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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4번째 강연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방콕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 5시30분에 호텔 로비로 내려와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한 후 6시에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과 남편인 키티퐁 탐롱씨쑥님이 스님 일행을 방콕 공항까지 안전하게 배웅해 주었습니다. 황소연 총무님은 “스님 덕분에 어제 많은 분들이 좋아했다”고 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키티퐁 탐롱씨쑥님도 스님 일행의 짐을 운반해 주면서 정성껏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 방콕정토회 황소연, 키티퐁 탐롱씨쑥 부부
오전8시 방콕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10시에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도착비자를 발급 받고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오늘 캄보디아 강연을 총괄하고 있는 박주선님과 함께 스님 일행의 짐을 픽업하기 위해 거사님이 세 분이나 나오셔서 차량 이동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 마중을 나와 준 분들. 왼쪽뿌터 김재성, 최대룡, 박주선, 문현성님
한명씩 소개해 드리면, 최대룡님은 프놈펜 현지에서 ‘초이스 택시’라는 운송업을 하고 계신 분인데, 이번에 공항 픽업을 위해 차량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최대룡님은 형님 분이 이번 세계 100강에서 베트남 호치민 강연을 담당하기도 하십니다. 김재성님은 원래 JTS사업에 꾸준히 후원을 해오신 분은데 이번 강연을 위해서도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문현성님은 프놈펜에서 자재 판매업을 하시는 분은데, 예전에 방콕정토회에서부터 스님의 법문을 오랫동안 들어오신 분입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입헌 군주국입니다. 크메르 제국의 유적인 앙코르 와트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종교는 90% 이상이 소승 불교입니다. 1863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식민지로 남아있다가 1954년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국으로 독립했지만, 베트남 전쟁 등의 영향으로 인해 크메르 루즈가 득세하는 등 계속해서 정권이 불안정했습니다. 크메르 루주 등의 준동과 베트남의 개입으로 인해 내전이 198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시기 중 킬링필드가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 캄보디아 프놈펜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 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폴 포트(본명 살로트 사르)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Khmer Rouge: 붉은 크메르)라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합니다. 원리주의적 공산주의 단체인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3분의1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강제노역 하게 하거나 학살하였습니다. 이 당시의 상처가 워낙 커서 지금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사회 변화 운동에 대해 소극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 공항에서 프놈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
프놈펜(Phnom Penh)은 캄보디아의 수도이자,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캄보디아 최대의 도시입니다. 메콩 강과 쌉 강의 합류점에 위치하고 있고, 또 도심에는 왕궁이 있는데 여기에 캄보디아 국왕이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두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개발이 촉진되어 새로운 호텔과 레스토랑, 바, 주거지 등이 시내 곳곳에 빠르게 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프놈펜 왕립대학교(RUPP)가 캄보디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고등교육기관인데 5,000명의 대학생이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스님 강연도 프놈펜 왕립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프놈펜 공항에서 곧바로 오늘 머물 숙소인 캄보디아 불자모임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캄보디아 불자모임 법당은 프놈펜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캄코시티 아파트 건물을 임대해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짐을 풀자마자 이번 강연을 준비한 캄보디아 불자모임의 회원분들이 스님께 다함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 오늘 프놈펜 강연을 함께 준비해준 캄보디아 불자모임 회원분들. (왼쪽부터 배한교님, 황선희님, 황영금님, 윤다현님)
이 네 분은 오늘 점심 다과와 저녁 식사도 정성껏 준비해 주셨습니다. 캄보디아 불자모임은 재가 불자들이 협력하여 회비를 내어 이곳 아파트 공간을 빌려 격주마다 한번씩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강연도 박주선님이 전체를 총괄하고 캄보디아 불자모임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캄코시티의 불자모임 법당에서 잠시 다과를 하신 후 김한수 주 프놈펜 한국대사님의 식사 초대를 받아 대사님과 점심식사를 하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 오늘 강연장, 프놈펜 왕립대학교 CKCC
이어서 오후4시3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프놈펜 왕립대학교 CKCC에 도착하셨습니다. CKCC는 코이카(KOICA)가 프롬펜 왕립대학교에 기증한 건물인데, 공간도 넓고 음향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강연에 앞서 스님께서는 CKCC 미팅룸에서 캄보디아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백숙희 코이카(KOICA) 소장님 부부, 문병수 캄보디아 불자모임 회장님 부부가 오셔서 스님관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모두들 세계 100회 강연과 스님의 건강에 대해 많이 걱정하셨고, 스님께서는 세계 100강을 하며 배울 수 있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 강연에 앞서 미팅룸에서 차담을 나누는 모습. 왼쪽부터 코이카(KOCIA) 백숙희 소장님, 캄보디아 불자모임 문병수 회장님 부부
