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호주유럽지회
잘 쓰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최영희 님을 처음 온라인에서 뵙던 때는 2021년 8월 말 무렵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내기로 막 봉사를 시작한 제가 바라 본 최영희 님의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은 매주 회의에서 만나 가볍게 농담도 주고 받고 제가 처음 하는 소임이 서툴러 투덜거릴때면 살갑게 조언도 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이 늘 부족했던 초창기 시절 그 많은 소임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었는지 함께 들어보며 해외 활동가들의 어려움도 나누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3년 부처님 오신 날 개인연등
▲ 2023년 부처님 오신 날 개인연등

평탄한 삶을 뒤로하고 해외로

저의 유년시절은 적당히 시끄럽고 적당히 다복한 집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자식과 가정이 전부인 엄마, 무뚝뚝한 아버지, 친구같은 언니, 오빠, 동생과 함께 최고는 아니지만 크게 어려움 없이 잘 컸습니다. 자식들에게 기대가 컸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공부했고, 대체적으로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교는 집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지냈고,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에 묻혀 지내는 와중에도 대학원 공부까지 병행하며 바쁘게 살았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대체로 좋은 편이었고, 당시에는 몰랐으나 돌아보니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직장핑계로 명절에만 뵙게 되어 죄송했는데, 지금도 해외에 나와 있으니 혼자 계시는 엄마만 생각하면 늘 애틋한 마음입니다.

연구실과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결과내는 일을 했습니다. 독립적으로 일하는 연구원 특성상 책임감이 강하고 컴퓨터 작업과 서류작업에는 익숙한 편입니다.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결혼 후 우여곡절 끝에 얻은 아이가 귀하여 육아에 집중하려고 잠시 휴직했습니다. 복직 후 책임자가 되어 바쁘게 지내던 때, 남편이 뜬금없이 해외이주를 제안했습니다. 동의를 하지 않자, 남편은 혼자 먼저 해외로 나가 여러가지 상황을 살펴보느라 6개월 동안 떨어져 지냈습니다.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호주로 가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완전히 동의하지 않아서였는지 처음 해외 생활은 힘든 점이 많았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커리어를 위해 대학원공부도 병행하며 주변 도움없이 혼자 돌보아야 하는 어린 아이들, 인정받던 직장 커리어의 부재 등 힘이 들 때는 모든 것이 남편 탓이라 여겼습니다.

법을 만난 인연

호주로 이주한 지 10년 쯤 되던 2014년, 법륜스님이 해외 100강 순회 강연차 멜번을 방문했습니다. 광고를 보고 강연에 갔는데, 강연 후에는 법륜스님이 말씀하시는 불교에 관심이 생겨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깨달음의 장〉에도 다녀왔습니다. 잘한 것은 내 탓이요, 힘든 것은 남편 탓인줄 알았는데, 〈깨달음의 장〉에서 이 모든것이 결국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전반까지 연달아 마치며 지난 시절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에 집중하며 내가 한국에 있든 해외에 있든 어디에서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천일결사를 시작할 때는 절이 처음이라 입재식 한참 전부터 10배, 20배부터 시작하여 매일 한 배씩 늘려가며 서서히 108배를 했습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고집에서 벗어나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습니다. 불법 만나 어디서든 행복할 수 있어서 편안해졌고, 선배도반들의 봉사를 통해 받은 은혜를 갚고자 정토회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아이들을 키우느라 일을 안하고 있어 시간적 여유도 많았고, 직장생활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멜번법당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시작으로 해외생활에서 마음 둘 수 있고, 일이 재미도 있어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2016년 3월 8일 수계식
▲ 2016년 3월 8일 수계식

