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1.28.(오전) 천일결사기도 생방송, 정토불교대학 온라인 즉문즉설, 콩 타작
"기도를 하면 좋은 점 여섯 가지"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부터 밤까지 네 번의 온라인 강연을 하고, 강연 사이사이 콩을 타작하고 장작을 정리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새벽 4시 30분 맑은 종소리와 함께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만일결사 10차 천일결사 중 제3차 백일기도 69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지난 9월 20일에 시작한 백일기도가 벌써 3분의 2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4000여 명의 천일결사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함께 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이번 백일에 처음 기도를 시작한 초심자들을 염려하면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의 효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기도를 처음 시작한 초심자들이 늘 염려가 됩니다. 오랫동안 기도를 해오신 분들은 자신이 알아서 잘해나가고 계시고, 어쩌다가 하루 기도를 못했다 하더라도 스스로 보충을 하거나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정진을 해나갑니다. 그런데 초심자들은 하루 이틀 기도를 못하게 되면 아예 기도를 그만두기가 쉬워요. 그래서 제가 ‘하루도 빠지지 말고 정진을 하세요’라고 늘 강조를 하는 겁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매일 기도를 하면 좋은 점

첫째,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도 기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요. 교회에서 매일 새벽 기도에 나가든, 절에서 매일 새벽 기도를 하든, 매일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든, 매일 아침에 명상을 하든, 이런 행동들은 모두 마음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은 정해진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꾸준히 해나간다는 거예요. 살다 보면 하고 싶을 때도 있고, 하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꾸준히 연습을 하는 것은 싫음을 극복하게 해 줍니다. 싫어도 계속하기 때문에 결국 싫음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또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기도를 할 수 없게 되는 조건에 놓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포기할 때가 많은데, 도저히 기도를 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 기도예요. 사실 ‘할 수 없는’ 조건은 없습니다. 특정한 조건이 되었을 때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니까 ‘도저히 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조건과 상황이 어떻든 나는 꾸준히 해나가는 것을 자꾸 연습하면 조금씩 마음에 중심이 잡힙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게 되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가장 좋습니다.

둘째,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이렇게 꾸준히 기도를 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큰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줍니다.

셋째, 같이 사는 부부나 친구들 사이에서 ‘그 사람은 하나 정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행한다’라는 평을 얻어서 사람 사이에 신뢰를 가져오게 됩니다.

넷째,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믿음이 생긴다는 점이에요. 요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음이 없어요. 자기를 못 믿습니다. 자기가 약속한 것을 자기가 못 지키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렇게 꾸준히 정진을 하면 자기에 대한 믿음이 생겨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다섯째, 여기에 덧붙여서 자기 마음을 돌이키는 효과도 있어요. 이걸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이켜 비추어보고 반성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자기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요. 정기적으로 정해서 매일 운동하는 것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효과를 가져오지만 그렇다고 자기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건 아니에요. 삶에 변화를 가져오려면 자각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 이게 문제구나’ 이렇게 자기 삶에 대한 객관적 살핌이 있어야 해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듯 살핌이 있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무척 중요해요. 기도를 통해 어제 하루 생활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알아차리는 겁니다.

‘아, 어제 내가 짜증을 냈는데 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구나’
‘어제 슬퍼했는데 내가 또 사로잡힌 것이었구나’
‘내가 감정에 치우쳤구나’
‘내가 약간 게을렀구나’

자책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오류를 알아차리는 것을 꾸준히 계속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오류가 저절로 조금씩 시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차림은 없고 각오와 결심을 하기가 쉽습니다. 각오와 결심을 하면 3일 정도는 지키지만, 각오와 결심이 느슨해지면 그만두게 돼요. 그러면 자기가 결정한 것을 자기가 못 지켰으니까 자기에 대한 불신이 일어나고, 자기를 못 믿게 됩니다.

때로는 각오와 결심도 필요해요. 딱 한 시간, 딱 하루, 이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는 단기전에는 각오와 결심이 도움이 되죠. 그러나 장기적으로 꾸준히 하려면 각오와 결심으로는 어렵습니다. 인간이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지속할 수가 없으니까 조금 지나면 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장기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각오와 결심보다는 알아차림이 중요해요. 자기 상태를 늘 점검해서 문제점을 자각하고 시정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섯째, 기도를 통해 자기 암시를 자꾸 주게 되면 마음을 돌이키는 힘이 생깁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저는 풍족합니다. 베풀며 살겠습니다.’
‘우리 남편은 부처님입니다.’
‘우리 부인은 부처님입니다.’

