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3.9 도문 큰스님 친견, 수행법회
“베풀고 나서 다시 괴로움에 빠지지 않는 방법”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폐교인 두북 수련원은 어젯밤부터 투표소로 바뀌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삼삼오오 투표를 하러 왔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낮 12시 30분에 은사 스님인 도문 큰스님을 찾아뵈러 중생사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도문 큰스님을 시봉하는 소임을 새로 맡게 된 행자 두 명이 함께 이동했습니다. 오늘부터 중생사 살림을 맡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생사에 도착하자마자 큰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큰스님은 법륜 스님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시봉을 하러 온 행자 두 명에게 감사의 마음과 몇 가지 당부를 했습니다.

“제 스승이 동헌조사님이에요. 동헌조사님이 저를 불러 이르기를, 당시에 고등학생이었던 법륜 스님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어요.

‘동학 교주 수운 최제우 대선사는 100년을 바라보는 안목을 갖고 있었다면, 저 학생은 1000년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저 사람을 반드시 출가시켜라.’

저는 한 번도 누구에게 출가하라고 권유해본 적이 없었어요. 다 자기 발로 찾아와서 출가하겠다고 했지. 오직 법륜 스님 한 명만 제가 붙잡아서 출가를 시킨 사람입니다. 그런 인연으로 제가 법륜 스님과 만났는데, 이제 저는 몸을 바꿀 때가 다 되었어요. 신세를 진 사람에게 계속 신세를 지게 된다고 하듯이 마지막도 법륜 스님에게 신세를 지게 되네요. 이렇게 시봉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에 시봉을 하게 되었으니 저를 잘 돌봐주시고, 무엇보다 제가 하는 말을 기록으로 잘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용성조사님의 유훈 10사목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는데, 자세한 내막을 법륜스님이 잘 모를 수가 있거든요. 그걸 틈틈이 이야기할 테니 행자님이 잘 기록해서 법륜 스님에게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스님과 행자님 두 명은 큰스님의 뜻을 잘 받들기로 다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걸레를 빨아와서 큰스님의 방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그러자 큰스님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법륜 스님은 방을 닦지 마세요. 행자님들에게 시키세요.”

그러자 스님이 방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제가 모범을 보여야 행자님들이 배울 수가 있잖아요. 오늘도 제가 방을 닦겠습니다.”

방의 구석구석을 다 닦고 나서 걸레를 펼쳐보니 먼지가 검게 묻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시봉하는 행자가 없어서 큰스님이 어떻게 생활을 했을지 짐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방을 뒤로하고 큰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중생사를 나왔습니다.

“다음 달에도 발우공양을 하러 다시 오겠습니다. 건강히 잘 계십시오.”

시봉을 맡기로 한 행자님 두 명을 격려한 후 다시 차에 올라탔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니 해가 산 너머로 지고 있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스님은 방금 끝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한국에서는 그동안 시끄럽던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지금쯤이면 투표 마감이 거의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있는 이곳 폐교에도 지역 투표소가 마련되어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마 여기는 시골이라 코로나 환자가 별로 없는지 저녁 시간대에도 한산했습니다. 빈 투표소에서 저녁까지 기다려 보다가 더 이상 투표할 사람이 없자 지금 정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선관위 담당자들이 전부 방호복을 입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후보들이 그동안 서로를 험담하고 비난했지만, 이제 내일 아침만 되면 누가 이기든 결정이 날 테고, 또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욕을 하다가 함께 살아가려면 조금 민망할 것 같으니까 서로 욕을 좀 덜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되나 봐요. 그러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또 욕을 했다 하더라도 내일 아침에는 다시 웃고 서로 손 잡고 힘을 합해서 대한민국을 함께 잘 이끌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양쪽 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국민 통합을 위한 연합정부를 구성한다는 구호를 외쳤으니까 예전보다는 좀 더 협력해서 나라를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오늘부터는 한 달 동안은 주제에 대해 법문을 하는 기획법회가 진행됩니다. 법문의 주제는 육바라밀(六波羅蜜)입니다. 육바라밀은 대승 수행자인 대승 보살이 깨달음을 향해서 나아가는 여섯 가지 수행법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보시 바라밀에 대해 스님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바라밀(婆羅蜜)은 ‘바라밀다(波羅蜜多)’를 줄인 말입니다. ‘바라밀다’는 어떤 뜻일까요? 빨리어 ‘빠라미따(pāramitā)’를 중국식으로 표기하고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이 ‘바라밀다’입니다. 그래서 원 말은 ‘빠라미따’입니다. ‘빠라’는 ‘저 언덕’이라는 뜻이고, ‘미따’는 ‘건너가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빠라미따’는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라는 뜻이에요. ‘바라밀’ 또는 ‘바라밀다’ 역시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이런 뜻입니다.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말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인도는 각 지역마다 경계가 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도 사람들은 강을 건넌다는 말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강을 건넌다는 말이 곧 저 언덕에 이른다는 것을 뜻하는 ‘빠라미따’예요. 다른 말로 하면 ‘해탈’, ‘열반’과 같습니다.

