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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온라인 생방송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맑은 종소리가 랜선을 타고 전 세계로 울려 퍼졌습니다. 예불을 한 후 5시 정각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0차 천일결사 중 5차 백일기도가 이제 절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이 벌써 62일째 기도입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했습니다.
‘과보가 내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 라며 악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로 항아리가 가득 차듯,
어리석은 자는 조금씩 쌓은 악으로 가득 찬다.
‘이것이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라며 선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로 항아리가 가득 차듯,
현자는 조금씩 쌓은 선으로 가득 찬다.
경전 독송을 마친 후 사홍서원을 하고,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함께 읽은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잘못을 조금씩 저지를 때 ‘뭐 이 정도 갖고 크게 영향을 주겠나’ 하고 생각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면 마치 물방울이 떨어져서 큰 독에 가득 차듯이 악의 과보가 어느 날 크게 닥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선행을 조금씩 하는 것이 ‘뭐 크게 득이 되겠나’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것이 쌓이게 되면 마치 물방울이 큰 독에 가득 차듯이 큰 공덕으로 다가온다는 얘기입니다.
작은 악행이라고 해서 함부로 무시하지 말고 반드시 경계해야 됩니다. 작은 선행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부지런히 쌓아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 또는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악행이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자 남을 해치거나, 내가 이익을 보고자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내가 즐겁자고 남을 괴롭히거나, 이런 것을 악행이라고 이름 붙인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타인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을 합리화합니다. 내가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남에게 손해 끼치는 것에 대해 ‘나도 살아야지’ 이렇게 합리화합니다. 내가 즐겁자고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해놓고 남이 괴로운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비록 장난으로 연못에 돌을 던졌다 하더라도 그 돌을 맞은 개구리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가해자는 항상 자기의 행위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를 대부분 잘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 중생들이 갖는 큰 특징이에요.
내가 몰라도, 내가 가볍게 여겨도,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그 악행의 과보는 크게 돌아옵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상대는 그것이 죽고 사는 문제로 큰 고통을 겪기 때문에 그 과보가 되돌아올 때는 나에게 큰 충격이 됩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1의 잘못을 하고 10의 과보가 돌아오는 것 같이 느끼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지은 과보이구나’ 하고 기꺼이 받지 않고 대부분 억울해합니다. 그래서 ‘나는 조그만 잘못밖에 저지르지 않았는데 왜 나를 이렇게 비난하는가’ 하면서 인생을 원망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위, 타인에게 손해 끼치는 행위,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 이런 행위는 아무리 작더라도 경계해서 멈춰라. 앞으로가 아니고 지금 바로 멈춰라.’
악은 바로 멈춰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위로만 남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말로도 남을 괴롭힙니다. 욕설을 해서 남을 기분 나쁘게 하고, 거짓말을 하고 속여서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이간질을 하고 아양을 떨어서 남을 괴롭힙니다. 그러니 말로도 남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죽여버리겠다’, ‘저 물건을 뺏아야지’, ‘괴롭혀야지’ 이렇게 마음으로라도 그런 마음을 자꾸 일으키면 그것이 버릇이 됩니다. 마음속에서 일으킨 것이 말로 튀어나오고, 말로 튀어나올 정도가 되면 결국 행위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여러분 중에는 기계론적인 인연 과보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선행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좋고, 악행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연이 지어지고 과보가 나타나는 데는 시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차가 하루인 것도 있고, 한 달이 될 때도 있고, 일 년이 될 때도 있고, 십 년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차가 있기 때문에 지금 선행을 베풀어도 그 공덕이 금방 나타나지 않습니다. 과거에 악행을 저지른 과보가 지금 나타나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선행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행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해봐야 손해만 나네’ 하면서 포기하기가 쉽고, 또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과거에 지은 선의 과보가 지금 나타나게 되면 나쁜 짓을 하는 데도 이익이 생기기 때문에 악행을 멈추지 않게 됩니다.
