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3 정토경전대학 금강경 제12강 (마지막)
“금강경의 핵심 내용은...”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과 남산을 순례했습니다. 저녁 무렵을 손님을 배웅한 후 스님은 방송을 하기 위해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부터 정토경전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금강경 강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금강경 제30분, 31분, 32분을 함께 읽은 후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수보리여! 만일 어떤 사람이 무량 아승지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보시할지라도,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보리심을 일으켜 이 경을 가지거나 내지 사구게 등을 수지 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면 그 복이 저보다 승하리라.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내어 이 경을 받아 지니거나 내지 사구게 등을 수지 독송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어서 무량 아승지 세계에 칠보로 가득히 채워서 보시한 것과도 비교할 바 없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이런 비유까지 들어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꿈속에서 깨어나도록 하는 가르침

꿈속에서 아무리 많은 돈을 보시해도 눈 뜨고 나면 모두 헛것입니다. 깨어서 찬물 한 그릇 떠서 목마른 자에게 주는 것보다 못한 거예요. 쉽게 설명하면 이런 뜻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지금 꿈속과 같은 어떤 관념 속에서 네 거니 내 거니, 좋으니 나쁘니, 사랑하니 배신을 당했니,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꿈속의 얘기일 뿐입니다. 꿈속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깨고 나면 헛것입니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눈을 뜬 자의 행위와는 아예 비교 대상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부동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하는가? 상을 취하지 않으면 여여하여 동하지 않으리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할 때 어떤 상도 취하지 않는다면 항상 똑같아서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왜냐하면 일체 유위법은 꿈과 같고, 신기루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어떻게 관해야 한다는 뜻일까요? 꿈과 같다고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꿈은 있는 것 같지만 깨어보면 없어요. 신기루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보면 없어요. 물거품은 있는 것 같지만 꺼지면 아무것도 없고, 그림자도 있는 것 같지만 없어요. 아침 이슬은 있는 것 같지만 햇빛이 비치면 금방 없어져 버리고, 번개도 있는 것 같지만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모두 얼핏 보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없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로 들고 있는 꿈같고, 신기루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는 비유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없다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무아’를 의미합니다. 뒤에서 예로 들고 있는 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는 비유는 순식간에 변해버린다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무상’을 의미합니다. ‘무아’와 ‘무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비유를 들어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꿈같고, 아지랑이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이 보라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고 보라는 뜻입니다.

모두 허망하다고 보라는 것은 모든 존재가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겁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내용도 연기법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부처님의 초기 경전에는 연기법에 대해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은 공간적인 연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공간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작다고 하지만 작다고 할 실체가 없고, 크다고 하지만 크다고 할 실체가 없습니다. 선이라고 할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악이라고 할 어떤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나라고 할 실체가 없고, 너는 너라고 할 실체가 없고, 엄마라고 하지만 엄마라고 할 실체도 없고, 자녀라고 하지만 자녀라고 할 실체가 없습니다. 모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것은 시간적인 연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결과가 나타났다면 어떤 원인이 있어서 일어난 거예요. 모든 일은 반드시 시간적으로 연기되어 있어서 어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일어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거나 저절로 생긴 현상이나 결과는 없습니다. 누군가 어떤 행위를 하게 되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어요. 반드시 미래에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인연과보(因縁果報) 또는 인과(因果)라고 합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인연과보에 무지한 것을 말해요.

어리석은 사람은 지금 일어나는 감정에 빠져서 본인이 하는 말이나 행동, 생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모릅니다. 막상 그 결과가 나타나면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결과가 나타나면 이런 결과가 일어난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일어난 현상을 딱 보면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해서 이런 결과가 왔는지 알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를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알기 때문에, 나쁜 결과가 예측되면 지금 행위를 하고 싶더라도 멈추게 됩니다. 그래서 인연과보에 밝으면 괴로울 일을 만들지 않게 됩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런 가르침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후대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갖고 다시 법집을 만들었어요. ‘이것이 진리다’ 하는 관념을 만들자 대승불교에서는 내용은 똑같지만 같은 언어를 쓰면 고정관념이 되니까 법집을 깨뜨리기 위한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대승불교 초기에 나온 표현이 ‘무유정법’입니다. 이것이 법이라고 정해진 법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상을 지었다’, ‘제상이 비상인 줄 알아라’,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에 상을 짓고 집착하지 마라’, ‘당신이 지금 실체가 있는 줄 알고 착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실체란 건 없다’ 이런 표현들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당신이 보는 것은 꿈같고 아지랑이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아침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 이렇게 본질을 관해라’ 이렇게 비유를 들어 표현한 겁니다. 금강경의 표현 방식은 ‘있다’ 하면 ‘있는 게 아니다’ 하고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없다’ 하면 ‘없는 게 아니다’ 하고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다음 시간부터 배울 반야심경에서는 금강경에 나온 ‘무유정법’을 ‘공’이라고 표현합니다. 반야심경의 ‘공’이라는 표현 역시 초기 대승불교의 사상이 담긴 금강경과 그 내용이 일치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관념화되어 지식으로 떨어져 버리자 원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나온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승의 언어에 아니 ‘비(非)’자나 아니 ‘불(不)’자를 붙여서 비판적으로 접근한 게 금강경이라면, 반야심경은 ‘공’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진실을 표현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 ‘무아’와 ‘무상’을 표현하는 내용입니다.

