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9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해왔습니다

이소윤 님은 1,000일을 기도하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출구라는 생각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벽 법당에 나가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3년이라는 목표를 어렵지 않게 이루고, 지금까지 9년 넘게 매일 새벽기도를 이어오고 계시는데요. 그럴 수 있는 동력은 바로 변화를 꿈꾸는 간절한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이소윤 님은 꾸준한 수행으로 본인만 아는 변화가 생겼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함께 보시죠!

인연의 서막: ‘스님이 왜 거기서 나와’

정토회를 처음 만난 계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평소에 즐겨보던 ‘힐링 캠프’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초대된 손님은 연예인이나 인기 있는 스포츠 선수가 아니라 스님이었습니다. '뜬금없이 스님이 왜 저기서 나와?’ 하며 신기하게 봤는데, 그분이 바로 법륜스님이었습니다.

어떤 말은 때로 듣는 순간 ‘영원히 잊히지 않겠구나’ 싶은 말이 있는데, 그날 스님의 말씀이 그랬습니다. 법륜스님의 말씀은 참 유쾌하면서도 명쾌했습니다. 말씀마다 어찌나 통쾌하던지 ‘혹시 저분이라면, 저분이 있는 곳이라면, 내가 가진 불안과 강박들도 통쾌하게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정토회와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지 않는 일반인에게도 열려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뒤집힌 모양새로, 저는 깨달음의 장을 먼저 다녀오고 그 뒤에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저는 마음을 열어 솔직하게 감정을 꺼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고된 시간을 담아, 꼭꼭 걸어놓았던 마음의 빗장이 저를 지키는 방어선인 줄 알았습니다. 내어놓고 가벼워지는 길이 있는 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미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던 도반들이 저와는 달리 유연하게 마음 열어서 내어놓는 것을 보고는, 정토불교대학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서 정토회와의 인연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이소윤 님
▲ 이소윤 님

엄마의 빈자리 그리고 무너져 내린 가족이라는 울타리

어린 시절 저는 나이 어린 엄마와 젊은 할머니 사이의 고부갈등 속에 자랐습니다. 맏딸이었던 저는 엄마의 사랑보다는 할머니의 보호 아래 컸습니다. 엄마는 어쩌면 자신보다 할머니를 더 따르는 딸아이에게서 시어머니의 싫은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동생에 비해 엄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걸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할머니와의 좋은 기억은 많지만,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엄마의 역할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생을 아우르는 불안감과 허기의 근원이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의 공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로부터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전이된 채, 청소년기를 보내고 저는 20대가 됐습니다. 그 시기에 가족이 풍비박산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외도가 원인이었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덩달아 가세가 기울면서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와 두 동생에게 단돈 50만 원을 쥐여주시고는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로 가버렸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갈 곳이 없던 저는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돈이 없는 것보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저를 더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고되고 외로운 시간이 쌓여가면서 가족을 향한 원망도 점점 커졌습니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갈등에서 방관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마침내 외도로 가족을 등졌을 때 자식을 지켜주지 않은 엄마,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심어준 할머니에 대한 원망까지, 삶이 고되면 고될수록 가족에 대한 원망은 깊어졌습니다.

가족을 원망하고 상황을 탓하는 마음은, 매사에 불안하고 강박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커질 대로 커지면서 유명하다는 사찰은 모두 다 찾아가서 기도를 드려보기도 하고, 템플스테이도 하고, 명상도 해보았습니다. 철학관에서 이름을 바꿔야 운명이 바뀐다는 말에 개명까지 했습니다.

수행문에 나왔듯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그렇게 간절하게 운명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운명처럼 TV에서 환히 웃고 계신 법륜스님을 만난 것입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출구

당시 정토회 법당이 일터에서 5분 거리에 있어 공부하러 가기가 수월했습니다. 어느 날 스님께서 법문 중에 ‘100일을 기도하면 내 모습을 알게 되고, 1,000일을 기도하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장이 뛰고 머리털이 쭈뼛 서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니, ‘아, 이거다!’ 싶었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빙빙 도는 느낌을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드디어 ‘출구가 저기 있다’고 손짓하는 것 같았습니다.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하니, ‘믿고 따라가보자’하는 의지가 강하게 솟구쳤습니다. 그러나 맹신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경계심이 다 사라지지 않던 차에,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닌,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대한 법문을 듣게 됐습니다. 당시의 저는 불교에 대해서 기복 의식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어 수행으로서의 불교라는 관점이 굉장히 획기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곧 그 생경함은 신뢰감으로 바뀌었습니다.

