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7. 전법활동가 법회, 기획위원회, 정토불교대학 준비회의
“이 대학의 졸업 기준은 얼마나 괴로움이 줄어들었는가 입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전법활동가 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에 방송실에 자리했습니다. 주간반 전법활동가 500여 명도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전법활동가 교육을 받고 정식으로 전법활동가 모둠에 편성된 분들이 오늘부터 같이 전법활동가 법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환영하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스님도 신규 전법활동가 모두를 환영했습니다.

“새로 전법활동가가 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게 열렸습니다.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잖아요. 정토회에서 하는 전법 활동은 돈을 안 줘도 되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웃음)

스님은 이번 주 내내 올해 만일결사 회향기념으로 진행할 정토불교대학 교과 과정을 개편하는 회의를 했습니다. 오늘 법회에서는 지금까지 회의를 통해 개편한 정토불교대학의 전체 내용을 전법활동가 모두에게 공유하고 의견 수렴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번에 새로 개편한 정토불교대학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괴로움이 줄어들었는가

“정토불교대학의 목표는 수행자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수행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괴로움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졸업의 기준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알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대학 과정을 통해서 얼마나 괴로움이 줄어들었느냐,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해졌느냐’

이것이 정토불교대학의 졸업 기준이에요.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있습니다. 자유와 행복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적 요소도 있고 철학적 요소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에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모두를 뛰어넘는 ‘수행’에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세 가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 법문을 듣고 마음작용의 원리를 이해합니다.

둘째, 직접 조그마한 실천이라도 해서 마음작용의 원리를 경험해 봅니다.

셋째, 도반들과 그 경험을 나누어 봅니다.

중요도로 따지면 법문 듣기가 50%, 실천이 20%, 도반과 함께 나누기가 30% 정도입니다. 이렇게 교과 과정대로 세 가지를 빠지지 않고 따라만 하면 저절로 마음작용의 원리를 경험할 수 있어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내용이 실천적 불교 사상입니다. 실천적 불교 사상은 두 가지 내용을 골간으로 하고 있어요. 첫째, 삼보(三寶)에 귀의(歸依)하는 것이고, 둘째,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한다는 수행의 관점 하에 세부적인 강의 주제들이 마련되었습니다.

불(佛), 나도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먼저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불법승(佛法僧) 순서로 배우게 됩니다. 첫 번째 주제인 ‘불(佛)’은 이런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먼저 자기 진단을 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 다음에 사성제(四聖諦)를 배우게 되는데, ‘사성제는 이러저러한 것이다’ 이렇게 배우는 게 아니고 직접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간다는 관점에서 배우게 됩니다.

사성제의 첫 번째가 ‘고(苦)’입니다. 나는 스트레스받고 괴로워하며 살고 있다는 자기 진단이 바로 ‘고성제(苦聖諦)’라고 할 수 있어요.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건 즐거움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풀이되는 삶, 즉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현실 진단을 하고 나면 다음 질문이 주어집니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가?’

이것이 집성제(集聖諦)입니다. 우리는 자기 욕구대로 하려 들고, 자기 성질대로 하려 들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대로 하려 들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괴로워요. 괴로움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쉬운 말로 하면 욕망, 성질, 시비로 인해서 발생하는 겁니다. 괴로움이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이런 욕망대로 하겠다는 집착이 결국 온갖 괴로움을 발생시키는 거예요.

그 다음은 이런 질문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괴로움 없이 살고 싶다.’

이것이 멸성제(滅聖諦)입니다.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 즉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바로 멸(滅)이에요. 멸의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누구나 다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도성제(道聖諦)는 곧 중도이며,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이렇게 살면 된다’ 하는 내용이 바로 도성제예요.

이처럼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사성제를 성취하면 바로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괴로움이 없어진 상태를 열반이라고 합니다. 열반을 증득한 사람을 부처라고 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말은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 말은 누구나 다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법(法), 항상 사실에 깨어있기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괴롭게 살 수밖에 없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분석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개체의 집합, 즉 삼라만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정말로 개별 존재의 집합일까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았더니 실재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실재의 세계는 서로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왜 우리는 진실을 보지 못할까요? 일체(一切)라는 건 무엇일까요? 결국 내가 아는 것이 일체(一切)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해서 내가 아는 것이 일체(一切)입니다. 이것을 불교 교리에서는 6근(六根)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6경(六境)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으로 이루어진 12처로 설명합니다. 즉 일체는 12처입니다. 그런데 이번 강의에서는 ‘12처’라는 불교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생활적인 용어로 설명을 하려고 해요.

