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맡으셨던 분,고려대 철학과 교수님으로 기억하는데요..윗부분에 성함(조성택)과 글의 끝부분의 성함이(조경택) 다릅니다~오타 수정좀 부탁드려요..핵심있는 글,잘 읽었습니다^^
2014-06-01 00:01:03
보광거사
세간에 용성스님이 소극적으로 활동했다는 일부 잘못된 견해가 있었는데 이 심포지움으로 그 부분이 바로 잡혀져서 정말 다행입니다.
2014-05-31 13:11:55
일주동로
백용성이 겁을 먹고 일제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것도 많지 않았나? 조선독립이 절대적이라면 승려라는 형식도 당연히 버릴수 있어야 한다. 백용성의 연약한 행동도 똑바로 짚어야 한다. 만해 한용운 스님과 뜻을 함께 했던 후배그룹 김법린 스님이나 효당 최범술 스님 모두 일과 수행을 잘했던 분이다. 천년에 한분 날까말까한 만해당용운 큰스님도 마찬가지다.수행을 결코 망각하지 않았다.조선의 독립을 하루빨리 쟁취하기위해일제에 대해 최일선에서 강력한 저항을 했고 백용성은 소극적으로 대처해 나간것에 지나지 않았다.
2014-05-31 11:43:37
이응세
요즘같이 시국이 어렵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시국에 용성조사님의 업적을 돼새개며 <br />앞으로 더욱더 용성조사님의 업적을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남길수있도로 학계와<br />우리 대중들도 많이 동참해야 겠다는생각이 듭니다
2014-05-31 11:29:38
봉사
용성조사님의 탄신일에 죽림정사에 갈 수 있음이 행복합니다. 조사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시대를 앞서 살아가신 선각자이셨던것 같습니다.
2014-05-31 09:55:08
희망
심포지엄을 많이 했는데 이토록 집중하는 예는 드물었다는 말씀에 감동이 밀려옵니다. 준비하신다고 고생하신 자원봉사지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2014-05-31 09:52:18
사랑
문헌으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신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발굴하고 바로잡고...그 분의 업적이 부디 빛을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