오후 5시가 되자 스님께서는 강연장으로 자리를 이동하셨습니다. 강연장 입구에서부터 책판매대, 내부 안내 등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자기 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강연회에는 코이카(KOCIA)에서 캄보디아에 파견을 나와 있는 많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이번 강연회에 자원봉사 신청을 해서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 코이카에서 캄보디아에 파견을 나와 있다가 이번 스님 강연에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큰 박수와 함께 스님께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총 150여명이 참석하였고, 현지 교민들도 많이 오셨지만 코이카(KOCIA)에서 봉사활동 차 캄보디아에 와 있는 친구들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번 세계 100회 강연을 하면서 가장 더운 날씨를 만났다고 하시면서 인사말씀과 함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덥네요. 제가 지금 세계 115개 도시를 115일 동안 다니면서 매일 1개 도시씩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다닌 곳 중에서 가장 더운 것 같아요. 완전히 한국의 한여름 날씨네요. 그래도 여기가 북위 쪽인데 춥지는 않더라도 선선해질 때가 되었잖아요? 강연을 오후5시로 잡아서 퇴근 시간이랑 겹쳐서 사람들이 오기가 어렵다고 걱정하더니 그래도 용하게 잘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즉문즉설은 불경이나 성경을 읽고 그것을 해설하고 그것을 우리 생활에 적용해서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 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방식이 아니고, 이런 문제로 ‘괴롭다’, ‘힘들다’ 등 우리 땅의 얘기를 먼저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대화를 하다보면 점점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즉 땅에서 출발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인생살이에서 겪는 여러 고민들과 의문들을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눠봅시다.”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코이카 소장님을 비롯하여 코이카에서 파견 나온 청년들이 많이 참석한 관계로 해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 3명이 자신의 고민들을 연달아 질문했습니다.
“저는 캄보디아에서 1년 6개월째 봉사활동 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보지만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분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조그만 노력으로 그런 분들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지 그리고 그런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통 안부 인사를 전하면 “잘 살고 있다”, “나중에 잘 살고 싶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인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 2월에 한국에서 딸을 시집 보냈습니다.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제는 시집간 딸을 내려놓는 마음을 가지려 하는데, 딸은 이런 저의 생각과 태도를 보고 서운해합니다. 어떻게 하면 딸이 평소 가지고 있는 서운해하는 마음을 잘 다독여 줄 수 있고, 저도 딸을 걱정하는 저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요?”
“이번에 캄보디아에 오면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생활해봤는데,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까 부모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많은 고생을 하시는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성인이 될 수 있을지요?”
“저는 남자친구가 있는데, 남자친구 집 쪽에서 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닌 것에 대해서 탐탁치 않아 합니다. 저는 앞으로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남자친구 부모님과의 관계를 잘 맺어가고 싶은데, 종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잘 풀어나갈 수 있을지요?”
“저는 원래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좋아합니다. 근데 요즘 들어서 식욕이 절제가 안되고, 운동도 안하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식욕과 불규칙한 습관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자원봉사를 할 때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캄보디아의 깝봉스프라는 지역에서 2년간 거주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다음달 한국으로 출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와 저희 단원들 모두 2년 전에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접고 같이 들어와서 2년동안 활동을 하고 다시 귀국할 예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갈려고 생각을 해보니까 한국에서 새로이 취업을 해야 되고, 등록금으로 낸 남아있는 빚들도 갚아야 하고, 한국의 다른 친구들은 현재 대부분 취직하여 안정된 상태에 있다보니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생겨나면서 마음 속에 자꾸 두려움이 자라게 됩니다. 이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극복해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열악해요? 질문자가 여기 봉사하는 곳의 생활이 더 열악해요?”
“사실 제 개인적인 생활은 열악하지는 않았어요.”
“여기서 너무 편하게 있어서 이런 우려가 생기는 거예요. 코이카(KOICA)에서 이거 문제네요. (청중들 웃음) 밥도 못 먹고 비도 새는 집에 모기가 물어 뜯는 그런 곳에서 생활을 시켜야 그것이 진정한 봉사이지요.