그러나 같은 대상을 인식하더라도 개인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 다르게 인식이 됩니다. 보는 게 다르고, 듣는 게 다르고, 냄새 맡는 게 다르고, 맛보는 게 다르고, 감촉이 다르고, 생각이 서로 달라요. 다시 말해 같은 세계에 있지만 머릿속에 있는 세계는 사람마다 서로 다릅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비롯해 온갖 것들이 다 다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걸 보고, 똑같은 걸 듣고, 똑같은 걸 냄새 맡고, 똑같은 걸 맛보고, 똑같은 걸 감촉하는데도 왜 서로 다른 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사람마다 본인이 갖고 있는 과거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거의 경험이 쌓인 것을 불교 용어로는 ‘식(識)’이라고 합니다. 식(識)은 볼 때도 작용하고, 들을 때도 작용하고, 냄새 맡을 때도 작용합니다. 다시 말해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이 작용합니다. 식(識)으로 인해서 같은 걸 보고도 달리 보이는 거예요. 앞에서 설명한 12처에 이렇게 6식(六識)을 더한 것이 18계입니다. 그래서 일체는 18계(十八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에서 서로 다른 행동 양식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12연기(十二緣起)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가 진실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업식에 가려 있는 한 사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게 객관적 진실입니다. 서로 다르게 보이는 것이 진실입니다. 우리가 다르게 보는 그 너머의 진실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달리 보이고, 달리 느끼고, 달리 믿는다’ 이게 진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갈등이 없어지고 평화가 옵니다. 그러려면 자기가 보고 자기가 느낀 것에 대해 집착해서는 안 돼요. 보고 느낀 것은 자신의 식(識)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어서 객관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거대한 업식으로부터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이해한다고 아는 게 아니고 직접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경지를 직접 경험하셨어요. 업식으로부터 벗어나자 이 세상은 개별 존재의 집합이 아니라 연기된 존재임을 확연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연기법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

이 말은 공간적인 연기와 시간적인 연기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이 연기법으로부터 ‘개별적 단독자는 없다’라고 하는 ‘무아(無我)’가 나오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하는 ‘무상(無常)’이 나옵니다. 무상과 무아를 체득하면 괴로울 일이 없어지고, 무상과 무아를 체득하지 못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알지 못하면 일체개고(一切皆苦)입니다. 이것이 삼법인(三法印)입니다. 깨달으면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는 것을 포함하면 사법인(四法印)이 됩니다. 법인이란 ‘이것이 진리다’라는 증표입니다/

‘법(法)에 귀의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실에 귀의한다, 즉 사실을 사실대로 안다는 뜻입니다. 진실에 귀의하려면 항상 사실에 깨어있어야 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승(僧), 해탈을 향해서 꾸준히 연습하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런 것을 조금씩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욕망이 충족이 되면 거기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바가 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이 세상의 현실이에요.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괴로움과 즐거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욕망을 따르면 과보가 생기고, 욕망을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래도 괴롭고 저래도 괴로워요.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삶의 현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시의 주류 철학인 쾌락주의와 비주류 철학인 고행주의를 차례로 다 겪었지만 해탈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양쪽의 치우침을 넘어서서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참지도 않는 제3의 길, 즉 욕망을 욕망인 줄 알아차리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제3의 길인 ‘중도(中道)’를 발견하셨어요.

중도란 일상 속에서 하나하나 실천해 가는 것입니다.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성질대로 하지 않는 것, 시비하지 않는 것이 바로 계율(戒律)이에요. 성질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려서 성질에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선정(禪定)을 닦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식의 한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식의 오류, 즉 무지(無智) 속에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로부터 깨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혜(智慧)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계정혜 삼학을 닦아나가는 연습을 해야 해요. 수행이란 목표를 향한 끝없는 연습입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그것을 체화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치를 아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내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려면 꾸준한 연습이 필요해요. 꾸준히 연습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승(僧)에 귀의한다’라는 말은 항상 해탈을 향해서 치우침이 없이 꾸준히 연습해 나가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려면 부처님의 제자 됨을, 즉 수행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좋은 가르침을 누가 발견했을까요?

이런 좋은 가르침을 누가 발견해내어 세상에 전파했을까요? 2600년 전에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한 청년이 자신의 삶에 대해 고뇌하다가 그 고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탐구를 했고, 마침내 진리를 발견해냈습니다. 그리고 이 좋은 가르침을 세상 사람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실천적 불교 사상 과목을 다 공부하고 나면 부처님의 삶이 어떠했는지 공부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부처님은 어떻게 실현해 나갔는지 그분의 인격을 살펴보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두 번째 교과인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공부가 시작됩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3월에 시작하는 정토불교대학이 어떻게 바뀌게 되고, 어떤 내용을 공부하게 되는지, 머릿속에 쏙쏙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은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자유롭게 질문을 했습니다.

  • 경전대학 진행을 하고 있는데, 불교대학 설명을 들으니 불교대학 진행도 하고 싶어요. 욕심일까요?
  • 저는 불교대학에서 불교변천사를 배울 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정토회의 지향점을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불교변천사는 앞으로 어떤 교육과정에서 배우게 되나요?
  • 불교대학을 이미 졸업한 사람도 다시 수강할 수 있나요?

법회를 마치고 마음 나누기 시간에는 전법활동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설문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각자 정토불교대학 교과가 어떻게 개선되면 좋은지 다양한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를 하고, 오후 4시에는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불교대학 교과 개편을 위한 회의에 연이어 참가했습니다.

회의 참석자 모두 3월부터 시작하는 만일결사 회향 기념 정토불교대학을 어떻게 하면 잘 진행할 수 있을지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쏟아 내었습니다.

