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4.23 천일결사 기도, 결사행자 회의, 행복학교 특강, 공동체 지부 봄나들이
“직장에서 나를 대우해 주지 않을 때 상처를 받아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해 스님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법문을 마친 후 오전 8시부터는 결사행자 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결사행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다 함께 수행문을 읽고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신규 결사행자 환영식을 했습니다. 지난 3개월 동안 신규 결사행자들은 엄격한 교육과 심사를 거쳐 결사행자가 되었습니다. 기존 결사행자들은 노란색 배경화면을 설정하고, 신규 결사행자들은 분홍색 배경화면을 설정한 가운데, 기존 결사행자들이 신규 결사행자들을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신규 결사행자들의 소감과 다짐을 한 마디씩 들어본 후 마지막으로 스님도 신규 결사행자들을 위해 환영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결사행자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고생길이 훤히 열렸네요.” (웃음)

모든 일을 책임지는 사람

“지금까지는 활동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불평도 늘어놓을 수 있었는데, 결사행자가 된 다음에는 불평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갈등이 생기면 이쪽 책임도 있고 저쪽 책임도 있다고 봐줬지만, 결사행자가 된 다음에는 갈등이 생겼을 때 전적으로 결사행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사행자는 정토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분란을 일으키면 부모가 모든 책임을 지고 자식을 감싸 안는 것처럼, 정토회에서는 결사행자가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책임을 지고 감싸 안아야 합니다. 그만큼 결사행자에게는 정토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기 일입니다. 결사행자는 단지 역할을 경남지부, 제주지부, 국제지부 이렇게 나누어서 맡을 뿐이지, 정토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활동을 해야 합니다. 공간적으로는 정토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시간적으로는 결사행자로 활동하는 내내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해요. 다시 한번 결사행자가 된 것을 환영합니다.”

이어서 준비된 안건에 대한 토론과 심의를 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준비와 관련하여 여러 안건이 올라왔고, 스님을 비롯해 결사행자들의 여러 가지 의견을 수렴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10시에 결사행자 회의를 마친 후 곧바로 방송실로 이동하여 행복학교 특강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특강은 참가자들이 수업 과정 중에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음 과정으로 이어가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입니다.

참가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봄은 아무래도 꽃의 계절입니다. 식물 중에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피는 식물도 있고, 잎이 먼저 핀 다음 꽃이 피는 식물도 있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은 꽃이 먼저 핀 다음에 꽃이 지면서 잎이 피어납니다. 반면에 철쭉, 연달래는 잎이 핀 다음에 꽃이 핍니다.

요즘 산이나 들을 둘러보면 잎과 꽃 사이의 전환기인 것 같아요. 꽃이 먼저 피는 식물들은 이제 꽃이 지고 잎이 피어나고 있고, 잎이 먼저 피는 식물들은 잎도 피고 꽃도 조금씩 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연달래가 활짝 피어나고 있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산철쭉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봄날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직장에서 주위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직장에서 사람들이 나를 대우해 주지 않을 때, 어떡하죠?

“저는 온순한 성격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습니다. 목소리가 크고 거친 사람들을 보면 무서웠고, 화난 기조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면하기보다는 피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집에 가서 화가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럴 때면 앞으로는 대면하기가 힘들어도 직접 마주하며 이야기를 하고, 그 자리에서 매듭을 짓는 게 좋겠다고 다짐을 하고 살았습니다.

9년째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급할 때나 제 도움이 필요할 때, 또는 자기들이 아쉬울 때만 저를 대접하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평소에는 저를 많이 무시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출근하기 전에 ‘모두 다 거래이고, 비즈니스다’ 이렇게 되뇌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제가 잘하고 있는 걸까요?”

“지금 질문을 들어보니 질문자가 직장에서 주인 노릇을 못하고 있네요. 질문자가 한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다면, 신입사원들이 들어왔을 때 그들을 돌봐주는 역할을 해야죠. 오랫동안 일을 한 사람이 터줏대감처럼 중심을 잡고 그들을 돌봐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 질문자는 오히려 처음 온 사람들이 자신을 대우해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자가 상처를 받게 되는 겁니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내가 있는 부서에 새로 온 사람이 나보다 지위가 높든 낮든 내가 이 부서에 가장 오래 있었으니 내가 주인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내가 하루라도 더 있었으니 내가 주인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 내가 도와줄게.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내가 지원해 줄게.’

