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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 친구들처럼 쉽게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중학교까지는 우리 집이나 친구들 집이나 사정이 비슷했지만, 고등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느꼈다. 그때는 그것이 부끄러웠고 그 마음은 나중에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이 되었다. 가난한 우리 집을 내가 일으키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학업과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나에게는 앞으로 더 잘될 일만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이렇게 살면 언젠가는 엄마, 아빠에게 집도 사주고 집안도 일으킨 멋진 장녀, 효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돈을 벌면 벌수록 주머니 사정은 나아졌지만, 마음은 더 조급하고 불안해졌다. 분명 전보다 훨씬 부유해졌고,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을 충족하며 살고 있는데 왜 계속 허기질까, 그런 물음이 계속되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집을 가지면 나아질까, 성공한 직업을 가지면 해결될까, 열심히 달리는 사이사이 이런 의문들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올라왔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소위 성공한 사람들, 높은 지위의 사람들, 내가 지금 가지면 행복할 것만 같은 것들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많은 돈과 높은 지위를 가질수록 나보다 더 불안해 보이고 고민이 깊어 보였다. 이상했다. 이런 고민들이 화근이었을까? 번아웃이 왔고 결국 퇴사하였다. 퇴사하면서 내가 좇았던 것들이 정말 좇을 만한 것들이었는지 점검해보고 싶었다. 가장 먼저 지금까지 안 해본 것들을 해보고 안 가본 곳들을 다녀보기로 했다. 완전한 백지 상태로 무엇을 먼저 해볼지 설레기도 했다. 미니멀 라이프, 은둔, 여행, 봉사 등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갔다. 그중 어릴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출가를 해보고 싶어 백일출가를 하게 되었다.
사실은 백일출가를 출가체험 정도로 생각하고 갔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보다 진짜 나를 마주하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극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내가 나오는지 볼 수 있었다. 동기 중에서 막내였던 나는 다소 비중 있는 소임을 맡게 되었다.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풍부한 분들에게 안내하거나 요청할 일이 잦았다. 처음에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반들은 예민해져 갔고, 그 화살은 나에게 돌아오기도 하였다. 매일 하는 요리, 청소, 농사일과 같은 소임들은 생경한 일이었고, 도반들에게 의도치 않게 시간에 대한 압박감을 주기도 한 탓에 동기 도반들에게 핀잔을 듣는 일이 많았다. 점점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마음 나누기에서 내 이름이 거론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는 칭찬도 쓴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사회에서는 항상 자신감 있었고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낸 내가 왜 여기서는 정반대일까? 내 뜻대로,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모든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공양간 내부 청소를 할 때 일이다. 공양간 선반을 닦기 위해 스테인리스 볼, 양념통 등을 모두 꺼낸 후 선반을 닦고 물품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열심히 한 만큼 깨끗이 정돈된 공양간을 보니 뿌듯했다. 그다음 조가 들어와 공양을 지었는데 끝나고 나누기를 듣게 되었다. “물건들이 원래 있던 자리에 없어서 너무 불편했어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랐다. 우리가 열심히 공양간 청소를 한 것은 알아주지 않고 고작 물건이 조금 다른 위치에 있다는 불편함이 나누고 싶은 마음 중에 제일 큰마음이라니,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상황이 너무 서운했다. 그러면서 그간 쌓인 서러움이 폭발했다. 이곳은 내가 노력한 것은 알아주지도 않고 조금 잘못한 것, 조금 실수한 것만 콕 집어 지적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고 서러웠다.
그때까지 나는 노력하면 세상이 당연히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이 된 것 같아 처한 상황을 비관했다. 아이 같은 마음이었다. 몸만 컸지, 마음은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하면 모두 알아줘야 하고, 내 뜻대로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서운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화를 냈다. 지금까지 편한 주변 환경과 나에게 맞춰주던 주변 사람들 덕분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게 진짜 내 모습이었다.
백일 내내 그런 나를 마주하며 ‘내가 그렇구나.’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나의 노력과 바람이 항상 원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또 수많은 마음 나누기를 하며 사람의 마음 또한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이 같은 사실이 아프기도 했지만 결국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모님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참 많이 맞춰주셨겠구나’ 사람들은 작은 것에서도 불편을 느끼는데, 집에서 대장 놀이하며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던 나를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들의 생각, 마음 모두 내려놓고 맞춰주셨구나! 그것도 모자라 매번 고맙다, 미안하다 해주셨구나!’ 부모님께 미안함과 감사함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재입재를 하며 나는 스태프 소임을 맡았다. 소임을 짜고 안내하는 일이었다. 도량 내에 필요한 일감을 파악하여 행자님들을 배치했다. 분명 백일출가 때는 힘들기만 하던 일이 안내하고 도울 때는 그런 마음 없이 재미있었다. 신기했다. 스태프는 소임을 만들고 거기에 인원을 배치하고 행자님들에게 안내하고 손이 부족하면 도와주는 일까지 해야 하는데 왜 더 기운이 날까. 간혹 힘들어하는 행자님들이 보이면 ‘행자님 파이팅~!’ ‘행자님 최고~!!’ 하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때마다 함께 웃으며 영차 했고 기운을 차리는 행자님들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힘이 나곤 했다.
그때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아주며 함께 무언가를 해나갈 때 오히려 내가 힘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집 생각이 났다. 내가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었던 것은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행동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알았다. 결국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고 그 혜택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많이 받았던 것이다. 가족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힘내서 여러 일을 해내며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장단에 맞춰주고 고맙다며 묵묵히 따라준 가족들에게 감사했다. 그건 사랑이었다. 나는 온통 사랑받고 있었음에도 그게 사랑인지도 몰랐다. 부끄럽게도 지난날 나는 우리 부모님이 친구 부모님보다 돈이 조금 적다는 이유로 속으로 원망하기도 했었다. 어리석고 많이도 어렸다. 이제 와서 부모님께 참 많이 죄송하고 감사하다.
‘진짜로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 회향하며 느낀 첫 마음이었다. 작은 캐비닛 속 물건들이 내가 가진 전부였지만 백일출가 생활은 불편함이 없었다.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 내가 지켜온 일상에는 필수가 아닌 것들이 많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누만 사용해도, 스킨, 로션, 크림 등 여러 개를 순서대로 바르지 않아도, 그렇게 소중해 마지않던 머리카락이 조금 빠져도 살아졌다. 솔직히 충분하고 편했다.
없으면 불편하고 삶의 질이 떨어질 것 같아서 챙기며 살았던 대부분의 생활용품들이 사실은 챙기지 않아도 괜찮고, 오히려 그것들이 없을 때 생활이 더 단순하고 편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있을 때는 몰랐지만, 없이 살아보니 그것들을 위해 시간, 에너지, 돈이 꽤 많이 들었고, 그것이 없는 삶에 대한 불안감이 생각보다 컸다는 것을 알았다. 사는데 필요한 것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마음속의 큰 짐을 덜은 것 같았다. 조금만 벌어도 충분히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고, 이만큼 살 정도의 돈은 현재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해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드니 내 삶의 직업적 성공, 경제적 안정의 기준이 훨씬 낮아졌다. 그 덕에 내 상황은 그대로인데 더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덕분에 내 삶은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백일출가를 통해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 속에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들이 과분할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내 이웃들과 나누고자 한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백일출가로 내 삶의 방향도 확실해지고, 바른 관점을 잡고 그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백일출가 문구처럼 ‘내 인생의 장부가 되었다’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지만, 그 길을 걸어갈 용기가 생겼다는 말은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글_방혜린(백일출가 45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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