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13. 인도성지순례 11일째 (삐쁘라하와)
“모든 괴로움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시 인도로 가서 카필라성 석가족이 세운 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을 친견하고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로 출발했습니다.

새벽 5시에 출발해서 버스 안에서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치자 곧 네팔-인도 국경에 다다랐습니다.

세 시간 만에 순례자의 절반 정도가 네팔-인도 국경 출입국 수속을 마쳤습니다. 국경이 없다면 룸비니에서 삐쁘라하와까지 걸어서 가도 도착할 거리였지만, 국경을 통과하느라 5시간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국경수속을 마친 버스는 울퉁불퉁 비포장된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차창 너머로는 연두빛 밀밭과 노란 유채꽃 밭이 펼쳐졌습니다.

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 Piprahwa

오전 10시 30분, 덜컹 거리며 달린 끝에 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에 도착했습니다. 국경을 먼저 통과한 차량 다섯 대의 순례자들은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면서 탑을 돌았습니다.

탑을 돈 후 자리를 잡고 먼저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뒤이어 국경을 통과해서 도착하는 순례자들과 함께 예불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뒤에 올 순례자들을 기다리면서 정진을 하거나 탑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 차량 3대가 더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방금 도착한 순례자들과 함께 다시 탑을 돌았습니다. 이어서 먼저 온 순례자들과 다함께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이 끝나자 스님이 성지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이곳 삐쁘라하와(Piprahwa) 부처님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은 인도가 영국 식민지 시절이던 130여 년 전에 커닝엄(Cunningham)이라는 영국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사리 용기와 함께 명문(銘文)도 나왔기 때문에 석가족(Sakya, 釋迦族)이 세운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으로 판명되어 알려졌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 진신사리탑이 발견되자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迦毘羅衛城)가 인도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마침 이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가나와’라는 성터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를 ‘인도 카필라바스투’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30년 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그곳이 바로 카필라바스투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런데 네팔 지역에 있는 카필라바스투에 가보면 처음 봐도 딱 카필라바스투라는 기분이 들잖아요. 반면에 여기 사람들이 알려주는 그 성터는 처음 가봤을 때 카필라바스투 같지가 않았습니다. 인생을 오래 살면 직감이 발달해서, 증거가 없어도 대충 봐서 ‘이거는 영 아니야’ 하고 감이 잡힐 때가 있잖아요. (모두 웃음)

요즘에는 이곳을 카필라바스투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만, 당시만 해도 인도 사람들이 ‘인도 카필라바스투’, ‘네팔 카필라바스투’ 이렇게 따로 구별해서 불렀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탑이 인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그러나 ‘카필라바스투’라는 그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3km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바로 인도와 네팔의 국경이에요. 우리는 국경을 통과할 때 검문소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멀리 빙 돌아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오느라 멀게 느껴졌던 거예요. 여기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룸비니(Lumbini) 동산까지 걸어가도 갈 수 있습니다.

이곳은 옛날 카필라바스투 땅이에요. 카필라바스투는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의 국가였는데, 오늘날에는 가운데가 잘려서 남쪽은 인도에 소속되고 북쪽은 네팔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랑그람(Rangram) 사리탑은 네팔 땅에 있고, 삐쁘라하와 사리탑은 인도 땅에 있게 됐습니다. 순례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두 곳을 모두 가려니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서로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하나는 네팔에 있고, 다른 하나는 인도에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인도 정부가 들어선 후에 여기를 추가로 발굴 작업을 했습니다. 땅 속을 더 깊이 파보았더니 그 아래에서 또 사리 용기가 나왔습니다. 석가족이 당시에 사리탑을 쌓고, 아쇼카 왕(Ashoka Maurya, 阿育王)이 일부를 꺼낸 뒤 추가로 초기 탑을 쌓고, 훗날 굽타(Gupta) 시대에 와서 그 위에 더 큰 사리탑을 쌓은 결과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나란다(Nalanda, 那爛陀) 대학 같은 경우에도 발굴해보면 아쇼카 시대, 쿠샨(Kushan) 시대, 굽타 시대 등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이 나옵니다. 과거에 있던 유물에 더 쌓고 쌓아서 건축을 했기 때문에 발굴할 때 시대별 흔적이 층층이 다시 발견되곤 합니다.