그런데 온갖 것을 다 해주니, 즉 돈도 주고, 생활비도 주고, 뭐도 주고 해가지고 이지역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좋은 사무실에 좋은 조건에 일하면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쉽게 얘기하면, 여기 마을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 더 열악하죠? 그 마을 사람들과 질문자가 똑같이 살았다고 생각해봐요. 그러면 질문자에게 한국 생활보다 여기 생활이 더 열악하겠죠?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직장을 구하든지 한국에서 받는 월급이 많아요? 여기에서 봉사하면서 받는 월급이 많아요?”
“한국에서 받는 게 많지요.”
“그러면 여기 생활보다 한국 생활이 더 편하고, 여기 월급보다 한국 월급이 더 많은데 걱정할 것이 뭐가 있어요? 아무 걱정할 것이 없잖아요.” (청중들 웃음)
“마음가짐이 좀 문제인 것 같아요. 안 좋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말씀 하신대로 여기에서는 저보다 훨씬 교육의 기회도 적고 삶도 열악한 사람들 하고 같이 있다 보니까 내 삶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는데, 한국에 있다 보면 자꾸 나보다 잘 되는 사람, 나보다 더 좋은 곳에 취업한 친구들을 자꾸 더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요. 그것은 맞는 얘기예요. 그것을 상대적 열등감과 우월감이라고 합니다.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본인이 행복을 구하려면 본인은 여기에 영원히 살면 돼요. 한국에 가지 말고요. 늘 상대적 우월감으로 살 수 있잖아요. 여기 현지에 있는 한국인 회사 있잖아요. 그런 곳에 월급을 많이 달라고 하지 말고요. 아까 들어보니까 이곳 사람들한테는 최저 임금이 80불, 100불 하다가 이제는 120불, 128불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한국 사람을 채용하면 적어도 3천불은 줘야 하니까 한국 직원을 적게 둔단 말이예요. 왜냐하면 120불, 130불만 하면 되는데 3천불을 줘야 되니까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여기 회사에다가 월급을 한 500불만 받겠다고 제출을 해서 신청을 하면 어느 회사든지 오라고 할 거예요. 500불만 받겠다고 입사원서 제출해도 질문자는 여기 현지에 있는 사람들보다 월급을 4배 더 많이 받잖아요. 그러면 늘 우월감을 가지고 살 수 있지요. 굳이 한국 가서 2백만원 받아도 3백만원, 4백만원 받는 친구들과 늘 비교해서 열등감을 갖고 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 대학교 빚은 누가 갚아주나요?”
“대학교 빚요? 한국에 안 가면 안 갚아도 돼요. 그럼요. 안 가면 안 갚아도 돼요. 한국에 없는데 무슨 재주로 받는데요? 공항에 내리면 체포가 되겠지요. (청중들 웃음). 그래서 한국에 안 가면 된다니까요. 아예 한국에 안 가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고요.
두번째, 여기서는 500불만 해도 4배 더 받는 것이니까 회사에 신청을 하면 돼요. 1000불 미만까지는 한국 회사에서도 아마 기꺼이 채용할 거예요. 3000불 주고는 채용을 못하더라도, 한 700~800불까지는 한국 사람이 어쨌든 훨씬 필요하니까요. 그 정도 채용을 하면 질문자는 500불까지만 본인의 우월감을 가지고 살고, 200불 내지 300불은 꾸준히 한국에다가 정기적으로 갚으면 되지요. 20년 목표를 세워서요. 계속 보내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여기 현지인의 월급이 만약 200불 대로 오르면 자기도 700불로 올리면 되고, 또 300불로 오르면 질문자도 1000불로 올리면 돼요. 그 정도는 여기서 다 해 줄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인간이 사는 존재인 것은 맞는데, 그것의 본질을 딱 꿰뚫어서 ‘여기서 500불을 받고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사는니, 한국에 가서 2000불 받고 사는 게 낫겠다’ 해서 ‘여기 500불보다 4배나 더 받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한국에 가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지요.