베풀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에는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육바라밀이라고 해요. 그 첫째가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입니다. 인도 말로는 ‘다나빠라미따(dana-paramita)’이고, 중국식 표기를 우리 식으로 읽을 때는 ‘보시바라밀’이라고 합니다. 보시는 베푸는 것을 뜻해요. 보시바라밀은 베풂으로 해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입니다. 베푸는 마음을 내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베푼다고 해서 어떻게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베푸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 말이 좀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우리는 지금 얻지 못해서 괴로움이 생기는데, 베풀면 괴로움이 사라진다고 하니까, 앞뒤가 안 맞는 얘기가 아닌가 싶을 거예요.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어리석은 범부는 구걸을 합니다. 늘 남에게 무언가를 구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둘째, 그보다 조금 현명한 사람은 자립을 합니다. 적어도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아요. 남한테 껄떡거리고 구걸하지 않습니다. 토끼나 다람쥐 수준은 되는 삶을 살아요. 셋째,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동물 수준을 벗어나 사람답게 살아갑니다.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조금 베풀고 살아야 해요. 베풀고 살면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중에 첫째가 베푸는 마음을 내는 거예요. 재물을 베푸는 것을 보시라고 합니다. 내가 가진 재능을 베푸는 것을 봉사라고 해요. 전통적으로는 재물을 베푸는 것을 ‘재시(財施)’라고 하고, 법을 베푸는 것을 ‘법시(法施)’라고 하고, 내가 가진 재능을 베푸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안아주거나 넘어진 애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무외시예요. 두려움을 없애고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봉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정토회의 모토가 전법, 보시, 봉사입니다. 이 세 가지가 크게 보면 모두 보시에 들어가요.

상대를 이해하면 내 마음이 시원해져요

베풀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원리는 실생활에서 심리의 작용을 분석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답답해 죽겠어요!’

‘왜 답답합니까?’

‘남편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늘 자기만 옳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이해해 주지도 않아요.’

남편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서 답답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답답한 거예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서 ‘아, 우리 남편이 그래서 그렇게 행동했구나!’ 이렇게 내가 남편을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요? 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를 안 해줘서 괴롭고 답답한 게 아니라, 내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답답한 거예요. 상대가 나를 이해해 줘서 시원한 게 아니라 내가 상대를 이해하니까 시원해지는 겁니다.

‘이 꽃 참 예쁘네. 기분 좋다!’

이럴 때 왜 기분이 좋을까요? 내가 좋아하니까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나를 좋아해라!’ 이렇게 요구한 후 상대가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괴로워합니다. 상대가 문제여서 괴로운 게 아니에요.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나도 네가 싫다!’ 이렇게 내가 상대를 싫어하니까 괴로운 겁니다. ‘꽃이 뭐 이렇게 생겼담!’ 이렇게 내가 싫어하니까 내가 괴로운 거예요. 내가 좋아하면 내가 즐겁습니다.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사랑해 보세요.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고 이해해 보세요. 의지하려고 하지 말고 의지처가 되어주세요. 얻으려고 하지 말고 베풀어 보세요. 그러면 오히려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바라밀의 첫 번째가 베푸는 마음을 뜻하는 ‘보시’입니다.

베풀고 나서도 다시 괴로움에 빠지는 경우

사람의 마음에는 얻고자 하는 마음, 주지도 얻지도 않는 마음, 주는 마음,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주는 마음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주긴 주지만 주는 것이 나에게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 주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내가 널 좋아했으니까 너도 날 좋아해라’ 하고 요구를 합니다.

‘내가 너를 이해하니까 너도 날 이해해라.’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너도 날 사랑해라.’

‘내가 너한테 베풀었으니까 너도 나한테 뭔가 대가를 지불해라.’

베푸는 마음을 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수준입니다. 이렇게 베푸는 마음은 진짜로 베푸는 게 아니라 투자에 해당합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 선투자를 하는 거죠. ‘내가 먼저 베풀어 줄게. 그러니 너도 이자 쳐서 갚아라’ 하는 마음은 근원적으로 보면 아직도 구하는 마음에 속해요. 형식은 베푸는 형식을 취하지만, 마음은 구하는 마음입니다.

이런저런 보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보시하면 좋다고 하니까 보시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좋다’의 뜻이 뭐예요? ‘베푸는 마음을 낼 때 괴로움이 사라진다’ 이런 뜻으로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이자가 붙어 수십 배로 이익이 되돌아온다’ 이런 뜻으로 좋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옛날에 어느 절에서 법회를 했는데 거사님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스님, 저 부처님 앞에 있는 불전함에 보시를 하면 정말 복이 됩니까?’

‘어떤 복이요?’

‘1000원을 넣으면 2000원이 돼서 돌아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거사님에게 보시하라고 하겠어요? 저 혼자 몰래 보시하죠. 돈을 은행에 넣어봐야 요즘은 10년이 돼도 두 배 되기 어려운데, 그 돈을 넣으면 조금 있다가 두 배 된다면 그걸 왜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리겠어요?’ (웃음)

이렇게 ‘복이 됩니다. 많이 보시하세요’ 이렇게 말해줘야 할 텐데, 제가 이렇게 대답하니까 얼마나 무안하고 김이 샜겠어요? 기분이 상한 거사님이 따지듯이 다시 물었어요.

