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원주지회
거침없는 행동파의 성장통

“오늘 인터뷰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한번 해보겠다고 했어요. 앞서 인터뷰했던 도반의 말을 들으니 '해보니까 정리가 되더라' 하길래, 저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저 역시 그동안의 삶이 정리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시원한 목소리와 밝은 미소를 가진 오늘의 주인공은 원주지회 단구 모둠장 서양례 님입니다. 서양례 님이 풀어주는 정토 행자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거침없는 행동파

남편은 제게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한 면만 보고 다각적으로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남편의 말처럼 저는 치밀하고 계획적이기보다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올인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대는 워낙 보수적인 집단으로 교내 시위도 별로 없었습니다. 젊은 울분에 학생 운동에 꽂혀 남들보다 오래 대학에 다녔고, 6.29조치로 어렵사리 복학하고 스물일곱에 초등 교사가 되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으뜸절 청소(2024년, 맨 왼쪽 서양례 님)
▲ 정토사회문화회관 으뜸절 청소(2024년, 맨 왼쪽 서양례 님)

지인의 소개로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을 만났습니다. 1990년,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인천으로 직장을 다니고 저는 화성으로 발령받아 신혼집을 수원에 꾸몄습니다. 둘 다 직장이 너무 멀어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퇴근 후, 저녁 준비를 하고 남편 귀가 시간에 맞춰 큰애를 업고 버스 정류장에서 남편을 기다려 같이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둘째도 낳고, 보통 맞벌이 부부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40대 초반, IMF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지' 싶어 위로하며 지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무직이 상처가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불만이 쌓였지만, 직접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거리며 지내는 시간이 참 힘들었습니다.

남편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힘들어 한 수련단체를 찾았습니다. 처음엔 남편과 같이 운동한다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남편은 중간에 그만두었습니다. 반대로 저에게는 다양한 수련 프로그램이 잘 맞았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했고, 거금을 들여 해외연수도 다녀왔습니다. 단체 쪽에서 지도자 생활을 제안했고,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초등 교사를 아무에게 상의하지 않고,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여 그만두고,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에게 불만도 있었지만, 저 자신에게는 '늘 뭔가 부족하고 좀 더 성장해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수련단체를 선택한 것도 '나 자신이 크게 성장할 것이다.'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운동이나 수련이 중심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가지고 있던 돈도 다 쓰고 남편 돈까지 몰래 가져다 쓰니,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거기서 나올 때는 나 자신에게 몹시 실망한 상태였습니다. 집안의 불안정한 상태를 남편의 책임으로 느끼면서 마음의 갈등이 커지고 남편과의 관계도 나빠졌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의 두 딸에게도 부담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때였습니다.

기간제 교사 시절

후배에게 ‘기간제 교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불안정하지만 다시 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40대 중반,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 절박했습니다. 그나마 기간제 교사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서양례 님
▲ 불교대학 홍보, 서양례 님

하지만 마음은 헛헛했습니다. 계속 계약을 해야 하니 눈치도 봐야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컸습니다. 당시 남편도 직업이 없어 제가 가정과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낮에는 기간제 교사로, 밤에는 임용고시 준비로 도서관 가서 공부하고, 살림도 하면서 몇 년을 찌들어 살았습니다. 제가 임용고시 준비할 때는 경쟁률이 높고, 3차까지 시험을 치르고, 영어 인터뷰 준비까지 정말 벅찼습니다. 외워도 까먹고 외워도 까먹고, 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는 일상이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남편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주변에 토로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혼자 울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희 아이들은 고등학생이었는데, 집안이 어렵다는 걸 눈치채고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그렇게 6, 7년 준비해 50대 초반에 임용고시에 다시 합격했습니다. "늙은 나이에 수고 많았다."라며 연수원장이 따로 밥을 사주었습니다.

살기 위한 선택, 정토회

돌아보면 가장 어려웠던 기간제 교사 시절, 저는 살기 위해 정토회에 갔습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현수막을 보고, 남양주 평내법당에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2012년 불교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낮에는 직장 가고 저녁에 법문을 들으니 많이 졸았고 크게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 해는 출석 일수도 채우지 못해 졸업을 못 하고, 2013년 두 번째 입학해서 졸업했습니다. 처음 접했던 정토회는 '건강한 조직, 청렴한 조직, 나도 살리지만 내 주변도 살리는 그런 곳이구나!'라는 느낌이 제일 크게 와닿았습니다.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영상 촬영 (뒷줄 맨 왼쪽 서양례 님)
▲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영상 촬영 (뒷줄 맨 왼쪽 서양례 님)

2017년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원주로 발령받아 경전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예전에 잘 들어오지 않던 법문이 조금씩 와닿았습니다. 그때 경전대학 동기들이 "처음에 교사라는 말을 들었을 때 표정이 너무 어두워 교사가 왜 저렇게 어둡지 했는데, 처음보다 정말 많이 밝아졌다."라고 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저는 평소 활달한 성격이고, 기분 좋으면 마이크 잡고 무대로 올라가는 성향입니다. 친한 친구들은 저를 재밌고 엉뚱하다고 평가하고, 저도 그런 부분이 저를 어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기들의 뜻밖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저와 다른 저를 만났고 저는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수행의 열매

2016년 손아래 동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동생이 가고 나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마음으로 천도재를 지내주고 싶었습니다. 특별히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아침에 동생을 위해 기도하자.’라는 마음을 냈고, 그때부터 꾸준히 새벽 5시 아침 수행을 했습니다. 시작은 동생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2023년 종교인 평화선언(왼쪽에서 세 번째 서양례 님)
▲ 2023년 종교인 평화선언(왼쪽에서 세 번째 서양례 님)

