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남편은 제 불행의 씨앗이 아니라
귀인이었습니다

노춘민 님은 사업 실패로 무기력감에 빠져있었고, 남편과의 갈등 끝에 이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우연히 즉문즉설을 듣고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에서 서서히 가볍게 사는 법을 배웠고, 그 뒤 누구라도 불법을 만나 자신처럼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가정법회를 열었고, 군산법당까지 개원하였다는데요. 뜨겁고 열정적인 노춘민 님의 수행담을 함께 보시죠.

불교TV에서 우연히 즉문즉설을 듣다

2010년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중 불교TV에서 흘러나오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TV 앞에 앉았습니다. 10여 분 정도의 짧은 즉문즉설이었지만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불교와는 너무 달라 생소했고, 다른 스님들의 법문이나 대화 방식과도 달라 ‘참 이상하다.’하면서도 내심 매일 즉문즉설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이혼 도장을 찍기 하루 전, 남편이 쓰러지다

희망강연 접수 봉사(브이 하는 분이 노춘민 님)
▲ 희망강연 접수 봉사(브이 하는 분이 노춘민 님)

그 당시 저는 큰 미용실 두 개를 운영하다가 하나를 정리하면서 많은 부채를 떠안았고, 사업 실패에 대한 무기력감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과도 사이가 안 좋아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혼 도장을 찍기로 한 바로 전날, 남편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생사를 오가게 되었고, 두 번의 수술을 거쳐 1년여 동안 입원 생활을 하였습니다. 남편 병간호하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미용실을 운영했고, 경제적 부담감에 짓눌려 정신을 놓은 채 일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죽지 못해 겨우겨우 살아내다 보니, 결국 무리하게 되어 제 몸까지 아프게 되었습니다.

몸은 아픈데 쉴 수가 없어 더 괴로웠고, 인생 최악의 순간을 맞는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픈 남편보다 내가 먼저 죽겠구나! 그럼, 아이들은 어떡하나? 남편은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미래를 그려보면 앞이 캄캄했고, 삶은 어쩜 이리도 불행의 연속인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나는 그냥 이렇게 죽을 때까지 불행하게 살다 갈 수밖에 없나 보다.’ 체념이 되었습니다.

전주행복시민 모임 중(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노춘민 님)
▲ 전주행복시민 모임 중(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노춘민 님)

즉문즉설로 새로운 관점을 얻다

그렇게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중에 즉문즉설에서 “괴로워 죽겠어요.”하는 질문자의 일상 이야기를 법륜스님이 너무나 가볍게, 별일 아닌 일로,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풀어 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시원해지고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져 갔습니다. 죽지 못해 산다고 느끼던 제 일상도 어느새 가볍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법륜스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서 스님의 책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첫 번째 읽은 것이 <실천적 불교사상>과 <반야심경>이었는데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며 한 번 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불교는 ‘부처님을 믿으면 극락에 가고, 하는 일도 모두 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든 괴로움의 원천이 바로 자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불행은 아픈 남편과 말 안 듣는 아이들,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사업 때문이라면서 세상을 탓하며 괴로워했는데, 스님은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어떤 상황이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책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저에게는 잘 믿기지도 않았고 아주 이기적인 이야기로 들렸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이 가슴으로 훅 치고 들어왔습니다.

도반들과 천배정진 후(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노춘민 님)
▲ 도반들과 천배정진 후(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노춘민 님)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다

정토회 홈페이지를 찾아 천일결사 경전 말씀을 매일 읽고, ‘정토행자의 하루’에 올라오는 수행담을 읽으며 위안을 얻고 마음의 무거움을 덜어가다 보니 경전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어졌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해야 경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알아보니 당시 제가 있던 군산에는 정토법당이 없었습니다. 곧 군산에도 법당이 생길 것이라 기대하며 2년여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마냥 기다릴 수는 없겠다 싶어 2013년 봄, 미용실 문을 일주일에 하루쯤 닫을 결심으로 전주의 주간반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처음 전주로 가던 그날의 설렘과 떨림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입학식에서 처음 청법가를 듣는데 울컥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갇혀 있던 울타리를 벗어난 듯한 기쁨이었는지, 꾹꾹 눌러 참고 살아온 세월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첫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스님 법문을 통해,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반성과 다짐을 하며 소중한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나갔습니다. 불교대학에 다니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전주를 오가는 4~5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고 행복했습니다.

또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며 남편이 제 괴로움의 씨앗이 아니라 부처님 법을 만나게 해준 귀한 인연임을 알게 되었고, ‘아픈 남편을 버리면 내가 좀 행복해질까?’ 수없이 생각했던 지난 시간이 마냥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그 마음으로, 지금까지 아픈 남편을 편안하게 돌보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픈 게 제가 아픈 것보다는 나은 것 같고, 남편 똥·오줌은 안 받아 내니 이만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을 보면서 저 또한 언제 아프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 항상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됩니다.