이곳에서 나온 사리 용기 두 개는 모두 델리(Delhi)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던 부처님의 유골도 델리 박물관에 있습니다. 델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유골은 우리가 존경하는 실제 부처님의 유골일 확률이 99%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양이 보석처럼 생겼다면 후대에 장식했으리라는 의심도 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보면 뼈가 돌처럼 화석이 된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불교를 신앙적,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사리탑을 매우 귀하게 여깁니다. 한국에서는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러 가는데, 여러분들은 복이 많아서 오늘로서 부처님의 진신사리탑만 3개나 친견했습니다. (모두 웃음)

릿차비족이 세운 바이샬리(Vaishali, 毗舍離) 진신사리탑, 꼴리족(Koliya, 拘利族)이 세운 랑그람 진신사리탑, 석가족이 세운 삐쁘라하와 진신사리탑, 이렇게 세 곳을 친견했어요. 사리탑은 모두 부처님 이후에 만든 탑들이니까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래서 경전 독송은 하지 않고 이것으로 부처님 진신사리탑 친견은 마치겠습니다.

국경에서 기다리시느라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사를 벗고 식사하겠습니다.” (모두 웃음)

뒤이어 온 순례자들도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아직 차량 세 대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남아서 마지막 순례자들까지 맞이해서 다시 예불을 하고 성지에 대해 설명하기로 했습니다. 쉬라바스티까지 4시간 30분이나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8대는 먼저 출발했습니다.

오늘 순례객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일정을 가졌습니다. 네팔-인도 국경수속을 4백여 명이 동시에 통과할 수 없기에 스님은 시간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진행했습니다.

마지막 순례자들과 삐쁘라하와 사리탑을 참배하고 쉬라바스티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3호차에 탑승했습니다.

“네팔 국경을 넘을 때, 3호차가 고장나서 고생많았죠?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격려해주기 위해서 탔습니다.”

3호차 순례자들은 박수로 스님을 반겼습니다. 버스 안에서는 즉문즉설이 열렸습니다.

버스 안 즉문즉설이 끝나자, 순례자들은 단잠을 자기도 하고,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천축선원으로 향했습니다.

천축선원은 쉬라바스티에 있는 한국절입니다. 부처님 성지에 있는 흔치 않은 한국 절인데다가 순례자 숙소를 이용할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은 곳입니다. 순례자들 대부분은 오늘과 내일 이 곳에서 머물기로 했습니다. 450여명을 다 수용할 수 없어 근처의 티벳, 스리랑카 절에도 일부 묵었습니다. 

저녁 6시 30분에 마지막 3호차까지 11대가 모두 도착했습니다. 천축선원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따뜻한 된장국과 깍두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순례자들은 무척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즉문즉설

저녁 7시 15분, 천축선원 마당에서 저녁예불을 드린 뒤 저녁법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천축선원에서 마당에 카펫트도 깔아주었습니다. 먼저 천축선원의 주지 대인스님의 환영인사를 들었습니다.

천축선원에서는 사찰 운영뿐 아니라 순례자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가난한 지역주민들의 주택을 개량해주고, 초등학교를 운영하며 교육기자재와 급식을 제공하고,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도서관 운영과 컴퓨터 교육을 하고 있고, 주말마다 보건소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인스님과 적조행 보살님은 20년째 인도 천축선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 두 분에게 순례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의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순례 중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중 수행의 의미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던 즉문즉설 한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 무슨 뜻인가요

“수행문에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내가 열심히 정진하면 결국 다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궁극적으로 따지면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이어야 할 텐데, ‘나로부터 나아간다’라는 문구는 ‘자리(自利)’를 이야기하지만 ‘이타(利他)’는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아서 기도할 때마다 이 문구가 마음에 걸립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법을 이야기할 때 ‘이것이 부처님의 법이다’라고 한 마디로 단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법(法)은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을 법이라고 하기도 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을 법이라고도 합니다.