인과 연이 결합해서 과보가 나타난다는 것이 ‘인연 과보’입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했다 하더라도 그 조건이 적절할 때라야 결과가 좋습니다. 곡식을 심을 때도 땅에 적당한 습기가 있고 적당한 온도가 있는 봄에 곡식을 심어야 자라서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비록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겨울에 밭에 곡식을 심었다면 아무런 결과가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봄이 와도 내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결과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 조건이 어떠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선한 마음으로 행하면 좋은 결과가 나타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하면 나쁜 결과가 나타날 확률이 높지 반드시 잘못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시차가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볼 때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선행을 행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을 행하면 나쁜 과보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인과 연을 살펴서 지혜롭게 대응을 해야 됩니다. 나만 열심히 하고 열정을 쏟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지을 때도 밭의 상태에 따라서 거름을 얼마나 줄 것인지를 정해야 됩니다. 또 무슨 곡식을 심느냐에 따라서 거름을 얼마나 줄 것인지를 정해야 됩니다. 콩이나 고구마 같은 것은 자체적으로 영양을 생산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비료를 주게 되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신통치 않습니다. 거름을 얼마나 줄 것인지 여부는 식물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고 밭의 상태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고,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으르게 하는 것보다는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만 연을 살펴서 하지 않으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악행을 범하는 사람들도 아주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도 인생의 결과가 나쁘게 나타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건을 살펴서 그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어떤 일을 할 때는 인과 연을 살펴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합니다.
나쁜 의도를 갖고 행해도 고통이 발생하지만, 어리석음, 즉 알지 못함으로 인해서 고통이 발생하면 더욱더 억울합니다. 적절한 조건을 살펴야 되는데 자기 생각에 사로 잡혀서 살피는 힘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나는 잘한다고 하는데 상대를 헤치게 됩니다.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은 인연의 과보는 기꺼이 받고, 이미 일어난 일은 기꺼이 수용해야 됩니다. 길게 보면 모두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면 다음에는 그런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인연을 살피지 않고 복만 비는 행위는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수행자는 비굴하지 않고 항상 당당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인연 과보로 일어나기 때문에 ‘내가 잘해서’ 이런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나의 교만한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되면 비록 무의식 중에 행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돌아오는 과보는 큽니다. 그래서 인연을 살피고 항상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오전 공양을 한 후 9시부터 다시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평화재단 통일의병이 창립 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코로나19를 넘어 연결과 소통으로 하나 되자’는 슬로건과 함께 힘차게 평화재단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했습니다.
참가 지역 소개가 끝나고 상반기 활동 영상을 함께 본 후 하반기 사업계획 발표가 있었습니다. 하반기에도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기로 하고, 스님과의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시민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알리는 것이 쉽지 않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통일의병 활동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의병은 꿈과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일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시민들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어떻게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로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2주년입니다. 1919년 그 당시에 3.1 운동을 한 우리 선조들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게 가능성이 높을까요? 아니면 지금 우리가 평화를 지켜내고 통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가능성이 높을까요?
100년 전 나라를 빼앗겼을 때 나라를 되찾자는 이야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주장은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3.1 운동을 할 때 우리 선조들이 되찾고자 했던 나라는 대한제국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나라가 멸망했을 때 부흥운동이 있었던 거 아시죠? 고구려가 멸망했을 땐 고구려 부흥운동, 백제가 멸망했을 땐 백제부흥운동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전 나라인 대한제국을 부흥하자고 주장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일본 제국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당면 과제뿐만 아니라 되찾을 나라가 새로운 나라여야 한다는 목표 의식도 가졌습니다.
지난 5천 년은 왕이 나라의 주인인 선천시대였습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후천시대입니다. 이런 후천 개벽의 관점을 가지고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운 겁니다. 3.1 운동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독립운동과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민국 운동, 이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조차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에 백성이 주인이 되는 민국을 건설하자는 주장은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봤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독립도 했고 민국도 건설했잖습니까?
1919년 3월에 3.1 운동이 일어나고 한 달 뒤 4월 11일에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 임시정부가 아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였습니다. 3.1 운동만 놓고 보면 실패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결국 3.1 운동 때 씨앗이 뿌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이 되었지만 독재정권으로 인해 제대로 된 민국은 아니었죠. 독재정권에 반대하여 4.19 혁명이 일어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6월 항쟁이 일어나고, 최근에는 촛불 항쟁이 일어나고, 그 결과 오늘날 대한민국이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100년 뒤에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내다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아직은 통일의병이 주장하는 평화도 제대로 못 이루고 있고, 통일도 못 이루고 있지만, 그것을 제안한 것 자체는 3.1 운동과 버금가는 일입니다. 100년 후에 지금을 돌아보면 이렇게 평가할 겁니다.