이런 자세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나를 무시했다’, ‘나를 대우해 주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지금 질문자가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고 나그네로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나그네는 남의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갔을 때 집주인이 자신을 잘 봐주는지 안 봐주는지 눈치를 살핍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지금 그들이 나를 잘 대우해 주는지 아닌지 살핀다는 것은 그들이 주인이고 내가 나그네라는 의미입니다. 나그네처럼 살아가니까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겁니다. 오히려 질문자가 주인이 되어서 그들을 돌봐주면 그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방법

질문자가 예쁘게 차려 입고 가서 ‘나 좀 잘 봐주세요’ 하지 말고, 잘 차려입고 온 사람들을 잘 봐주는 역할을 해보세요. 그 사람들이 잘 보이려고 하면 ‘너 오늘 옷 예쁘네’, ‘너 오늘 얼굴 예쁘네’ 이렇게 살펴봐 주는 역할을 하면 그들의 눈치를 안 봐도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상대방을 봐주는 역할을 하면서 주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상대방한테 ‘나 좀 잘 봐주세요’ 하는 건 노예로 살아가는 자세입니다. 어디 가서 꼭 굽신거리는 것만이 노예가 아니라, ‘나 좀 잘 봐주세요’ 하는 게 곧 노예로 살아가는 거예요.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은 노예이고, 남을 잘 봐주는 사람은 주인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새로 온 사람들에게 ‘날 좀 잘 봐주세요’ 하고 있으니까, 노예근성을 못 버리고 그들에게 굽신거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는 ‘내가 너희를 잘 봐줄게’ 이런 마음을 내어 보세요. (웃음)

내가 그들을 잘 봐주는 입장이 되면 상대방이 조금 못되게 굴어도 봐주게 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말썽을 부려도 선생님이니까 아이들을 잘 봐주게 되잖아요. 부모는 아이들이 조금 어긋난 행동을 해도 부모니까 아이들을 잘 감싸 안아요. 질문자도 선생님과 부모의 마음이 되어서 새로 온 사람들을 감싸 안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나를 좀 잘 봐주세요’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저만 맨날 그 사람들을 잘 봐줘야 하나요? 그 사람들은 저를 잘 봐주지도 않고, 또 저는 그 사람들이 누리는 걸 다 누리지도 못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누리는 게 뭔가요?”

“승진의 기회도 그 사람들이 더 많이 갖고, 보수도 그 사람들이 더 많아요.”

“승진은 그 사람들이 결정하는 거예요?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거예요?”

“위에서 결정하는 거예요.”

“결정은 위에서 하는데, 왜 그 사람들을 미워해요? 승진한 사람들이 스스로 ‘내가 승진해야 되겠다’ 이러고 승진한 게 아니잖아요?”

“...”

“북한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북한 주민을 돕자고 하면, 사람들은 북한 지도부를 떠올리면서 ‘그 사람들한테 먹을 것을 주지 말자’고 합니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이라는 것은 북한 지도부를 돕자는 게 아니잖아요. 북한 주민들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북한 지도부는 잘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큰소리를 치는 거예요. 정작 배고픈 사람들은 지도부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입니다. 또한 어떻게 식량 지원이 이루어져서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이 전달되어도 그들이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주고 나서도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가 힘들어요.

북한 인도적 지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 지도부가 북한 주민을 억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북한 지도부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미우니까 그들로부터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도 굶어 죽으라는 건 모순이에요. 정말로 북한 지도부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억압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더 돕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지금 질문자의 상황도 그와 같아요. 그들이 승진을 하는 것은 위에서 결정을 하는데, 굳이 미워하려거든 승진을 결정한 사람을 미워해야지 왜 승진하는 사람을 미워합니까? 또 질문자가 승진을 하고 싶다면 위에 있는 사람한테 가서 잘 보이려고 애를 써야지, 왜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뭐하려고 해요? 그들이 질문자를 잘 봐줘도 기분만 조금 좋을 뿐이지 승진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도 없잖아요?”

“그렇네요.”

“그 외에 다른 불만이 있으면 또 이야기해봐요.”

“사무실에서 저만 전문직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뭉쳐서 지내고, 필요할 때만 저를 찾아요. 저는 승진도 안 되는 직책이다 보니 피해의식만 쌓여 갑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을 그냥 일로만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자꾸 생겨요.”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를 질문자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특정 기술을 가진 전문직은 회사에서 필요한 만큼만 배치하기 때문에 회사에 굳이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회사에 꼭 필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경기가 조금 나빠져도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안정성이 있는 거죠. 반면 경기가 좋거나 회사 운영이 좋을 때도 그 사람들은 딱히 승진할 일이 없습니다.

