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중울산지회
바가지 똑바로 들고
랜선 법당 지기되다

중울산지회에서는 법당 시절, 새벽마다 함께하던 공동 정진의 힘이 랜선을 타고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10명 정도로 시작한 랜선 법당이 2022년 봄 정토불교대학을 거치며 이삼 십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랜선 법당에 들어오는 도반마다 매일 새벽 문을 여는 법당 지기가 있어서 든든하다고 칭찬합니다. 중울산지회 랜선 법당을 든든히 지켜주는 법당 지기, 김춘미 님을 소개합니다.

술 마시면 헐크로 변하는 아버지

반항기와 자유로움이 가득했지만, 인정해주고 기댈 곳을 찾아서 헤매던 20대의 김춘미 님
▲ 반항기와 자유로움이 가득했지만, 인정해주고 기댈 곳을 찾아서 헤매던 20대의 김춘미 님

저의 아버지는 평소 매우 자상하고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헐크처럼 예민하게 변해서, 자는 엄마를 깨워 술상을 차려오게 하고 했던 말을 반복하며 혼자 분노하고 엄마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참지 못한 엄마는 술상을 엎는 아버지와 멱살 잡고 싸우다 얻어맞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가족끼리 웃으며 행복한 순간이 생길 때면, 저는 ‘이런 행복한 일만으로 삶을 채울 수 없을까?’하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집을 떠나 시작한 직장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집에서 느꼈던 불안감이 없는 자취 생활이 너무 좋았습니다. 직장에서 책임자가 된 후부터는 거의 밤낮없이 일에 묻혀 살았습니다. 일을 제외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살았던 그 5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술 마셔야 사는 남자

일에 미쳐 살던 저에게 청혼한 남자와 아무 생각 없이 결혼했습니다. 그렇게 준비 없이 시작한 신혼은 처음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전혀 고분고분하지 않은 저와 회사에서 맡은 노무 때문에 남편은 365일 술을 마셨습니다. 어릴 적 술 마시는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편을 볼 때마다 기겁하며 가슴을 졸였습니다. 맞벌이하는 아내를 둔 남편은 늘 술값을 냈고, 저는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남편에게 술값까지 주며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아들이 태어났지만, 저는 일에 미쳐 덜컥 서울 업무를 맡았습니다.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술만 마셔대는 남편을 떠나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주말부부는 주말에만 만나서 금슬이 더 좋아진다던데, 저는 주말에도 술 마시러 나가는 남편과 아이답지 않게 늘 제 눈치를 살피는 아들을 향한 화만 쌓여 갔습니다. 결국, 남편이 갚아 달라면서 내민 액수에 눈이 돌아서 어릴 적 엄마처럼 남편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싸웠습니다. 그 길로 집을 나와 한 달 동안 길거리를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남편의 거듭된 사과와 아들 생각에 남편 빚을 갚기로 했습니다. 일일이 돈을 보내며 남편이 어디에서 술을 마시며 지냈는지 알았습니다. 상상 이상을 확인한 그 순간, 제 속에 숨어있던 폭력성이 터져 나오며 ‘나도 죽고 너도 죽자’라는 격한 심정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확실히 무언가 잘못되었고 이대로 있으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결책을 찾아서 무작정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정토불교대학 홍보 활동 중
▲ 2021년 정토불교대학 홍보 활동 중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유명하다는 절과 용하다는 무속인을 찾아다녔습니다. 심지어 “도를 아십니까”라는 곳까지 따라가 보았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면 붙잡고 어떻게 사냐고 묻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여름에 가끔 부는 미지근한 바람처럼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만 타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었습니다.