‘그들이 꿈꾼 것이 그때는 안 이루어졌지만 결국은 이루어졌구나’
그래서 제가 8년 전에 통일의병을 창립할 때부터 새로운 100년을 계속 얘기했던 거예요.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고, 남북이 통일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100년을 위한 출발이지 결과가 아니에요. 이것은 마치 3.1 운동 당시에 이루고자 했던 독립과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딛고 평화와 통일을 이루게 되면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세계 문명이 동아시아로 넘어오면 결국은 통일 한반도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될 겁니다. 100년 후에 우리가 세계 문명의 중심국가가 되는 것을 향해 현재 우리가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 길로 나아가려면 북한은 걸림돌이 아니라 포용해야 할 대상입니다. 심지어 일본마저도 포용을 해야 우리가 세계 중심국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옛날의 감정을 갖고 갈등하면서 어떻게 세계의 중심국가로 가겠어요? 우리를 침공한 북한도 포용하고,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도 포용하고, 중국도 포용해야 세계의 중심국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이런 새로운 100년에 대한 꿈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꿈을 갖고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설득을 해야지 단순히 조그만 이슈를 갖고 얘기하는 수준으로는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손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새로운 100년에 대해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때, 할아버지는 통일의병이 되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에 대한 꿈을 꾸었고, 그 꿈을 향한 길을 걸어갔다.’
이런 마음 자세가 있으면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요. 또 여러분들이 설득한다고 사람들이 다 동조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게 바로 욕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자기 살기 바쁘기 때문에 10명 중에 1명 정도가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10명 중에 9명은 자기 살기에 바쁘지 세상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다 동조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실망하는 거예요. 실망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루고자 하는 통일이라는 목표는 3.1 운동을 일으킨 선조들이 꿈꾸었던 독립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고, 70년 산업 일꾼들이 꿈꾸었던 조국 근대화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고, 80년대 젊은이들이 꿈꾸었던 민주화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활동을 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 활동은 자기희생을 좀 해야 돼요. 독립운동은 목숨 걸고 했고, 산업화를 위해서는 피땀을 흘렸고, 민주화는 감옥 갈 각오를 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통일 운동을 한다고 해서 감옥까지는 안 가도 되잖아요. 조금만 자기 시간을 내서 노력하면 되는데 여러분들은 그것도 안 하려고 꾀를 내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운동이 확대가 안 되는 거예요.
숫자가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런 비전을 갖고 꿋꿋하게 걸어가고, 함께하는 동지들을 아끼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독립운동할 때 양반 따지고 상놈 따지면 어떻게 독립운동이 되겠어요? 어제까지는 양반, 상놈이라 불렸어도 오늘 독립운동을 할 때는 동지로 딱 전환해줘야 독립운동이 가능한 겁니다.
사회에서는 상사, 부하, 사장, 종업원, 이렇게 불리지만, 통일의병 모임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같이 의논해서 결정해 나가야 합니다. 민주적으로 논의도 잘 안 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 고집만 피우면, 의기투합이 될 수 없어요. 그런 자세를 갖고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겠어요?
마음에 기쁨과 희망을 품고 자기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대화를 해나가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게 되고 하나둘씩 동조를 하게 됩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적은 수라도 다 같이 의기투합해서 헤쳐 나가야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세상 사람들은 점점 더 개별화 될 거예요. 그래서 미래에는 몇 백, 몇 천 명만 의기투합해도 엄청난 파워를 내게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서로 싸우고 분열이 되기가 쉽기 때문에 의기투합만 할 수 있으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이런 관점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통일의병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네, 포용력을 갖고 의기투합해서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욕심내지는 마세요. 첫째,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이 바른 방향인지가 중요합니다. 둘째, 우리가 그 길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다시 하면 되는 거예요. 수의 많고 적음에 기죽지 말고 소수라도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됩니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이런 마음으로 활동해 보세요.