승진은 여러 사람을 관리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 필요한 거예요. 일반직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승진이 있는 겁니다. 가령, 많은 사원들을 관리하는 과장들이 필요하고, 또 그런 과장들을 관리하는 부장들이 필요한 거죠. 이처럼 사람들이 많아야 그들을 관리할 간부가 필요해지는데, 사람이 많지 않은 전문직은 따로 간부가 필요 없어요. 그만큼 승진이라는 개념도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만약 승진을 원한다면 처음부터 노선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전문직은 승진의 개념이 거의 없는 대신에 또 그만큼 안정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일반직에서는 사람이 많이 나가게 되지만, 전문직은 항상 필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안정적입니다.

질문자가 만약 승진하는 사람들이 부러우면 전문직을 그만두고 일반직으로 옮겨가면 됩니다. 대신 일반직으로 옮겨가면 그만큼 성과를 내야 하고, 성과를 내지 못할 때 회사에서 잘리는 위험도 감수해야 해요. 일반직에는 승진의 기회도 있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합니다. 전문직은 승진의 기회가 적거나 없지만, 그만큼 경쟁도 별로 없고 자기가 맡은 일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특별히 좋을 것도 특별히 나쁠 것도 없는 것이 전문직이에요. 일반직은 잘 되면 승진을 할 수 있지만, 안 되면 회사에서 잘릴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체 기관에서 중요도로 따지면 심장, 간, 위장 등 내부 기관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부 기관이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어요. 그런데 내부 기관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다 가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외부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이들의 중요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 얼굴이나 팔, 다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곳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색은 얼굴, 팔, 다리가 다 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심장이나 위장이 불평을 하거나 데모를 하지 않잖아요. 심장이나 위장이 데모를 하면 우리의 몸은 죽어버립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직책들은 그만큼 안정적으로 보호해 줍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비록 승진의 기회는 없더라도 안정성이 그만큼 보장됩니다. 일반직으로 옮길 거라면 모르지만 전문직을 유지할 것이라면 조용히 일을 해내는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온라인 방송도 그래요. 법륜 스님이 이렇게 얼굴 역할을 담당하면서 여러분 앞에 서 있지만, 법륜 스님 혼자서 이 방송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화면에 보이지 않지만 카메라 뒤에는 화면 조정과 음향 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법륜 스님만 알아줍니다. 만약 방송 스태프들이 자기도 얼굴을 알리고 싶다고 해서 화면 조정을 안 하고 나가버리면 방송을 못하게 되겠죠.

직업 선택을 할 때는 이런 역할을 잘 이해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직장 내에서도 얼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고, 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죽어라고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불평이 많을 수 있습니다. 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불평이 더 많을 수 있겠죠. 누가 나를 알아주는지 자꾸 신경 쓰면 그렇게 되는데, 몸 전체를 이해하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얼굴, 손, 발, 내부기관 모두가 어우러져야 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는 회사 내에서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해 보여요. 자기가 맡고 있는 역할과 그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고민 같습니다.

군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부사관들입니다. 이들은 평생을 군대에서 보내는데도 승진은 거의 안 됩니다. 군대에서 30년 동안 근무해도 어쩌다 준위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하사, 중사, 상사 이렇게 세 가지 계급이 전부입니다. 반면에 일반 장교들은 소위에서 시작해서 중위, 대위, 소령, 중령, 대령까지 올라갑니다. 이들은 군대 내에서의 노선이 완전히 다릅니다.

질문자도 자기가 맡고 있는 직종을 잘 이해하고 선택을 해야지, 무조건 다른 사람들과 비교만 하는 건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안 됩니다. 굳이 다른 사람들이 부러우면 지금 맡고 있는 전문직을 그만두고 일반직으로 옮겨가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처럼 어리바리하면 일반직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도 이기기 어려워요. (웃음)

지금 있는 곳이 얼마나 좋은 줄 모르고 남 쳐다보면서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질문자가 그나마 전문직 기술이라도 있으니까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질문자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지,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하는 역할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질문자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다른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질문자가 지원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회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원해야 할 일이 줄어든다면 그만큼 회사가 잘 안 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일반직과 전문직은 노선 자체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질문자는 그걸 서로 비교해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겁니다. 승진을 못한다고 그들을 미워하는 건 그만큼 관점이 잘못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관점을 바로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자의 얼굴이 한층 밝아져 있었습니다.