‘그래서 보시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 돈을 넣는다고 거사님한테 돈이 더 들어오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불전함에 돈을 뭐 하러 넣어요?’

‘그래요? 그러면 돈을 넣지 않아도 됩니다.’

이처럼 형식은 베푸는 것이지만 속으로는 얻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얻기 위해서 베푼다는 형식을 취하는 거예요.

경을 한 줄이라도 제대로 읽고, 법문을 하나라도 제대로 듣고, 이런 옛날 얘기도 하나라도 제대로 들으면 ‘아, 원리가 이렇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스토리만 지식적으로 외우고 있는 거예요. ‘달마 대사가 이러저러했대!’ 이렇게 감탄하지만 정작 본인의 마음은 안 바뀝니다.

‘당신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진짜 이해가 안 돼!’ 이러면 내가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내가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내 가슴이 시원합니다. ‘좋구나!’ 이렇게 내가 좋아하면 내가 행복해집니다. ‘싫어!’ 하고 내가 미워하면 내 가슴이 괴로워집니다.

괴로움이 생기는 이유

여러분이 지금 괴로운 이유는 사랑을 못 받아서가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이해를 못 받아서 괴로운 게 아니라 이해를 하지 않아서 괴로운 겁니다. 뭘 못 얻어서 괴로운 게 아니라 베풀지 않아서 괴로운 거예요.

그런데도 여러분은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못 벗어납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계산부터 앞서서 하잖아요. ‘나는 베풀었는데 너한테서 돌아오는 게 없네’ 하는 마음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베푼다고 보시가 되는 게 아니에요. 겉으로는 베푼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얻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베풉니다. ‘왜 내가 베풀었는데 칭찬을 안 해줘?’ 이런 마음으로 베풀면 베풀고 나서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베풀 때는 기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장삿속으로 베풀지 말아야 해요. 장삿속으로 베풀더라도 아예 공짜로 얻겠다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요? 예, 맞습니다. 아예 공짜로 얻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니까요. 장삿속으로 베푸는 것은 공짜로 얻겠다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는 해탈을 할 수 없어요.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시를 한다고 해서 다 바라밀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건 그냥 보시일 뿐입니다. 그 대가가 금전이든 칭찬이든 뭔가 대가를 바라고 조건부로 보시하는 것은 형식은 보시라고 할 수는 있어도 보시바라밀은 아니에요.

보시바라밀이 되려면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듯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야 해요. 거래를 하지 말고 그냥 조금이라도 내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베푸는 겁니다. 베풀고 나서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어 좋았다’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행위로 인해서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괴로움이 되돌아오지 않아요. 저 언덕으로 건너가 버린 겁니다. 이런 것을 보시바라밀이라고 해요. 내가 내 몸을 씻듯이, 내가 내 옷을 빨듯이, 당연하게 하는 일인 겁니다. 이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자식을 효자 효녀로 만드는 방법

이런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을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합니다. 부모가 아기를 돌보는 마음이 무주상보시와 똑같아요. 아무런 대가를 바라는 마음 없기 때문에 아이가 12시에 울어도 보살피고, 밥 먹을 때 똥을 눠도 애 걱정부터 먼저 합니다. 물론 부모도 자식한테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 나중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내가 널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런데 넌 부모의 공도 모르고!’

이런 마음이 든다면 무주상보시가 아닙니다. 아이를 잘 키워서 덕 좀 보려고 한 투자밖에 안 되는 거예요. 이런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면 자식이 모두 불효자, 불효녀가 됩니다.

‘나는 너를 키울 때 즐거웠다. 힘은 좀 들었지만 좋았어. 그러니 이제 엄마 걱정하지 말고 네 인생을 잘 살아라.’

엄마가 이런 마음을 가지면 자식이 불효자, 불효녀가 되려야 될 수가 없어요. 부모가 자식한테 아무런 바라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과잉보호했거나 자식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에 자식이 불효하게 되는 거예요.

자, 이것이 보시바라밀입니다. 보시바라밀이란 베풀 때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보시를 하고 나서도 괴로움이 없는 거예요. 보시를 함으로 해서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한 후 법문을 마쳤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는 육바라밀 두 번째 시간으로 지계바라밀에 대해 배울 예정입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제20대 대통령선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개표 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출가한 날을 기념하는 출가재일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열반한 날을 기념하는 열반재일이 8일 뒤에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내일부터 8일 동안 출가열반 기념 용맹정진을 매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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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현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백마디 말보다 스승의 방을 손수 청소하시는 그 행동이 바른 법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제 마음 역시 스님의 따스함이 전해진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

2022-03-24 09:10:21

보리야

연로하신 스승님의 방을 닦으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즉문즉설을 보아왔지만...
이 모습이 스님의 모습으로
저에게 각인될것 같아요..

스님...
고맙습니다.

2022-03-18 14:58:10

묘각

위대하셔라 위대하셔라 위대하셔라 천년후의 안으로 현세의 난관을 설하십니다.

2022-03-17 12: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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