이렇게 자기 암시를 계속 주면 마음에 걸림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바로 돌이키는 힘이 생겨요. 기도는 이런 좋은 점이 많으니까 꾸준히 기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격려를 듣고 나서 다시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정진해 나갈 것을 다짐해 보았습니다.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방송을 마쳤습니다.

정토불교대학 부처님의 일생 즉문즉설

아침 공양을 한 후 스님은 오전 9시 정각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지난가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온라인 즉문즉설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은 과목을 하나씩 수료할 때마다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일생 과목을 수료한 후 스님과 온라인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16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공부 잘하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공부하면서 어떤 점이 궁금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웃음)

8명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스님에게 직접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분은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는 말씀만 듣고도 깨달은 사람이 참 많았는데, 왜 나에게는 깨달음이 요원하기만 한지 질문했습니다.

질문자는 베이징에서 불교대학을 듣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여기는 베이징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온라인으로 질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는 깨달음이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면 깨달음을 얻어 출가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 무슨 말인지 궁금합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연기법(緣起法), 인연법(因緣法), 만물이 공함을 설법을 듣고 알게 된 것이 깨달음에 이른 것일까요? 그럼 지금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며 부처님의 지혜를 찬탄하는 저희도 깨달음을 얻은 사람일까요? 저에게 깨달음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매일 108배를 하고 알아차리기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순간순간 마장과 업장이 올라옵니다. 끊임없이 수행하고 정진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찌 그렇게 말씀만 듣고 깨달음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깨달음이라는 용어 자체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될 때 사용하는 두 가지 용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해’이고, 하나는 ‘깨달음’이에요. 깨달음은 자각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이해와 깨달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해는 지식적인 것을 아는 거예요. 모르던 원리나 지식적인 내용을 알면 이해했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연기가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런 말이었구나.’

‘사성제(四聖諦)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하는 것이었구나.’

이렇게 아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이해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학교 공부를 하거나 불교 교리를 배우거나 철학을 공부하는 건 다 이해에 들어가요.

그러면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이해는 필요 없을까요? 아니에요, 이해도 필요합니다. 불교 공부는 신해행증(信解行證), 즉 믿음·이해·수행·증득의 과정을 거칩니다. 첫째, 법에 대한 믿음(信)입니다. 둘째, 법에 대한 이해(解)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고 어떤 원리인지를 알아야 해요. 셋째, 그것을 자기가 직접 행(行)해봐야 해요. 그 원리대로 자기가 직접 실천해봐야 합니다. 넷째, 실천해 보고 자기가 그걸 증득(證得) 해야 합니다. 이 마지막 단계를 ‘깨달음’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더러 ‘야, 너는 짜증이 많구나’라고 지적하면 그게 인정이 안 돼요. 지적을 하면 대부분 이렇게 대화가 전개됩니다.

‘내가 왜 짜증이 많아?’
‘너 아까도 짜증 냈잖아.’
‘아니야. 목소리가 약간 올라간 거지, 짜증을 낸 게 아니야.’

본인은 정말 몰라요. 이렇게 남이 지적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본인은 그 말이 인정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자기가 자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 나는 참 화가 많은 사람이구나. 내가 고집이 센 사람이구나.’

이렇게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을 ‘자각’이라고 해요. 누가 지적을 해줘서 수긍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어느 순간에 ‘아, 내가 먹는 데 욕심이 많구나’, ‘내가 고집이 세구나’, ‘내가 성격이 급하구나’ 이렇게 자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작은 깨달음’이라고 해요. 여기서부터는 이해가 아니라 깨달음에 들어가요.

자각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연기가 뭔지, 공(空)이 뭔지, 사성제가 뭔지, 중도가 뭔지 백 번 알아도 내 삶에서 짜증이 없어지거나 화가 줄어드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이런 자각이 일어나면 금방 변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다. ‘탁!’ 하고 굉장히 세게 자각이 되면 바로 변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자기의 어리석음을 그 자리에서 탁 깨우쳐버린 사람 중에는 곧바로 삶이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법륜 스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죽으려고 하다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거나, 절망 속에서 이혼을 하려다가 다른 해결책을 찾았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 성추행을 당해서 늘 괴로워했는데 법문을 듣고 괴로움에서 해방되어 당당하게 살아가게 됐다며 감사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렇게 자기 삶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깨달음에 들어갑니다.