많이 변한 것은 남편을 바라보는 제 시각입니다. 남편을 대하는 표정이나 말 한마디가 편안해졌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조금씩 남편을 이해하려 했고, 제 마음 깊이 남편에게 애정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법문을 들으며, '내가 남편에 대해서 잘 몰랐구나. 그 사람도 힘들었겠구나. 섬세한 사람인데 내 식대로 해석했구나.' 싶어 미안했습니다. 정토회를 몰랐다면 남편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분별하고 힘들었겠지만, 남편은 남편일 뿐 남편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자상한 할아버지 역할도 잘하는 남편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5녀 1남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부모님은 장사하느라 바빠 아이들을 살필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원하는 게 많고, 고집도 셌습니다. 마음대로 안 되면 세 시간씩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때때로 마음이 풀리지 않으면 밖에 나가 욕도 하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커서도 ‘원하는 것은 얻어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임용고시 합격을 경험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충동적이고 기복이 심한 성격은 정진하면서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싫어도 좋아도 그냥 꾸준히 해온 수행 덕분에 책임감도 강해지고, 이럴까 저럴까 하는 망설임도 줄었습니다. 망설이기보다 일단 해보면 더 좋았던 경험이 축적되었습니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제일 큰 수행 과제는 아이들한테 화내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개성이 강하고, 교사의 권위는 낮아진 것 같습니다. 아이들 뒤에는 부모뿐 아니라 여러 가족이 있고, 교사가 하는 말은 대부분 집으로 전달됩니다. 보통 한 반에 ADHD 성향의 아이들이 서너 명 있는데, 부모는 자신의 아이 상태를 자세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아침마다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해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욱하는 때가 있습니다.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가 커집니다. 한번은 맨 앞에 앉은 아이가 화가 나서 커진 제 목소리에 귀 막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정일사 수행 과제가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합니다.‘였습니다. 아이들과 잘 소통하고 이해하는 부분도 있지만,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듭니다.

JTS홍보활동(뒷줄 맨 왼쪽 서양례 님)
▲ JTS홍보활동(뒷줄 맨 왼쪽 서양례 님)

비난받아도 괜찮습니다

한번은 점심시간에 1학년 우리 반 교실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협력 선생님에게 협박하듯 “다 필요 없어요. 전화해서 아빠한테 얘기하면 돼요.”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격앙되어 집으로 전화하겠다는 말만 하고, 심하게 울어 숨이 가쁠 정도였습니다. 저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협력 선생님에게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협박하는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숨이 가쁠 정도로 우는 아이의 행동이 과장된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너 진짜 힘들어서 우는 게 아니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툭 나왔습니다. 순간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날 오후 아이가 진정된 후, 전후 사정을 들었습니다. 우리 반 한 아이가 맞았는데, 그 아이를 때린 사람으로 자기가 지목되자 협력 선생님이 자기를 불렀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울었다는 겁니다. 아이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겠지만, 협박하는 행동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 하교 후, 아이 엄마와 통화했습니다. 아이는 '일부러 우는 거 아니야?'라고 했던 제 말을 전했고, 아이 엄마는 서운하다고 했습니다. 학부모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제가 아이에게 사과하기를 바랐고, 저는 사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봉사(가운데 서양례 님)
▲ 부처님오신날 봉사(가운데 서양례 님)

그날이 금요일, 주말 내내 끙끙거렸습니다. 아이에게 사과하는 것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이의 감정을 잘 받아주었다면 아이의 행동도 효과적으로 교육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과 '교사답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가득 찼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며칠 뒤 기도하다 문득 ‘비난받고 싶지 않았구나. 괜찮은 선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구나. 이상한 선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탁 가벼워졌습니다. 내가 '교사라는 상을 지어 놓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쩔쩔매고 있구나.'를 알았습니다.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저절로 놓아졌습니다.

좀 더 성장해야 해

저에게 깨달음의 장을 소개한 대학 친구 둘은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정토회 활동도 했지만, 지금은 각자 개인 수행만 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이 "정토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도 수행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할 때, “아니야. 나는 좀 더 커야 해. 나는 좀 더 성장해야 해. 나는 좀 부족해.” 이렇게 말하자, 친구들이 빵 터졌습니다. 제 말은 무의식적으로 툭 튀어나온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하면서 제 모습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알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왜 괴로운지?' 하나씩 깨달으면서 조금씩 더 밝음의 단계로 나아가고 덜 괴로운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흡족한 부분은 너무 당연하게 느끼고, 안 되는 부분에만 집착합니다.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과보를 받든지, 그게 싫으면 노력하든지 해야 할 때 저는 노력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마음 한편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은 걸까?'라는 고민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를 처음 만났던 초기의 나와 지금을 비교하면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만 숨이 다할 때까지 매일 수행하려고 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정토회관 도량청정(오른쪽  첫 번째 서양례 님)
▲ 정토회관 도량청정(오른쪽 첫 번째 서양례 님)


거침없는 행동파, 다양한 수련의 구도자, 늦깎이 수험생, 기간제 교사, 수행 봉사 보시를 실천하는 정토행자 등 서양례 님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고 파란만장했습니다. 꺼내 놓기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하셨지만, 솔직하고 강한 에너지가 전해졌습니다. 정토회의 앞날에 서양례 님의 에너지가 함께 할 거라 여기며, 늘 성장하는 서양례 님을 응원합니다.

글과 편집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회 수원지회)

전체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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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9-21 15:06:53

자재왕

수행자로써 교사를 하면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24-09-18 07:56:43

김은주

감동적이고 공감되는 글 잘 봤습니다. 모둠장님 멋지다~^^

2024-09-16 07: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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