“제가 평소에도 어리바리하다고 느꼈는데 스님께서 그 말씀을 해주시니 형광등이 확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인 된 자세를 가지고 베풀겠다는 마음으로 살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베푸는 건 좋은데 너무 의무감으로 하지는 마세요. 의무감으로 하면 그게 또 부담이 됩니다. 그냥 가볍게 하시면 돼요.” (웃음)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11시 30분이 넘었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차에 올라타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부터 1박 2일 동안 공동체 지부 봄나들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주 인왕동 주차장에 서울, 문경, 두북 공동체 행자들이 모두 모여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스님에게 오늘 산행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2년 만에 다 같이 산행을 하게 됐네요. (모두 웃음) 그동안에는 다 같이 모이지 못했는데 정부에서 거리두기를 해제해서 이렇게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은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조용히 등산을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남산 북쪽 끝자락 부근에서 남산 남쪽 끝자락 부근까지 종주하는 코스입니다. 북남산인 금오산에서 남남산인 고위산을 다 오르내려보겠습니다. 이 코스가 가장 걷기 좋은 길입니다.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완만한 길이 많아요. 한 시간에 2~3km씩, 총 12km 정도 걷을 겁니다. 지금 12시 30분이니까 5시 30분쯤 하산할 수 있을 거예요. 중간중간에 내려올 수 있는 지점이 있으니 힘든 사람은 중간에 내려가도 좋습니다.”

스님을 따라 초록빛으로 가득한 산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꽃은 지고 햇살을 받은 푸릇푸릇한 잎들이 바람에 남실거렸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걸은 후 인적이 드문 등성이에서 흩어져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평소 점심시간보다 늦은 데다 한 시간 산을 타고 밥을 먹으니 더욱 맛났습니다.

가방은 가벼워지고 배는 든든해지니 한결 걸음이 활기찼습니다. 뚜벅뚜벅 걷는 스님 앞으로 행자들이 한둘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서가던 행자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스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가 박수를 쳤습니다. 다시 스님을 뒤따라 산길을 두런두런 걸었습니다.


계속 길을 걸어 나가는데 초록 물결 사이로 청초한 연달래가 나타났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연달래 앞에서 스님은 활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스님을 따라 바위를 오르니 산 위에 정자가 나타났습니다. 금오정이었습니다. 탁 트인 배경을 뒤로하고 도반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을 따라 숨은 절경을 구경하며 계속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깊은 산속에 탑도 있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용장계 지곡 삼층석탑이었습니다. 탑 앞에서 삼귀의,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스님이 탑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탑은 모전석탑입니다. 모전석탑이란 벽돌탑을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탑을 자세히 보면 기둥처럼 새겨진 무늬가 없잖아요. 벽돌탑에는 기둥이 없습니다.”

산행을 한 지 3시간 30분이 훌쩍 넘었습니다.

“스님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다 왔어요. 한 시간 반만 더 가면 돼요.” (모두 웃음)


북쪽에서 시작했던 스님과 행자들은 점점 남쪽으로 가까워졌습니다. 고위산을 넘는 동안에도 곳곳에 연달래가 피어있었습니다.




남쪽으로 향하면서 열암곡 석불좌상과 엎드려 계신 마애불상도 참배했습니다.

열암곡 마애불상부터 새갓골 주차장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었습니다. 5시 30분에 산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을 하는 동안 산에 오르지 못한 도반들이 저녁 준비를 해왔습니다. 산 아래에서 저녁을 먹고 해가 질 무렵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각자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진 후 저녁 7시 30분에 전체가 한자리에 다시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공동체 지부 성원들도 스님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웃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다 같이 긴 거리를 걸었습니다. 스님과 같이 등산을 하면서 오늘처럼 천천히 걸은 건 처음일 거예요. 앞으로 같이 산행을 할 수 있는 날도 많지 않고, 같이 산행을 한다고 해도 걷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여러분들 중에 아직도 스님의 걸음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모두 웃음)

긴 거리를 걸어서 피곤하긴 하지만 오늘도 공부를 이어가야 하니까, 특별한 주제를 정하지는 말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눠봅시다. 평소 수행을 하거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또는 국내외 정세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거나 자기 의견이 있으면 편안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유롭게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첫 번째로 손을 든 질문자는 공동체에 들어온 지 이제 3년이 되어가는 행자님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살지, 밖에서 살지, 고민입니다

“저는 환골탈태를 목표로 백일출가에 이어 ‘3년 수행’을 하기로 하고 공동체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비 분별도 많이 일어났고, 마음속에서 갈등도 많이 하며 보냈습니다. 꼭 힘들게 등산을 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어느새 3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3년 수행이 끝나면 회향을 해야 하는지 계속 공동체에서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저는 공부의 목표가 3년이었거든요. 공동체에서 3년만 살면 피가 바뀌고 몸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많이 바뀌긴 했어요. 예전에 비해 마음도 많이 편해졌고요. 공동체에서 살든, 밖에서 살든, 마음공부에는 안과 밖이 없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막상 회향을 앞두고 공동체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데, 어떻게 스스로를 점검해야 할까요?”