늘 부족했던 활동가

해외는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졸업 후, 회원으로 남고 활동가가 되는 경우가 적은 편입니다. 대다수가 일을 하여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보니 활동가가 늘 부족했습니다. 코로나 이전 법당시절에는 법회 후 함께 공양도 하고 법당 청소도 하며 유대감이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되자, 함께 소임을 맡고 있던 도반들이 많이 떠나고 멜번의 경우 활동가가 2~3명 뿐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멜번법당 총무를 하기에도 벅찼으나 인력이 부족하여 아시아태평양지구 불교대학 팀장까지 겸임하며 소임을 했습니다. 그 때는 익숙하지 않던 초기 온라인 회의방식인 행아웃으로 불교대학 담당들을 원거리 화상으로 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1년 학사기간이었는데, 해외 곳곳에 있던 법당과 법회, 열린법회 지역까지 메일과 전화로 챙기고 수기출석부로 관리하며 입학, 졸업식때 특히 바빴습니다. 지역에 지도법사님께서 방문하실 때는 수계식 준비와 지원 등 현 온라인시절에 비하면 정말 일이 많았습니다.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해외에서는 온라인 정토불교대학의 큰 혜택을 입었습니다. 오프 법당은 세 명 이상이 되어야 불교대학을 개설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으나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입학이 가능하니 참으로 법의 가피를 입었습니다. 첫 온라인 불교대학을 할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법륜스님의 불교대학을 서원하던 분들이 감격하며 불교대학을 입학했습니다. 어떤 분은 원서접수가 어려워 정보를 일일이 문자메시지로 받으며 화상에서 만나 접수를 도와드렸더니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해외 첫 온라인불교대학은 기다리던 분들이 모두 입학하여 이전의 3배수의 인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진행할 사람이 없어 한국 통일특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고, 각 해외 법당 총무가 돕는이로 들어가 업무를 배워 이제는 해외도 진행자와 돕는이를 양성하여 자립하였습니다.

2019년 멜번법당 정일사 수련 (첫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번 째)
▲ 2019년 멜번법당 정일사 수련 (첫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번 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임

해외는 거의 모든 활동가가 중임을 하는 편입니다. 특히 저는 시간이 허락되고 정토회 일을 즐기는 편이라 1차 만일 10차 때는 불교대학지부담당, 지부지원팀장, 선출직으로 모둠장까지 겸임하며 거의 종일 컴퓨터 앞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저녁 일정이 있었고, 회의 외 시간에도 무언가를 준비하고 만드느라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정토회 일로 보내느라 코로나 시절 모두 집에서 답답하다고 할 때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습니다.

2차 만일 1차에는 해외지부 산하 지회가 2개에서 3개로 나뉘어져 호주유럽지회가 생겼습니다. 지회가 늘어 소임자가 더 필요하게 된 반면, 지회 규모는 좀 더 작아지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어 호주 내 친근한 도반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점은 좋습니다. 하지만 호주와 유럽은 대륙이 달라 큰 시차로 인해 어려움이 많습니다. 입재식과 같은 큰 행사 뿐만 아니라 작은 여러 행사까지 호주지역은 주로 한국 오전 행사에 참여하고, 유럽지역은 한국 오후에 진행됩니다. 인력도 부족한데 행사는 두배다 보니 거의 모든 모둠장들이 중임을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저도 호주유럽지회 지회장, 해외지부 지원팀장, 불교대학지부담당을 맡고 있으니 활동가 양성이 해외에서는 시급합니다. 중임을 하면 업무 파악이 쉽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위 회의가 많고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활동가들이 많이 나오면 중임이 줄겠지요. 그나마 가족들이 양해해주고 하는 일들이 재미도 있어서 도반들과 함께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코로나 때 둘째가 자기도 대학생이 되긴 했지만 가끔은 '엄마와 얘기하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어 요즘은 중간중간 시간을 내어 아이들도 챙기고 괜히 주변을 맴돌기도 합니다. 잘 쓰일 수 있어 감사하지만 가끔은 일에 묻혀 수행적 관점을 놓칠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9년 방콕에서 열린 행자대회 (맨 왼쪽)
▲ 2019년 방콕에서 열린 행자대회 (맨 왼쪽)

