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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둘쨋 주 토요일은 실무자 포살과 울력이 있는 날입니다.
포살은 공동체 생활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40계본을 기준으로 해서,
스스로 발로 참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울력은 대중들이 함께 모여서 힘을 합해서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사람이 적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울력 때 대중들이 모여서 함께 해결해 나갑니다.
저는 1, 2층 화장실 청소를 했는데,
환기팬을 뜯어서 먼지를 제거하고 주변 묵은 때를 닦고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오랜만에 도반들과 함께 집중해서 일을 하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저희들이 포살과 울력을 하는동안,
스님은 치과 치료를 받은 후, 외국에서 오신 손님들과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차담을 나누며 손님 접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6시에는 조계사 전통문화공연회관에서
‘붓다의 시대적 조명’이라는 주제로 『종이거울자주보기운동본부』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강연을 하셨습니다. 종이거울이 뭔가 했더니, 책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자는 취지에서 매달 저자를 모시고 강연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처음 인간붓다의 삶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던
1982년부터의 스님 인생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참 좋았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구나...스님을 더 깊이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이 꽉 차서 무대위, 복도, 뒷 통로까지 빡빡하게 서서 정말 발디딜 틈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미동도 않고 드나듦도 없이 조용히 스님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에 심취한 듯 했습니다. 정말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집중해서 사람들이 강연을 들었습니다.
스님의 산 경험이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는 것 같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스님이 붓다의 삶을 재조명하며 겪어왔던 과정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봤습니다.
"제가 처음 인간 붓다에 대해 강의를 한 것이 1982년입니다. 꼭 30년 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이 해인사에 모여서 <한국불교 1600년 대회>를 할 때
초청강사로 가서 한 강연이 ‘붓다의 시대적 조명’이었습니다.
이 강연을 기초로 해서 쓴 책이 『인간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입니다.
그 때 왜 이런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이 암담한 시기에 불교인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다해야 하는가?’에 대해,
‘부처님은 그 당시 사회적 역사적 배경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셨는가?’를 살펴보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절에 들어왔습니다.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불교는 나에게 그보다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수련을 할 때는 법당이 좁아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3000배 정진을 했습니다.
무릅에 피멍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불교의 사회성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젊은 나에게는 늘 불교의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대승경전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그것마저도 아니고’하면서
애매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데, 성경을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든지,
‘원수가 주리면 밥을 주라’든지,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줘라’든지,
행동의 지침이 딱 딱 나왔습니다. 그런 것에 비해 불교는 너무나 막연했습니다.
그래도 불교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은 불교의 합리성과 과학성, 역사성과 같은 것이
젊은 저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인권 침해의 시대, 많은 사회적 부조리들에 대해서
불교는 아무런 대응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응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스님들이 서로 싸우거나, 아니면 정권과 결탁해서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키는 불교계의 행태에 대해 많은 회의가 들었습니다.
특히 80년 광주항쟁이 일어나고, 불교계에 10.27법란이 일어났는데도,
이런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불교에 대해서 깊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천문학 공부를 한 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광주항쟁 비디오를 보고 이런 사회적 아픔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아픔의 현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불교인으로 아무런 불교적 행동을 할 수 없었기에 깊은 좌절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만 두기에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붓다는 어떤 사람인가?
나와 같은 젊은 시절에 어떤 고뇌를 했을까?
아함경에 기초해서 쓴 부처님의 일생을 읽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 지식으로 불교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불교를 그만두느냐 마느냐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봤습니다.
그 때 제가 본 붓다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살아간 청년 붓다였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의 고뇌, 왜 출가를 했고,
왜 6년의 수행과정에서 스승을 떠나 홀로 수행할 수 밖에 없었는가?
왜 도반으로부터 떠나서 수행했어야 했는가?
깨달은 이후의 붓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갔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면서
붓다를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신과 같은 존재로서 붓다였다면 새로 발견한 붓다는 인간으로서의 붓다,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닮아갈 수 있는 붓다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발견하면서 붓다를 따르는 제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평생 삶의 지침이 될 나의 스승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붓다를 재발견하고 다시 대승경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금강경, 반야심경을 읽었을 때 글자 이면의 더 깊은 뜻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애매하다고 여겼던 것이, 막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중도의 길을 말로 표현해서 전달해 주려고 한 것이었구나!
한계가 있는 글자를 통해서 진리를 전하려고 한 것을 알게 되니까,
금강경의 내용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것은 그렇게도 제가 경전 속에서 원했던 구체적인 행동의 지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반야심경 강의도, 금강경 강의도 하게 된 것입니다.
대승경전마저도 그냥 추상적이고 고상한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자로서의 삶,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참으로 뚜렷한 지침, 가르침을 주고 있었습니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앉은 사람들이 왜 숨을 죽이고
스님의 말씀에 심취했었는지 아시겠죠?
스님의 경험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소로시 내려앉아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으로 자리한 것 같습니다.
강연 후, 많은 사람들이 『인간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책을 가슴에 안고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괜히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스님의 책 중에서 특히 제가 좋아하는 책 『인간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한 번 읽어도 감동적이고, 두 번 읽어도 감동적이고, 세 번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그 책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문경정토수련원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있습니다.
문경수련원의 반짝이는 밤하늘이 기대됩니다.
좋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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