여기 있을 때도 질문자는 늘 남하고 비교하는 인생을 산다는 얘기 아니예요. 남하고 비교해서 살면 월급을 15000불을 받아도 또 30000불 받는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지게 돼요. 질문자가 직장에서 과장이 되어도 질문자는 부장이 된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져야 되고요. 질문자가 사장이 되어도 회장이 된 친구하고 비교하면 또 열등감을 가져야 되고요. 그래서 영원히 열등감 속에서 살아야 돼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라고 권유합니다. 여기와서 해외봉사를 안해 본 청년들은 불만과 불안 속에서 살지만 해외봉사를 나와 보니까 ‘내가 한국 시민권 가진 것만 해도 엄청난 이익이구나’ 알게 되잖아요. 여기 캄보디아 사람들이 현재 한국에 가서 일하면 여기 월급의 10배를 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한국에 가도 시민권이 안 주어지잖아요. 게다가 불법 체류자는 월급을 절반 밖에 못받잖아요. 그리고 두려움 속에 살아야 되는데, 나는 한국에 가면 시민권을 갖고 불법 체류를 안해도 되고요. 공장에 간다 해도 월급도 두배 받잖아요.
그래서 여기서 2년 봉사하다가 한국에 가면 ‘내가 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기득권이고 재산이다’ 하는 것을 자각할 수 있고, 여기서 열악하게 사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에 한국에 가서는 셋방에 살아도 여기서 개인 주택보다는 더 시설이 낫고, 공장에 가서 생활을 해도 훨씬 이 사람들 보다는 조건이 낫구나’ 하고 자각할 수 있죠. 그러면 이런 열악한 곳에서도 돈 안 받고 일할 수 있었는데, 한국에 가서 돈 받고 일하는데 뭐가 두려울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한국에 가서는 청소부를 하든, 가정부를 하든, 무엇을 해도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봉사를 보내는 거예요. 여기와서 도움을 준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청중들 웃음)
우리 젊은이들이 이것을 통해서 인생을 자각하고 건강한 한국 국민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훈련된 장소로서는 필요하지만, 이곳 사람들한테는 실제로 도움이 별로 안돼요. 질문자는 봉사하러 왔지만, 이 사람들이 볼 때는 한국에서 온 봉사자들이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사람들이 보기에는 꿈에도 못보던 것을 다 먹고 입고 그러면서 봉사한다고 와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 와 있는 것이 실제로는 도움이 별로 안돼요. 그러나 우리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굉장한 도움이 돼요. 여기에 와서 내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정말 불평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도 한국은 캄보디아나 라오스나 베트남에 비해서는 참 민주적이고 경제도 낫고, 사회보장제도도 낫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우리도 고칠 것이 많이 있지만 한국사회도 부정적으로만 보지않고 긍정적으로 보는 위에서 개선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무엇을 해도 할 수 있겠다’ 라고 하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가능하면 미국이나 유럽에 보내지 말고, 저개발국(제3세계)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1,2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우리 젊은이들이 굉장히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얼마나 여기서 호화판으로 살았길래 지금 한국가는 것이 걱정이라고 할 정도예요?"
“네, 제가 호화판으로 산 것 같네요.” (청중들 웃음)
“여기서 호화판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호화판으로 살았겠어요?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는 하는데요. 그러나 지금 여기 있으면서 너무 안일하게 살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편안하게 살다가 ‘한국 가서 또 그런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사나?’ 그런 걱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해요.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서 ‘여기서도 살았는데 한국에서 왜 못살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하등 두려울 것이 없어요. ‘돈을 조금 받고도 일했는데 한국가서 큰 돈을 받는데 왜 못하겠느냐?’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여기 한번 살다가면 한국 사는 게 걱정이 하나도 안되어야 해요. 강남 고속버스 터니널에 가서 이렇게 돈통 하나 놓고 앉아 있어도 여기 노동자보다 수입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뭐가 걱정이예요? 안 되면 그냥 지하철에서 손을 벌려도, 고속터미널 앞에 앉아서 돈통을 놓고 절해도 돼요. 꼭 구걸하라는 것이 아니라 돈통을 놓고 입다물고 그냥 앉아 있어도 돈을 줘요. 그런데 그때 그냥 앉아있는 것 보다 머리 깎고 먹물 옷 입고 앉아 있으면 수입이 10배나 더 나요. (청중들 둣음) 보시함 통하나 놓고 ‘불’자라고 써놓고 거기에 질문자도 승복 비슷한 옷 하나 입고 계속 절만 하고 있으면 두 시간에 10만원 들어와요. (청중들 웃음). 제가 그 사람한테 수입이 얼마 들어오는지 직접 물어봤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살다가 한국 가서 살면 걱정이 하나도 없어야 돼요. 여기서 봉사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야 한국에서 걱정이 많지만, 여기서 경험을 딱 해봤으면 ‘아이고, 내가 대한민국에 가서 무엇을 한들 못살겠어’ 이런 생각이 딱 들어야 돼요.”