가볍고 깨어있는 수행자

어릴 때 부터 내 주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은 이래야 한다고 틀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어떤 것은 내가 만든 기준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했습니다. 돌아보니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가두 시위에도 참여하면서 반대했었고, 대학교지 편집실에 일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들도 쓰고 외쳤습니다. 그러다보니 소임을 하면서 서로 의견이 다를 때는 분별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일은 이렇게 하는 것이 빠른데, 효율적인데 하는 내 생각에 빠져 다른 소임자들의 입장을 보지 못하고, 내 주장만 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돌이켜보면 일하는 방식이 다를 뿐 분별을 낼 것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누가 지적을 하면 바로 인정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정일사 수련을 통해 이런 점들을 내어놓고 수행지도를 받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상대방 입장이 되어 다시 돌이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좋은 일 하고 욕먹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물러서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고칠 것은 수용하고, 아닌 것들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주인으로 서자하는 마음으로 극복하기도 했습니다.

해외에 살며 언어로 인해 지역 커뮤니티에 잘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 이외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정토회 봉사를 통해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며 모자란 것에 아쉬워하기 보다는 지금에 감사하며 살 수 있어 행복합니다. 집에서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 큰아이가 엄마가 어떤 곳에 있는지, 법륜스님과 정토회가 궁금하다며 3월 불교대학을 입학한다고 할 때 많이 놀랐습니다. 한편 좋으면서도 조금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할 것을 권했습니다. 입학하고 가끔 수업도 빠졌지만 무사히 졸업해 대견했습니다. 엄마를 이해하려 불교공부를 한다는 아이가 참 고마웠습니다. 아들 하나는 권유하지 않아도 불법을 만났으니 감사하고, 기회가 되면 작은아이도 부처님 법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마음도 내보지만 인연에 맡깁니다.

가끔은 전공을 살려 직장 생활을 계속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리했어도 좋았고 지금처럼 필요한 곳에 쓰이며 살고 있어도 좋습니다. 해외에서 외롭거나 힘든 분들이 불교대학에 들어와 행복해진 모습을 보면 보람도 느끼고 어차피 보내는 시간 재미있게 봉사하며 보낼 수 있어 감사합니다. 만약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않고 간다면 해외에서 꼭 필요한 법사 소임을 하면 좋겠다는 원도 있지만 그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그냥 인연따라 가겠습니다. 아직도 분별하며 놓치고 넘어집니다. 그런 줄 아니 다행입니다. 이전처럼 집중적으로 많은 소임을 못하더라도 더 많은 활동가들이 나와 소임을 조금씩 나누며 모자이크 붓다의 한조각으로 남고 싶습니다. 소임에 집착하거나 내 방식을 고집하는 것에 유의하며 언제든지 가볍게 놓을 수 있도록 깨어있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최영희 님은 인터뷰에 응하고 후회를 많이 했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담담하게 써주신 서면 인터뷰를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보며 그동안의 노고가 느껴졌습니다. 점점 구부정해지는 어깨와 등이 모니터 앞에서 보낸 세월의 흔적임을, 어떤 질문에도 번개의 속도로 답해주는 것이 왜 가능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6차 전법교육생들이 이번에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을 채우기 위해 기지개를 펼치려고 합니다. 도반이 수행의 전부임을 다시 새기며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어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글_노금행 희망리포터(해외지부 호주유럽지회)
편집_서지영(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2023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21

0/200

묘향심

그동안의 노고가 느껴집니다.
꼭 법사가 되셔서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3-09-29 09:31:23

이용숙

반갑습니다
나눔에장 함께한 도반님의 수행담잘읽었습니다
도반님의 나눔의장 맞칠때 응원의말씀이 큰힘이되어 정토회활동 행복하게 잘하고 건강잘 챙기며 감사히 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9-22 08:48:22

문선

감사합니다 수행적 관점으로 일하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2023-09-22 07:52:51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호주유럽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