‘반야(般若)’라는 용어를 쓸 때도 객관적 사실을 반야라고 하기도 하고, 객관적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을 반야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야에는 실상반야(實相般若), 관조반야(觀照般若), 방편반야(方便般若)가 있습니다. 실상반야는 사실 자체를 말하고, 관조반야는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을 말하고, 방편반야는 다른 사람이 사실을 사실대로 알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깨우쳐 줄 수 있는 법을 말합니다. 모두 다 ‘반야’라고 불리지만, 반야라는 용어는 이 셋 중 하나를 의미하기도 하고, 셋 모두를 뜻하기도 합니다.

‘법(法)’이라는 용어는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건 꼭 부처님하고만 관계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진리를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다 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법(法)’이라는 용어를 쓸 때는 ‘사실을 사실대로 알도록 깨우쳐주는 법문’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사실’은 연기법(緣起法)을 의미합니다. 연기법은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연기법이 모든 존재의 진실상(眞實相)입니다.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시공간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면, 시간적 연기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고, 공간적 연기가 제법무아(諸法無我)입니다. 다시 말해 무상(無常)과 무아(無我)가 진실상입니다. 진실상을 한 마디로 하면 ‘연기(緣起)’라고 말하고, 달리 말하면 무상과 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진실상을 파악하면 괴로움의 안개가 걷힙니다. 그것이 곧 열반(涅槃)입니다. 반대로 진실상을 알지 못하면, 즉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래서 무지의 상태에서는 ‘일체개고(一切皆苦)’이고,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반야지(般若智)가 열리면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넘어졌을 때 넘어진 줄 아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법이 공(空)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넘어진 걸 넘어졌다고 아는 것이 사실이고, 서 있을 때 서있는 줄 아는 것이 사실이고, 내가 틀렸을 때 틀린 줄 아는 것이 사실입니다. 틀렸을 때 틀린 줄 모르는 것은 무지에 빠지는 것입니다. 틀렸을 때 ‘어, 틀렸네’ 하고 아는 것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불교를 지식적, 철학적으로 배울 때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제법이 공(空)한 도리를 알아야 한다. 제법무아를 알아야 한다. 무상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넘어졌을 때 넘어진 줄 알아야 하고, 틀렸을 때 틀린 줄 아는 것이 바로 진실이에요. 불교를 철학적, 지식적으로 배우는 사람에게 ‘넘어졌을 때 넘어진 줄 알아야 하고, 틀렸을 때 틀린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건 제법무아도 아니고, 제행무상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응하기 쉽습니다. 이 사람은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적 관점이 아닌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나의 괴로움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 즉 ‘무지’로부터 왔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나의 괴로움은 남편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아내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부모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자식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바로 나의 무지로부터 온 것입니다. ‘나로부터 왔다’는 말은 곧 ‘나의 무지로부터 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런 나의 무지를 깨우치면 바로 괴로움이 사라지는 이익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무지의 상태에서 무지를 깨우치지 못하면 그 과보가 고통으로 나에게 돌아오고, 무지를 깨우치면 열반이 나에게 돌아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해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라는 수행문을 만든 거예요.

요약하면 남 탓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무지를 깨우쳐서 행복으로 돌아오든, 깨우치지 못해서 괴로움으로 돌아오든,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니까 내가 나의 마음 상태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법입니다.

‘이 좋은 법을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전법입니다. 그런데 수행의 요지는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논하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이지, 요지가 아니에요.

반면 ‘나만 행복해지면 된다’는 입장은 오류에 빠진 겁니다. 내가 먼저 근본을 깨우치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진다는 관점이어야 합니다. 나만 깨우치면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는 것도 오류이고, 내가 깨우치는 것을 놔둔 채 남 얘기를 하는 것도 수행적 관점에서는 오류에 속합니다.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수행의 근본적 관점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라는 문구를 수행문에 넣은 거예요.