해가 지고 하늘 위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전법활동가들을 위한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법회와 마친가지로 새로 개편한 정토불교대학의 교과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한 후 현장에서 자유롭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SNS를 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온다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SNS 활동을 하는 게 힘들어요

“SNS를 하다 보면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쓰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그동안 SNS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법 활동도 SNS로 해야 합니다. SNS는 하나의 소통 공간인데 제 계정을 광고 채널로 쓰는 것 같을 때 불편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이럴 때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해야 할까요?”

“아무리 좋은 음식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이 됩니다. 독이라 하더라도 알맞게 쓰면 특효약이 되기도 합니다. 그처럼 SNS도 그 자체로 좋다거나 나쁘다고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어요. SNS를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광고도 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가 광고를 보고 필요 없는 물건을 사게 되는 역효과도 있지만, 광고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잖아요. 광고를 봐야 좋은 물건이 뭐가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농부들은 요즘 새로 나온 농기구가 뭐가 있는지, 아픈 사람은 새로 나온 약이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광고도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또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SNS를 불법을 전할 수 있는 유익한 도구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SNS 활동을 했을 때 지나치게 힘들다면 하지 말아야 해요. SNS 활동을 하되 적절하게 해야 합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적절히 활동하는 게 중도예요. 정신적 문제나 습관 때문에 술을 마시기만 하면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은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처럼 SNS에 손을 대기만 하면 멈출 수 없는 사람도 SNS를 하지 말아야 하겠죠. 술도 무조건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농부들은 모내기를 하다가 참으로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잖아요. 밥을 먹으면 소화를 시켜서 에너지로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알코올을 마시면 위에서 바로 흡수가 돼서 에너지로 전환이 돼요.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문제지만, 노동을 하다가 지칠 때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좋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계에 치우치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질문자는 SNS 활동을 조금 더 해보고 계속 힘들다면 SNS 활동을 그만두는 게 좋습니다. 온라인 전법 활동보다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정토회는 완전히 온라인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길거리에서 전법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 오프라인으로 교육은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활동은 온라인으로 진행할 거예요. 온라인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전법활동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실천활동가’라는 회원제도를 마련할 거예요. 온라인 활동은 어려워도 오프라인 활동은 잘할 수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는 열 분이 넘는 거사님들과 산에 가서 나무 가지치기를 했어요. 굴착기 기사를 하시는 거사님은 굴착기로 밭에 거름을 옮겨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거사님들은 기술은 있지만 온라인 전법 활동에 필요한 만큼 시간을 내기는 힘듭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실천장소에 와서 기꺼이 봉사할 수는 있지만 온라인 전법 활동은 잘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실천활동가는 그냥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역할을 하나 맡아서 책임지는 활동가입니다. 예를 들어 매주 일요일에 실천장소에서 두 시간씩 일한다거나 시간은 비정기적이더라도 실천장소에 전기 수리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거예요. 온라인정토회 이전에는 정회원이 이런 역할을 했습니다. 온라인정토회로 바뀌고 나서 우선 온라인이나 SNS를 이용해 전법을 하는 전법활동가를 먼저 훈련시켰고, 이제 실천활동가를 발굴하고 있어요.

책임지고 활동하고 싶다면 전법활동가나 실천활동가의 길이 있습니다. 질문자가 온라인 전법 활동이 어렵다면 실천활동가를 하면 돼요. 실천활동가도 부담스러우면 자기 체질에 맞게 일반회원으로 활동하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실천활동은 도저히 할 수 없고, SNS를 이용한 전법 활동은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전법활동가가 더 체질에 맞습니다. SNS 활동을 하면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실천활동가를 하는 게 더 낫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는 절을 하거나 많이 걷거나 노동을 해서 몸을 많이 움직이고 푹 자는 게 좋다고 하잖아요.

전법활동가를 해도 좋고, 실천활동가를 해도 좋습니다. 또 일반회원이 되어도 좋습니다. 자신에게 맞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먼저 한번 해보고 맞지 않으면 맞는 쪽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만일결사 회향 기념 정토불교대학을 준비하는 일에 온 힘을 쏟은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두북 공동체 성원들 모두가 업무를 내려놓고 포살 법회와 울력, 연찬을 하는 공동체의 날입니다. 스님도 방송이나 법회를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정토불교대학 강의계획안을 준비하는 일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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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연기

박진희씨 펜인데 반갑습니다^^산뜻한 웃음이 매력이죠^^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특유의,박진희님만의, 항상 맑고 밝은 눈매ㆍ얼굴빛~ㅎ예전부터 좋아했어요~~~밝히길 꺼려하시며,남몰래 선행도 많이 하시구‥우리 진희님도 법륜스님 엄청 좋아하시는군요?^^*박진희님 늘 화이팅이에요!

2022-01-25 01:51:00

굴뚝연기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누구나 다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어요.][…수행이란 목표를 향한 끝없는 연습입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그것을 체화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치를 아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것을 내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려면 꾸준한 연습이 필요해요. 꾸준히 연습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정성가득한 사진과글감사해요~스님계속 몸이안좋아보이시네요ㅠ

2022-01-24 00:55:42

김민정

감사합니다

2022-01-23 15: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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