“네. 감사합니다.”
“고생을 한번 해보면 안일해졌던 삶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옛날부터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젊어서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라도 할만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생을 한 번 겪어야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생기고 적응력이 생겨요. 무보수로도 했던 일을 더 쉬운 일에 돈을 주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요? 전에는 ‘이 정도는 되어야 취직을 한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뭐든지 한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게 되면, 이제 일자리가 널려 있는 거예요. 이런 자세로 일을 하면 직장을 두세번만 바꾸면 금방 정상적으로 돌아가요.
그러니 여기서의 생활이 조금 고생스러운게 사실은 이익이예요. 그런데 이제 한국도 좀 살만 하니까 이 KOICA에서도 해외파견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잖아요. 우리 JTS에서 해외파견을 보낼 때는 일체 지원비를 안 줍니다. 무료로 봉사해야 돼요.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은 보장해 주지요. 첫번째 파견자는 비행기표도 본인이 끊어 가야 해요. 그런데 정부에서 지원을 해서 한달에 500불씩 주면 나중에 훨씬 성실도가 떨어져요. 일에 집중도 안하고 불평도 많고요. 이런 방식은 사람을 더 많이 보낼 수는 있지만, 훈련은 잘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온 김에 고생 좀 하셔야 돼요. 편하게 살수록 오히려 도움이 안 돼요. 젊을 때는 오지에 가서 고생도 엄청나게 해보고 위험도 감수해보고 이렇게 해야 삶이라는게 정말 생기가 돕니다.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살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난다는 거 알아요? 더 악착같이 살려고 그래요. 여기 목 메어서 죽을려고 하다가 호랑이가 나타나면 죽어라고 도망을 가요. (청중들 웃음)
혹시 제 얘기를 잘못 알아듣고 “스님이 봉사단원들에게 돈 주지 말라고 하더라”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안 돼요. 고생이라고 하는 것이 꼭 나쁜게 아니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이 의식은 상대적인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행복도 상대적인 행복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이것이 높아져도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과 비교하면 열등감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고생을 해서 비교 대상이 낮아져 버리면 삶의 만족도가 확 높아져 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GDP 순위하고 행복지수 순위가 다르다는 것 아시죠? 빈부 격차가 심하면 상대적 빈곤감이 커요. 우리 사회가 살만 한데도 행복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구조적으로는 빈부격차가 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는 이 상대적인 빈곤, 소위양극화를 좀 줄여주어야 국민 행복도가 높아지고요. 개인적으로는 자기 기대 수준을 낮춰주면 만족도가 좀 높아지는 거예요.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불쌍해 보이지만 자기들은 다 웃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이유는 기대가 낮기 때문에 그래요. 같이 가난하기 때문에 열등감이 적은 거예요.
수행이라는 것은 이렇게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의 기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아서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방법이예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복귀하시거든 그런 마음을 가져요. ‘캄보디아에서 살았는데 한국에서 왜 못살겠나?’ 이렇게요. 그리고 나보다 잘된 사람과 자꾸 비교해서 따지지 마세요. 내가 보기에 좋게 보이지, 실제로 그 사람이 좋은지 안좋은지는 몰라요. 혼자 사는 여자나 남자가 공원을 산책하면 약간 외롭잖아요. 그런데 남자 여자 둘이 걸어가면서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너무 다정해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 둘은 지금 이혼하는 논의를 하고 있는 거예요. (청중들 웃음)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결혼한 사람들이 좋아보이고, 취직해 있는 사람들이 좋아보이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좋아보이는 것이지, 그 사람이 실제로 좋은지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내가 이렇게 2년 봉사한 것이 한국에서 2년 먼저 취직한 사람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돈과 지위만 가지고 계산하기 때문이예요. 행복도를 따지면 외국에 봉사한 경험이 없는 그는 나보다 월급이 한 100만원 많거나 지위가 조금 높아도 그는 불만족 속에서 살고, 나는 그보다 월급이 작고 지위가 낮아도 늘 만족하여 살기 때문에 행복도는 누가 더 높아요? 내가 더 높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봉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야지, ‘괜히 봉사 2년 했다가 취직도 늦어지고, 결혼도 늦어지고, 나만 손해봤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습니다. 질문자는 한쪽 측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다른쪽 측면도 질문자가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 고민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것 같습니다. 한층 밝아진 질문자의 목소리에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붓다의 고뇌와 말로 현대인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해 주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날 근본불교가 우리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는 예측합니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가 먹고 살만해졌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만해졌는데도 우리의 고뇌가 지금 해결되지 않잖아요. 우리는 지금 어쩌면 부처님 당시의 왕궁에 살았던 사람들과 비슷한 상황인지 몰라요. 지금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그때와 비교하면 다 왕자들이고 공주들이예요. 붓다는 이 문제를 추구해 들어갔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때는 특정한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고 붓다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현대인이 갖는 고뇌를 해결하는데 굉장히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직접 경험해봤구요.