“우선 피가 바뀌고 살이 바뀌었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 형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세포를 비롯하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6개월 안에 모두 새것으로 바뀝니다. 오래된 물질은 배출되고, 다시 새로운 물질로 채워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매일 수백만 개의 세포가 죽고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대략 6개월의 시간이 지나면 그전에 나를 구성하던 요소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질문자도 공동체에서 3년을 지냈으니까 피와 살이 적어도 대여섯 번은 바뀌었을 거예요. (웃음)

회향(廻向)은 ‘되돌려 준다’는 의미입니다. 백일기도나 천일기도를 하면서 ‘정진의 공덕이 있다면 그 공덕을 세상 사람들에게 돌려준다’ 하는 것이 회향의 뜻입니다. 통상적으로 ‘회향’이라는 말이 ‘기도를 마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본래 의미는 다릅니다. 정진의 공덕을 내가 다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는 의미예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건 기도를 마칠 때 하게 되니까 대개 ‘기도를 마치는 날’을 ‘회향일’이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실제로는 ‘공덕을 돌려주는 날’이라는 의미예요.

그러니 3년 공부를 마친 다음에 공동체에서 계속 살 것인지, 사회에 나가서 생활할 것인지는 하나도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내가 공동체에서 살든, 사회에 나가서 살든, 내 마음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사는 것과 혼자서 사는 것의 장단점을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약 세속에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술을 마시는데도 나는 술을 먹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늦게 일어나는데 나는 혼자서도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욕을 하면서 사는데 나는 욕을 입에 담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돈에 집착을 하는데 나는 필요에 의해 돈을 벌고 쓰긴 하지만 돈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즉 주위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면,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재가에서 수행을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밖에서 살아보니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면 나도 따라서 화를 내게 되고,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나도 따라서 거짓말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나도 따라서 그를 미워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면 나도 따라서 술을 마시게 되고, 다른 사람이 늦잠을 자면 나도 따라서 늦잠을 자게 된다면, 세속에서 수행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스스로 점검을 해봤을 때 자신의 수행력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세속 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이어나가기는 어렵다고 봐야 해요. 이렇게 살면 예전에 수행을 했더라도 ‘세속화된 사람’이지 ‘세속에서 살아가는 수행자’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공동체 생활이라도 해야 억지로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정진을 하고, 억지로라도 기도를 하고, 억지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억지로라도 술을 먹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차츰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 정도가 되면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살아도 되고, 밖에 나가서 살아도 됩니다.

그냥 밖에 나가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자 한다면 공동체를 언제 나가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지금 질문자처럼 앞으로도 수행자로 살아가고 싶은데 밖에 나가서 살아도 되는지 질문한다면, 내가 수행자로서 말과 행동을 하는 데에 주변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를 점검해보면 됩니다.”

“저는 아직 밖에 나가서 살 수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잘 알았습니다.” (웃음)

질문자의 솔직한 대답에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질문은 밤 9시가 넘도록 계속 이어졌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자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다들 피곤할 테니까 이만 마칩시다. 내일 또 이야기 나누면 되니까요.”

사홍서원으로 법회를 마친 후 모두 이부자리를 깔고 잠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다 함께 산 앞밭으로 가서 돌 줍기 울력을 한 후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를 구경하고, 오후에는 공동체 지부 공청회를 한 후, 저녁에는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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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공동체 살이가 재밌어보이네요. 저도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습니다. 스님 참 고우십니다.

2022-04-27 20:28:57

이정희

문경 도반님들 사진으로 뵈니 무척 반갑습니다.
회향의 뜻 공동체 남아있는 분들의 즉문즉설 가슴깊이 새깁니다.

2022-04-27 08:18:45

정종석

빈틈없는 일상 속에서도 소풍을 하며 공동체 구성원 간에 소통하시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집니다.정토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이유를 알아 차립니다.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주인된 입장으로 살 수 있는 건강한 조직이라 느껴집니다.감사합니다.

2022-04-27 06: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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