주말부부 생활을 정리하고 울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친정에 맡긴 아들도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잘 시작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고 아들은 전학하러 온 학교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때의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내 인생의 전환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남편은 운이 좋게 해외 취업에 성공해서 베트남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저와 단둘이 남은 아들은 여전히 저를 거부했고 늘 우울한 표정으로 혼자 있기를 원했습니다. 아무 마음의 준비 없이 아이를 낳고 난 후, 일을 핑계로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겼습니다. 아이가 세 살 때 친정에 보냈다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8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놓치는 잘못을 저질러 놓고, 도리어 아들에게 이런저런 강요를 하는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엄마였습니다. 아들과 저 사이에 당연히 갈등이 생겼고, 그때야 비로소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극에 달한 아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저런 법문을 찾다가 얻어걸린 것이 바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즉문즉설 사연들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나름 방법을 찾았지만, 임시방편일 뿐 제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팟캐스트에서 정토불교대학 광고를 들었을 때, ‘정말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면 이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집 근처 화봉 법당에 전화했더니, 마침 입학 접수 마지막 날이었고 고민 없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 신청했습니다.

2016년 정토 불교대학 입학식에서(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2016년 정토 불교대학 입학식에서(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거꾸로 들었던 바가지

호기심이 많은 저는 어떤 일이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해야 한다 생각하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정면 돌파 스타일이었습니다. 제가 좌충우돌 에너지를 쏟아낼 때면 주위의 불평과 잔소리를 많이 듣곤 했습니다. 이런 제 성격 때문에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분란과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자신을 자책하고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그 괴로움을 덜고자 세상 복이란 복은 다 구걸하고 다녔지만, 바가지를 거꾸로 든 채였습니다.

부처님 법 만난 덕에 평생의 제 꼬락서니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상대는 늘 저를 배려하고 제가 부르면 달려와 주었고, 세상일은 다 제 맘대로 되기만을 바랐던 저를 알아차렸습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은 제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저의 세상, 윤리, 도덕에 대한 편견들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자유로워졌습니다.

2020년 인도 성지순례에서
▲ 2020년 인도 성지순례에서

매일 새벽을 여는 랜선 법당 당주

2016년 가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고 이듬해 9-1차부터 시작한 천일결사를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 것 같아 두려웠지만 백일만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다시 백 일을 더 하다 보니, 현재는 2,000일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수행의 끈을 놓치면 과거로 돌아가 버릴 것 같아서라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온라인 법당 전환 후 생긴 랜선 법당 운영자 봉사를 하니 자연스럽게 매일 5시에 일어납니다. 랜선 법당 이전에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던 기상 시간이 딱 정해졌으니, 이 또한 소임 받은 복인 것 같아서 기쁩니다.

가족의 불평불만도 ‘그렇구나’라고 받아 줄 수 있는 마음이 쉽게 생깁니다. 예전 같으면 부르르 화부터 내었을 일도 ‘그렇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남편과 아들의 갈등 속에서도 ‘누가 이기든 끝나면 이겼다고 얘기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는 지혜도 생겼습니다. 또한, 아들이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할 정도로 잘 자라줘서 매우 고맙습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일과 사람 사이의 균형을 잘 잡으며 중도의 삶을 실천합니다. 삶의 틈이 정토회로 꽉꽉 채워져 있는 지금의 제 삶이 참 좋습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 마냥 좋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날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가볍게 하겠습니다.

2021년 남편, 아들과 함께
▲ 2021년 남편, 아들과 함께


새벽마다 랜선 법당에서 만나는 김춘미 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제 젊은 날의 방황과 많이 닮아서 더욱 울림이 컸습니다. 그 시절 저도 모든 불행이 상대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라고 생각하며 괴로움에 빠져 저 자신을 한없이 불쌍하고 안쓰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제가 일으킨 착각이었음을 아는 순간, 놀랍게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김춘미 님처럼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랜선 법당을 지키며 매일 꾸준히 수행하는 김춘미 님의 건강한 에너지를 생생히 느낍니다. 또한, 그 에너지를 많은 정토행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뿌듯한 마음 가득합니다.

글_김봉재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중울산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지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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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광

내면이 달라지니 얼굴이 달라지셨습니다.

2022-10-17 12:55:05

가을날

소중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편, 아들 앞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2022-10-14 13:59:31

자재왕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이 귀한 가르침을 삶에 적용하셨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10-12 09: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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