금강경의 핵심 내용

금강경의 핵심 내용은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고, 내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이고, 내 귀에 그렇게 들린 것이며, 내 코에 그렇게 냄새 맡아진 것이고, 내 입맛에 그렇게 맛봐진 것이고, 내가 느끼기에 그렇게 감촉된 것이지, 그것이 진실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된장찌개 냄새를 ‘큼큼’ 맡고 냄새가 좋다고 합니다. 된장 냄새일 뿐 그것이 좋다고 할 수는 없어요. 서양 사람이 맡으면 역겨워합니다. ‘아! 저 사람 잘생겼다’ 하지만 생김새를 보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래서 잘생긴 모습이라는 것이 정해진 게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가 본 것, 들은 것, 냄새 맡은 것, 맛본 것, 감촉한 것, 생각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비와 갈등이 생기고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내가 본 것은 나에게 그렇게 보였을 뿐이에요. 벽을 보고 ‘벽이 내 눈에는 붉게 보였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누가 푸르게 보였다 해도 문제가 안 됩니다. ‘어! 당신 눈에는 저 벽이 푸르게 보이나요? 제 눈에는 붉게 보이는데 서로 다르게 볼 수 있지요’ 이렇게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을 인정할 수가 있습니다. ‘진짜 색깔이 뭘까?’ 하고 둘이 연구해 봐도 됩니다.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방이 너무 덥다고 하는 상대에게 ‘추운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하고 주장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당신한테는 좀 덥게 느껴지는데 저한테는 좀 춥게 느껴지네요. 우리는 서로 온도를 느끼는 감각이 다르네요’ 이렇게 바라보면 온도를 다르게 느껴도 대화가 되죠. 이렇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이에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이해입니다. 이해 위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할 때 사랑이 되는 거예요. 이해가 바로 사랑입니다.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을 도와줘야 도움이에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내 욕구일 뿐입니다. 그건 베풂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에요.

결혼에 실패하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이 결혼할 때 첫 번째로 상대의 얼굴을 봅니다. 그런데 살아보면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얼굴 보고 사는 게 아니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상대방 얼굴 보고 못 생겨서 못 살겠다는 사람 보셨어요? 그런데도 결혼할 때 제일 먼저 얼굴을 봅니다.

두 번째로 보는 것이 학력, 경력, 직업, 부모의 재력을 봅니다. 즉 능력을 보는 거죠. 결혼해서 살아본 부모는 ‘얼굴만 보고 결혼했더니 너무 힘들더라. 능력을 봐야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결혼할 당사자는 얼굴이 더 중요하고, 결혼해서 살아본 부모는 능력을 더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보면 제일 많이 부딪치는 것이 성격이나 생활 태도입니다. 결혼이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는 성격과 생활 태도를 거의 안 보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면 성격과 생활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막상 결혼할 배우자를 결정할 때는 외모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게 인생사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사람이 한집에 같이 살면서 부딪치는 것은 생활 태도나 성격 때문이지 얼굴 생김새 때문이 아니에요. 이런 것을 모르는 것도 어리석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욕망을 고집하지 않아야 합니다. 같은 사람인데 결혼하고 나면 갑자기 바뀐 것일까요? 아니에요. 종종 결혼하고 났더니 사람이 변했다고 얘기하잖아요.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한다면 더 좋은 일이죠. 한쪽 면만 보고 결혼했다가 막상 살아보니까 다른 측면이 보이는 거예요. 내 눈에 달리 보이는 것이지 그 사람은 그대로입니다. 내가 몰랐던 어떤 습관을 그 사람에게서 발견했다면 그것은 원래 그 사람이 갖고 있었던 거예요. 새로 생긴 게 아니라 내가 못 본 겁니다.

진실을 보는 길

그러니 ‘금강경이 위대하다’ 이렇게 알기만 할 게 아니라 그 가르침을 일상에서 여러분들이 경험적으로 체험을 해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그림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내가 먹어서 영양분이 되도록 해야 해요. 그래서 수행 연습을 하고 마음 나누기를 하는 겁니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입장에 자꾸 서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조금 내려놓고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살펴봐야 그의 입장을 알 수가 있어요. 그것은 나를 위해서이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상대를 이해함으로써 내가 편해지는 거예요. 그것이 진실을 보는 길입니다. 진실을 보면 내가 괴로움이 없어지는 거예요.

다음 시간부터 우리가 매일 독송하는 반야심경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반야심경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기 때문에 과학책 한 권을 학습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릅니다. 과학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고등학교 기초과학 공부를 미리 하고 수업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12회에 걸쳐 진행된 금강경 수업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반야심경 강의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 8시부터 하루 종일 만일결사 회향식과 관련하여 법사단, 기획단과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고, 오후 4시에는 인도JTS 현지인 스태프들과 화상으로 간담회를 하고,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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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자

감사합니다

2024-05-10 22:34:31

임길수

제상이 비상임을 알아 허망한 것, 허상에 집착하지 않고자 합니다

2023-11-03 15:10:20

이민경

어디에도 메이지 않으신 스님 말씀이 참 좋아요..언제 들어도 좋아요.

2023-05-27 0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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