기흥법당 도반들과 법회 후(왼쪽 첫 번째가 이소윤 님)
▲ 기흥법당 도반들과 법회 후(왼쪽 첫 번째가 이소윤 님)

수행적 관점에 눈이 뜨이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어서 3년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처음 1년간은 기도 시간이 들쑥날쑥했고 마음을 다잡기까지 오락가락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행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난 뒤에는, 수행하는 일상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매일 새벽 법당에 가서 새벽기도를 하다 보니, 담당 소임이 아니었음에도 미리 준비하고 도반들을 맞는 일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한번은 수행 도반님 가족의 장례식장에 갔는데 새벽기도 시간을 놓칠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제시간에 맞춰 기도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당시 아침 수행은 제게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아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는 동아줄과도 같았습니다.

새벽기도 5주년 기념일(오른쪽 첫 번째가 이소윤 님)
▲ 새벽기도 5주년 기념일(오른쪽 첫 번째가 이소윤 님)

저는 근무 시간이 불규칙한 일을 하고 있어서 새벽에 출근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전날 밤에 미리 기도하고 출근합니다. 그런 날은 기도를 하루 두 번 하게 되지만 지금도 매번 같은 선택을 합니다.

매년 ‘나눔의 장’과 ‘여름 명상 수련’에도 참여했는데, 어떤 해는 1년에 두 번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일상에서 경계에 부딪혀 수행적 관점이 흐트러져 있을 때라는 것을 수련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저는 깨달음의 장에서 못했던 내 이야기를 마음 열고 할 수 있었습니다.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내면은, 든든한 방어선 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늘 안절부절 긴장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내어놓고 자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나눔의 장을 다녀오고 난 뒤, 무엇이든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 풀어놓고 밖으로 내어놓을 때 자유로워지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로 경직된 마음이 조금씩 말랑말랑해져 편안하게 마음 나누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법당이 문을 닫기 전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법당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변화를 꿈꾸는 간절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편안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온통 나를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행 시간이 쌓여갈수록 만족스러운 상황으로 인도해주기를 바라며 두리번거리던 시선이 점차 내 안으로 방향을 틀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꾸준한 수행으로 바뀐 것은 상황이 아니라 관점

9년간 꾸준히 새벽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안 할 수가 없었다’라는 표현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3년을 하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셨는데 9년을 기도한 지금, 나만 아는 변화들이 있습니다.

9년간 기도하면서 내 삶에 일어난 변화로, 첫 번째는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입니다. 수행하기 이전에는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치닫던 감정의 진폭이 이제는 편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경험을 하면서, 애쓰지 않아도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전에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기도하고, 참회하려고 기도하고, 편안해지려고 기도했다면, 지금은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고, 저절로 참회가 되고,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세 번째는,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게 됐습니다. 이전에 비해 경제상황이 나아지거나 건강이 더 좋아지지 않았어도 더 이상 비교하지 않습니다. 비교하거나 탐하는 마음이 줄어드니 지금 이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내가 부족함을 느끼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제가 더욱더 수행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듭니다.

이소윤 님
▲ 이소윤 님

수레바퀴처럼 연기되어 있는 세상의 이치에 눈뜨다

수행은 이렇게 경이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문과 같아서, 사실 똑같은 세상이지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나는 출구를 알려주는 손짓이 아니라, 수레바퀴처럼 연결되어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관점으로 안내해주는 손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지금 백혈병을 앓고 있습니다. 2년 전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는 억울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부모 복도 없이 지금껏 고생만 하다가, 나이 오십에 남편도 자식도 없이, 또 병까지 얻었다는 생각에 휘청거렸습니다. 그러나 괴로움도 잠시, 이내 수행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큰 괴로움 속으로 나를 잠식시켰을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면역 수치가 나빠졌을 때도 있었습니다. 일어난 일을 수용하고 지금 내가 할 일은 치료를 잘 받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관점으로 힘든 치료를 이겨냈습니다. 이제는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고, 기도할 수 있는 아침을 맞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압니다.

TV에서 처음 법륜스님을 봤을 때, 호기심을 흘려버리지 않고 인터넷을 검색했던 나 자신이 고맙습니다. 깨달음의 장을 가고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던 매 순간 선택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누군가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바라던 과거의 제가 이제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주인된 삶을 사는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무엇보다 법륜스님과 동시대를 살며 넓은 우주 속 먼지 위의 점과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어리에서, 정토회라는 공동체에 몸담아 법륜스님의 지도하에 수행할 수 있어서, 저는 오늘도 눈물 나게 행복합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9월호에 수록된 이소윤 님의 수행담입니다.

글_이소윤(용인지회)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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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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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수행을 하는 이유를 찾았던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으름이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닫습니다.
이소윤 님 감사합니다. 변함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 하는 도반님 기억하면서 수행정진 놓지 않겠습니다.

2024-04-17 14:59:28

길현숙

이소윤님의 수행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눈물 나게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04-13 16:38:25

김학연

계속하면 좋아지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기기도 합니다. 매일 정진하며 그나마 평안을 유지함을 알기에 좋아지던 아니던 오늘 지금 여기에 만족하며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4-13 15: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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