의 개체 수가 줄어들면 자연생태 시스템은 안 돌아갑니다. 그러면 핵무기나 행성 충돌보다 훨씬 더 빨리 인간의 삶을 전멸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 행동이 급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후 위기에는 임계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정한 임계점이 지나버리면, 즉 온도가 일정한 수준까지 올라가 버리면, 북극에 있는 얼음이 녹아내립니다. 그러면 툰드라 지역의 생물들과 거기에 누적되어 있는 것들이 산화되어 나가면서 발생하는 탄산가스 배출이 인간의 행위로 발생한 탄산가스 배출보다 훨씬 더 많게 됩니다. 그때는 인간이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노력을 해도 자동으로 기후변화가 확대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산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날씨가 따뜻하니 좋네!’ 하는 정도로 대응하고 있어요.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

요즘 언론에서는 인공지능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죠. 챗GPT가 나오면서 이제 인공지능의 역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론서를 쓰거나 작문을 하거나, 또는 의료기기를 테스트하고 그것을 읽어 내는 역할을 하거나, 여러 방면에서 변호사와 의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역할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말도 자유롭게 구사해서 인간보다 통역도 훨씬 더 잘하는 단계로 지금 나아가고 있다는 거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지금까지는 사람이 정보를 입력하면 입력한 만큼 활용도가 있었는데, 이제는 인공지능 자신이 자동으로 학습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스스로 빠르게 학습하기 때문에 배우는 속도가 인간보다 수백, 수천, 수만 배가 됩니다. 바둑을 둘 때도 어느 정도까지는 사람이 기계를 이길 수도 있는데 지금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해요. 수많은 바둑의 경험을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학습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역시 임계점을 넘으면 자기가 자기를 변화시켜 나갑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을 초월하게 됩니다. 그 결과 자연 속에서 일어난 생물학적인 존재가 아니고 제3의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서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개발에 대해서 한계 규정을 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편리함을 추구하며 서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윤리적 규제를 다 푸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어 무한정 개발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이오산업에 의한 인간의 계급화

뿐만 아니라 바이오산업이 발달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팽팽한 피부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있습니다. 가끔 뉴스에 나이가 60인데 30대의 건강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죠. 이런 기술이 앞으로 점점 발달하게 되면 우리는 돈 벌어서 자기를 젊게 하는 데에 엄청난 투자를 하게 될 거예요. 그러면 자연 수명도 못 사는 사람, 자연 수명대로 사는 보통 사람, 자연 수명을 초월해서 몇 백 년을 살아가는 사람, 이렇게 인간이 다시 계급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활동해서 돈을 벌면 그다음에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거기 가면 또 다른 것이 있고, 그래서 계속 헐떡거리고 살아가게 된다는 거죠. 이러한 결과는 기후 위기로 인한 종의 소멸,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 바이오산업에 의한 인간의 계급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위험보다 우리가 더 직접적으로 당면하게 될 위험은 바로 한반도의 전쟁입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피난을 간다면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일이 당장 닥친 게 아니라서 그런 위험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에 대해 말하면 오히려 공허한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기가 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인공지능의 변화에 대해서도, 바이오산업의 변화에 대해서도, 전쟁 위기에 대해서도 아주 둔감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점점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위기감 때문에 두려움에 떨거나 괴로워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서는 어떤 한계점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인류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지구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치관과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인간의 차별이 심해지는 계급 사회로 가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중도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관점에서 실천 활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 활동은 단순히 어떤 종교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인류가 어떻게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활동이 정토회의 활동입니다. 즉, 정토회는 2600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기적 세계관, 중도적인 관점, 사회적 실천, 다섯 가지의 계율을 지키는 윤리관, 이런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끝없이 부추기는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가치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어느 정도 절제하는 가운데 인간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그런 ‘새로운 길’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새로운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 불교,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이런 것들은 이제 낡은 가치입니다. 무신론, 유신론 하는 것도 모두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현재도 좋고 미래도 좋은 인생의 길을 찾아낼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거대한 실험을 하는 중입니다. 이 실험은 한두 명으로 할 수가 없고, 돈만 많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돈벌이가 되면 계속하고 돈벌이가 안 되면 다 그만둡니다. 그러나 우리는 손실이 나더라도 새로운 인류문명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비록 여러분들이 지금 소비주의, 자본주의, 개발주의 속에 살고 있지만 ‘이건 아니다!’ 하고 자각했다면 그 속에서 빠져나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소극적으로만 대응할 게 아니라 이 사회의 흐름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부처님 당시에 출가수행자들처럼 다 버리고 참여하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내 삶의 일부, 금전의 일부, 시간의 일부, 재능의 일부, 그 일부를 내서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작은 기여라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제는 내가 가진 시간 중에 적어도 10%는 이러한 미래 문명을 만들어가는 거대한 실험에 동참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소득의 10%는 적어도 이런 일에 사용하고, 내가 가진 재능의 10%는 미래 문명을 개척해가는 일에 사용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이런 운동을 ‘모자이크 붓다’라고 말합니다. 모자이크 붓다의 조각은 큰 조각일 수도 있고, 작은 조각일 수도 있습니다. 10분의 1을 못 하는 사람은 20분의 1을 하고, 20분의 1을 못 하는 사람은 50분의 1을 기여하고, 50분의 1을 못 하는 사람은 100분의 1이라도 이바지하자는 것입니다.

그 중에 여러분들은 전법 회원 되어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또 이 일을 하려면 전법 활동가들의 활동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많은 회원들이 좀 더 자율적으로 이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회원들이 어떤 의무와 책임에 대한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방향에서 오늘부터 소임자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은 먼 미래에 되돌아보면 정말 중요한 일을 했다고 후대 사람들이 평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바쁘시더라도 소임자 교육에 꾸준히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모둠 통합을 하고 3주가 지났는데요. 운영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다양한 질문을 받고 의문점을 함께 풀어나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회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스님이 영상을 하나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꽃구경을 시켜주려고 지난주에 공동체 대중이 1박 2일로 꽃놀이를 했습니다. 꽃놀이만 한 게 아니라 다 같이 농사일도 하고 수련도 했습니다. 집에서 컴퓨터만 보면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진행해야 하는 여러분과 이렇게라도 봄 풍경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영상으로 함께 보시죠.”

▲ 영상 보기

경주에 벚꽃이 만개한 모습과 두북 수련원에 온갖 꽃들이 피어난 모습을 영상으로 실컷 볼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 45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서 6시 45분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해 하루 종일 베트남의 불교계 인사들과 미팅을 합니다. 앞으로 약 50일 동안 스님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답사하고 관계자들을 미팅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7

0/200

불린이

공룡발자국 보러갔다 했을 때 보고 싶었는데 영상에 찍어놔 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

2023-04-15 21:19:32

지혜승

환경단체를 설립해 지속가능삶을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캠페인을 펼치고 있지만 운영이 어렵고 돈이 모이질 않으니 자꾸 접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세상을 위한 나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도록 스님말씀을 찬찬히 되새기게 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2023-04-13 21:54:32

일심행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끝은 인류의 자멸?
인간의 욕망을 어느 정도 절제하는 가운데 인간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새로운 길 스님이 닦아놓은 정토의 길 연기적 세계관, 중도적인 관점, 사회적 실천, 다섯 가지의 계율을 지키는 윤리관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길 발원합니다. AI가 인간에게 명령을 내릴 날도 멀지 않아보여요.
,

2023-04-11 01:48:5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