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울제주지부
벽에 걸린 빗자루가 아닌
세상에 잘 쓰이는 빗자루로 살겠습니다

'어떡하지? 아, 진짜 어떡하지?’ 인터뷰하기로 한 날, 온종일 답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내가 왜 편집자를 한다고 했을까?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발등에 떨어진 일로 인해 온갖 후회와 의구심으로 괴로울 때, 인터뷰 시간이 되었습니다. 불안과 긴장이 극에 달한 소임 1일 차 편집자에게 들려준 전 서울제주지부장 백기순님의 소임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꿈에서 만난 아버지에게 이단 옆차기

93년생인 큰애가 걸어 다닐 때쯤이었습니다. 함께 문화센터를 다니던 친한 언니의 권유로 홍제동 정토 법당에 갔습니다. 처음 법문을 듣고 굉장히 좋았는데도 정토회에 묶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법회도 잘 안 나가고, 나누기도 안 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를 권유했던 언니가 법문 녹음테이프를 일주일에 한 번 배달해 주는 우편물 법문을 신청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법문을 듣기 시작했는데 무척 감동이었습니다.

2013년 12월 15일 입재식에서 수행담 발표 중
▲ 2013년 12월 15일 입재식에서 수행담 발표 중

당시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많이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술을 참 좋아하던 아버지는 제가 고2 때 돌아가셨습니다. 가산을 다 탕진하고, 잠도 안 주무시고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훈장이던 할아버지에게 배운 한자어를 읊으면서 온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저는 그게 너무 창피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남가좌동에 살 때였습니다. 꿈에 아버지가 생전에 입으시던 두루마기 차림으로 집에 왔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이단 옆차기를 하며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소리쳤습니다. 꿈에서 깨어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아버지를 미워했구나!’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미움이

언니들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아버지께서 네가 보고 싶어서 찾아오셨나 보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언니들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없었습니다. 언니들은 아버지와 싸우기도 하고 이런 게 싫다고 솔직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맺힌 감정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착한 딸로 아무 표현도 못 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미워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2013년 8월 9일 동북아 역사기행 중
▲ 2013년 8월 9일 동북아 역사기행 중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미움이 법문을 일 년 정도 들었을 즈음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내가 좋은 아버지라는 상을 짓고 그러지 못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구나’를 알았습니다. 미움이 큰 돌덩어리가 되어 저를 짓누르고 괴롭혔는데 그걸 모르고 살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가벼워졌습니다. ‘나보다 어렸던 아버지도 참 외로웠겠구나’ 아버지를 한 사람으로 이해하게 되자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져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마치 아버지를 한 번도 미워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미움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사람을 경직되게 만드는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남편 부처님 덕분에

일 년 정도 법문을 듣다가 직장생활로 인해 정토회와의 인연이 끊어졌습니다. 그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어준 건 바로,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은 잔소리가 많고 엄청 꼼꼼한 사람인데 저는 집안일도 대충하고 모든 걸 맡겨버리는 사람이라 다툼이 잦았습니다. 남편에 대한 미움이 하루하루 적립금처럼 차곡차곡 쌓여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고 마음이 가벼워졌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정토회를 검색해 서초 법당을 찾았습니다. 일 년 정도 법당을 다녔습니다.

2013년 5월 17일 부처님오신날 점등식날,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백기순 님
▲ 2013년 5월 17일 부처님오신날 점등식날,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백기순 님

그 당시 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 시험에서 떨어지고 건강검진에서는 면역력이 거의 백혈병 수준으로 낮게 나왔습니다. 두 번째 검진에서 희소병에 주는 보험료를 받는데 ‘아, 내가 진짜 죽을병에 걸렸구나’ 싶어서 남편에게 전화해 펑펑 울었습니다. 세 번째 검진에서 다행히 더는 검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때가 연말이었는데 ‘죽으면 그만인데 뭐가 더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나한테 정말 필요한 건 정토불교대학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인 2009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벽에 걸린 빗자루 같은 '나'와 마주하다

불교대학에 다니며 모둠장 소임을 맡았을 때 ‘봉사자의 자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들었습니다. ‘빗자루는 바닥을 쓸기 위해 있는 것이지, 벽에 걸려 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스님 법문에 충격받았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한 번도 아내로서 남편을 위해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저는 남편을 쓰려고만 했지, 남편에게 쓰이겠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저의 모습이 마치 벽에 걸린 빗자루 같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잘 쓰이는 삶이 행복하다’라는 말이 저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사랑받으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내가 사랑하고 챙기겠다는 마음이 생기자,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수행한 지 3년이 지나니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미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변하니 아빠를 싫어하던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아빠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세상 만들기 홍보 중, 왼쪽 두 번째가 백기순님
▲ 희망세상 만들기 홍보 중, 왼쪽 두 번째가 백기순님

의지하던 마음에서 의지처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직장 다니며 모둠장과 불교대학 담당을 하다가 아들에게 신장을 나눠주는 수술을 받으면서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직장을 관두고 나서는 봉사가 저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행정부 저녁 팀장, 행복학교 사무처 팀장, 전국대의원회의 상임위원회 사무국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남편의 불만은 점점 커졌고 화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일도 내 소임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직장 일과 정토회 봉사에 항상 2순위로 밀려있던 남편과 집안일을 같은 1순위에 놓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태도를 180도로 바꾸어 저를 이해해주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남편에게 의지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남편의 의지처가 되겠다고 마음먹으니 저에 대한 남편의 간섭도 사라졌습니다.