이런 깨달음을 경험하면 고뇌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고뇌가 사라지는 정도는 깨달음이 주는 충격의 강도와 그 바탕에 따라 달라요. 무의식 세계의 밑바탕에 있는 무지가 깨지면 더 폭넓게 번뇌가 사라지고, 의식의 무지가 깨지면 그 부분만 번뇌가 사라집니다. 우리 몸에서 심장으로 올라가는 동맥 중 하나가 막혀버리면 몸 전체가 병이 들지만 아주 가느다란 실핏줄이 막히면 그 부분만 고장이 나잖아요. 깨달음은 그 막힌 부분을 뚫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깨달으면 번뇌가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고뇌라는 것이 결국은 내가 어떤 생각 하나를 움켜쥐고 집착하면서 생기는 것이구나.’

이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 다른 번뇌도 같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번뇌가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어떤 것은 그 자리에서 100퍼센트 없어져 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없어진 줄 알았는데 나중에 계기가 생기면 또 살아나요. 큰 쓰레기는 단번에 내다 버릴 수 있지만 미세한 먼지는 한꺼번에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걸레를 여러 번 빨아서 닦아내듯 꾸준히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깨달음은 어떤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물론 이해를 하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데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론에 집착을 해버리면 깨달음에 오히려 장애가 됩니다. 불교적인 교리를 공부함으로 해서 깨달음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을수록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안다는 생각에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지?’ 하고 직접 탐구하는 게 아니라 ‘그건 이거야’, ‘저 사람은 저것도 모르네’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는 것과 삶에서의 자기 변화는 다른 문제예요. 교리를 지식적으로 이해만 한 것이지, 자기가 경험적으로 체험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불교 교리를 하나도 몰라도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져서 사로잡혔다는 것을 탁 자각하면 괴로움이 없어져버립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불교대학을 다니면 용어 해설이며 교리를 배우고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을 치중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정작 아무런 삶의 변화는 없어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에 다니면서 불공 올리고 복 비는 것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삶의 변화는 없어요.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면서 염불하고 참선하고 봉사 활동하면서 며느리한테는 온갖 잔소리를 하게 되면, 며느리가 볼 때는 ‘불교를 믿어서 뭐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며느리는 교회에 가버리는 일이 생기죠.

깨달음이란 자기의 마음 상태, 습관, 감정을 자각해서 ‘아, 이 괴로움이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거구나’ 하고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집착을 할까요? 주관을 객관화시켜서 ‘이게 진실이다’ 하고 상을 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어떠한가?’ 하고 탐구해야 합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우선 이것을 이치적으로도 이해해야 하고, 이해한 다음엔 자기가 직접 연습하고 체험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날 때마다 연습하기 프로그램이 있는 겁니다. 법문을 들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 가서 해보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직접 해봐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남편의 말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죠? 남편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남편 말을 딱 듣는 순간에는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 절을 하면서 ‘남편의 말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자꾸 기도를 하다 보면 남편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렇게 거슬리지 않게 됩니다. 남편의 말이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남편이 옳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는 뜻입니다.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 중에 이것을 경험으로 탁 이해하게 되면 예전에는 기분 나빴던 말을 바람소리처럼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삶의 변화가 일어나요.

그런데 이런 깨달음은 수행한다고 직선으로 쭉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약간 계단식으로 일어나요. 열심히 정진을 해도 아무런 변화도 없다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해서 푹 뛰어오릅니다. 또 거기서부터 한참 동안 변화가 없이 갑니다. 그래서 ‘수행해도 아무 변화가 없다’ 이런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면 안 돼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또 한꺼번에 한두 단계를 훌쩍 뛰어오르기도 해요. 그렇게 수행해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네, 부지런히 정진하세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인간의 욕망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의 발달은 결국 빈부격차를 심화시켰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자본주의의 상관관계가 궁금하고, 사회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부처님이 말씀하신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일곱 가지 방법 중 다섯 번째는 국가 원로들을 존경하고 의견을 듣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나뉘어 갈등하고, 그 갈등을 이용하여 세력화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교화 편을 보면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고 깨달음을 얻어 출가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부처님의 제자 중 살인마 앙굴리말라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결국 그는 과보를 받았습니다만, 그의 악행으로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 사념처 중 ‘관신부정’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성적 학대로 고통받는 수많은 경우와 성매매 여성을 생각할 때 관신부정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요?
  • 춘다의 공양 이야기에서 스님께서 원칙은 수행자는 공양을 주는 자가 어떤 음식을 주든 가리지 않아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수행자가 아무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지만 독이 든 음식까지 먹을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걸식의 원칙에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습니다.
  • 보시를 왜 해야 하는지, 수입지출 내역이 공개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을 다 한 후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깨달음에 대해 질문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스님께서 말씀해주신 신해행증을 통해 저의 수행이 신해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루하루 제 마음의 먼지를 걷어낸다는 마음으로 직접 실천하고 경험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다음에 배울 근본 교설 과목을 소개했습니다.