군산의 미용실에서 가정법회를 열고, 불교대학을 개설하다

불교대학 입학식 첫날 나누기에서, 군산에도 이런 법회가 빨리 열려 전주까지 오지 않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연의 씨앗을 제가 심을 줄 몰랐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불교대학 2학기에 전법교육을 받고, 그해 12월에 드디어 제 미용실에서 가정법회(수행법회)를 열었습니다.

수행법회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기쁨에 너무나 가슴이 벅차고 설레었습니다. 비록 수행법회에 오는 사람이 없을 때도 많았지만, 오롯이 저에게만 해주시는 법문으로 들려 주간·저녁 법회를 통해 법비를 흠뻑 맞을 수 있었습니다. 또 누군가 저처럼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이곳에 와서 법문 듣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했습니다. 다음 해인 2014년, 전주의 경전대학에 입학해 다니면서, 군산에 봄불교대학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첫 입학생이던 8명이 모두 졸업하였습니다. 제가 법을 알게 된 기쁨보다 도반들이 부처님 법 만나 행복해지는 과정을 보는 게 더 가슴 벅찼습니다. 그 와중에 무리가 와 입원까지 했어도 마음은 괴롭지 않았고, 모든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서원행자 수계식에서 법사님과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노춘민 님)
▲ 서원행자 수계식에서 법사님과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노춘민 님)

군산법당을 개원하고 부총무 소임을 맡으며 나를 보다

경전대학은 전주로 다니고, 군산에서는 수행법회와 봄불교대학을 진행하며, 미용실 문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닫고도 저는 예전보다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수행·보시·봉사하는 수행자의 길에 한 발 한 발 더 내딛게 되었습니다.

군산에 정토법당을 내고 싶은 욕심에 발품을 팔아 자리를 보러 다니고, 4년여의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군산법당을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법당만 개원하면 대외적인 봉사는 그만하고 개인 수행만 해야지 싶었는데, 부총무 소임이 주어졌습니다. 책임감에 마지못해 부총무 소임을 맡으면서 도반들과의 관계가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부총무 3년 하고 나면 나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 기대하면서 수행·보시·봉사에 매달렸습니다.

돌아보면 가정법회 4년과 부총무 3년 소임까지 고비마다 수행하지 않았다면 넘어갈 수 없을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게 제 욕심대로,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해 괴로웠다는 사실을 알았고, 부총무 소임을 내려놓으며 또 한 번의 수행 고비를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소임 덕분에 제가 얼마나 고집불통에 독재 근성이 강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정말 소임이 복이구나!’ 싶습니다.

군산법당 개원 법회(맨 앞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노춘민 님)
▲ 군산법당 개원 법회(맨 앞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노춘민 님)

지금 저는 행복합니다

서원행자 교육을 받을 때 유수스님께 질문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도반이 저를 지속적으로 불편해해서, 머리로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지만, 마음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저도 똑같이 도반을 시비 분별하다가, ‘나의 부족함이구나!’ 생각되어 자책하고 움츠러들기를 반복하며 괴로웠습니다.

그런 저에게 유수스님은 “상처받으려고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다.”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스님의 일침에 ‘아, 내가 정말 부정적이고 어리석은 중생이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기억의 한쪽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던 상처가 치유됨을 느꼈습니다. 수행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또 한 번의 기회였습니다.

지금은 행복본부 모둠장과 센터장 소임을 맡고 있는데, 이 또한 제 역량에 비해 큰 소임이라 감당하기에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다 제 성장의 디딤돌이 될 것임을 알기에 묵묵히 해나가 봅니다.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가 옳다는 고집을 버리고’ 행복본부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이 행복을 맛보기를 발원하며, 수행하는 사회 실천 운동가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의 저는, 참 행복합니다. 부족한 이대로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7월호에 수록된 광주전라지부 노춘민 님의 수행담입니다.

글_노춘민(광주전라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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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9

0/200

감로음

뭉클합니다.
그때 그러셨군요...
덕분에 제가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연락은 잘 못드리지만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언제나 응원드립니다.
배워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3-04 07:27:39

정안심 구정주

언제나 밝은 모습이라, 이런 감동적인 수행담이 있을줄이야. 진흙속에서 핀 연꽃을 보는 듯 합니다.

2024-02-21 20:25:31

무애

상처 받으려고 준비된 사람이다 라는 말씀에 저도 저를 다시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2-17 15: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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