외면하는 업식

코로나로 인해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된 10차에 서울제주지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서울제주지부는 품고 있는 지회가 가장 많아서 할 일도 많았습니다. 10차 지부장 소임에는 집행업무 외에도 전국사업 초안 기획과 의결 업무가 추가되었습니다. 거기에 상임천일준비위원회 위원 소임도 병행했습니다. 부담감보다는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소임을 맡았습니다. 시간에 쫓겼지만 ‘할 수 있는 만큼씩 하자’라는 마음으로 극복해나갔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과,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백기순 님
▲ 인도 성지순례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과,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백기순 님

소임을 하면서 도반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기고 신경 쓰지 않는 저를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도반이 있었습니다. 지부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하는 일인데도, 제가 잘 모르는 일이고 어디까지 관여해야 할지도 명확지 않아서 담당 도반에게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담당 도반은 제가 당연히 나서 줄 걸 기대했기 때문에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을 답답해하고 힘들어했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제가 도반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겼던 이유가 책임지지 않으려고 외면했던 것임을 알았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은 오빠와 언니들에게 챙김을 받고만 자란 저에게는 책임지지 않고 외면하는 업식이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도반 사이가 아니었다면

외면하는 업식을 알아차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회의 중에 저를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는 도반을 보자 저 역시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사님과 상담하며 제가 도반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날은 가슴이 아팠지만 둘째 날은 저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보고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래서 그때 남편이 그런 말을 했구나!’라는 것도 알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2013년 8월 5일 동북아 역사기행 중
▲ 2013년 8월 5일 동북아 역사기행 중

그때부터 도반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깊은 애정을 가지고 도반의 문제점을 말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듣기 싫은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임자로서 듣기 싫은 말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얘기했습니다. 도반은 흔쾌히 받아주며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정말 몰랐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다시 만난 도반이 “그때 백기순 님 미워했다”라고 말하는데 지금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도반 사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시 웃으면서 만날 수 있었을까?’ 도반이라서 가족에게도 못 하는 말을 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소임은 성불로 가는 지름길

지부장 소임은 제게 축복이고 기회였습니다. 지부장 소임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이런 사람인 줄 지금도 몰랐을 겁니다. 소임을 하면서 저 자신을 여러 방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외면하는 업식과 잘 공감하지 못하는 부족한 점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저의 업식과 부족함을 아니 저절로 마음이 숙어졌습니다. '소임이 성불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소임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일이 벅차면 역량이 커지는 기회가 되고, 잘 맞으면 잘 쓰이는 기회가 되었기에 소임은 엄청난 공덕이었습니다.

인터뷰하는 백기순님_오른쪽
▲ 인터뷰하는 백기순님_오른쪽

요즘 저는 잠자기 전 30분 명상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명상 덕분에 알아차림이 빨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내 마음이 이럴 때 이렇게 일어나는구나’를 알아차리니 마음이 점점 더 가벼워집니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이 다 빠지는 것처럼 보여도 콩나물은 자라듯이, 저 역시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정토회를 만나 함께하는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여기 OO병원인데 OOO님 보호자 되시죠?” 새벽 두 시, 낯선 목소리가 남동생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잠에 취해 몽롱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잠을 떨치고 일어나 남동생과 통화해보니 제가 걱정할까 봐 남동생은 수술받으러 간다는 말 대신 교육받으러 간다고 말한 것을 알았습니다. 동생을 만나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정말 내가 걱정할까 미안해서 거짓말을 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미안함도 있었겠지만 제가 힘들다고 툴툴거리는 게 불편해서 그랬을 겁니다. 인터뷰 기사를 정리하며 ‘나는 누군가에게 잘 쓰이는 빗자루인가?’ 물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마음속으로 ‘나는 빗자루입니다. 세상에 잘 쓰이는 빗자루가 되겠습니다.’ 되뇌어 봅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빗자루입니다.

글_홍윤미(인천경기서부지부 부천지회)
편집_박은영(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전체댓글 36

0/200

배병갑

소임이 성불로 가는 지름길인줄 잘 알지만 좀처럼 실현되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지내려는 두터운 업식이 늘 가로 막기 때문입니다.

2023-03-28 06:55:04

신윤희

감사합니다
세상에 잘 쓰이는 빗자루가 되고 싶습니다.
소임이 주어지니 감사합니다
소임이 부처되는 길이라니 더욱 감사합니다

2023-03-28 03:30:28

보현

고맙습니다

2023-03-27 08:59:31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서울제주지부’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