“여러분이 다음에 배우는 과목은 근본 교설입니다. 부처님이 한 평생 설법하신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을 배웁니다. 부처님은 교리를 갖고 설법하지는 않으셨어요. 후대 사람들이 부처님의 초기 설법의 요지를 정리한 게 근본 교설입니다. 이 내용은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재미가 없을 수도 있고, 약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늘 쉬운 것만 배울 수는 없잖아요. 잘 공부하시고 근본 교설 강의가 끝나면 또 즉문즉설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이른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콩을 타작하기로 한 날인데 하루 종일 온라인 강의가 있어서 중간중간에 틈틈이 콩을 타작해야 합니다.

“자, 깐 콩깍지인지 안 깐 콩깍지인지 털어봅시다.”

가장자리에 그물망을 치고 먼저 콩나물콩 콩대를 너른 돌에 탁탁 두드렸습니다. 마른 콩깍지 사이로 동글동글 콩알이 사방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콩대가 바람을 가르고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콩을 타작하던 방법이네요.”

“조선 시대가 아니라 신라 시대에도 신석기시대에도 이렇게 콩을 타작했어요.” (모두 웃음)

익숙해지자 스님은 양손에 콩대를 쥐고 다듬이질하듯 빠르게 타닥타닥 콩대를 내리쳤습니다.

“손에서 가까운 콩깍지는 잘 안 털어져 있어요. 그건 다시 뒤집어서 때리면 돼요.”


덜 마른 콩깍지에는 콩이 아직 붙어 있었습니다. 손으로 한 알 한 알 떼어냈습니다.

한 알 한 알이 모여 바닥이 콩으로 가득 찼습니다.

빈 콩대를 한쪽으로 치우고 콩을 쓸어 모았습니다. 함께 떨어진 콩깍지며 부스러기도 콩과 함께 모였습니다. 스님은 다시 넓게 펴며 갈퀴로 큰 부스러기를 걷어냈습니다.


큰 부스러기를 얼추 걷어내고 다시 쓸어 모아 이번에는 바람을 이용해 작은 부스러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스님은 콩을 켜는 작업을 하고, 행자들은 이제 검은콩 타작을 했습니다. 혹시 콩 한 알이라도 놓칠까 바닥에 그물망을 깔고 큰 대야 위에서 콩을 살살 떨어뜨렸습니다. 콩이 떨어지면서 가벼운 부스러기들은 날아가고 콩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바람이 약해서 선풍기도 설치해보았습니다. 바람이 이리저리 불어 먼지가 사방으로 날리기도 했습니다. 다음 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쉴 새 없이 콩을 떨어뜨렸습니다.


“스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

“저는 먼저 가볼게요. 강의하고 금방 올게요.”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오후 2시부터 평화재단 신규 통일의병의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했습니다. 3시 30분에 수여식을 마치고 다시 콩을 털고 장작을 정리한 후 저녁 6시에는 경전반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오후 소식은 내일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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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연기

먼지 하나까지~~사진이 아주 섬세하네요^^나중에 귀한 자료로 쓰셔도 되실듯싶어요^^*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깨달음!‥정말 더 늦기전에 맛보았으면 ㅜㅜ
학교앞 소나무도 예사롭지 않네요^^콩도 아주 예쁘구요 ‥스님과함께 허리아프게 농사도짓고 콩도털고 ㆍ좋은법문도 듣고하면ㆍ몸은 힘들어도,마음에선 정말 값어치있는 행복의 비명이 나올것같네요^^모든분들 부럽기만ㅜㅜ

2020-12-05 00:06:23

김춘배이현미

스님~^^ 건강발원합니다
여섯가지 잘새기며 자각하고 자기 암시를 계속 주면 마음에 걸림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바로 돌이키는 힘이 생겨요. 기도는 이런 좋은 점이 많으니까 꾸준히 기도하라는 말씀_()_

2020-12-03 16:58:29

김대광

스님 감사합니다 항상 제 자신이 어떠한 상태인지 생각해보는 수행자의 자세를 가지도록 연습하겠습니다

2020-12-03 15: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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