이 좋은 법을 만난 것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서 부지런히 정진해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정진을 절 수행, 참선 수행, 염불 수행 등으로 이해하면 형식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정진을 한다는 것은 항상 깨어있는 것입니다. 깨어있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명상도 할 수 있고, 참선도 할 수 있고, 절도 할 수 있고, 염불도 할 수 있어요. 염불을 하면서도 깨어있지 못하면 그건 수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자유로움을 점검하는 기준을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자유로운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아침마다 정진을 할 때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라는 구절을 읽습니다. 행복에 대해서는 법문도 많이 듣고, 불교대학에서 수행 연습도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행복은 괴롭지 않은 상태’라는 말씀을 듣고,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괴로운지 살펴보았더니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자유에 대해서는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진단해보면 행복하지만 자유롭지 않은 상태 같습니다. 행복과 자유의 차이를 알고 싶습니다. 행복하지만 자유롭지는 않다는 게 말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행복한지 점검하려면 지금 내가 괴롭지 않은지 살펴보면 되지만, 내가 자유로운지는 어떻게 살펴볼 수 있나요?”

“좋은 질문 해주셨습니다. 한자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해탈(解脫)과 열반(涅槃)을 나누지만, 원래 인도 말에는 자유와 행복이라는 말이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고, 그것을 ‘자유’라고 번역합니다. 괴로움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인도 말에서는 두 가지 다 ‘니르바나(Nirvana)’라고 표현합니다. 니르바나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속박을 받으면 괴롭습니다. 속박을 받는데 괴롭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속박을 받으면 심리가 억압되니까 괴로워요.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이 핵심이고 행복 속에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때 느끼는 기분 좋음을 행복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사실 행복이 아니라 ‘락(樂)’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반쪽짜리 자유일 뿐 진정한 자유가 아니에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다 되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유를 추구할수록 인생이 속박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해탈입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대승경전인 금강경, 유마경등은 잘 포장된 소설이 아닐까요?
  • 1,250명이 한꺼번에 탁발을 하면 마을에 민폐가 아니었을까요?
  • 수자타와 싯다르타가 연인은 아니었을까요?
  •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보드가야에서 사르나트까지 옛 도반에게 깨달은 걸 자랑하려고 간 건 아닐까요?
  •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에서 3개월 후에 열반에 들겠다고 선언하시고 북쪽으로 향해서 갔다고 하셨는데 고향인 룸비니를 향해서 가신 걸까요?
  • 춘다의 공양 때문에 선언하신 것보다 더 일찍 열반에 드셨나요?
  • JTS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맨발로 살던 아이들에게 구두를 선물하는 건 오히려 아이들의 잡초 같은 생명력을 꺾는 게 아닐까요?
  •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450여명이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3년 후에 1250명이 순례를 할 때는 쓰레기가 더 많이 나올텐데, 쓰레기를 줄일 계획이 있으신가요?

법회를 시작할 때부터 서려있던 안개는 한치 앞을 가릴 정도로 짙어졌습니다. 체감 온도도 뚝뚝 떨어졌습니다.

“순례를 하는 동안 안개가 이렇게 낄 때가 없었는데 마치기 전에 인도 날씨의 진가를 보네요.(모두 웃음) 안개가 자욱할 때 걸어야 경전에 있는 내용을 느낄 수 있어요. 날씨가 이렇게 추워야 가사 한 벌 입고 살았던 옛 수행자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알 수 있어요.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안개가 서린 축축한 추위에 움츠려들다가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내일은 새벽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해 기원정사와 앙굴리말라탑, 수닷타장자탑, 동원정사를 참배할 예정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가장 오래 머무셨다는 쉬라바스티에서 하루 종일 부처님의 숨결을 느끼며 머물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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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희

며칠전 반야심경 1강을 다시 듣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당시 들을 땐 잘 몰랐는데, 반야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는 것을 스님의 하루를 보며 다시 깨닫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2020-02-09 03:57:29

손승희

국경을 넘는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들은 쉽게 오가는데 우린 참 복잡하게 오간다던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삐쁘리하와 130년전 발견된 부처님 사리가 나온 곳 영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 인도의 유물을 모두 훔쳐간 강대국들의 욕심에 부처님의 사리가 발견된건 좋은일도 나쁜일도 아닌것인가. 분별하지 않아야 한다는게 이런건가.

2020-02-05 11:20:34

반야지

제 법명이 무슨뜻인지 잘 알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질문해 주신 도반님들께 감사합니다. _()_

2020-02-04 23: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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