그래서 이 붓다의 가르침은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종교를 뛰어넘는 얘기이지 불교가 낫니 기독교가 낫니 하는 상대적 개념의 종교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 마음 공부를 하면 더 깊이 하나님의 음성을 자각할 수 있고 신앙이 더 깊어질 수 있어요. 불교를 공부하니까 기독교 신앙이 옅어지는 게 아니고, 불교를 공부하면 기독교 신앙이 더 깊어져요. 왜냐하면 이것은 특정한 종교가 아니고 깨달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깨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대화는 한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고 그보다는 한 차원 높은 진실을 추구하는 관점에서의 불교입니다. 그러면 진실을 추구하는 기독교의 관점과도 일치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리면서 마치겠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청중들은 2시간 30분 동안의 열강을 해주신 스님께 뜨거운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강연장 입구를 나와서 중앙 로비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밤8시가 넘었음에도 기온이 30도가 넘고 푹푹 찌는 더운 날씨였는데, 스님께서는 가사 장삼을 다 입으신 채 정성껏 한분 한분에게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수고해준 봉사자 전체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또한 봉사자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가져 온 단주를 스님께서 직접 손목에 끼워주셨습니다.
특히 가장 수고가 많았고 오늘 강연을 총괄한 박주선님과 황금영님에게는 스님께서 사인한 책을 직접 선물하고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께서 숙소로 출발하려는데 백숙희 코이카 소장님을 비롯하여 코이카에서 온 청년들이 스님께 별도로 찾아와 짧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스님께서는 코이카 청년들에게 “기왕에 이곳에 나온 김에 고생을 좀 많이 하고 가겠다는 마음을 내어라. 그래야 나에게도 좋다” 하시면서 앞서 강연에서 하신 말씀을 한번 더 강조해 주셨습니다. 백숙희 코이카 소장님도 청년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준 스님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 코이카에서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에게 격려 말씀을 해주시는 모습
봉사자들은 스님을 숙소로 떠나보내고 묘덕 법사님, 홍정혜 서남아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강연 준비를 총괄한 황금영님은 “협력하는 것보다 혼자서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일을 함께 나눠서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많은 공부가 되었다” 고 합니다. 한 분은 “스님의 말씀도 정말 좋았지만, 봉사자들을 보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 참 좋았다”고 합니다. 한 분은 “많은 분들이 질문하지 못해 아쉬었다”면서 “스님께서 답변을 짧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질문할 수 있게 해주셔도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사회를 보신 분은 “종교를 떠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는데, 매년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시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했습니다. 한 분은 “정토회에서 보내준 행사 진행 매뉴얼이 정말 훌륭했지만, 현지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의 의견도 많이 수렴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한 분은 “작년 강연에 비해 올해 강연은 새로운 사람도 많이 왔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새로웠다”며 보람 있어 했습니다.
▲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
묘덕 법사님은 봉사자들의 마음 나누기를 정리해주시면서 “개인적으로 질문을 못해 아쉬웠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다른 사람의 질문과 답변 속에 담긴 깊은 뜻을 내 삶에 적용함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라고 하시면서 아쉬운 마음을 다시 긍정적으로 돌이킬 수 있게 환기를 시켜 주셨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수고가 많았다며 격려해 주면서 마음나누기를 마쳤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밤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늦은 시간까지 원고 교정을 더 보시다가 오늘 일과를 마치셨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104번재 프놈펜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105번째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내일은 하노이에서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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