실패하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음을 또 준비하는 게 의병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와서 농사짓다가 또 전쟁이 났다 하면 농기구 버리고 총 메고 가는 게 의병입니다. 의병은 이기면 만세 한 번 부르고 끝입니다. 우리는 의병활동을 통해 출세하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볍고 소탈한 마음으로 임해야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새로운 100년의 대한민국을 내다보며 큰 꿈을 그리고, 활동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우리 앞에 당면한 과제들이 막막해 보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막막한 일을 했습니다.
‘선조들에 비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통일의병 활동에 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법문이 끝나자마자 스님은 방송실을 나와 곧바로 봉화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아이고, 늦었어요. 빨리 갑시다. 봉화 수련원에 온 대중들이 오전에 들깨를 다 심을 것 같다고 하네요.”
차에서 도시락을 먹고 부지런히 달려 1시 20분에 봉화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대구경북지부에서 온 봉사자들과 서울과 문경에서 온 공동체 대중들 모두 오전 울력을 마치고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 오전에 저희가 들깨를 다 심었습니다.”
“잘하셨어요. 하루 종일 일해야 한다고 예상했는데 왜 그렇게 빨리 끝났어요?”
“30cm 간격으로 심으려다가 농사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서 50cm 간격으로 심는 것으로 조정하다 보니 빨리 끝난 것 같아요.”
“저는 오전에 평화재단 통일의병대회가 있어서 법문 해주고 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이 작업도구를 깨끗이 씻고 햇볕에 말리는 동안 대구경북지부에서 온 봉사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와 대중을 서로 분리하여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대구경북지부 활동가들이 모두 대강당에 모였습니다. 어느 지회에서 누가 왔는지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진 뒤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매일 온라인 공간에서만 만나다가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더욱이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대중들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스님도 반가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고 나서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얘기 나누는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네요. 농사일로 모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봉화 수련원을 마련하게 된 사연부터 시작해서 정토회의 유기농 농산물 생산 계획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만난 김에 즉문즉설 시간도 가졌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봉사하러 오는 거사님들이 일이 너무 고되다고 해서 다음부터는 즉문즉설도 하고 서로 얘기도 나누는 편안한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오늘이 그런 자리가 되었네요.” (웃음)
사홍서원으로 대화의 시간을 마쳤습니다. 대중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이어서 서울과 문경에서 온 공동체 대중들이 대강당에 모였습니다.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후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오랜만에 모였는데 궁금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손을 들고 자유롭게 건의도 하고, 질문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스님이 여러 번 강조했던 수행자는 사람을 고용해서 생활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여러 번 강조하며 건물 관리를 자원봉사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건물에 입주를 안 하시겠다고 말씀한 내용을 스님의 하루에서 봤습니다. 그 내용을 볼 때 제 마음이 찜찜했습니다. 저는 필리핀 JTS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때로는 사람을 고용해서 일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로서 저는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인도 JTS에서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실무자들이 사는 숙소 안에 고용한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절대로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병원을 운영하거나 학교 건물을 짓는 일 때문에 고용을 하는 건 어쩔 수 없이 허용이 될 때가 있었지만, 수행자가 생활하는 공간 안에서는 절대로 고용을 해서는 안 되도록 원칙이 세워져 있습니다. 필리핀 JTS에서도 수행자가 사는 기숙사 공간에는 절대로 돈을 받고 고용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농업기술센터는 사업을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기술 훈련을 시킬 때는 밥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일당을 주는 식으로 운영된 적이 있습니다.
원칙을 완전히 지켜서 고용하는 사람이 일절 없으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인도나 필리핀은 수행 공간이라기보다는 사업을 하는 공간이다 보니까 원칙을 지키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제가 정토회를 설립할 때부터 정한 원칙은 수행자의 규칙을 지킬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사업을 하라는 거예요. 수행자의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업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사업이 자꾸 확대되다 보니까 ‘스님이 정한 원칙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하는 반론이 계속 제기되었어요. 어떤 건의를 올려도 허용이 안 되니까 나중에는 편법을 적용해서 유야무야 일이 처리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이 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수행자가 생활하는 공간에는 일절 고용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지을 때도 제가 여러 번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을 고용해서 건물을 관리해야 한다면 그 건물은 절대로 지으면 안 된다’
그러자 실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이 고용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건물을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해서 결국 건물을 짓게 된 겁니다. 그런데 건물을 다 지어놓고 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지금 상황은 이렇습니다. 전문 관리자를 고용하지 않으면 사고가 났을 때 긴급 대처가 어렵다는 것이고, 특히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는 사고가 나면 너무 위험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1년 만이라도 전문 관리자를 고용해서 관리하면 그 기간 동안 대중이 노하우를 완전히 익혀서 자체 관리를 하겠다는 제안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기간이 끝날 때까지 수행자는 그곳에서 생활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수행자가 사는 공간에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 그것은 부처님 계율에 어긋납니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제 생각은 건물의 문을 아예 닫아버리거나 건물을 팔아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 하면 갈수록 고용하는 게 당연시되기 때문입니다. 저라도 이렇게 해야지 여러분들에게 충격이 가죠. 건물의 문을 닫아버리든지 팔아버리든지 하는 결론이 나야 여러분들도 정신을 차리고 절대 고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규율이 잡힌다고 생각해요.
건물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행자가 지켜야 할 삶의 원칙이 여러분들에게 딱 잡히는 게 정토회의 먼 미래를 바라보면 더 중요합니다. 건물 하나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이 정토회를 볼 때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해야 감동을 줄 수 있지 말과 사는 모습이 전혀 다르면 누가 정토회를 신뢰하겠어요? 지도법사부터 말과 행동이 다른데 누가 정토회를 신뢰하겠어요? 만약 우리조차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우리가 비판하는 세상 사람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핑계를 대려면 정토사회문화회관 안에 평화재단도 있고 JTS도 있으니 꼭 수행자가 머무는 처소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수행자가 그곳에 들어가서 산다면 계율을 어기게 됩니다.
인도와 필리핀에서도 이런 원칙을 지켜서 사업을 하면 가장 좋은데, 인도나 필리핀의 사회 발전 정도가 봉사자를 구해서 할 수준이 안 되고 있습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요.
만약 우리가 부처님처럼 나무 밑에서 자고, 옷은 주워서 입고, 밥은 걸식을 하고, 이런 식으로 살면 100% 원칙을 지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효율을 받아들여서 일을 해보려고 하니까 원칙을 100% 지키기가 쉽지 않네요. 그러나 저는 제가 죽을 때까지는 이 원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제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요. 제가 살아있을 때도 안 지켜진다면 과연 이 원칙이 얼마나 가겠어요? 금방 세속화될 겁니다. 그러니 좀 어렵더라도 원칙을 꼭 지키면서 우리의 꿈을 실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네.”
대화를 마치고 나니 4시 30분이 넘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모임을 마치고 공동체 대중은 각자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향해 문경과 서울,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
대중이 모두 돌아가고 스님은 잠시 휴식을 하다가 5시에 봉화를 출발했습니다. 출발하기 전 오늘 오전에 대구경북지부 활동가들과 공동체 대중이 심은 들깨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래도 들깨를 잘 심었는지 한번 둘러보고 가야죠.”
먼저 앞 밭을 둘러보고, 이어서 산 너머로 이동해서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배수로가 너무 공간을 많이 차지하네요. 이러면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을 못해요. 배수를 해야 해서 이 정도로 땅을 낭비할 바에야 차라리 논농사를 짓는 게 낫겠어요.” (웃음)
들깨 모종들이 넓은 면적에 빼곡히 심어져 햇살을 받고 있었습니다. 모종은 총 2만 주를 심었습니다. 오늘을 위해 한 달 전부터 많은 준비가 있었습니다. 모종을 키우고, 땅을 갈고, 봉사자를 모집하고, 작업 도구를 챙기고, 드디어 오늘 들깨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봉화 수련원 주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밭을 하나씩 찾아가 둘러본 후 두북 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로 2시간 30분을 달려 8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내일은 오전에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을 한 후 오후에는 온라인 명상수련 회향식 생방송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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